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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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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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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은 의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마왕성에 묵직한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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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약한 격을 가진 마족이나 몬스터 몇몇이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분’이 돌아온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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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흘러내린 잠옷을 그대로 방치해놓는 것처럼 그 또한 가볍게 흘러나온 격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연신 퍼져나가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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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운 존재 앞에 모두가 숨을 죽이자 마왕성엔 무서울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인간이 길가를 걸어가며 개미를 밟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생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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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리 오래 잠들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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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의 몸에서 영혼을 분리하고 외신을 빈껍데기에 밀어 넣기 위해 그는 인과율을 지불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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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일주일 안에 다시 눈을 뜰 거란 예상과 달리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무려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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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예측’은 ‘예언’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의문을 가지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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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은, 그는, 그것은, 존재는 -… 마왕성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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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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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격을 보이며 마왕성을 내려다본 것뿐인데도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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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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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성안에 보관되어 있던 ‘리안’의 껍데기가 보이지 않자 슬며시 의문이 올라온다. 그것은 아직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기에 세상 전부를 내려다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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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체의 힘을 끌어온다면 불가능한 것도 없지만 자칫 차원이 붕괴되거나 세계가 무너질 수 있어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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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알 수 없는 변수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잠든 사이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을 불안정한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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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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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이라 불리는 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목을 조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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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자비롭게 제 기운을 거둬 마왕의 숨통을 트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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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컥…허억,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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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압박감이 사라져 숨통이 트였지만 마왕의 몸은 전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압박감에 가려졌던 ‘그 분’의 형태와 개념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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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 나무였다. 촉수처럼 자란 나뭇가지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채우고 그 끝에 살아 숨 쉬는 세계가 열려있었다. 아니, 아니다. 자세히 보니 죽은 세계들이 나뭇가지 끝에 꼬챙이처럼 꽂혀 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손이었고, 팔이었고, 얼굴이었고, 몸이었으며, 벌레였다가 동물의 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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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무언가를 보면 곧바로 이해하려 한다. 그건 본능과 다를 바가 없어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 탓에 마왕은 ‘그 분’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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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터질 것 같고 혀가 잘려 나가 바닥을 뒹구는 것만 같았다. 목 안쪽에서 나뭇가지가, 팔이, 손이, 얼굴이, 몸이, 동물의 내장이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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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그 분’을 인지한 것만으로 정신이 다져지는 것 같은 끔찍한 황홀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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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마왕은 망가지면 안 되는 도구였기에 존재는 마왕의 정신을 가볍게 주물러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마왕은 미쳐버릴 것 같으면서 미치지 않는 기이한 상태가 되었다. 자비이자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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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마왕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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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육체’는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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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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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허락 없이는 신음조차 뱉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압박감이 내려앉은 상황에 경박한 폭발 소리가 눈치 없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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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시선이 마왕에게서 떨어져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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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로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구름 사이로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인간과 붉은 머리의 수인이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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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인간의 몸에 들어찬 영혼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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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를 따르는 외신들 중 최약체보단 조금 더 격이 높은 영혼의 무게가 느껴졌고, 권능이 영혼을 지키는 기사처럼 영혼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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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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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의문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주변을 살피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존재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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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 들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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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을 무릎 꿇리고 외신들의 칭송받는 위대한 존재를 한낱 간수 취급하는 듯한 목소리가 존재의 심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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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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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이라 불리는 이조차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미치게 만드는 존재를 같은 선상으로 끌어내려 ‘기분’을 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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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고고한 신을 땅 위로 끌어내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기적이자 저주를 숨 쉬듯이 사용하는 리안의 모습에 존재는 위기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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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소멸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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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굼벵이보다 느리게 도망치는 리안을 소멸시키기 위해 제 권능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인과율이 소모되기 시작했지만, 리안을 이 자리에서 소멸시키는 게 더 중요했기에 거리낌 없이 힘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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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기만 하던 마왕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재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고는 하나,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온몸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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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술을 벙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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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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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존재와 강제로 계약을 맺은 탓에 존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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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뚝, 볼을 타고 피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마왕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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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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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드득, 비틀비틀 걸어가 벽에 손을 올리자 흘러나온 마기가 벽을 통째로 뜯어버렸다. 