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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누구냐?!”

       

       

       왕은 술에 취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에게 반응했다.

       

       그 반응이라는게 옆에 놓인 작은 술잔을 쥐고 나를 겨누는 모습이라 영 꼴이 말이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튼, 술냄새가 풀풀 나고 있는 왕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지나가던 떠돌이라고 생각하거라. 대충 듣자하니 아내와의 불화로 고민인 모양이던데.”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재미 없는 이야기는 넘어가고. 한가지 제안을 하도록 하지.”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의 왕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뭐, 갑자기 나타나서는 딱 봐도 수상한 말을 하는 작은 소녀를 마주하고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취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증거겠지만.

       

       나야 편하지. 일이 간단하게 진행되니까 말야.

       

       

       “왕비와 화해하고 싶은가?”

       

       

       나의 말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의 왕은 흐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해하고 싶다! 왕비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화해를 하고 싶다! 어째서 우리들이 이렇게 갈라져야 하는거지?! 어째서 왕비에게서 그런 소 인간이 태어난거냐!! 도대체 왜!!”

       

       

       울분이 잔뜩 쌓인듯한 왕은 다시금 분노를 토해냈다.

       

       이렇게 흐트러진 사람이 상대라면, 원하는대로 다루기 편하지.

       

       

       “좋아. 왕비에게서 소 수인이 태어난 탓에 생긴 문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하지,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 뭐지? 금은보화를 바라는건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주도록 하지!!”

       

       

       과연, 돈이 많은 도시국가의 왕 다운 말이로구만.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지.

       

       

       “이 도시에 괴물이라 불리우는 소 수인이 있다고 들었다. 그를 나에게 넘긴다면, 도움을 주도록 하마.”

       

       “그 괴물을? 무엇때문에?”

       

       “다 쓸데가 있어서 말이지.”

       

       

       내 말에 왕은 잠시 고민하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골칫덩이를 어디에 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데리고 가준다니 감사할 따름이지! 마음대로 데려가시게!”

       

       

       왕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자식을 팔아넘겼다. 것 참, 매정한 아버지로구만.

       

       뭐,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일테니까. 저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현대적인 방식의 유전자 검사 같은 것도 없으니까. 그 괴물이라 불리우는 소 수인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못할테지.

       

       그러니까.

       

       

       “그러면 일단, 머리카락을 한가닥 받아가도록 하지.”

       

       “머리카락을? 어째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지. 머리카락이 싫다면 피 한방울로도 괜찮은데. 간단한 확인을 하기 위해서니까 말이지.”

       

       “머리카락 한 가닥이면 되는가?”

       

       

       왕은 냉큼 머리를 한 가닥 뽑아서 나에게 내밀었다.

       

       한방울의 피를 뽑는게 그렇게나 싫었던걸까.

       

       

       “좋네. 머리카락 한 가닥. 요긴하게 쓰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로 그 머리카락으로 아내와 화해할 수 있는건가?”

       

       “그야 물론.”

       

       “도대체 어떻게?”

       

       

       나는 왕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술에 취해서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긴 귀찮거든.

       

       

       “싸움의 원인을 해소하면 될 일이지.”

       

       

       인간 부부 사이에서 소 수인이 태어난 것으로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게 되었으니, 태어난 소 수인이 친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면 하면 갈등이 해소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갈등이 해소된 뒤에, 또다른 갈등이 생겨날지도 모르지만…. 뭐, 내가 알바는 아니지!

       

       난 그저 그 소 수인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말야!

       

       

       “그러면, 금방이면 끝날테니 잠깐 눈이라도 붙여두도록.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전부 해결되어 있을테니까.”

       

       

       그렇게 나는 술에 취한 왕을 잠에 빠트린 후, 모습을 숨긴 채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왕비가 있는 곳.

       

       왕처럼 술독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한 얼굴로 작은 옷을 쓰다듬고 있는 왕비였다.

       

       크나큰 슬픔에 빠져있는 왕비의 모습. 본래 상당한 미인이었을 왕비는 창백한 안색으로 옷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는 왕비.

       

       

       “죄가 있다면 그 아이를 인간으로 낳아주지 못한 나의 죄일텐데. 어찌하여 그 아이를 지하 미궁에 던져 넣으신 것인지. 참으로 너무합니다…. 폐하….”

       

       

       흐음. 왕과 다르게 왕비는 그 괴물이라 불린 아이를 자기 자식이라 생각하는 모양이구만.

       

       그러면 뭐, 이야기가 쉽지.

       

       

       “잠깐 실례하도록 하지.”

       

       “누, 누구?!”

       

       “지나가던 나그네일세.”

       

       

       쥐뿔도 먹히지 않을 말을 하면서,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괴물이라 불리우는 소 수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보아하니 그대의 아이인 모양이구만.”

       

       “누, 누구?! 침입자?! 침입자다!!!”

       

       “한창 이야기 하고 있는 도중이지 않나. 뭐,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술에 취해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과 멍하니 이야기를 나눈 왕이 문제인거지.

       

       

       “아무리 소리쳐봐도 바깥의 사람들이 듣진 못할게니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마시게. 아, 문도 안열릴거고.”

