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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186 – 유기체탑승물사료도둑>

     

    “꼬마숙녀의 곁에 머무르며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어울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스운 부탁이었다.

    암살자가 고독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다니.

     

    -잊지 마라, 즈앙. 고독을 두려워하는 암살자는 그 두려움에 잡아먹혀 죽을 것이니.

     

    배신을 당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사람에게 기대를 저버리는.

    그런 잔혹한 훈련 아닌 훈련을 받으며 자란 즈앙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암살자가 아닌 다른 이들의 마음이라면 더더욱.

     

    “해줄게. 대신, 공짜는 아니야.”

    “원하시는 조건이 있다면 가급적 맞춰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만 해주십시오.”

    “중간고사 시험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줘. 가능하지? 내 시간을 들여서 도와주는 거니까.”

    “리스트만 적어서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상대가 같은 암살자라면.

    그 오크노디라면 마음의 경계가 조금은 낮아진다.

    이빨로 속을 갉아 요새처럼 만든 나무 속.

    고개를 삐죽 내미는 족제비처럼.

    적의부터 내비치는 대신 호기심을 보일 수 있다.

    오크노디를 만나러 가는 길.

    복도 모퉁이를 돌던 즈앙이 갑자기 근처 케비넷에 쏙 들어갔다.

     

    “…어?”

     

    뒤따라오던 걸음이 90도, 150도, 270도, 정신없이 사방을 돌아보며 배회한다.

     

    <잠행 – 셰도우워커Shadow Walker>

     

    어수룩한 표정의 금발남자.

    그의 등이 드러나는 순간, 소리도 없이 배후를 점한 즈앙이 그의 등을 콕 찌르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

    “헉!!”

    “이거 알아? 이 각도에서 조금만 더 찌르면… 늑골 사이를 뚫고 단숨에 심장을 파고들 수 있어.”

     

    한 순간에 생사여탈권을 빼앗겼다.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축축하게 젖는 남학생의 등덜미.

    참 볼품없는 사내라고 생각하며 즈앙이 물었다.

     

    “누구야? 내 뒤를 따라온 이유는?”

    “지젤의 부탁을 받고 따라왔어. 혹시나 트러블이 생기면 현장에서 도움을 주거나 본인에게 직접을 연락을 하라고…”

    “아하. 의뢰주의 눈이구나? 놀라게 해서 미안~. 이제 돌아봐도 좋아.”

     

    뒤를 돌아본 남성.

    그는 뾰족한 날붙이나 섬뜩한 예기를 품은 암기 대신, 이런 거에 놀랐냐며 뾰족하게 모은 손가락을 장난스레 흔드는 즈앙을 발견했다.

    하아아.

    죽는 줄 알았잖아.

    무심코 터져 나오는 푸념은 아마추어 그 자체.

    즈앙은 오랜만에 피를 볼 수 있다고 괜히 기대했다며 손해 보는 기분만 느꼈다.

     

    “이름이 뭐야?”

    “막시무스 몽블랑. 오크노디와는 동생이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서 협력하게 됐어.”

    “흐응… 믿기 어렵네. 그 실력에?”

    “친구를 실력으로만 사귀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사귄 게 아니라 동생이 먼저 알게 된 사이고. 심문은 끝났어?”

    “일단은.”

     

    981기 하급반 남학생이자 비행선에서 동생이 오크노디에게 신세를 진 소식을 듣고 오크노디를 챙겨주기로 마음먹은 사내, 막시무스 몽블랑.

    그는 동생의 부탁으로 오크노디를 보살펴주려다가 어느새 지젤의 협력자가 되었다.

    부족한 무력.

    고단한 아카데미.

    뜻이 일치하는 이와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위험한 아가씨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친구까지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네.”

    “시시한 소리는 됐어. 오크노디는 어디야?”

    “이 시간이면 1학년 출입금지구역에 있을 거야. 제복 앞주머니에 손수건을 단 사람을 찾아가서 암흑상회의 일로 찾아왔다고 말하면 알려주겠지.”

     

    아카디아와 지젤이 2인 공동출자로 만든 상회.

    언제 이리도 영향력을 키웠는지 이제는 1학년 구역 너머에까지 자기들 사람을 뿌려놓았다.

    과연 오크노디를 걱정한다고 나서는 주제에 허투루 일하는 보호자는 아닌가보다.

