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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소개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급하게 탈의실로 들어갔다.

     

    호위를 맡은 브루노도 함께였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기 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있었다.

     

    “앗 따가워.”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 만들어두었던 ‘위장 포션’에 뿌려 넣으니 부글부글 끓으며 섬뜩한 보라색으로 변했다.

     

    “자, 쭉 마셔.”

     

    “흠. 죽진 않겠죠?”

     

    브루노가 포션의 상태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에이, 그러기야 하겠어.”

     

    “제가 잘못되면 재산은 여자들에게 균등하게 분할해 주십시오.”

     

    비장하게 말하고는 단숨에 포션을 들이키는 브루노.

    곧 그의 몸이 바람 빠지듯 수축하더니 피부가 매끈해진다.

     

    잠시 후, 브루노는 내 얼굴로 변해있었다.

     

    “성능 좋은데.”

     

    나는 브루노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확인해 봤다. 점 위치 같은 몇 개를 빼면 완전히 똑같았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져줬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지?”

     

    “황녀님이 말을 거시면 싱글대면서 고개만 끄덕이라고 하셨습니다.”

     

    “정확해. 빨리 가.”

     

    브루노를 보내고 소독을 마친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니 이미 팀원들은 모여있었다.

     

    “아, 잊을 뻔했네.”

     

    역병 의사 가면을 집어 들어 착용한다.

     

    까마귀 형상의 수상쩍은 의사가 여섯 명.

     

    마음에 들어.

     

     

     

    ***

     

     

     

    “하하, 저기 드디어 나오는군!”

     

    흥미진진하게 달아오른 게오르크가 무대를 가리켰다.

     

    가면을 쓴 월광궁의 의사 여섯이 무대 위 간이 수술실을 향해 척척 걸어간다.

     

    맨 뒤에서 짧은 팔다리를 휘적이는 이는 누가 봐도 앰브로시아였지만, 나머지를 체형만 보고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라스, 너 설마.’

     

    아셀라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분명 연무회에 직접 참가하지 않기로 약속했거늘.

     

    하지만 의심은 금방 사라졌다. 자리를 비웠던 라스가 층계를 올라와 뒤쪽 자리로 복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는 그를 확인하고, 아셀라는 무대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술은 왜 내용이 바뀌었어?’

     

    아셀라는 라스를 다그치고 싶었으나 황제의 앞이었다.

     

    자신이 상황을 컨트롤하지 못해 예상 밖의 일이 터졌다고, 무능함을 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간이 수술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안의 작업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치료 과정은 녹화 수정구가 스크린에 띄워낸다. 민감한 장면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의사를 위주로 촬영한다.

     

    본래는 유인원을 수술하는 간단한 시연을 보인다고 알고 있었다.

     

    ‘이 많은 관중 앞에서 사람을, 그것도 왕국의 왕자를 수술하겠다니.’

     

    터무니없는 도전이다.

     

    아니, 무엇보다 대중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아셀라는 생각했다.

     

    “저 수술이라는 치료법으로 불구를 걷게 만들겠다는 소린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치유술로도 안 되는 걸 고쳐낼 리가 없잖소.”

     

    법국의 추기경들이 수군거린다.

     

    그보다 가장 크게 반발하는 이가 있었다.

     

    쾅!

    왕국의 국왕이 팔걸이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저기 혼절해 엎드려있는 게 고든 3왕자가 틀림없는가? 누가 이따위 시연을 기획했는가!”

     

    분주하게 상황을 파악해온 비서관이 대답을 전했다. 국왕은 격노를 감추지 못했다.

     

    “페르시야라고! 당장 데려와라!”

     

    그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멀리서 제국도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이었군. 왕국의 왕녀들은 분명 승계권이 없었지. 타국과 연합해서라도 연무회에서 정치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틈새를 이용했나. 재미있는 일을 꾸미지 않았는가, 아셀라.”

     

    헤이케였다.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아셀라는 일단 팔짱을 낀 채 도도한 태도를 고수했다.

     

    자신이 라스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키기도 싫었다.

     

     

    불려온 페르시야 왕녀가 자리하자 국왕이 그녀를 질책했다.

