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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진성은 텐트의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들소 반지를 스윽 밀었다.

       그러자 못생긴 들소 반지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였고, 진성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좌우로 흔들리던 들소 반지가 완만한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진성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자그마한 구체였다.

       찰흙 덩어리에 닭의 깃털을 섞어서 반죽한 듯한 구체는 겉보기에도 볼품이 없어 보였고, 찰흙 특유의 퀴퀴한 냄새까지 풍기는 것이 빈말로라도 귀해 보인다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진성은 그것을 무슨 귀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조심 다루며 들소 반지의 아래에 놓았다.

         

       그러자 구체의 윗부분에 자그마한 틈이 생겼고, 들소 반지의 흔들림에 맞춰서 조금씩 구체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날카로운 칼로 반으로 자른 것처럼 매끄러운 단면을 가진 채 두 조각으로 잘리고, 그 안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석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길쭉한 얼굴을 한 석상.

         

       “이거, 모아이 아닌가요?”

         

       모아이 석상이었다.

         

       “그렇다.”

       “에…. 이거 100엔 숍(Shop)에서 100엔에 파는 열쇠고리…같아 보이는데.”

         

       리세는 봉황의 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조심 다뤘던 진흙 구체의 안에서 100엔 숍에서 파는 싸구려 열쇠고리가 튀어나오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형편없는 마감.

       돌이 아니라 돌 비슷한 것을 쓴 게 아닐까 싶은 싸구려 재질.

       ‘이건 열쇠고리입니다. 단지 열쇠고리입니다. 이 가격에 뭘 바라십니까? 100엔에 이런 퀄리티를 낸 것도 감지덕지하십시오.’라고 주장하는 듯한 묘하게 기분 나쁜 표정까지.

         

       학교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 봤던 모습 그대로의 물건이었다.

         

       “그러하다. 마침 재고가 잔뜩 있었는지 100엔이 아니라 그 반값에 살 수 있었느니라.”

       “100엔조차 아니고…50엔인가요.”

         

       리세는 뭔가 대단한 물건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갑자기 50엔짜리 열쇠고리가 튀어나오자, 완구 자동판매기인 가차폰(ガチャポン)에서 중국산 싸구려 완구가 튀어나왔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신주님. 그런데 이 열쇠고리, 묘하게 푸른빛이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열쇠고리가 뭔가 이상했다.

         

       광택은 기대도 못 할 쓰레기 같은 품질이어야 할 열쇠고리가, 어두컴컴한 텐트의 안을 밝히려는 듯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푸른빛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오로라가 흔들거리는 것처럼도 보였고, 파란색의 빛이 아지랑이 형태로 일렁이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으로도 보였다. 게다가 푸른빛은 다른 물건에 닿으면 그 빛으로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물건의 표면에서 밝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하기까지 했다.

         

       진성은 신기하다는 듯 열쇠고리를 바라보는 리세에게 말했다.

         

       “마나(Mana)이니라.”

         

       마나.

       그 단어가 나오자 리세는 진성을 쳐다보았다.

         

       “게임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 MP?”

       “그래. 게임에서 많이 쓰기는 하지.”

         

       MP.

       Mana Point.

         

       게임에서 주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을 표시할 때 ‘마나’를 단위로 사용하곤 했다. 그 때문에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마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주술이나 무공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게임이 떠오르곤 한다.

         

       “본래 마나라는 것은 폴리네시아 근방에서 사용했던 초자연적인 힘이니라. 기(氣)와 마력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교과서에서 한 번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다만 쉬이 볼 수 있는 힘은 아니니라. 이미 쇠퇴하였거든.”

         

       리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명하지 않나요?”

       “유명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것은 실제의 힘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가상에서의 소재로 자주 쓰였기에 유명한 것이니라.”

         

       진성은 텐트 안을 가득 메우는 푸른빛을 보면서 말했다.

         

       “오래전 ‘마나’와 ‘스킬’의 개념을 사용한 작품이 크게 흥하였었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스킬’이라는 것은 곧 작품 속의 캐릭터가 사용하는 기술이 되었고, ‘마나’라는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하여 마나라는 것이 판타지 계열의 창작물에서 유명해지고, 게임 속에서 명성을 크게 얻게 되었느니라.”

       “그렇군요….”

         

       푸른빛은 텐트 곳곳으로 번졌다.

       허공에 매달린 들소 반지에도, 텐트의 천에도, 바닥에 깔린 폭신한 매트에도.