잔뜩 충혈된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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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내게서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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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오싹할 정도의 집념이 뇌를 주무르는 온갖 인지 범위를 벗어난 생각들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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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한 걸음은 어느 순간부터 빠른 걸음으로 바뀌었고, 뜀박질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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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과 마왕의 숨 막히는 리안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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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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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갸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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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 추격전 특징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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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쫒아오는 존재의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도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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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쭈인님 엄청나게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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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등에 매달린 제스가 무시무시한 속도에 환히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리안이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빨라 어쩔 수 없이 탑승(?)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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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뒤통수를 짓누르는 묵직하고 말랑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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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웅!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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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에서 살벌한 소리가 쫓아오고 긴 복도에 부서진 건물 잔해와 어디선가 날아온 마족과 몬스터들이 장애물처럼 나타났지만 가뿐하게 피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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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이 사용된 건지, 달리기 게임 속에서나 볼법한 상황과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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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얼굴 쪽으로 건물 잔해나 몬스터, 마물 같은 게 날아오기도 했는데, 그런 공격은 제스가 빠르게 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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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이 할퀴고 지나가는 듯한 일격에 태풍 부는 날 신문지처럼 날아오는 존재들이 힘없이 벽으로 날아가 벽을 뚫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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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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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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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리안은 머리 위로 뭔가 끈적하면서도 기분 나쁜 감각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장식용 검을 들어 올렸다. 벽에 장식되어있던 것이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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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익,끼기기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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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뒤로 휙 돌린 채 검을 야구방망이 들 듯 자세를 잡자 기분 나쁜 기운을 품은 무언가가 리안 쪽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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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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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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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존재의 권능을 무려 목검으로 쳐버린 후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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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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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돌아온 권능을 맞았는지 땅이 거칠게 흔들리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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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가 울부짖었다. 안타깝게도 존재는 최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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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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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다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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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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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것처럼 존재의 권능을 받아친 리안이지만, 본인도 어리벙벙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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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전에는 이 정도로 쉽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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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불길한 불길을 통해 마주했을 때도, 몸에서 영혼이 강제로 벗겨졌을 때도 권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그 분’이라 불리는 외신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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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위험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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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그 정도의 위협만 느껴질 뿐, ‘압도적’이라는 감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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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비슷한 느낌을 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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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한 기시감에 기억 속을 더듬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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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다시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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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떨어져 나갔던 무거운 시선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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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 괜찮아?”
    “으응! 괜! 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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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가 떨리는 걸로 봐선 제스 또한 존재의 시선을 그대로 느끼는 듯했다. 권능이 도움을 주고 있는 건지 몸을 작게 떠는 것 말고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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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조금 무서워..”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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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작게 속닥거리며 리안의 어깨를 더 깊게 끌어안았다. 리안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앞으로 구를 뻔했다. 겨우겨우 자세를 바로잡은 리안은 더듬거리며 입술을 벙긋거리다 결국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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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련이 정말 통하긴 하는구나, 가르간도아 믿어주지 않아서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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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뒤에 더욱 밀착된 따스한 온기에 얼굴과 목이 뜨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코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리안은 속으로 ‘수련이 필요하다!’ 소리치던 마검에게 사과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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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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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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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벼락이 떨어지려는 것처럼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 리안은 본능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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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 화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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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낱 인간에게 공격당할 거라 상상도 못 했던 존재의 분노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에 아까처럼 몸을 뒤로 휙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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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기기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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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공격이든 다시 쳐버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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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 가득 채우는 수 백개의 공격에 리안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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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보다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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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오늘 저녁에 한편더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 다음화가 애매하게 끝나서 3일에 연달아 두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왕지각 죄송합니다 ;0;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어째서?’

