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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TV속에서는 연일 리엔느 숲에서 있었던 ‘거대한 마력폭풍’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딜런트의 죽음은 예측할 수 없는 사태였다.

    설마하니 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자기 목숨 보전하는 쪽으론 머리가 꽤 돌아가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 말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말이야.”

     

    남자가 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그의 손길을 기분이 좋다는 듯 받아들이며 자신의 울음소리로 대꾸했다.

     

    -냐아.

     

    “그래, 그래. 정말 멍청한 녀석이라니까.”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덕분에, 존재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지.”

     

    그는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 의자를 휙 돌려앉았다.

    그러자, 그의 눈 앞에 커다란 그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대한 검은 용이, 불타는 땅과 죽음의 산물위에 군림하듯 그려진 그림이.

       

    “시가르마타, 그녀가 드디어 깨어났군.”

     

    그 누구도 모르겠지만, 자신만은 바로 알 수가 있었다.

    그 마나의 폭풍과 흔적은 시가르마타, 바로 그녀가 아니라면 절대로 낼 수 없었으니까.

     

    안타깝군, 참수당하지만 않았다면, 딜런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추측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심장조각을 이용해 만든 아티팩트가 폭주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엉덩이는 굉장히 무겁다.

    이런 일로 현신할 정도로 그녀는 한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신이 죽은 뒤, 그녀가 바로 저승의 지배자 격이 되어버렸으니.

     

    그렇다면,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그녀를 불러냈다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다.

     

    “하하하!”

     

    그는 크게 웃었다.

     

    파르바티의 심장.

    현재까지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드래곤하트…….

    그것이 그녀를 현신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들어버린 것일 테지.

    하지만 그 거래는 실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반항적인 마력흔이 남을 리 없으니까.

    시가르마타.

    그 머저리가 고양이를 잃어버린 후, 도저히 보이지 않던 파르바티의 심장에 대한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

    그 심장만 다시 손에 넣는다면, 그녀도…….

     

    ———

     

    루크는 오늘도 노트에 무언가를 써내리고 있다.

     

    사각, 사각.

     

    황금빛의 깃펜이 종이에 긁히는 소리가 꽤나 경쾌하다.

    루크가 직접 깃펜으로 만든 황금매의 깃털이었다.

    그 아이는 분명히 오랫동안 갇혀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깃털의 품질이 좋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필기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깃펜만 있다면 그래도 ‘검은 화염’에 대한 연구도 금방 끝나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사실, 시전된 마법에는 일종의 암호가 적용된다.

    사용자의 버릇이나 성격, 또는 서클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마법의 배열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해석하는 것은 아무리 루크라고 해도 한번 보고 모든 경우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또한 마법은 보통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날 경우 가장 복잡하고 어렵다.

     

    검은 화염, 하얀 그림자 등의 자기모순적인 형태는 마법적으로 가장 복잡한 현상이다.

    게다가 사소한 차이조차 거대한 변수로 다가오는 흑마법에 대한 해석이라면, 수많은 마법을 보고 해석하고 사용해왔던 루크에게도 꽤 시간을 퍼부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그것 말고도 루크가 신경써야 할 부분은 하나 더 있었다.

     

    딜런트, 그는 그 수준의 흑마법 아티팩트를 대체 어디서 구했느냐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기에는 그가 너무나 흑마법에 대해 무지했으니, 분명히 누군가가 그에게 건네주었을 터인데…….

     

    대체 그 ‘누군가’가 누구고, 어떤 목적으로 그런 아티팩트를 만들었으며, 무엇을 위해 그 아티팩트를 그에게 준 것일까?

     

    추측을 하기 위한 정보가 너무도 부족했다.

     

    ‘이 시대에도 그런 아티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흑마법사가 있단 말인가…….’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지금의 자신은 그를 상대로 간단히 승리할 것을 장담하지 못한다.

     

    루크는 살짝 고개를 돌려 책상 옆에 기대어 세워둔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심장의 서클은 간신히 4서클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거의 서클이 파괴되어 끊어질 것만 같은 상태고, 마력시는 아직도 회복중이며, 마력을 모조리 쏟아낸 부작용으로 몸도 아직 불편하여 걸음을 지팡이에 의존하는 상태다.

     

    당분간은 아주 ‘조용히’지내며 회복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서클이 회복될 때 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흐음…….”

     

    요 며칠동안 꿈자리가 꽤 사나웠던지라, 루크는 더욱 불안했다.

     

    답답하도록 캄캄한 공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

    또, 보이지 않는 정체모를 괴물의 울음과 웃음소리…….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정신이 나약해서?

    글쎄, 루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악몽을 꾸는 이유로 자신의 정신력을 탓할 수는 없었다.

    딱히 온 동네에 자랑삼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그 시가르마타의 차원압력조차 버텨낸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 않던가.

    아니, 어쩌면 마력시를 완전히 잃은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루크의 삶은 모두 마력시와 함께했고, 마나가 보이지 않는 삶은 몇 주간 겪은 것이 전부이니…….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가장 그 상실감이 컸을 초기에는 악몽을 꾸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야 꾼다는 말인가?

     

    “흐음……. 설마…….”

     

    루크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쓸었다.

     

    꿈은 예로부터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곤 한다.

     

    꿈에서 보는 현실은 과거와 미래의 은유로, 인간의 정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신이 신탁을 내리는 것도 꿈의 형태이며, 예언자가 미래를 보는 방식 또한 꿈의 형태이다.

     

    이렇듯, 꿈에는 꽤 깊은 의미가 있었으니 루크 역시 꿈을 완전히 무시해버릴 수 만은 없었다.

     

    설마, 이것도 예지몽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꿈이 자신에게 무력하게 붙잡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에게 고문을 당하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대체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

     

    “하아,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루크는 머리를 꾸욱, 꾸욱 눌렀다.