       

       

       왕비는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것인지 굳게 닫힌 문을 붙잡고 끙끙거렸지만, 결계로 고정시켜둔 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그냥 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뿐인데 말이지. 뭐,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쪽이 별종일테지만.

       

       

       “쓸데없는 노력은 그만두고, 이야기나 해보자고. 왕비여. 네 아이를 구하고 싶지 않나?”

       

       

       그러자,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던 왕비의 몸이 멈칫거린다. 아이. 왕비의 아이. 괴물이라 불리운 아이.

       

       

       “방금, 무슨 말을….”

       

       “말 그대로일세. 지하 미궁에 있다고 했던가? 그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괴물이라는 소문이 퍼져있다고 해도, 이렇게, 어린 아이의 옷을 손에 들고 그리워하는 어머니로서는. 안타까울 뿐일테니까.

       

       그러니까, 그 부분을 파고든다.

       

       

       “내가 도와준다면, 그 아이를 꺼내줄 수 있는데.”

       

       

       여기서, 왕과는 다른 것을 제시한다. 왕이 바라는 것은 왕비와의 화해. 그리고 왕비가 바라는 것은…. 지하 미궁에 있는 아이를 구하는 것일 터.

       

       두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면. 양쪽과의 약속을 모두 지키는 것일테니.

       

       그러니.

       

       

       “어떤가. 이야기를 들어볼 마음이 생겼는가?”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고, 왕비는 긴장한 얼굴로 작게 침음을 냈다.

       

       

       – – – – – – – – – – – – – – – – – – – –

       

       

       “너무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그래. 너무하지.”

       

       “아무리 아이가 소 수인으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제 배에서 난 아이인데! 고통스러운 아픔을 견디고 낳은 아이인데! 그저 그 아이에게 소의 뿔이 있다는 것만으로! 자기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건지!!”

       

       “그래그래. 거 너무하구만 그래.”

       

       “평소에는 소 수인들을 보며 듬직하다느니, 든든하다느니 하면서 칭찬만을 늘어놓으시던 폐하가! 어찌 그렇게 손바닥을 뒤집듯 태도를 바꾼단 말입니까!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렇고 말고. 대충 2대쯤 올라가다보면 소 수인이 섞여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대충 왕의 외할머니 쯤이 소 수인일 가능성도 있는데.”

       

       “그렇죠! 그렇겠죠!! 애초에 제가 사랑한 남자는 폐하 뿐인데!!! 그런 저를 그렇게 의심하시고!!! 폐하께서 그렇게 옹졸하신지는 몰랐습니다!!!”

       

       “남자는 다 그렇지 뭐. 약간의 의심만으로 태도가 확 바뀌고.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네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

       

       “그러게나 말이에요! 정말이지! 심지어 지금은 술독에 빠져서 정무는 돌보지 않고 술만 마시고 있고! 정말로 너무하잖아요!”

       

       “어쩌겠어. 순애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NTR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암귀에 빠져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일텐데. 네 입장에서는 줄곧 순애일텐데 말이야.”

       

       “순애? 그게 뭔가요?”

       

       “순수하고 깨끗한 애정이지.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정직하고 강렬한 사랑.”

       

       “어머나…. 그것 참 멋진 말이네요.”

       

       “그렇지? 순애는 좋다고. 순애 최고! 너도 순애 최고라고 외쳐라!!! 순애 최고!!!”

       

       “순애 최고!!!”

       

       

       그렇게 어쩌다보니 왕비와 사이가 좋아져버렸다.

       

       음. 이정도로 사이가 좋아질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지하 미궁에 있다는 네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쓰고 있으니, 괜찮다면 머리카락 한 가닥을 내어줄 수 있겠느냐?”

       

       “머리카락이요? 한가닥은 물론이고 한 움큼도 드릴 수 있지요! 그 아이를 구해낼 수 있다면!”

       

       

       왕비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을 거머쥐었다. 아니, 그정도까진 필요 없는데.

       

       

       “그냥 한 가닥이면 충분하니 과하게 뽑진 말거라.”

       

       

       그렇게 왕비는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머리카락으로 어떻게 그 아이를 구한다는 말인가요?”

       

       “별 것은 아니고. 그냥 왕과 그 아이의 혈연 관계를 증명하려는 것 뿐이지. 왕과 그 아이가 확실한 혈연관계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왕도 다른 말은 하지 못할 것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죠?”

       

       

       나는 따로 보관해둔 왕의 머리카락을 꺼내보이며 말했다.

       

       

       “신체의 일부에는 그 생명의 정보가 들어 있어서 말이지. 그걸로 증명이 가능하단다.”

       

       

       유전자니 뭐니 하는 것까지 다 설명해주긴 힘들고. 대충 이런 두리뭉술한 설명으로 충분하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림월드. 아노말리. 재밌네요.

    추가되는 이벤트 하나 하나가 굉장히 강렬해서,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이 되어버리네요.

    분명 SF였는데… 공포게임이…! 백룸… SCP… 더 씽… 그 외 이것저것…!

    여러 이벤트들 중 가장 압권인건 캐릭터와 거의 동일한 시체 이벤트…! 이건 진짜로 보고 놀랐네요…!

    림월드! 아노말리! 절판 판매중! 재밌지만 난이도는 좀 있는편!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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