         

       하지만 마나가 필사적으로 물건 안으로 기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안에 머무르지는 못해서 튕겨 나오기를 반복했고, 그 무의미한 행동이 빛이 밝아졌다 흐려지는 것으로 보여왔다.

         

       “아마 최초로 ‘마나’를 게임에 사용했던 사람은 마나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어울린다고 여겼으리라. 그랬기에 이 마나를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으로 사용했겠지.”

       “성질, 이요?”

       “그렇다.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전투를 겪으며 성장하는 주인공이 나오지 않느냐? 이 마나 역시 전투를 겪으며 성장하는 힘이니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기(氣)를 사용한다면 수련을 거듭해야 할 것이고.

       마력을 사용한다면 수련과 공부를 거듭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나라면 수련하는 모습을 최소로 보이고 전투 장면에 힘을 실을 수 있었을 테니, 어찌 보면 그 개발자가 ‘마나’를 자원으로 설정한 것이 신의 한 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굉장한 힘이네요. 그런데 왜 쇠퇴한 건가요?”

         

       사용하기도 나쁘지 않고.

       기운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고.

       이름이 널리 퍼져있기까지 하다.

         

       이렇게만 본다면 ‘마나’라는 힘은 널리 퍼져야 할 힘임이 분명했다.

         

       이것만 본다면 말이다.

         

       “이 마나라는 것에 세 가지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진성은 손가락을 세 개를 펴며 말했다.

         

       “하나는 동족 포식이요, 또 하나는 불안정성이요, 마지막 하나는 광증이니라.”

         

       동족 포식.

       불안정성.

       광증.

         

       하나하나가 흉흉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이었다.

         

       “이 마나라는 것은 기(氣)를 사용하는 이들이 축기를 사용하여 몸 안에 기를 모으듯 제 몸에 모을 수 있었느니라. 하지만 이렇게 자연적이고 온건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모으는 것은 그 효율이 기와 비교해서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살아있는 생명을 죽였을 때 효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곤 하였지.”

       “사냥….”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맹수를 죽이고 나무를 베는 것 정도야 뭐 문제가 있겠느냐? 게다가 마나라는 힘이 주술과도 궁합이 꽤 좋은 편인지라 수급을 베고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방식으로 마나의 축적 효율을 늘릴 수도 있었지.”

         

       문제는 없다.

       사람을 해하는 짐승을 물리치는 것은 옳은 일이고.

       짐승의 영역을 줄이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 역시 옳은 일이다.

         

       그런데….

       사냥할 ‘짐승’이 줄어들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

         

       “하지만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필히 전쟁은 따라오는 것. 짐승은 더 잡기 쉬운 사람으로 바뀌고, 베어야 할 나무는 사람이 만들어낸 터전과 일구어낸 곡식으로 바뀌었느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활권이 충돌한다는 이유로 숲을 개간하고 짐승을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인간이, 같은 인간 상대로는 칼을 집어넣을 리가 없었으니까. 칼을 휘둘러 몰살시키거나 자기 부족 아래로 편입시키고, 노예로 부리고, 점점 세를 넓히고.

         

       그렇게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나라가 되는 법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마나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이 발견되었느니라. 바로 마나(Mana)라는 힘이 자체적으로 동족 포식(cannibalism)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정적인 자원을 효율적으로 늘리기를 갈망했다.

         

       효율적인 힘의 축적을 위해.

       효율적으로 힘을 축적해 더 나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도 더 앞서서 위에 올라가기 위해.

       모두에게 우러름을 받고 자신의 힘을 휘둘러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많은 능력자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연구라는 명목 아래 금기(禁忌)를 범하며 방법을 강구하곤 했다.

         

       무인은 수련하는 대신에 남의 것을 빼앗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것은 흡기공(吸氣功)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되었다.

         

       마법사는 마력을 한계치를 넘어 보관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이 쌓은 마력을 갈취해서 흡수할 수 있는, 마력 포식 연구라는 이름의 재앙이 되었다.

         

       소환사는 자신의 소환수가 더 강해지기를, 혹은 자기 몸이 소환수만큼이나 강해지기를 원했다.

       그것은 키메라 실험이라는 인류의 어두운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은 모두 파탄이 나버리고 말았다.

       마치 금기에 발을 디딘 사람에게 천벌이 내리듯.