     

    “방향만 알면 됐어. 그 아이가 좋아할만한 곳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역시 둘은 친한 거지? 그런 것까지 알 정도로.”

    “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그런 것쯤은.”

    “보통은 관심이 없으면 모르지 않나?”

    “미안한 짓을 하기도 했고 이것도 모처럼이니 조금만 보여줄까?”

     

    즈앙은 막시무스의 곁을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생긋 웃었다.

     

    “당신, 왼손잡이지?”

    “…내색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감기. 최근까지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고.”

    “미리 조사한 거야?”

    “설마. 당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는데. 그냥 암살자니까 아는 거야. 오른쪽 다리로 비스듬하게 서는 버릇이 있는 것도. 숨소리가 크다고 의식해서 호흡이 작아지는 버릇도.”

     

    처음엔 그저 신기하게 여겼던 관찰력.

    그것이 계속될수록 다른 감정이 자리를 대신했다.

     

    “의식적으로 걸음을 균등하게 맞추려 노력하지만 당황하면 왼발이 뒤로 향해. 왼쪽 뒤로 파고드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왼쪽 뒤로 팔이 닿지 않아서 곤란한 적이 있었지?”

    “…!”

    “동물? 몬스터? 그래… 사람이네. 지켜야 할 사람? 피하고 싶은 사람? 아니면… 죽여야 할 사람이었어? 시원스럽게 생긴 것치곤 나름 피비린내 나는 과거가 있구나?”

     

    무서운 속도로 점점 파헤쳐지는 자신의 약점.

    막시무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만.”

    “아직 열 개도 더 댈 수 있는데.”

    “봐주라, 진짜… 무섭다고. 독심술마냥 갑자기 면전에서 인생을 읽어대기 시작하면.”

     

    지젤은 이것보다 훨씬 더한 사람이었지.

    그 사람이 품은 어둠의 깊이를 감안하면 마냥 밝기만 한 사람이 아닌 가슴속에 어둠을 간직한 사람을 수하로 쓰는 것은 납득이 간다.

    그가 보호하고 싶어 안달이 난 오크노디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보다도 순수하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하면서.

    누구보다도 깊은 어둠을 지닌 아이.

    지젤이라는 인간은 태생이 선함 속에 어둠을 간직한, 자신을 닮은 인간을 선호하고 가까이에 두려는 기질을 지닌 것이다.

     

    ‘오크노디는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길만을 이용해. 여기서는 분명 이 담장 뒤를 이용했겠지.’

     

    1학년 출입금지구역.

    허가받지 않은 1학년이 출입할 시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경고판은 본 체도 않고 지나갔다.

     

    ‘암살자는 원래 위험한 곳을 피하지 않지. 이 정도로 겁을 먹을 아이도 아니고.’

     

    오크노디가 선호할만한.

    오크노디가 피하지 않을.

    그녀가 좋아할만한 길을 따르다보니 창문 너머로 <상급반 탑승물 보관소>가 보였다.

    플라톤 교수의 탑승물.

    다가오는 중간고사.

    사람의 눈을 피해 침입한 오크노디.

    3m 높이의 쪽창을 웹Web마법으로 거미줄의 끈끈함을 이용해 기어올라 열었다.

    폴짝.

    가볍게 지면에 착지하자 물씬 풍기는 동물냄새.

    동물우리에서는 당연히 들릴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뚝 끊긴 실내에서 긴장된 기척과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린 것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금발의 고운 머리카락을 하늘색 머리띠로 감싼 ‘꼬마숙녀’가 그곳에 있었다.

     

    “안녕, 오크노디.”

    “으브븝!?”

    “그거 맛있어?”

     

    당황한 얼굴로 손에 든 물체를 등 뒤로 감추려 애쓰는 오크노디.

    그러나 무방비하게 잔뜩 튀어나온 볼따구는 감출 길이 없었으니…

     

    뾱.

     

    손가락으로 볼을 쿡 찌르자 상인이 재물을 뱉어내듯이 내용물이 튀어나왔다.

    작고 동글동글한 생김새의 먹을 것.

    그러나 일상적으로 사람은 먹지 않는 것.

    기근이 닥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도 한 음식.

    그것의 정체는 동물사료였다.

     

     

    * *

     

     

    “그런 부탁을 받았는데. 오크노디는 어떻게 생각해?”

    “지젤은 원래 걱정이 많아. 꼭 아빠처럼.”

    “그렇지?”

