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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EP.185

     

   [이곳은 13층, 무(武)의 경계입니다.]

     

   “이번에도 13층은 여긴가?”

     

   익숙한 장소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반응.

     

   정석적인 방법으로 탑을 올랐다면 조금 더 신선한 리액션을 보여 줄 수 있었겠지만 이미 해당 층을 경험해 본 탓에 나의 감상은 한층 무던 해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풍경의 변화 있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기에 곧장 인식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13층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좀 더 칙칙하고 진중한 느낌이었다고 하자면 지금은 좀 더 화사하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짙은 마력이나 따스한 기운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변한 것은 숨을 쉴 때마다 공기에서 약간의 달콤함이 더해졌다는 것.

     

   “……뭐야?”

     

   누군가 꽃을 심었다. 속에 뭉쳤던 응어리가 풀어지게 만드는 공기에는 갖가지 꽃의 향기가 품어져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가로수 아래로 나지막이 심어진 꽃들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든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의 머릿속에 한 성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상체가 터질 듯이 거대한 근육질의 상남자 한 명.

   그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모종삽을 들고서 빙그레 웃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진다.

     

   “상상되니까 짜증나네.”

     

   탈람바르가 햇살을 받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모습…… 나는 최대한 빨리 그 불쾌한 상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털어냈다.

     

   “길이 바뀌지는 않아서 다행인가.”

     

   무의 정원으로 향하는 길은 그대로였다.

     

   한껏 우거진 나무가 숲을 이루고 하늘을 가린 가지들이 길을 어둡게 물들인다. 물론 양옆으로 알록달록한 꽃들이 심어져 있으니 괜히 화사했지만 그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금……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가 달라진 건가.”

     

   무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서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탑을 오르며 격이 높아지고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상황. 이제 보니 당시의 내가 무의 정원까지 길을 엇갈리지 않고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들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그때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었다. 이제는 꽃이 흐드러진 숲의 통로를 지나 길의 끝에 다다랐다.

     

   화아악!

     

   어둠을 뚫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탑이 위치한 넓은 장소. 콜로세움과 흡사한 디자인의 그 탑은 여전히 검의 무덤 너머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도전자가 더 있었을까?”

     

   이전에 엔리코에게 말했던 예상이 맞다면 탑은 도전자에게 그들이 성장할 수 있을 만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그 말인 즉, 내가 오르게 된 13층이 5층을 클리어한 당시의 나와 12층을 클리어한 지금의 나를 위해 가장 적합하게 설계된 층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 무의 정원으로 연결된 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양옆에는 꽃 대신 무의 정원에서 좌절한 도전자들의 무기가 수없이 박혀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기록을 일일이 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이 적합한 설명이 아닐까 싶었다.

     

   “왔군.”

     

   거대한 탑의 입구에 앉아 등을 보이고 있던 남자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무의 정원의 100층에서 나를 맞이했어야 할 존재.

     

   ‘전쟁과 싸움 밖에 모르는 자’라는 이명을 가진 탈람바르는 시련의 탑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오랜만에 뵙는군요.”

   “그렇지 참 오랜만이야. 읏차…!”

     

   탈람바르가 짧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투박하고 위협적인 외관. 하지만 그보다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당시에는 감히 느끼지 못했던 그의 강함이었다.

     

   “못 본 사이에 너무 강해지신 것 아닙니까.”

   “그때의 내가 너무 약했던 것이지. 그리고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때 있었던 애송이가 이렇게까지 괴물이 됐다니 감회가 새로워.”

     

   그때가 약했다니 기만도 그런 기만이 따로 없었다.

     

   물론 11층의 장막 뒤의 감시자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5층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포탈을 자주 열고 닫아야 했고 6층으로 가야 했던 나를 13층으로 억지로 끌고 오면서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탑에게 페널티를 받았던 것이다.

     

   ‘내가 탈람바르를 이긴 게 순전히 우연에 우연이 겹친 행운이라고 했던가.’

     

   지금 보니까 장막 뒤의 감시자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정상적인 강함. 12층에서 봤던 이세계의 대부와는 감히 비교가 불가능한 압도적인 기량이 그에게 있었다.

     

   “호오. 눈빛을 보니 상대를 파악하는 눈치도 많이 성장한 것 같군. 그때는 꽤 천둥벌거숭이였는데 말이지.”

   “그때도 꽤 신중했습니다.”

   “아니. 그때 자네가 지금 같았으면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위험하지 않았을 거야.”

     

   그의 말에 나는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6층부터 이어진 나의 성장을 되새김질했다.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것은 아니었다. 천원문의 무공들을 기반으로 2층에서부터 차근차근 익혀 왔던 모든 무공들을 다루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허나 탈람바르가 말하는 성장은 무공이나 육체적인 성장이 아니었다.

     

   ‘깨달음’이라는 영역. 그저 검을 많이 휘두른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얻을 수 없는 무의 가치였다.

     

   “그대는 어떤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탈람바르의 뜬금없는 물음에 나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반문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보기에 내가 어떤지 묻는 것일세.”

     

   그의 상태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칼로 찔러도 칼이 부러질 것 같은 강인한 육체.

   나와의 싸움으로 잃게 되어 허전해진 왼팔을 보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왼팔은 괜찮으십니까?”

   “아아.”