         

       다른 사람이 쌓은 기(氣)를 갈취하는 무공은 각기 다른 성질의 기가 모이면서 커다란 반발 작용을 만들어냈고, 익힌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거나 미치게 만들고, 심하면 폭탄처럼 터져버리기도 했다.

         

       마법사가 행한 마력 포식 연구 역시 소득이 없었다. 몸에 받아들이려 하면 끔찍한 반발 작용이 일어나서 몸 자체를 망가뜨렸고, 다른 마법사의 마력을 강제로 뽑아 물건에 강제로 주입해서 사용하려고 하면 물건 자체를 망가뜨리거나 주입 과정에서 연구하는 마법사의 몸에 파고들어 뇌에 끔찍한 손상을 입혔다.

         

       소환사가 행한 키메라 실험은 강한 힘을 주는 대신에 유전자 단위부터 몸을 망가뜨려 죽음으로 향하게 했고, 최악의 경우 죽음보다도 못한 꼴이 되어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기까지 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가진 힘은 함부로 빼앗아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나는 달랐다.

         

       마나는 다른 마나 사용자의 마나를 큰 부작용 없이 흡수할 수 있었다.

         

       “마나 사용자는 다른 마나 사용자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고, 에너지의 손실 역시 일어난다. 하지만 목숨이나 힘 자체를 잃어버리는 다른 능력자에 비해서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대가이니라.”

         

       수련을 이용해서 쌓는 것이 아닌, 남이 쌓은 마나를 갈취해서 쌓을 수 있다.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대가만 치르면 흡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가뜩이나 마나라는 것이 전투를 이용해 쌓을 때 좋은 힘이었으니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 역시 호전적이기 짝이 없었지. 그런데 이러한 사실까지 알려졌으니 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게다가 이 마나라는 힘이 주술과도 궁합이 잘 맞는 힘이라는 것까지 알려지게 되어 더더욱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동족 포식이 가능한 힘인데 주술과 궁합이 잘 맞는다?

       주술에서의 ‘금기’가 거기에 끼어들기 딱 좋지 않은가?

         

       인신공양.

         

       “주술의 인신공양과 식인 행위가 마나 흡수 과정에 끼어들게 되었지. 그리고 주술이 끼어들자 흡수 효율은 더 높아졌고 대가는 줄어들었으며, 어쩔 수 없이 손실되는 마나의 일부를 죽인 사람의 시체를 사용한 장신구에 저장해서 주물을 만들기까지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서로 호환이 가능한, 흡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마나의 이 성질을 ‘동족 포식’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마나 사용자가 마나 사용자를 잡아먹는 결과를 만들어냈으니까 말이다.”

         

       리세는 진성의 설명을 듣자 신기하게만 보였던 마나가 역겹게 느껴졌다.

         

       신비로운 파란빛이 사람을 현혹해서 잡아먹으려 하는 포식자의 농간처럼 느껴졌고, 하늘거리는 아지랑이가 꿈틀대는 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물건에 파고들려다가 쫓겨나는 모습 역시 기생충이 파고들려고 했다가 실패하는 모습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전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아무 생각 없이 싸우고 죽이기만 하면 힘이 늘어나니 이보다 더 좋은 힘이 어디 있을까.”

         

       진성은 찝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세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텐트 안이 비좁았기에 끌고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잃어버리는 법이지.”

         

       진성은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은 채 당황하는 리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곤 손에 삼매진화를 피우고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비물질을 태우는 삼매의 불이 작게 터지며 불똥을 퍼뜨렸고, 잠깐의 공백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공백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물줄기가 땅에서 흘러가는 것처럼 푸르스름한 공간을 메우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 자체에 금이 가는 것처럼.

         

       그렇게 번져나간 금은 푸른빛을 조각내었고, 조각난 빛의 조각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다시 모아이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렇게 돌아가는 파편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잡아채고, 그것을 손가락 끝에 걸고 자신과 리세의 주위를 둘러싸는 원을 그렸다. 그리고 원이 그려지자 필요가 없다는 듯 손가락을 튕겨서 모아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다시 모아이로 돌아간 마나는 아까와 같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텐트 안을 다시 밝히기 시작했지만, 진성과 리세가 자리 잡은 원 안으로는 침범하지 못했다.

         

       그렇게 리세는 ‘찝찝하고 역겨운’ 마나의 품이 아닌, 진성이 만들어낸 공백 지대 안에서 마나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진성의 바로 옆에서.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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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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