     

    역시 당사자인 오크노디는 고독은커녕 팔불출 파파에게 시달리는 딸처럼 질린 기색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부탁을 받았으니까 그냥은 돌아갈 수 없어. 암살자에게 의뢰서는 성전보다 신성한 것. 알지?”

    “암살자의 3계명이잖아? 목숨을 쉽게 거두지 않는다. 의뢰를 쉽게 받지 않는다. 대신, 거두기로 다짐한 의뢰는 반드시 실행한다.”

     

    새삼 이런 걸 물어보냐며 고개를 갸웃하는 오크노디.

    작은 새처럼 깜찍한 동작에 즈앙은 시치미를 뚝 떼며 새침하게 빙글 몸을 돌렸다.

    자칫 눈을 마주쳤다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저 아이를 시험했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사료는 왜 먹고 있었어?”

    “안 물어보는 거 아니었어?”

    “민망할까봐 변명을 생각할 시간을 준 거야.”

     

    슬쩍 돌린 화제에 좋다고 따라오던 오크노디가 울상을 지었다.

     

    “그게… 실은 중간고사 때문에…”

    “유기체 탑승물들이 먹을 사료를 다 뺏어먹어서 다른 애들의 탑승물을 굶겨 죽이려고?”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뭔데?”

    “식품도감 때문에…”

    “도감?”

    “아,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즈앙은 제발 저 인간 좀 말려달라고 쳐다보는 동물들의 애타는 시선을 느꼈다.

     

    “걱정 마. 누구한테 안 일러.”

    “정말이지?”

    “지젤이라는 사람이 널 걱정해서 얼굴이나 한 번 보러 온 거야.”

    “지젤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비밀로 해주면. 나한테는 뭐 해줄 거야?”

     

    장난삼아 던진 물음.

    조금은 애교도 섞인 웃음에 오크노디가 큰 결심을 했다는 얼굴로 카네이션 꽃잎을 내밀었다.

     

    “거북이 사료통에 있던 건데… 이거 진짜 도감에 채우기 귀한 건데… 즈앙한테라면 양보해줄 수 있어.”

     

    눈 감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미는 꽃잎.

    남 주기 아깝다는 감정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오크노디가 오크 혼혈, 하프오크라는 가설이 실은 정말인걸까?’

     

    들어본 적이 있다.

    오크는 식성도 잡식성이라 뭐든 잘 먹는다고.

    그게 돌과 꽃잎까지 포함되는지는 몰랐지만.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뺏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크노디는 자연물을 좋아하네.”

    “응?”

    “그렇잖아. 돌도 잘 먹고, 꽃잎도 잘 먹고.”

     

    항상 오크노디한테 나는 달달한 냄새는 혹시 꽃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걸까?

    편식 없이 골고루 잘 먹는 식습관에 조금은 호기심을 느낀 즈앙.

    꽃잎 한 장을 손으로 들어 냠 입에 물었다.

     

    “으에… 이상한 맛.”

    “한 잎만 먹으면 안 돼. 한 번에 열 개는 먹어야 수집효과가 있어!”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뺏길 때에는 그렇게 괴로워하더니 막상 한 잎 먹으니 더 못 먹여서 안달이 났다.

     

    ‘오크노디는 참 이상하고도 재밌어.’

     

    커다란 코뿔소들이 박치기를 하며 서로의 강함을 인정하고 우애를 다지는 광경을 바랬던 지젤의 상상도와는 달리 엉뚱한 방법으로 우애를 다진 두 사람.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지젤이 바라던 대로 오크노디의 얼굴에는 그맘때의 아이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오크노디. 밖에서 널 찾는 사람이 있어. 그만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정말?”

     

    1학년 출입금지구역 밖에서 기다리던 암흑상회 소속원이 오크노디를 알아보고 급히 달려왔다.

     

    “오크노디양. 지젤 부상회장의 긴급 전언입니다. 이사벨과 뾰이라는 분이 강의 도중 불의의 사고로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아. 이거 좀 위험하네.

    오크노디의 얼굴을 옆에서 보고 있던 즈앙은 웃음기가 사라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

    피부를 자극하는 살기.

    지금까지 이상의 커다란 사건이 닥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카데미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야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주체가 달랐다.

    교장이나 교수가 주범으로 추측되던 사건들과 달리, 이번에 사고를 치려는 쪽은 오크노디.

    분명 보통 사건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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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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