    왠지 뿔을 부순 부근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할까.”

     

    그렇게 생각한 루크는 노트를 닫고 깃펜을 정리한 후, 잉크가 담긴 통을 닫았다.

    그러니 잠시 후, 파이리스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루크에게 다가와 안겨들었다.

    루크는 그런 그녀를 의자에 앉은 채로 받아내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마냥 기분이 좋은 듯 ‘흐히히’소리를 내며 웃어버리는 파이리스의 모습을 보니, 아까까지 머리가 아팠던 것이 금세 사라지는 것 같다.

    파이리스가 말했다.

     

    “루크 언니! 이제 공부 끝났어?”

    “아, 그래. 오늘은 이제 그만 하려고 한다.”

     

    루크가 ‘공부’를 하는 중에는 파이리스는 루크의 곁에 올 수 없었다.

     

    그동안 루크의 권한이 압도적으로 높아 자주 무시되던 사실이지만, 정령은 마법사의 연구에 있어서는 천적인 존재다.

    마력 그 자체인 정령들은 마법의 배열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마법을 연구할 때는 그 차이가 쓸데없는 변수를 추가해 불필요한 계산을 강요한다.

    과거의 루크는 마력시를 이용해 바로 그 변수를 볼 수 있어 손쉽게 계산하거나 무시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보좌하던 마력시도 없고, 마나에 대한 권한도 루크보다 파이가 더 높은 상태.

     

    그렇기에 지금의 파이는 순수한 마력 그 자체인 정령형 몸이 아닌, 적어도 안정적인 물질의 형태를 이루는 파이리스의 모습으로 지내는 중이었던 것이다.

     

    파이리스는 자신의 형태가 물질의 형태로 고정된 부분에 대해선 별로 불만이 없는 듯 했으나, 공부 중에는 마음껏 루크에게 달라붙을 수 없다는 사실이 최근엔 굉장히 참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파이리스는 물질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형태의 자극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루크가 쓰다듬어주는 감각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 시간이 루크의 ‘공부’로 인해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럼 이제부터 낮잠 잘래? 오늘도 언니한테 안겨서 자고 싶어!”

     

    파이리스가 요즘들어 이런 요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루크는 파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생각할 것이 많아 머리가 아플 때 낮잠을 자는 것은 유서깊고 효과적인 휴식방법이었다.

    그럼 아픈 머리도 식힐 겸, 아이의 제안을 받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루크는 바로 대답했다.

    “음,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

     

    잠옷을 챙겨입고, 가볍게 머리와 꼬리를 빗었다.

    머리가 짧아져서 머리를 빗는 작업은 금세 끝났다.

    뿔은 없으니 이제 뿔마개를 찾을 필요는 없다.

    예전보다 상당히 간략해진 준비작업 덕분에 모든 준비를 마치는 것은 그야말로 금방이다.

     

    그렇게 잠을 잘 준비를 끝마친 후 루크가 침대에 눕자, 파이리스가 루크의 바로 곁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조금 팔을 벌려주니 파이리스는 배시시 웃으며 얼굴을 더욱 들이밀었다.

    과거 뿔이 있을 때는 이토록 가깝게 얼굴을 맞댈 수 없었으니 즐거운 것일까.

    곧 파이리스는 여느때처럼 루크의 팔을 들어 자신의 목에 둘렀다.

    완벽하게 끌어안은 모습이 되자, 그제서야 파이리스는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령의 모습보단 인간 아이에 더 가까운 듯 해서.

     

    “이제 그만 자자꾸나.”

    “응!”

     

    ——

     

    그렇게 두 아이가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를 몇 분.

     

    잠시 후, 파이리스는 루크의 품에서 발버둥을 쳤다.

    잠꼬대였다.

     

    역시 조금 답답했던 것일까.

     

    “우음…….”

     

    곧 파이리스가 루크의 배를 걷어차 밀쳐내고, 다리를 루크의 위로 올렸다.

    그렇게 올라간 다리는 곱게 안으로 말려있던 루크의 꼬리의 끝을 지긋이 밟았다.

     

    그러자 루크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윽…….”

     

    꼬리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고통에 루크의 표정이 찌푸려진다.

    허나 파이리스의 잠꼬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커아아—.”

     

    코를 골기 시작하는 파이리스.

    간헐적으로 ‘흐흐흐’하며 웃는 모습까지 보면 뭔가 기분좋은 꿈을 꾸는 것이 분명해보였으나…….

     

    “으으윽…….”

     

    루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이좋은 자매? 남매? 뭐시기 아무튼 그거네요!

    일단 2부는 이런 분위기로 시작 될 것이라는 느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원래는 휴재중에 비축분을 좀 쌓을 생각이었지만… 그냥 올렸습니다.
    삽화를 그려보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 삽화 그려진거 자랑하려고 한편 썼습니다.

    저 그림을 보고 어떻게 자랑을 어케 참습니까?
    저만 보기엔 너무 아깝죠!

    글 쓰면서 힘들어서 쉬면 글도 쉴 줄 알았는데 결국 저는 글을 써야 되는 사람인가봅니다.
    쉬다보니까 자꾸 또 글을 쓰고 싶어지네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글과 그림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댓글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 자체가 제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문득 휴대폰을 열어 알림을 봤을 때 댓글알림이 없으면 어딘가 허전해지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근데 댓글알림이 안보였던 이유가 사이트 업뎃 버그였을줄은 몰랐네요.

    아 ㅋㅋ

    그래도 한편 올리긴 했지만 저 아직 휴재라구요?
    내일 밤새도록 기다리지는 말아주세요!
    안올라갈 가능성이 좀 더 높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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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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