Switch Mode

EP.185

       축제라⋯⋯.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턱시도? 아니면 마법사의 정복 차림인 우중충한 후드? 유리의 기를 살려주려면 무시무시한 꽃미남으로 꾸미고 가야 하나?

       

       나는 말살대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 유리한테 달려가서 묻기도 뭣하니, 눈치껏 처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리가 어떤 복장을 입었는지를 확인하면 되지 않겠는가? 페어링은 중요하니까.

       

       축제 전체의 드레스코드와는 맞지 않더라도, 파트너와의 통일성을 살리는 쪽이 보기 좋을 것이다. 나는 제3의 눈을 떠서 옆집을 슬쩍 엿보았다.

       

       “으으으음⋯⋯.”

       

       유리는 옷장에 걸린 몇 안 되는 옷들을 뚫어져라 살펴보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쟤, 30분째 저러고 있다.

       

       덕분에 나도 30분째 붙잡혀 있는 신세였다.

       

       그녀의 시선이 각 의복에 머무른 시간을 계산해서 통계적으로 나타내면, 평소의 정장 51.2%에 하늘하늘한 원피스 48.7%였다. 간지와 여성스러움 사이에서 아직도 고민중인 모양이다.

       

       원피스라⋯⋯?

       

       돌이켜보면, 핑발레즈는 그렇게 나를 놀려대면서도 복장을 바꾼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봉인 해제라면서 벗은 적은 있어도.

       

       그러니 유리의 새로운 코스튬에는 큰 흥미가 있다.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낯설 것 같기도 하다. 본판이 본판이니 어떤 옷이라도 소화해 낼 수 있겠지만.

       

       고민하는 사이, 저 하늘 위에서부터 구명줄을 따라 유나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있지, 정보폭탄 설치하러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맞죠. 근데 잠깐만요, 유리가 지금 결정할 것 같기도 하고. 봐요, 드디어 손을 뻗고 있어요.”

       

       -나한테는 안 보이는걸⋯⋯ 그리고, 10분 전에도 똑같은 말을 들었어. 유리를 기다려주는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어떨까⋯⋯?

       

       맞는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말살대의 그 축제는 해가 질 무렵에 시작된다는 듯하다. 지금은 해가 중천에 뜬 낮이니,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다.

       

       유리는 축제 준비를 위해 자기 집에서 한참 머무를 것 같으니, 움직인다면 지금이 기회다.

       

       정보폭탄 설치를 끝마칠 생각이었다.

       

       요새 여왕이 잠잠하다. 이 공방전에 지쳐서 포기한 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건 내 희망 사항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테지.

       

       내 시야 밖에서 나름대로 수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저쪽이 힘을 비축한다면 이쪽도 힘을 비축해야 한다.

       

       제대로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한다면, 이길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여왕이 나를 들여다보는 만큼, 나 역시 여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의 행동 패턴과 정보의 잔향을 수집해 분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여왕은 생각보다도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보량적인 측면에서다. 서큐버스는 반쯤 정보 생명체이니, 서큐버스의 여왕쯤 되는 존재라면 정보량이 상당히 커다랗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그 유리 랜스터를 제압했지 않은가. 내가 유나의 마력량을 보고서 위압감을 느끼는 것처럼, 여왕 또한 서버를 방불케 하는 무시무시한 정보량이 존재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 수치보다도 가벼웠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여왕벌과 비슷한 사령관 타입이라거나.

       

       서큐버스 집단에 대한 통제력이 강한 타입으로, 여러 서큐버스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작업을 처리하는 능력이 핵심인 거다. 그렇다면 개인의 기량이 부족한 것도 쉽게 설명이 된다.

       

       이 경우에는, 유리 랜스터를 제압한 방식이 물량 공세였겠지. 그녀가 투입된 작전이 『둥지 입구 폐쇄 작전』이었으니, 벌집의 가장 큰 입구에서 싸운 꼴이었을 테고.

       

       쏟아지는 무수한 서큐버스들과의 연전 끝에 포획, 그럴듯한 가설이다. 내가 알기로 그녀에게는 광역기가 없으니까.

