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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아야!”

       

       머리를 가격할 때 당연히 날카로운 마나는 다 거두었지만, 여전히 목검은 단단했다.

       그걸 정통으로 얻어맞은 레키온은 정수리를 손으로 감싸며 주저앉았다. 

       

       처억.

       

       데보라가 레키온을 향해 목검을 겨누며 말했다. 

       

       “레키온, 정신 안 차려? 나랑 대련하는데 한눈을 팔아?”

       “하, 하지만…. 아르 목소리가 들렸는걸….”

       “뭐? 아르? 그럴 리가….”

       

       그제야 데보라도 검을 거두고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우리를 발견하고 입을 떡 벌렸다. 

       

       “진짜 왔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키온과 데보라가 있는 쪽으로 갔다. 

       

       “언제부터 보고 계셨어요?”

       

       실비아에 대한 오해를 푼 뒤라서 그런지, 데보라는 전처럼 우릴 경계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한 15분쯤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원래는 단장실로 가려고 했는데 다른 기사님들이 연무장에 계실 거라고 해서 바로 여기로 왔네요. 수련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쀼우.”

       

       아르도 사과하는 의미로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정수리를 감싸 쥐고 고통에 찬 표정을 하고 있던 레키온의 얼굴이 단숨에 고통을 잊은 듯 밝아졌다. 

       

       “아휴, 방해라니요! 어차피 곧 무승부로 끝나고 좀 쉬어 갈 타이밍이었거든요!”

       “…정말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처에서 띠리리리링! 소리가 울렸다. 

       

       레키온은 목검으로 근처에 있던 허수아비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띠리리리…틱.

       

       그러자 요란하게 울리던 알람이 멈추었다. 

       

       “정말이죠?”

       

       레키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는 서로 대련한 지 굉장히 오래돼서 매번 쉽게 승부가 나는 법이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정해 두고, 그 안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멈추고 휴식을 취하게 규칙을 정했죠.”

       “그렇군요. 확실히 두 분 대련하는 모습을 보니 서로 호흡이 착착 맞으시더라고요. 치열하면서도, 뭐랄까 착착 맞물려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감사합니다.”

       “쀼우우, 쀼우!”

       

       아르도 레키온과 데보라를 보며 팔을 흔들며 뭐라고 열심히 말하자, 레키온은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허리를 숙여 아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빵실한 아르를 보자 금세 헤벌쭉한 표정이 되어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아르가 뭐라고 한 거예요? 테이머는 사역마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던데….”

       “아아, 두 분 다 멋있대요.”

       “오호…! 고마워, 아르야.”

       “쀼우웃!”

       “그리고 두 분이 잘 어울린대요.”

       

       푸웁.

       

       그러자 옆에서 물을 마시던 데보라가 땅바닥에 물을 뿜었다. 

       

       레키온은 그 말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긴 하죠. 아르까지 그렇게 봤다니 진짜 그래 보이긴 하나 보구나?”

       “쀼우!”

       

       아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잘한다, 아르!’

       

       나는 속으로 아르를 응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레키온은 현재 아르의 귀여움에 푹 빠져 있는 상태.

       잘 때 꼭 아르 인형을 안고 잘 정도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가장 레키온의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깊숙이 있는 본심을 끌어낼 수 있는 열쇠는 어쩌면 아르한테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레키온은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과 데보라를 쳐다보는 아르에게 입을 슬쩍 가리며 말했다. 

       

       “그치만 그런 말은 앞으로 데비가 없을 때 하는 게 좋을 거야. 데비는 나랑 엮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쀼우…?”

       

       응?

       

       저건 또 무슨 소리래?

       

       아르도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데보라가 직접 풀어 주었다. 

       

       “그, 그래! 다들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왜들 그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데보라는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으면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든 전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때 커뮤니티 댓글에 있던, 데보라 루트 아니면 겜 접는다던 소꿉친구 츤데레 빌런이 한 말이 맞았네.’

       

       어느 정도 데보라가 츤데레 과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옆에서 그렇게 계속 부정하면 마음이 있어도 도로 집어넣겠다, 이 사람아.’

       

       물론 저렇게 티 나게 얼굴을 붉히면서 부정하는 걸 보면 눈치가 좀 있는 사람이면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지만….

       

       ‘문제는 레키온도 넌씨눈이라는 거지.’

       

       저걸 보고 진심으로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을 할 정도의 눈치면 레키온도 어지간한 셈이다. 

       

       ‘저 정도 눈치면 데보라가 츤데레가 아니었어도 망설이긴 했겠는데?’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가 눈치까지 없다고 하면 선뜻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질 만도 했다. 

       

       ‘소꿉친구의 흔한 딜레마지. 괜히 표현했다가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대놓고 표현하는 건 힘들긴 해.’

       

       괜히 소꿉친구끼리의 로맨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슬쩍 옆을 보니 실비아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손으로 이마를 살며시 짚고 있었다. 

       

       심지어 아르마저도 살짝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젤리를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뭐, 그래도 저렇게 어린 사역마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니까 아예 근거 없는 소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오!

       

       우리가 답답해하고 있는 사이, 데보라가 웬일로 생각지도 못했던 큰 거 한 방을 내질렀다. 

       

       “보는 눈은 있긴 한가 보네, 사역마도.”