     

    “1왕녀여. 평소 멋대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더니 기어이 사고를 쳤구나. 3왕자를 적국 치유사의 손에 맡기다니 무슨 생각이더냐.”

     

    “폐하. 의사 고트베르크는 제국의 검증된 실력자이옵니다. 고든은 저 어린 나이에 오랫동안 불편한 다리 때문에 고생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나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호사 아니겠습니까.”

     

    “나이가 어리다 하나 3왕자 역시 왕족이다. 혈족조차 제국에게 맡길 정도로 국력이 밀린다고 시인하는 꼴이다. 그 생각은 못 하였느냐!”

     

    국왕의 으름장에 페르시야가 입을 다물었다. 주변의 눈이 있었기에 국왕 역시 대화를 길게 끌고 싶진 않았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타국의 귀빈들을 향해 선언했다.

     

    “본 제국의 시연에 왕국은 아무런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음을 미리 밝히는 바이오. 고든 3왕자를 이 자리에서 즉시 폐위해서 증명할 수도 있소!”

     

    “하오나, 폐하!”

     

    페르시야가 고개를 벌떡 든 순간 끼어드는 중후한 목소리가 있었다.

     

    “윌리엄스의 국왕이여, 잠시 조용히 지켜보는 게 어떻겠나.”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목소리에, 기아스라도 걸린 듯 왕을 포함한 그 자리의 모두가 잠시 꼼짝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제국의 황제였다.

     

    국왕만이 기세를 멈추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황제에게 말했다.

     

    “뷔르템펠트의 황제여. 짐에게 그 권유를 건넨 근거는 충분해야 할 것이네.”

     

    황제가 눈짓으로 대답하자 국왕의 기세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마취 완료.”

    “맥박 안정됐습니다.”

     

    수술대에 엎드린 3왕자. 그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아 누군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수술복 상의만 일부 걷어내고 수술 부위만 보이도록 천을 덮었기에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보호됐다.

     

    내부가 다 보이는 수술실은 비교적 친근한 분위기로 디자인되어 있었지만 온갖 장비는 일반인의 눈에 흉악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라스의 눈앞에 떠오르는 상태창.

     

    [진단A]와 [수술B]를 동시에 열고 마스크 너머로 라이트가 비추는 환부에 집중한다.

     

    그 순간부터 그의 인식에서 유리벽 밖의 관중은 사라졌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나 수많은 시선 어느 하나 라스에게 닿지 않는다.

     

    “15번 블레이드.”

     

    절개 길이는 10센티미터. 최소로 진행한다.

     

    그의 손에 시퍼런 날붙이가 들리자 관중 사이에 동요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지금 손에 칼을 들었나?”

    “왕족을 치료한다 하지 않았어?”

    “쯧쯧, 치유술을 모르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제사에 쓰는 성물이야. 신성력을 증폭하는 용도지.”

     

    ―푸욱.

     

    “찔렀는데!”

    “찔렀다고! 옥체를!”

    “이런 미친!”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덤덤한 건 라스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제국 귀빈석뿐이었다.

     

    “이게 무슨 만행인가!”

     

    가장 격하게 반응한 건 국왕이었다.

     

    “왕국의 혈족을 평민 앞에서 웃음거리로 만든 것도 모자라, 대놓고 시해해 위상을 떨어트릴 셈인가? 뷔르템펠트! 선전포고인가!”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따라 왕국 귀빈석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국과 대적하듯 자세를 취했다.

     

    헤이케와 게오르크가 그에 대응하려는 찰나, 황제가 먼저 일어섰다.

     

    그가 장대한 기골을 뽐내며 깊게 들이쉰 숨통을 일순에 내뱉었다.

     

    “정숙하라!!”

     

    확성 마법도 없이 황제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린다.

     

    그의 패기가 피부를 타고 오르자 감전되기라도 한 듯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황제가 호기롭게 눈을 부라리고는 말했다.

     

    “이 자리에 마족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마족은 인간계의 극서에서도 한참이나 이어진 중간계를 넘어간 마계에 사는 종족이다.