       

       나는 짐을 챙겨 저택에서 나왔다. 세계 구석구석에 정보폭탄을 심고 돌아와서, 오후에는 유리와 함께 축제에 참가할 것이다.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던 만큼, 오늘도 여왕이 얌전히 있어 준다면⋯⋯.

       

       ⋯⋯⋯⋯.

       

       찰칵찰칵찰칵!

       

       콰앙──!!

       

       “왜 하필 오늘 지랄이야 인마!”

       

       나는 반으로 접히는 건물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오늘따라 저항이 격하다. 결정적인 순간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위협적으로 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결정적인 타이밍이 아니다. 갑자기 전력을 다해서 부딪쳐오는 여왕의 행동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알아서 힘을 빼 준다면 좋은 일이다. 

       

       ⋯⋯⋯⋯.

       

       언제까지 쏟아부을 셈이냐.

       

       공격이 멈추지 않는다. 흩어지는 정보로부터 여왕의 지친 기색을 느낄 수 있다. 반나절이나 세계를 접어댔으니, 그럴 만하다.

       

       무리를 했으니 당연히, 빈틈이 드러난다. 아까부터 파편화된 정보가 허공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조심스레 주워 모으면, 이 세계를 조작하는 여왕에 대해서 더욱 알아갈 수 있었다.

       

       그녀가 짙은 회색 머리카락을 가졌다든가.

       

       이대로 무리한 공세가 이어진다면. 혹시, 어쩌면⋯⋯ 여왕의 위치를 특정해서 역공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트롤 룸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해, GM 권한을 빼앗는 거다. 마침 내게는 아직 설치하지 못한 정보 폭탄이 있다. 무기는 충분하다.

       

       기회에 기뻐하면서도.

       

       나는 가슴 한켠으로 초조함을 느꼈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내 신경을 긁었다.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조금 늦어지거나, 어쩌면 참석하지 못할지도.

       

       여왕은, 내가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건가? 그건⋯⋯ 대체 왜?

       

       이렇게까지 개입을 막아서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냐.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잡혀버리면 끝나는 게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이유가 없다.

       

       나는 여왕의 의중을 읽어내지 못하고 헤맸다.

       

       시간은 매섭게 흐른다. 태양이 지평선에 발을 담근다. 공방을 거듭하는 나에게 제시된 건 두 개의 갈림길이다.

       

       이대로 여왕의 목을 치러 가겠느냐.

       

       아니면, 유리와의 약속을 지키러 가겠느냐.

       

       어느 쪽이라도 함정일 수 있고, 어느 쪽도 함정이 아닐 수 있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지점에서⋯⋯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

       

       유리는 결국 정장을 골랐다.

       

       원피스를 입을까 생각했고, 실제로도 입어보았지만⋯⋯ 거울 너머에 비친 모습을 보고서, 치맛자락이 살랑일 때마다 움츠러드는 자신의 추태를 보고서 포기했다.

       

       분명 ‘미마’라는 남자는 실컷 놀려댈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여자아이답게 꾸미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지만, 그는 아랫도리가 시원찮은 사람이라지 않은가. 평소대로의 차림으로 가는 쪽을, 그도 좋아할 것 같았다.

       

       또⋯⋯ 험담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원피스를 입고 남자를 끼고 나타난다면 무슨 말을 들을까. 벌써부터 귀에 울린다. 말살대에 적응을 못 해서 요원 하나를 꼬드겨 데려온 거냐며, 천한 본성은 숨길 수 없다느니 지껄이겠지.

       

       정장을 입으면 반박이라도 할 수 있을 터다. 그는 어디까지나 친구라고. 네놈들의 추잡한 생각들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그렇게 받아쳐 내야만, 그들은 낄낄 웃으면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인정해 줄 것이다. 유약한 자는 말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말살대는⋯⋯ 독살스러운 자들만이 모인 곳이다.

       

       복수귀들의 집단이다.

       

       말보다도 주먹이 나가고, 남에게는 대체로 관심이 없고, 동료의 고통을 비웃었으면 비웃었지 공감해주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말살대의 축제’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그 필요성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집단에서 굳이 축제를 여는 이유. 모두가 개인적인 복수에 눈이 뒤집어진 늑대들이니, 이들을 한데 묶어 줄 목줄이 분명 필요했던 거다.