       

       그렇지, 그렇지!

       이 정도면 진짜 묵직한 한 방이다.

       

       나는 답답했던 속이 반쯤 쑥 내려간 얼굴로 레키온의 반응을 기다렸다. 

       

       “데비…!”

       

       레키온도 그 말에 뭔가 감동한 얼굴로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오오오…!’

       

       나도, 실비아도, 아르도 침을 꼴깍 삼켰다. 

       

       이거 설마 이렇게 한 방에 해결되나?

       

       이대로 가면….

       

       “드디어 너도 아르의 귀여움을 알게 되었구나!”

       

       …?

       

       “지금까지는 화만 내던 데비가 귀여운 아르 앞에서는 이렇게 온순해지다니…. 역시 우리 아르야! 후후후!”

       “…….”

       “…….”

       “…….”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르의 말랑한 볼을 만지는 레키온을 보며, 우리는 생각보다 문제가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

       

       어쨌든 우리는 레키온, 데보라와 함께 단장실에 와서 찾아온 용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군요. 그건 꽤 심각한 문제인데요.”

       

       우리의 작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하무트교 지부의 위치를 레키온에게 알리고 함께 박살 내러 가는 것.

       

       ‘지금쯤 하무트교는 아예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차단하고 문을 꽁꽁 걸어 잠갔을 거야. 그리고 안에서 뭔가 또 뒤가 구린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고.’

       

       원작의 스토리대로라면 아직 건재했어야 할 많은 하무트교 지부들이, 이미 레키온의 손에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지부끼리 있어야 할 최소한의 소통조차도 단절한 채 몸을 단단히 웅크리고 있을 터.

       

       이러면 아무리 알렉스라도 그들의 위치를 쉬이 파악하기가 힘들다. 

       

       알렉스의 감지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직접 발로 뛰어 대륙 동부를 일일이, 그리고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하무트교의 위치를 내가 알려준다면 하무트교 놈들에게 아주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하무트교 지부의 위치가 여깁니다, 하고 얘기를 할 수는 없지.’

       

       알렉스도 못 찾은 정보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남아 있는 하무트교 지부 중에서 근처에 큼직한 의뢰 건이 있는 지역을 선정하고, 거기까지 직접 가서 아직 의뢰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의뢰 내용은 해당 지역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블러드 구울을 처치하는 것.’

       

       블러드 구울은 잘못 방치하면 주변 지역의 생명력을 빨아 먹고 생태계를 돌리기 힘들 정도로 파괴할 수 있는, 말하자면 환경 파괴 전문 마물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의뢰가 걸린 이 지역의 숲은 딱히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비싼 약초가 자라는 좋은 지역도 아니어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까지 들어가려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태. 

       

       심지어 블러드 구울은 잡아도 별로 비싼 재료도 안 줘서 의뢰 비용도 그다지 매리트 있는 편이 아니었기에, 원작에서는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로 굳이 찾아가서 클리어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의뢰다.

       

       ‘근데 이 의뢰가 특이한 점은, 클리어하지 않고 방치해도 블러드 구울들이 알아서 사라져서 폐기된다는 점이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블러드 구울들을 잡은 건 근처에 지부를 숨기고 있던 하무트교 놈들이었다. 

       

       이대로 구울들을 방치해서 만약 숲이 황폐화되어 버리면, 그땐 제국 측에서 나서서 구울 진압을 시도할 거고.

       

       해당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하무트교 지부의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하무트교 측에서 구울들을 잡아 버린 거지.’

       

       알렉스가 이곳의 위치를 나중에 발견해낸 것도, 분명 블러드 구울 처치 의뢰를 클리어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알아서 없어진 걸 수상하게 여겨 조사하다가 발견해낸 것이었다. 

       

       ‘진짜 알렉스도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그걸 어떻게 조사할 생각을 했대.’

       

       어떻게 보면 이번 일로 내가 알렉스의 공을 가로채는 셈이 되겠지만….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니고, 일손 덜어주는 셈치지 뭐. 하하.’

       

       그래서 나는 하무트교 지부의 위치를 바로 알려주는 대신 이 의뢰의 내용을 레키온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심각하죠. 이거 지금 의뢰 걸린 지도 꽤 됐는데 아무도 안 나서는 거 보면 조만간 숲이 되돌릴 수 없이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놔둬도 하무트교가 잡긴 하지만. 여튼.

       

       “그렇군요…. 제국 소속의 기사단장으로서 못 본 척할 수는 없는 내용이네요.”

       

       암, 그렇고말고요.

       

       “좋습니다. 이 의뢰는 저희 기사단이 맡도록 하죠. 다만, 규모가 작은 민간 의뢰라 기사단 인원을 많이 동원하긴 그렇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거 아니겠습니까. 주둔 인원은 충분히 남겨 두시고, 저희랑 같이 가시죠.”

       “레온 님…!”

       

       레키온은 감동 받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레키온은 내 손을 꽉 잡고 흔들며 연신 감사의 말을 했다. 

       

       “어려운 의뢰도 다 맡아서 완벽하게 해 주시고,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돈도 안 되는 의뢰까지 도와주시다니…. 역시 천사 같은 아르의 계약자십니다!”

       

       내가 천사 같다는 건지, 아르가 천사 같다는 건지 모호한 말이었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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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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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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