외신은 의문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마왕성에 묵직한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연약한 격을 가진 마족이나 몬스터 몇몇이 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분’이 돌아온 여파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흘러내린 잠옷을 그대로 방치해놓는 것처럼 그 또한 가볍게 흘러나온 격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연신 퍼져나가다 흩어졌다.

두려운 존재 앞에 모두가 숨을 죽이자 마왕성엔 무서울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인간이 길가를 걸어가며 개미를 밟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주변의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생각을 이어갔다.

‘왜 이리 오래 잠들었던 거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인간의 몸에서 영혼을 분리하고 외신을 빈껍데기에 밀어 넣기 위해 그는 인과율을 지불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일주일 안에 다시 눈을 뜰 거란 예상과 달리 그가 정신을 차린 건 무려 몇 달의 시간이 흘러간 후였다.

그의 ‘예측’은 ‘예언’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의문을 가지기 충분했다.

그분은, 그는, 그것은, 존재는 -… 마왕성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쿠르릉..!

약간의 격을 보이며 마왕성을 내려다본 것뿐인데도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어디에 있는 거지?’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성안에 보관되어 있던 ‘리안’의 껍데기가 보이지 않자 슬며시 의문이 올라온다. 그것은 아직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었기에 세상 전부를 내려다볼 수 없었다.

본체의 힘을 끌어온다면 불가능한 것도 없지만 자칫 차원이 붕괴되거나 세계가 무너질 수 있어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알 수 없는 변수를 그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잠든 사이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을 불안정한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흡,끅…”

‘마왕’이라 불리는 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목을 조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자비롭게 제 기운을 거둬 마왕의 숨통을 트여주었다.

“컥…허억,헉!”

무거운 압박감이 사라져 숨통이 트였지만 마왕의 몸은 전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압박감에 가려졌던 ‘그 분’의 형태와 개념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탓이다.

그것은 -… 나무였다. 촉수처럼 자란 나뭇가지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채우고 그 끝에 살아 숨 쉬는 세계가 열려있었다. 아니, 아니다. 자세히 보니 죽은 세계들이 나뭇가지 끝에 꼬챙이처럼 꽂혀 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나뭇가지가 아니라 손이었고, 팔이었고, 얼굴이었고, 몸이었으며, 벌레였다가 동물의 내장이었다.

인간은 무언가를 보면 곧바로 이해하려 한다. 그건 본능과 다를 바가 없어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 탓에 마왕은 ‘그 분’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 생각했다.

눈이 터질 것 같고 혀가 잘려 나가 바닥을 뒹구는 것만 같았다. 목 안쪽에서 나뭇가지가, 팔이, 손이, 얼굴이, 몸이, 동물의 내장이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마왕은 ‘그 분’을 인지한 것만으로 정신이 다져지는 것 같은 끔찍한 황홀감을 느꼈다.

아직 마왕은 망가지면 안 되는 도구였기에 존재는 마왕의 정신을 가볍게 주물러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마왕은 미쳐버릴 것 같으면서 미치지 않는 기이한 상태가 되었다. 자비이자 재앙이었다.

존재는 마왕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 ‘육체’는 어디에 있지?

콰과과광!

존재의 허락 없이는 신음조차 뱉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압박감이 내려앉은 상황에 경박한 폭발 소리가 눈치 없이 울려 퍼졌다.

존재의 시선이 마왕에게서 떨어져 소리가 들린 쪽을 향했다.

폭발로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구름 사이로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인간과 붉은 머리의 수인이 재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존재는 인간의 몸에 들어찬 영혼을 바라보았다.

존재를 따르는 외신들 중 최약체보단 조금 더 격이 높은 영혼의 무게가 느껴졌고, 권능이 영혼을 지키는 기사처럼 영혼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게 보였다.

‘소멸하지 않았다고?’

그것이 의문을 표하는 것과 동시에 리안이 주변을 살피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존재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억?! 들켰다!”

마왕을 무릎 꿇리고 외신들의 칭송받는 위대한 존재를 한낱 간수 취급하는 듯한 목소리가 존재의 심기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위험하군.’

‘마왕’이라 불리는 이조차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미치게 만드는 존재를 같은 선상으로 끌어내려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는 고고한 신을 땅 위로 끌어내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기적이자 저주를 숨 쉬듯이 사용하는 리안의 모습에 존재는 위기감을 느꼈다.

‘당장 소멸시켜야 한다.’

존재는 굼벵이보다 느리게 도망치는 리안을 소멸시키기 위해 제 권능을 억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인과율이 소모되기 시작했지만, 리안을 이 자리에서 소멸시키는 게 더 중요했기에 거리낌 없이 힘을 사용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기만 하던 마왕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재의 시선이 리안을 향했다고는 하나,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온몸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마왕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술을 벙긋거렸다.

“안..돼..”

마왕은 존재와 강제로 계약을 맺은 탓에 존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었다.

뚝뚝, 볼을 타고 피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마왕은 멈추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만큼은…”

콰드득, 비틀비틀 걸어가 벽에 손을 올리자 흘러나온 마기가 벽을 통째로 뜯어버렸다. 잔뜩 충혈된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였다.