     

    평범한 이들은 만나볼 이유가 없었다.

     

    “마족을 눈앞에 두고도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겠는가? 미지의 힘을 보고 두려워 말라!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의 발아래에 둘 수 있다!”

     

    황제가 순식간에 대중을 휘어잡았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미지의 의학. 그것이 마족에게 저항할 힘이며 자신들을 치료할 기술이라고, 명확하게 그들에게 각인됐다.

     

    그게 통하지 않은 이는 비슷한 수준의 패기를 가진 국왕 정도였다.

     

    “궤변이다, 뷔르템펠트 황제. 짐의 눈을 속이려 하는가.”

     

    “눈이 멀었군. 정녕 이 시연이 왕국에게로의 공격행위로 보이는가?”

     

    “그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짐의 자식에게 칼을 들이대는 행위를!”

     

    황제가 고개를 치켜들고는, 국왕을 똑똑하게 노려보며 선언했다.

     

    “저 기술은 짐의 목숨을 살린 기술이다.”

     

    그의 묵직한 발언에 국왕이 잠시 화를 멈추고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가 자신의 약점을 하나 드러냈다.

    무패, 불멸의 신화를 가진 제국의 황제가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처한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황제를 저 수술이라는 의학의 기술이 구했다.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보증하니 국왕도 더 반발할 수 없었다.

     

    “…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이오.”

     

    국왕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황제 역시 다시 착석하여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아셀라가 슬쩍 라스를 돌아보았다.

    멀리 뒷자리, 기사들 사이에서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보낸다.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다.

    저런 중요한 시연을 맡겼을 정도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의사들만 편성해서 모든 상황을 체크했겠지.

     

    애초에 난이도가 높지 않은 수술이 틀림없다. 아셀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셀라는 황제의 시선을 느끼며, 승계권자에 어울리는 위엄있는 태도를 고수했다.

     

     

     

    ***

     

     

     

    “절개 완료. 고정해.”

     

    라스가 칼을 대 드러난 환부를 클로에가 고정한다. 미리 촬영한 MRI 자료를 근거로 절개각을 설정했다.

     

    ‘손톱만큼의 오차도 없어.’

     

    클로에가 견인기를 당기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집도했으면 이만한 작업은 절대 불가능했으리라.

     

    가면 너머로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보인다. 동공이 환자에 고정된 채 눈꺼풀 한 번 깜빡이지도 않는다.

     

    영역에라도 들어간 듯한 집중 상태.

     

    클로에도 환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라스의 진단대로 척수 신경 일부가 막혀 제구실을 못 하고 있었다.

     

    “주사.”

     

    간호사가 라스의 손에 권총형 주사기를 건네줬다.

     

    섬세하게 끝을 척추골 사이의 미세한 틈을 찾는 라스.

     

    주사기에 연결된 약병에는 주황빛 액체가 찰랑인다.

    그의 연금술로만 구현 가능한, 이번 수술을 위해 만들어진 약제다.

     

    포션. 그조차 몇 개 만들 수 없는, 약제보다 상위 개념의 물건이라고 라스가 말했다.

     

    이 포션이 끊긴 척수 양쪽에 주사되면 환자의 척수에서 신경의 시냅스 전기 신호를 원격으로 전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하반신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정말 가능할까. 연금술은 클로에에게도 고서에서 본 적 없는 미지의 분야였기에 결과에 대해 의구심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나 중요한 자리다.

     

    ‘제발.’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클로에가 지켜보고 있으니 라스가 별안간 손을 멈추었다.

     

    “클로에.”

     

    “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생각하니 그가 의외의 요청을 해왔다.

     

    “심장 소리 좀 줄여줘. 헷갈려.”

     

    “아, 죄송해요.”

     

    정작 집도의인 라스는 침착한데 자신이 괜히 너무 긴장했다. 클로에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졌어. 반응 빨라서 좋네. 나중에 인센티브 줄게.”

     

    “…사탕은 아니죠?”

     

    라스는 대답을 아끼고는 다시 집중하며 시선을 고정했다.

     

    얇은 바늘 끝이 그만큼이나 얇은 신경 다발을 찾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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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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