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틱, 틱.
정신이 고장 난 형광등처럼 점멸한다.
–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세에 몰린 모양이군. 지금 잡아 죽여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
로즈마리는 입에 피를 머금은 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다리에 관통상을 맞아서 걷는 건 무리였다.
“끄으으….”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다. 큰 소리를 냈다간 들키고 말 것이다.
‘첨탑에서 뛰어내린 게 정답이었어.’
조금 전, 황제를 내버려 두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유격대를 맡은 그녀에게는 약간이나마 비행 기능이 있었다. 등짝에 달린 제트 엔진의 연료를 전부 사용하여 어떻게든 제 방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어찌나 많이 맞았는지 팔다리가 너덜너덜했다. 오장육부도 온전치 못했다.
“아윽….”
안락사 주사를 맞고 싶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로즈마리는 잇새를 꽉 깨물었다. 목울대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몇 발 더 맞으면 끝장이야.’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여기서 싸우면 진다.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설마 이 몸이 인간 상대로 뒤처지게 될 줄이야….’
이게 다 언니가 만든 무기 때문이다.
저 플레어보다 강한 무기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사달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모든 게 계획대로 움직였을 터고, 마왕님의 부활 계획에 한 발자국 가까워질 수 있을 터였다.
작전이 흐트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너질 로즈마리가 아니었다.
덜컹.
로즈마리는 피로 얼룩진 몸을 이끌고 어느 방에 들어갔다.
두 평 남짓한 좁은 방이었다. 이곳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축조진이 있었다.
‘좌표이동진….’
정이십면체 형태의 스크롤을 행성 내부에 내접하여 완성한, 로즈마리 최대의 역작.
이 좌표이동진만 있다면 대륙 전역에서 지원군을 소환할 수 있었다.그녀가 입학식 때 드레이크 습격 사건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이 축조진 덕분이었다.
‘최후의 수단이야.’
입에 마력초를 물었다. 온몸에 마기가 돌기 시작한다.
일순 그녀의 사고가 가속되었다.
‘언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로드스톤이 먼저일까.
핏물이 울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로즈마리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후자지.’
계획 변경이다.
좌표를 설정하고, 본진에서 불러올 마수를 떠올린다. 모든 계산을 끝마친 로즈마리가 손을 모아 내리쳤다.
촤아악!
거대한 원형 마법진 내부에 연노랑빛 마력이 감돌기 시작한다.
“어, 언니가 먼저 시작한 거야…….”
풀썩.
겨우 지탱하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로즈마리는 배가 위로 가도록 누웠다. 때 묻은 베이지색 천장이 보인다.
블루베리처럼 진한 숙람색 머리카락이 검은 피에 젖어 포도처럼 변한다. 이대로 자신은 와인이 되어버리는 걸까.
잡다한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콰앙!
“엇, 여기 있습니다!”
“좋아, 잘 찾았네! 자네가 마무리 지어!”
로즈마리의 황수정빛 눈동자가 아래로 굴려진다.
빌어먹을 후작 일행이 자기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곧 이마에 무형의 총구가 겨눠졌다.
이제 알겠다.
[전설급 고유마도 ─ 백야(白夜)]
저건, 작은 언니의 작품이다.
‘열화판인 모양이군.’
진짜는 훨씬 더 강하다. 그건 스쳐도 죽음이다.
정상적인 사고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로즈마리는 수백 년 만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철컥.
“이번에는 확실히 머리를 노려라. 명줄 질긴 새끼들은 마석을 적출하기 전까지 살아있기도 하니까.”
전두엽부터 경추까지. 모든 마수의 약점이다. 이곳에는 동력원이 되는 마석이 들어있었기에.
제아무리 열화판이라고는 하나, 여기서 미간에 백야가 직격하면 즉사였다.
하지만.
두려움 따위 없었다.
“……빡대가리들아, 게임 끝났어.”
로즈마리의 입꼬리가 활처럼 씨익 올라갔다.
뿌우우우우─.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
“찾았다!”
프레이가 손가락으로 루브테르 교양관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방향을 확인한 나는 인파를 헤치고 재빨리 나아갔다.
“선생님!”
“…얘들아!”
선생님도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야 그렇다. 헤를라인도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쪽 사람이었으니까.
잡설을 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헤를라인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람들을 회랑으로 대피시켜야 해요.”
“어….”
헤를라인이 머뭇거렸다. 틀림없이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이라.
나는 추가적인 설명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헤를라인의 고개가 따라 올라갔다.
하늘은 섬우라늄석처럼 짙은 쥐색이었다. 곧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징조였다.
“…처마는 어느 정도로 길어야 하니?”
“가능한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아직 뭔진 모르겠지만, 절대로 맞으면 안 되는 비가 내린다.
나를 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헤를라인은 곧 도리질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좋아, 에테르가 그렇게 말하니 맞겠지. 도와줄게. 셸커니, 따라올래?”