     

   짧은 안부에 그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그의 표정에 원망이나 불쾌함 따위는 없었다.

     

   그저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띤 채, 자신의 어깨를 잡을 뿐.

     

   “없으니 몸이 가볍더군.”

   “예?”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검술이 가능해졌어. 뭐랄까…… 말로 설명은 어렵지만 잠시 후에 보게 될 테니 아쉬워는 말게.”

     

   그의 말에 등줄기에 우수수 소름이 돋아났다.

     

   한쪽 팔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였으나 포식자는 포식자.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여전히 앞발 후리기 한 방으로 사슴의 모가지를 세 바퀴 반쯤은 돌릴 수 있는 맹수였다.

     

   “그나저나 그게 끝인가?”

     

   그가 뭔가를 기대하듯이 나의 눈을 응시했다. 눈썹이 살짝 찡그려지는 것이 약간의 실망이 가미된 모양.

     

   “여전히 강하시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할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큭.”

     

   이제야 탈람바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애초에 그는 항상 강자에 목이 말라 있던 싸움광. 게다가 장막 뒤의 감시자가 말했듯이 그는 어지간한 성좌들은 명함도 건네지 못할 강함을 지니고 있었으니 나의 말이 무척이나 반가울 것이 당연했다.

     

   “크하핫!!!”

     

   미소가 흐르다 못해 폭소까지 이어진 그가 자신의 왼쪽 옆구리에 걸쳐 있던 작은 검을 뽑아 든다.

     

   “그대는 내가 그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네! 이 기백과 투지를 받아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대는 아는가?!”

     

   탈람바르의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서서히 올라갔다. 고작 검을 한 자루 뽑아 들었을 뿐인데 주변의 마력에 와류가 일며 그의 주변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황.

     

   “기다림에 부응해야 할 텐데요.”

   “이미 충분하다! 김시인 그대는 내가 무의 정원 밖에서 그대를 기다린 이유를 알고 있을 터!”

   “그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의 정원을 오르며 괜히 힘을 빼지 말고 덤비라는 그의 배려다.

     

   이를테면 ‘전력이 아닌 나’는 재미가 없을 것 같으니 시작부터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랄까.

     

   ‘적당히 할 생각 따위는 없군.’

     

   나는 무명검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처음에는 한기의 심장을 꺼내 12층에서 펼쳤던 극한의 냉기를 사용할까 싶었지만 그와의 싸움에서 순수한 무공이 아닌 잡기를 사용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우……”

     

   월광검법 月光劍法

     

   천월문의 독문무공이자 나에게 깨달음을 준 검법.

     

   나는 탈람바르에게 빨려 들어가는 주변의 마력을 억지로 막아서지 않으며 지금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그대로 느끼기로 했다.

     

   세상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한결 같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자로 뚫어낼 수 없는 길이라면 돌아가는 길을 만들었고 정면으로 부딪쳐 이겨 낼 수 있는 벽이라면 혼신의 힘을 다해 그것을 박살낸다.

     

   그것이 나의 깨달음이었다. 나의 세상이었고 그 모든 신념이 나의 무武가 되었다.

     

   “하지만.”

     

   이건 승산이 없어도 직접 부딪쳐보고 싶었다.

     

   월광검법 제오식 月光劍法 第五式

     

   단전에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검을 타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마력에서 나온 빛줄기가 사방을 맴돌기 시작하자 탈람바르에게 빨려 들어가던 마력들이 그 힘을 잃고 자연스럽게 산화했다.

     

   “그대, 이번에도 역시 멋지군! 오른팔은 더 잘 간수해야겠어!”

     

   탈람바르가 나의 검에서 나온 월광을 보며 몸을 낮춘다.

     

   당장이라도 뛰어들 듯한 자세에 나는 온 신경을 집중했고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며 탈람바르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나의 세상을 음미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던 처절한 나날. 그때의 절실함을 담아 나는 초식의 첫 발을 디뎠다.

     

   타탓.

     

   “흐으읍!!!”

   “크하핫!!!”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며 달려드는 탈람바르의 검. 고작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른 단순한 검이었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절대 고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츠츠츠츳!!!!

     

   공간이 휘어졌다.

     

   고작 허공에 휘둘러지는 일검 때문에 거대한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시야가 일그러진다.

     

   하지만 나는 그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 이 공격을 피했다가는 더 이상의 성장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기에.

     

   만월 滿月

     

   흩어져 있던 마력이 삽시간에 검끝으로 흡수되며 세상을 밝혔다.

     

   11층에서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던 나의 세상이 은은한 위로의 서광이었다면 탈람바르의 검에 맞서는 나의 세상은 찬란한 극복의 광채였다.

     

   쿠콰과과광!!!

     

   한 번의 충돌에 대지가 흔들리고 마력의 충격으로 모든 구름이 흩어지며 맑은 하늘을 드러낸다.

     

   검과 검.

   성좌와 성좌.

   나의 세상과 탈람바르의 세상이 충돌한 여파였다.

     

   그리고 그때 격돌로 인해 나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은 하나의 광경이 있었다.

   이전에 13층을 방문 발견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검의 무덤에 새겨진 새로운 글귀.

     

   「다시 싸워 보고 싶군. [조鳥]」

   「김시인 [完]」

     

   탈람바르가 검의 무덤에 손수 새긴 나에 대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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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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