“더 이상 내게서 무엇도… 빼앗아 갈 수 없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자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오싹할 정도의 집념이 뇌를 주무르는 온갖 인지 범위를 벗어난 생각들을 잘라냈다.

느릿한 걸음은 어느 순간부터 빠른 걸음으로 바뀌었고, 뜀박질로 바뀌었다.

외신과 마왕의 숨 막히는 리안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갸아아악..!!”

개그 세계 추격전 특징 중 하나.

쫒아오는 존재의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도망칠 수 있다.

“쭈인님 엄청나게 빨라!”

리안의 등에 매달린 제스가 무시무시한 속도에 환히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리안이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빨라 어쩔 수 없이 탑승(?)한 상태였다.

리안은 뒤통수를 짓누르는 묵직하고 말랑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쿠웅! 콰직!

등 뒤에서 살벌한 소리가 쫓아오고 긴 복도에 부서진 건물 잔해와 어디선가 날아온 마족과 몬스터들이 장애물처럼 나타났지만 가뿐하게 피해 나갔다.

권능이 사용된 건지, 달리기 게임 속에서나 볼법한 상황과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종종 얼굴 쪽으로 건물 잔해나 몬스터, 마물 같은 게 날아오기도 했는데, 그런 공격은 제스가 빠르게 쳐냈다.

범이 할퀴고 지나가는 듯한 일격에 태풍 부는 날 신문지처럼 날아오는 존재들이 힘없이 벽으로 날아가 벽을 뚫고 사라졌다.

우웅!

“어?”

그때 리안은 머리 위로 뭔가 끈적하면서도 기분 나쁜 감각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장식용 검을 들어 올렸다. 벽에 장식되어있던 것이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휘익,끼기기긱!

몸을 뒤로 휙 돌린 채 검을 야구방망이 들 듯 자세를 잡자 기분 나쁜 기운을 품은 무언가가 리안 쪽으로 날아왔다.

까앙!

“홈런!”

리안은 존재의 권능을 무려 목검으로 쳐버린 후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쿠르르릉!

되돌아온 권능을 맞았는지 땅이 거칠게 흔들리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존재가 울부짖었다. 안타깝게도 존재는 최강이 아니었다.

“다시 출발!”

리안은 다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당연한 것처럼 존재의 권능을 받아친 리안이지만, 본인도 어리벙벙한 상태였다.

‘분명 전에는 이 정도로 쉽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처음 불길한 불길을 통해 마주했을 때도, 몸에서 영혼이 강제로 벗겨졌을 때도 권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그 분’이라 불리는 외신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적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위험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딱 그 정도의 위협만 느껴질 뿐, ‘압도적’이라는 감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전에도 몇 번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

묘한 기시감에 기억 속을 더듬으려는 순간.

‘아, 다시 왔네.’

잠깐 떨어져 나갔던 무거운 시선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스 괜찮아?”

“으응! 괜! 찮아!”

목소리가 떨리는 걸로 봐선 제스 또한 존재의 시선을 그대로 느끼는 듯했다. 권능이 도움을 주고 있는 건지 몸을 작게 떠는 것 말고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조금 무서워..”

“허억..!”

제스가 작게 속닥거리며 리안의 어깨를 더 깊게 끌어안았다. 리안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앞으로 구를 뻔했다. 겨우겨우 자세를 바로잡은 리안은 더듬거리며 입술을 벙긋거리다 결국 닫아버렸다.

‘수련이 정말 통하긴 하는구나, 가르간도아 믿어주지 않아서 미안했어..’

머리 뒤에 더욱 밀착된 따스한 온기에 얼굴과 목이 뜨끈하게 달아올랐지만, 코피는 쏟아지지 않았다. 리안은 속으로 ‘수련이 필요하다!’ 소리치던 마검에게 사과를 전했다.

콰르르릉!

“..!”

그때 벼락이 떨어지려는 것처럼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 리안은 본능적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아차렸다.

‘엄청 화났네!’

한낱 인간에게 공격당할 거라 상상도 못 했던 존재의 분노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에 아까처럼 몸을 뒤로 휙 돌렸다.

끼기기긱!

“어떤 공격이든 다시 쳐버리면 -..”

시야 가득 채우는 수 백개의 공격에 리안은 주저 없이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빛보다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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