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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노산.

     말 그대로, 나이가 제법 든 상태로 아이를 낳는 것.

     

     그런데 그냥 들으면 오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몇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하나. 기사에서는 노산의 문제를 ‘처음’으로 규정하고 있다.

     산모의 연령이 낮을수록 우량아가 태어나며, 산모의 나이가 늦으면 늦을수록 하자가 있는 아이가 태어난다더라.

     ‘논조 한번 살벌하네.’

     그나마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기사의 초고라거나 원문은 아마도 이보다 더 원색적인 표현이 가득했을 것이다.

     즉, 어머니-샤를로트 렘부르 군터의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다.

     어머니는 20대 초반에 이미 나를 낳았고, 그 뒤로 3년에 걸쳐 여럿을 낳아 지금도 임신과 출산을 매번 반복하고 있지만, 첫 스타트는 왕국 평균이었다.

     사실 왕국 평균보다 조금 늦는 편이다.

     

     왕국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이 20살에 딱 임신하여 아이를 낳는 편이다.

     귀족은 귀족대로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평민은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과 사돈지간을 통한 경제적 합가를 이유로.

     그리고 왕국 전반적으로 ’20세에 딱 아이를 낳는 것이 좋다’라는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제국은 어떠한가?

     제국은 왕국보다는 조금 느린 편이다.

     ‘평균적으로, 25세?’

     아무래도 제국이 상대적으로 왕국보다 발달이 더 되어있기도 하고, 서비스업 등 직업 선택에 있어서 자유가 높은 편이다.

     

     왕국에서 태어나면 논과 밭을 갈고 있을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소득은 높아지지만 출산 연령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제국 역시 대략 수십 년 전부터 마도공학을 연구했다고 하더라도, 수도는 평균 초산 연령이 높지만 시골 영지로 갈수록 왕국과 비슷한 연령대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둘.

     기사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대륙의 평균 출산 연령은 추정컨대 아마도 22세~25세 전후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직접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맥락과 경향이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딱히 이상한 부분은 아니다.

     따라서.

     둘.

     기사에서 언급하는 노산 위험성의 나이가 산모가 ’30’살 즈음이라고 규정하는 건 왕국이든 제국이든, 대륙 평균으로 비추어 보면 상당히 높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논설도 최대한 유하게 글을 써서 그런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라는 식으로 가능성만 언급하며 구체적인 수치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이거 그냥 나이 든 여자한테 차여서 저주를 퍼붓는 게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런 이야기.

     제국신문 편집부에서 도대체 이런 글을 왜 올렸을까 진지하게 고민이 되고, 신문을 읽는 교양 있는 여성들에게 맹폭 비난을 받고 사과문을 쓸 이야기.

     다시는 논설을 기고한 당사자의 칼럼을 받지 말라고 목에 핏대를 세울 이야기.

     그러나 내게는 다른 의미로 들린다.

     내용이 어떠하든.

     근거가 부족하든.

     공신력 있는 제국신문에 그런 사설이 올라왔다.

     그 하나의 정보만으로도 나는 이걸 가지고 역공을 펼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

     무엇보다.

     마지막.

     “크베르스 자작이라.”

     논설문을 올린 자의 이름과 신분이 참으로 노골적이라,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놓고 듣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고, 대놓고 이런 쪽으로 돕겠다고 압박하고 있고, 대놓고 빨리 낳으라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군.”

     세상천지를 뒤집어서 찾아봐도 크베르스 자작이라는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자작(自作)이라면 모를까.

     “쓰디쓴 독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울타리에 뿌려두면 담을 타고 넘어오는 꽃뱀 정도는 막을 수 있으니.”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카운트다운 또한 줄어들게 된다.

     “샤를로트 하르마니아.”

     하지만 이게 아니면 누아르를 지킬 수 없다.

     “…누아르 취향의 여자라, 진짜로 위험해.”

     누아르는 큰 걸 좋아한다.

     인간의 취향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고, 수컷이라면 누구나 커다란 걸 좋아한다.

     그리고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는 신입생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미녀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러니.

     가장 적절한 방법이 있다면-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아둬야 하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연하남과 연상녀가 사귄다는 건 사회적으로 지탄받지는 않겠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결혼은 안된다’라는 스탠스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

     대신.

     그 논리로서 기사에서 언급하고 있는 노산을 꺼내는 순간, 그 독은 언젠가 부메랑처럼 날아 내 뒤통수에 정확히 꽂힐 것이다.

     노산 문제는 하르마니아 자작 영애에게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니까.

     “…아스타시아.”

     회귀 전.

     27살에 숙청되기 전까지, 아스타시아는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나나 아스타시아가 후사를 낳는 데 하자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건강하고 활발해서, ‘피임’을 하는 데 때때로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귀 전, 우리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미뤄야만 했다.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륙이 통일되고 혁명군의 기세가 날이 갈수록 꺾이기 시작하며, 황제는 우리를 압박하여 어떻게든 후사를 보게 만들려고 닦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뤘어야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둘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아이를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장 행복한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랐으나, 매국노 그레이와 아스타시아 황녀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미래가 예견되어 있었기에.

     노산.

     협박당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빨리 아이를 낳아야 건강한 아이가 태어난다고.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태어나는 아이는 건강하지 못할 것이라고.

     황제는 어떻게든 나와 아스타시아 사이의 아이를 원했고, 나나 아스타시아 그걸 어떻게든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다가 사고가 터졌다.

     그레이 지브롤터, 숙청.

