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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5

    문신투성이 여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수호자’가 저 정도 경지에 도달하는 게 가능했단 말인가?

    “이기기 힘들 것 같아. 도망칠 준비를 해둬.”

    여자의 작은 목소리에 여동생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여자는 아쉬움에 허공을 움켜쥐었다.

    검만 있었으면 이 정도까지 불리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 텐데….

    여자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며, 이용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연금술사의 공방이니만큼 쓸만한 물건이 있을 가능성이 꽤 높았다.

    그리고 여자는 응접실에 배치된 장식장을 발견했다.

    “핫.”

    여자는 저절로 나오는 헛웃음에 작게 소리를 토했다. 

    이용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지구에서는 구하지 못할 시료들인 것은 당연했고, 고향에서도 구하기 힘든 수많은 시료가 전시품처럼 잔뜩 늘어서 있었다.

    거기다가, 꽤 고급품으로 보이는 연금술사용 검도 비치되어 있었다.

    마치, 저 수호자를 처리하라는 것처럼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자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불안해진 여동생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아니, 아무런 문제도 없어.”

    여자는 벽으로 천천히 다가가, 벽에 걸린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도망갈 필요도 없어. 이길 테니까.”

    문신투성이 여자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

    커다란 화로와 벽처럼 높이 늘어선 책장 사이를 뛰어다니며, 미니 사신들을 쫓았다.

    책장 사이로 작은 얼굴들이 잔뜩 튀어나와 있다가, 내가 달려들면 신나는 표정으로 사방으로 흩어지는 미니 사신들.

    ‘도망쳐!’

    ‘엄마가 온다!’

    내가 제대로 잡을 마음이 없고 대충대충 쫓아가고 있는 걸 깨달았는지, 미니 사신들은 술래잡기하는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이빨을 뽑기 위한 치열한 추격전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즐거운 술래잡기가 되어버렸다.

    ‘!’

    그러던 중, 내 손아귀에 황금 사신 하나가 잡혀버렸다.

    황금 사신의 민첩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잡힐 리가 없는데, 너무 아슬아슬한 스릴을 즐기다가 결국 잡혀버렸다.

    황금 사신도 진짜로 자신이 잡힐 줄은 몰랐는지 온몸을 긴장시킨 채, 곁눈질로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천천히 내 손가락이 황금 사신의 얼굴로 다가가자, 황금 사신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앙다물었다.

    여기서 진짜로 이빨을 뽑아버리면 기껏 재미있어진 분위기가 엉망이 되겠지.

    그래도 황금 사신이 눈을 감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보니, 장난치고 싶어지네.

    어차피 재생하니까, 어금니 한두 개는 괜찮지 않을까?

    미니 황금 이빨, 한 번쯤 보고 싶기도 했고….

    진짜로 뽑아볼까?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뻗어서 황금 사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러면 너도 술래야.’

    황금 사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통통 두들기며 의지를 전달하자, 황금 사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끈 감은 눈을 슬며시 뜨더니 히히 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다행히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장난기를 억누르고 술래잡기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술래는 나랑 황금 사신, 2인 1조!

    ‘자, 가자!’

    어깨 위에 앉은 황금 사신에게 의지를 전달하자, 황금 사신이 의욕에 찬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른 미니 사신들이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나도 엄마랑 같은 편 할래!’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이상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술래잡기는 순식간에 술래 측의 승리로 끝나버렸다.

    처음에는 술래가 되려고 은근슬쩍 아닌 척하면서 잡혀주더니,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넘어지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나올 정도였다.

    뚜방뚜방 뛰어가다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철푸덕 넘어져서 바닥에 쓰러진 채, 고개만 돌려 내 쪽을 바라보는 미니 사신.

    바닥에 쓰러진 채, 마치 어서 빨리 잡아달라는 표정이었다.

    왠지 그 표정이 얄밉게 느껴져서 일부러 그쪽을 안 보면, 실망한 표정으로 슬금슬금 기어 와서 쓰러진 장소를 내 바로 앞으로 옮길 정도였다.

    결국 그렇게 전부 술래가 되는 것으로 술래잡기는 끝이 났다.

    이제 술래잡기도 끝나서, 슬슬 철문 너머로 이동하려고 하는 순간.

    콰앙!

    커다란 철문 너머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바닥이 사정없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과 진동.

    보통의 동굴이었다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었다.

    그 폭발에 깜짝 놀란 미니 사신들은 미어캣처럼 빤히 철문 너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철문 너머에서는 강력하면서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오브젝트와는 다른 느낌.

    교주가 쓰던 ‘눈동자’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가만히 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와 미니 사신들은 그대로 철문 너머로 서둘러서 걸음을 옮겼다.