       

       최소한의 유대가 있어야만 조직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테니까.

       

       “⋯⋯⋯⋯.”

       

       자신은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그 야속한 유대 말이다.

       

       유리는 말살대에서 겉돌고 있었다.

       

       그들이 입에 담는 이유는 다양하다. 여자라서, 서큐버스라는 백해무익한 종족이라서, 곧 울면서 여길 떠날 게 눈에 선해서, 머리색이 핑크라서.

       

       진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유리에게 나쁜 말을 쏟아내는 걸⋯⋯ 반쯤 유흥으로 삼고 있다는 것만은 어쩐지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분명 그렇겠지. 축제에 자신이 등장하면, 분명 험한 말을 쏟아내겠지. 하지만 괜찮다. 이번에는 괜찮다. 유리의 옆에는 ‘미마’가 있을 테니까.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군이. 어쩌면 이 세상에서 유일할지도 모르는 아군이 있을 테니까.

       

       분명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다.

       

       유리는 마음을 다잡고 집 밖으로 나가, 미마의 저택 현관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반응은 없었다.

       

       자는 걸까 싶어서, 조금 더 세게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조심조심 귓가를 문에 붙여봐도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저택을 나간 걸까? 뭔가 일이 생겼던 모양이다.

       

       약간 불안해져서, 유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는 대체로 덜렁거리는 사람이니까, 저번에 황실에 부칠 편지를 잊었다는 것처럼⋯⋯ 뭔가 깜빡 잊은, 사소한 일이 생겨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일 터다.

       

       그녀를 잊은 것이 아니라.

       

       그도 그럴 게, 약속까지 했다. 별명이라지만 이름까지 알려줬다. 그는 올 것이다.

       

       축제에서 만나면,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말살대원들에게 여봐란 듯이 자랑할 거다. 너희가 없어도 이렇게, 나는 친구가 생겼다고.

       

       그와 팔짱을 끼거나 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집적대는 놈들도 조금쯤은 잦아들겠지. 어쩌면 미마에게 실례가 될까? 아냐,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들을 했다. 한참이나.

       

       ⋯⋯⋯⋯.

       

       축제, 라고는 했지만 화려하거나 융성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공터에 모닥불을 여럿 피워 두고, 사냥한 사슴 고기를 구워 먹을 뿐이다.

       

       공터 주변에는 엉성하게나마 울타리가 쳐져 있고, 입구에는 한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말살대 안에서 경력이 제법 오래된 중년인으로, 분명 이름이⋯⋯.

       

       “⋯⋯래트?”

       

       “서큐버스로군.”

       

       무뚝뚝하게 끊어 말하는 게 오히려 반가웠다. 다른 말살대원들은 사족이 붙는다. 그러니 차라리 단답으로 되돌려주는 게 기쁠 지경이었다.

       

       그는 방명록에 눈짓했다. 유리는 옆에 놓인 깃털 펜을 쥐고 자신의 이름과⋯⋯ 미마의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다.

       

       래트는 툭 물었다.

       

       “외부인인가?”

       

       “외부인은 아닙니다. 황실 직인이 찍힌 명령서를 가지고 왔는데, 말살대와 당분간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더군요.”

       

       “그런 공문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네가 천치는 아니니, 맞겠지.”

       

       유리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축제에는 들여보낼 수 없어, 라면서 내쫓지는 않을까 잠깐 긴장했었다.

       

       그리고, 입구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혼자 들어가기에는 꺼림칙하다. 미마가 올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래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아직도 적응을 못 했나?”

       

       “적응, 말입니까.”

       

       질책하는 듯한 말에 유리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애써 용기를 내서 래트를 노려봤다. 그는 속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버려야 할 거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어.”

       

       “무엇을, 버리라는 겁니까.”

       

       “마음, 미래, 인생, 복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질책이 아니라⋯⋯ 충고인가?

       

       “잃은 놈들은, 갖고 있는 놈들을 알 수 있어. 냄새가 나니까. 그래서 모두들 너를 싫어하는 거다. 배곯는 거지들이 부자를 증오하듯이.”