     

     황제의 인내심은 끊어졌고, 황제는 아버지를 죽이면서까지 나를 협박했다.

     아스타시아 또한 그 협박에 이기지 못하여 아이를 낳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기에, 아스타시아를 상대로 연기를 했었다.

     마치.

     지난 7년 동안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을 품고 살아간 것처럼.

     -…나의 것이 되세요.

     아스타시아 또한 그런 나의 의지를 알았기에, 그 연기에 어울렸었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죽었어야 했다.

     숙청되는 건 나여야 했으나, 나는 혁명군에 의해 강제로 구출되었다.

     

     그리고 아스타시아는 죽었다.

     황제에게 있어, 그레이 지브롤터라는 존재의 씨를 잉태하지 못한 여자 따위는 효용가치가 무엇도 없었으니까.

     마지막 효용이라고 한다면, 그레이 지브롤터를 끌어내기 위한 인질.

     나는 망국의 공주에게 붙잡혀 구하러 갈 수 없었고, 그렇게 인질은 살해당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다른 이들의 손에 희롱당하기 전에, 순순히 살해당하기를 선택했다.

     “…….”

     지금의 누아르를 지키기 위해 황제가 내미는 카드를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타개책이 있을까.

     “후.”

     갑자기, 백은이라도 한 대 피워놓고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그래서 나를 부른 거야…?”

     “그래.”

     회귀 전의 매국노 그레이였다면 끙끙 앓다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흘러가는 대로 지냈을 것이다.

     “너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아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아르가 화제의 당사자인데, 누아르의 의견을 듣지 않고 함부로 움직이는 건 문제가 크다.

     “상황은 대충 알고 있겠지?”

     “……응.”

     이사장실로 ‘홀로’ 불려 온 누아르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마치 벌을 받으러 온 아이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래도 저런 모습이 더 낫다.

     회귀 전의 그 쓰레기는 내가 부르는 날이면 제시간에 오지도 않고, 술에 취한 채 껄렁거리다가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부터 장착하고 소파에 처 앉았으니까.

     “아카데미의 여성 중에 많은 이들이 너를 노리고 있다.”

     “…….”

     “그들 중에는 나이가 24살인 미녀도 있고, 너보다 어리지만 천재라고 할 법한 소녀도 있지. 왕국을 구한 마법사가 세운 마탑에서 선정한 역대급 인재라고 하던가.”

     “걔, 14살이야.”

     “알고 있나?”

     “소문은 들었어. 웬즈데이가 알려주더라고.”

     “그렇군.”

     아무래도 웬즈데이가 누아르를 잘 보좌하는 것 같아 안심이다.

     “누아르. 네 생각은 어떻지?”

     “나?”

     “왕국과 제국 사이에서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래도 가족의 생각을 꺾어버리면서까지 희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내가 그래봤기에, 그렇게 되었을 때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너는 지난 1년 동안 이미 우수한 성과를 냈다. 아카데미 수석과 차석을 번갈아 가면서 ‘미래의 영웅’으로서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지.”

     “…….”

     “비룡 기승까지 완벽하게 해낸다면, 나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라고 사람들에게서 칭송이 자자할 거다. 형이라는 자는 어떻게 황녀에게 빌붙어서 제국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매국노지만, 동생은 형보다 더 뛰어난 비룡 기승 실력까지 겸비한 애국자라고.”

     “그.”

     순간, 누아르가 뭔가를 말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 뭐?”

     “…아니야.”

     “말해.”

     “…….”

     “네가 내 말을 끊으면서까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라. 그걸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거니까.”

     “…….”

     누아르는 망설이고 있다.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보며 자꾸만 뭔가를 말할 듯 말듯 주저하고 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내 생을 통틀어서 깨달은 게 있지.”

     “…뭔데?”

     “말하지 않으면 몰라.”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지브롤터 가문 전체가 그런 성향이 강했다.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그 누구도 모를 거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을 거다. 심지어….”

     “심지어?”

     “아스타시아에게도 말하지 않으마.”

     “……!!”

     누아르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거짓말. 어차피 말하면 바로 황녀님께 말할 거잖아.”

     “형으로서…아니. 남자 대 남자로서 약속하지.”

     “…….”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설령 황제가 내민 카드를 붙잡는다고 하더라도-

     “형.”

     누아르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다부진 차렷 자세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형이 나를 이용해서 애국주의자를 포섭하고, 노스트럼의 수호자로 만드는 건 감당할 수 있어.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뭔데.”

     “나.”

     누아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작게 중얼거렸다.

     “……싶거든.”

     “…….”

     

     뭔가.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

     “…그렇겠지. 역시, 말도 안 되는-”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어?”

     “아니,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말이 나온 것 같아서. 그러니까, 뭐라고? 미안한데, 다시 한번 말해줄래?”

     “미안…? 진짜 못 들은 거야?”

     누아르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이상해?”

     “…….”

     “지브롤터가 지브롤터하겠다는데, 그게 뭐?”

     “…….”

     자기감정 상하자마자 바로 성질 드러내는 걸 보면 누아르가 분명하긴 한데.

     “그래. 너는 지브롤터가 분명하군.”

     누아르는 누아르이면서, 동시에 한 명의 지브롤터였다.

     “좋아. 그렇다면….”

     형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웬즈데이를 불러서 의사를 물어봐야겠군.”

     “아, 형ㅡㅡ!!”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리끼리의 비밀(찡긋☆)

    생각보다 일찍 쓰여서 바로 올립니다

    다음화는 2024년 1월 1일 자정에 올립니다

    올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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