    ***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응접실에서 문신투성이 여자는 허공에 손을 뻗고 염원을 되뇌었다.

    시료의 이름에 염원을 담을 때마다, 장식장에 걸려있던 수많은 시료가 빛의 가루로 변해 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태양을 닮은 하얀 꽃. 이면을 비추는 거울. 마도서를 녹이는 푸른 잎사귀.’

    공간을 떼어낸 것 같은 거울과 하얀 꽃, 푸른 잎사귀가 뒤섞이며 검신에 푸른 불꽃을 피워올렸다.

    검신이 타오르는 순간 휘두른 참격에서 푸른 불꽃이 번져 나가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집요하게 달라붙고,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

    집사 아귀였다면 재생력을 모두 상실할 때까지 고통 속에서 타오르며 죽어갈 정도로 흉악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아귀 사신을 태워버릴 것 같던 불꽃은 아귀 사신에게 도달하지 못했고, 그저 주변으로 흘러가며 빗나갈 뿐이었다.

    또다시 빗나가버렸다.

    그 어떤 공격이라도, 아귀 사신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마도서를 자주 봐온 문신투성이 여자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마도서를 죽이기 위해서 몇백 년을 발전해 온 연금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저건 ‘달’급이란 말인가.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니, 아귀 사신이 자기 몸을 쭈글쭈글 우그러트렸다.

    “!”

    그리고 그대로 빠른 속도로 튕겨 나왔다.

    마치 자기 몸을 용수철처럼 사용해서 빠른 속도로 돌진해 온 것이었다.

    황급하게 피했지만 제대로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변한 아귀 사신의 팔이 여자의 한쪽 팔과 몸통 일부를 예리하게 잘라내 버렸다.

    쿨럭쿨럭.

    여자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고 있었지만, 도망갈 길조차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아마 이대로 도망가려고 해도 저렇게 빠른 아귀 사신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겠지.

    뭔가 묘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꽤 많은 시료가 남아 있었지만, 여자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연금술이 먹히지 않았다.

    재생을 막는 하얀 불꽃도, 끊임없이 타오르는 푸른 불꽃도, 폭발을 일으키는 붉은 불꽃도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여동생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남은 방법은 한가지.

    남은 시료를 모두 때려 박아 넣은 일격으로 주의를 끌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푸른 산맥의 강철. 시간을 담은 투명 꽃….’

    여자가 염원을 빌 때마다 시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2개에서 3개 정도의 시료만 사용하던 것과 달리 열 가지가 넘는 시료를 검속에 담자, 연금술사의 검은 마치 깨질 것처럼 진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료를 잔뜩 머금은 검신은 점점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가장 화려한 연금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이를 악물고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서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사방으로 번지며, 주변을 가득 채워버렸다.

    바닥에 환상으로 만들어진 꽃밭이 자라나고, 푸른 하늘이 천장을 대신 채웠다.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큰 폭음과 함께 밝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

    “뛰어!”

    여자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이를 악물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성을 몇 채나 살 정도의 재료를 때려 박은 불꽃놀이니, 적어도 몇 초 정도는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휘이익.

    하지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자신의 양손을 거대한 대검으로 바꾼 아귀 사신이 대검을 내리치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온 힘을 다해서, 검의 궤적 밖으로 여동생을 밀어냈다.

    촤악.

    사람을 뼈째로 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힘든 소리와 함께, 여자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다.

    “언니!!!!!”

    여동생의 목소리가 여자의 흐릿한 정신 속에서 들려왔다.

    “도망쳐.”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제대로 열리지 않는 입을 열어 여동생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제대로 된 소리가 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

    시간 가속과 유령화까지 사용해서 큰 폭발이 발생한 곳으로 도착하자, 인형 대가리의 여동생이 위기에 빠져있었다.

    어떤 오브젝트가 피가 뚝뚝 흐르는 거대한 칼을 들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지만, 여동생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반토막 난 인형 대가리의 시체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양팔이 커다란 검으로 된 오브젝트는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겼다.

    나랑 닮은 데다가, 얼굴이 아귀처럼 생겨서 기분이 나빴다.

    설마 저거 입을 다물고 있는데, 징그러운 이빨이 나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다 뽑아버려야지.

    그리고 아귀 사신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멍청한 얼굴을 한 아귀 사신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굴이 호두처럼 잔뜩 주름지더니 입을 크게 열고 소리쳤다.

    “뀨에에엑!”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아귀 사신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육탄전을 벌이려고 하는 멍청한 아귀 사신을 바라보며 공간을 ‘뀩’ 하고 움켜쥐었다.

    ‘어? 이게 왜 이래?’

    하지만 언제나 내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검은 구체는 전혀 엉뚱한 위치에 생겨나서 빗나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참격이 내 몸을 가로로 쪼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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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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