       

       “⋯⋯저도, 저도 잃었습니다. 가족과, 마을을. 그런데 제가 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말살대를 나가. 보기 괴로우니까.”

       

       래트는 혀 차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만 말하곤 공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나 또한 많은 것을 잃었고, 복수를 위해서 온 입장인데.

       

       그저 핑계가 아닌가? 서큐버스라는 종족을 믿지 않으니까, 두루뭉술한 이유를 들어가며 어물쩍 배격하는 게 아닌가.

       

       안쪽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훅, 하고 찬바람이 가슴을 저몄다. 그녀는 그 어떤 집단에라도 소속될 수 없었다.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 수도 없다. 경계를 받으니까.

       

       서큐버스들 사이에 녹아들 수도 없다. 유리의 가족들은 여왕이 모조리 태워버렸고, 여왕은 증오하는 대상이니까.

       

       심지어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의 모임인 말살대마저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열심히 힘을 내서 버티고 있었다. 한껏 조롱해 대도 버텼다. 그러나 가끔은 사무치게 외롭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하던 과거가⋯⋯ 그리웠다. 

       

       그 낙원을, 자신이 부수었다는 사실을 곱씹으면 참을 수 없이 괴롭다.

       

       그런 우울을⋯⋯ 그의 옆에서는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는데.

       

       “⋯⋯언제, 오는 겁니까.”

       

       유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그에게 미리 축제 장소는 고지해 두었으니까, 길을 헤맬 일은 없었을 텐데.

       

       혹시 뒷문으로 들어갔나? 살짝 엇갈려서, 그도 저 축제 안에서 유리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유리는 기대감으로 두려움을 억누르며 공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래, 그가 약속을 어길 리가 없다. 그도 축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신나 보였으니까.

       

       웃고 떠드는 말살대원 사이에서 미마를 찾는다. 그는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니, 어쩌면 벌써 누군가와 친해져서 어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없다. 보이지 않는다.

       

       아니야. 내가 못 찾은 거다. 실망감으로 추적추적 젖어가는 마음을, 애써 달랬다. 비웃는 것 같은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스윽.

       

       “⋯⋯미마?”

       

       누군가가 유리의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반색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말살대원이 있을 뿐이다. 알코올 냄새가 여기까지 닿을 정도로 거나하게 취해 있다.

       

       평소에도 유리에게 추파를 던지던 자다. 그는 느물거리며 말한다.

       

       “누굴 찾고 계실까, 오늘 밤에 든든하게 한 끼 해결할 남자를 찾고 있는 거라면. 여기 눈앞에 있는데, 으응?”

       

       “⋯⋯제 몸에 손대지 마십시오!”

       

       기겁하면서 쳐낸다.

       

       싫다. 바퀴벌레가 옷 안쪽으로 기어들어 간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무력하고, 흔들리기만 한다. 그러나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분하고, 슬프다.

       

       제일 끔찍한 건⋯⋯ 아직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마가, 이 중에 숨어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와의 약속을 잊고 어딘가로 가버린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치려고 하는 게 아닐까.

       

       “⋯⋯⋯⋯.”

       

       진작에 포기해야 했던 걸까?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이런 수작질에 슬퍼하고 놀라는 내가, 너무 약해 빠진 걸까?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고, 감정적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희롱에는 희롱으로 받아치고, 자신의 약점을 찔려도 상처받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마음을 깊게 가라앉힌 무심한 사람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면, 울음도 비명도 바깥으로 내비치지 않는 철인이 되면, 그건 너무, 괴로울 것 같은데⋯⋯.

       

       ===============================================================

       

       “⋯⋯내가 너무 늦었나?”

       

       축제는 끝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날이 참으로 푸르르고 밝습니다. 이런 날에 운동을 딱 다녀오면 참 좋으련만⋯⋯.
    감기의 후유증이 배틀을 걸어오는군요. 마이 프렌즈, 건강 조심하십시오. 진짜루.
    그러면 내일 또 뵙겠습니다!

    + 5월 29일자 수정 : 여왕의 머리색을 검은색 => 짙은 회색으로 수정하였습니다. 헷갈려가지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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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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