“저도 해야 해요?”
“연성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아.”
프레이는 잠시 나와 헤어졌다.
얼마 후, 루브테르 교양관의 외벽이 허물어졌다.
허물어진 외벽 일부가 널찍한 처마로 변했다. 사람이 워낙 많아 토양을 끌어 올릴 수 없으니 대신 건물을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다른 건물도 하나둘씩 외관이 변해갔다.
좋아, 이걸로 최소한의 방책은 만들었다. 남은 건 사람들을 잘 설득해서 대피시키는 것뿐일 텐데…….
그때였다.
뚝, 뚝, 뚝.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
“…….”
내 손에 반투명한 빗물이 몇 방울 내려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떨어진 물방울을 쳐다보았다.
“뭐야, 비 내리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어떡하지?”
“어쩐지. 조금 전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기껏해야 이슬비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우산을 써도 되지 않을, 미약한 비.
하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회랑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처마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급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말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비로 호들갑이야?’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먼저 낌새를 눈치챈 건 다름 아닌 엘프였다. 내 주변에 교환학생들이 가장 먼저 모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비야, 소름 끼쳐….”
“빗물에 불온한 마력이 담겨 있어요. 이거, 사람들에게 맞게 시키면 안 될 것 같아요!”
메릴다와 에리카가 치를 떨며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감상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윽.”
에리카가 짧게 신음했다.
“왜 그래요?”
“소, 손이 이상해…!”
에리카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비에 맞은 표피가 은색으로 변해있었다. 변색된 부분에선 수은 증기와도 같은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세, 세상에…….”
에리카와 메릴다는 물론이고, 주변 엘프들이 하나둘씩 경악성을 내질렀다.
“뜨거워, 쓰라려, 솥에 데인 것 같아……!”
에리카가 끅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비슷한 고성이 처마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카데미는 순식간에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야전병원으로 변했다.
“아파, 아파!!”
“동네 사람들, 우리 애 어떡해요…! 우리 애가 이상해요……!!”
“진통제! 진통제! 진통제에에!!”
사람들이 처마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헤를라인과 프레이도 있었다.
프레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허공에 휙휙 내저었다. 무언가 설명하려는 듯한데, 입술이 덜덜 떨려서 발성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심호흡하게 했다. 프레이가 입술을 까득까득 깨물며 겨우 답변했다.
“야, 사, 사람들이 이상해…! 마, 막 온몸이 괴물처럼 변해서…! 다른 사람을 막 잡아먹고 다녀어어……!”
“뭐?”
내 시선이 정면으로 던져졌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욱 굵어졌다.
늦은 사람들은 전신이 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전신에서 증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바닥에 드러누웠고, 또 누군가는 켄싱턴 거리에 돌아다니는 마약 중독자처럼 흐느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었다. 겨우 대피한 사람들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쏴아아아!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비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들은….
“시발, 저, 저게 뭐야!!”
이제는 망자가 되어버린 이들 뒤로, 거구의 그림자가 회랑을 드리웠다.
쿵, 쿵, 쿵.
몸을 들썩일 정도로 웅대한 땅울림이었다.
‘뿌우우’, 하고 뱃고동이 울리는 것처럼 진한 소리가 하늘에 널리 퍼졌다. 폐부가 쪼그라드는 듯한 음색이었다.
회랑에 모인 사람들이 목청 터져라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저건…….”
눈은 노란빛이었고, 등에는 등딱지 대신 배기구와 포신이 달려있다. 얼굴은 플라스마화 되어 반쯤 녹아있었는데, 피하조직이 다 드러난 이빨로 무언가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거북이었다.
[구천지대계 9석 ─ ‘증철(蒸鐵)’ 반타 토터스]
웬만한 고층빌딩과 맞먹는 크키를 지닌, 검은 거북.
콰득─! 하고 살점이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반타 토터스가 입에 물고 있던 고기 조각을 내뱉었다. 쿠웅! 포탄처럼 내쏘아진 반쪽짜리 신형이 땅바닥에 처박힌다.
그곳에는, 초점 없는 이사장의 상반신이.
학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 아…….”
헤를라인의 눈이 여느 때보다도 크게 뜨였다. 그러나 당황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1황자가 마수와 짜고 소환한 마물이다!”
“빨리 주술자를 찾아 죽여야 하오!”
몹쓸 놈의 선동이 시작되었다.
“……1황자가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소식 못 들었나! 감옥에서 탈출한 황자가 우리 나라를 먹기 위해 마수와 결탁했다는 얘기를!”
“그, 그래?”
억지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차 믿기 시작했다. 마치 돌림병이라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세뇌구나.”
7석, 오를레이앙의 능력이다.
의지가 약하거나 평범한 이들의 사고를 알게 모르게 조종하고 있다. 심상찮은 기류는 회랑 바깥에만 돌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선동에 개의치 않았다. 이쪽은 빙의자가 잘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너희가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스릉.
스태프를 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