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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틱, 틱, 틱.

       ​

       정신이 고장 난 형광등처럼 점멸한다.

       ​

       –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습니다!

       – 수세에 몰린 모양이군. 지금 잡아 죽여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

       ​

       로즈마리는 입에 피를 머금은 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다리에 관통상을 맞아서 걷는 건 무리였다.

       ​

       “끄으으….”

       ​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는다. 큰 소리를 냈다간 들키고 말 것이다.

       ​

       ‘첨탑에서 뛰어내린 게 정답이었어.’

       ​

       조금 전, 황제를 내버려 두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유격대를 맡은 그녀에게는 약간이나마 비행 기능이 있었다. 등짝에 달린 제트 엔진의 연료를 전부 사용하여 어떻게든 제 방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

       어찌나 많이 맞았는지 팔다리가 너덜너덜했다. 오장육부도 온전치 못했다.

       ​

       “아윽….”

       ​

       안락사 주사를 맞고 싶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

       로즈마리는 잇새를 꽉 깨물었다. 목울대에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

       ‘이대로 몇 발 더 맞으면 끝장이야.’

       ​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여기서 싸우면 진다.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

       ‘설마 이 몸이 인간 상대로 뒤처지게 될 줄이야….’

       ​

       이게 다 언니가 만든 무기 때문이다.

       ​

       저 플레어보다 강한 무기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사달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모든 게 계획대로 움직였을 터고, 마왕님의 부활 계획에 한 발자국 가까워질 수 있을 터였다.

       ​

       작전이 흐트러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너질 로즈마리가 아니었다.

       ​

       덜컹.

       ​

       로즈마리는 피로 얼룩진 몸을 이끌고 어느 방에 들어갔다.

       ​

       두 평 남짓한 좁은 방이었다. 이곳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축조진이 있었다.

       ​

       ‘좌표이동진….’

       ​

       정이십면체 형태의 스크롤을 행성 내부에 내접하여 완성한, 로즈마리 최대의 역작.

       ​

       이 좌표이동진만 있다면 대륙 전역에서 지원군을 소환할 수 있었다.그녀가 입학식 때 드레이크 습격 사건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이 축조진 덕분이었다.

       ​

       ‘최후의 수단이야.’

       ​

       입에 마력초를 물었다. 온몸에 마기가 돌기 시작한다.

       ​

       일순 그녀의 사고가 가속되었다.

       ​

       ‘언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

       로드스톤이 먼저일까.

       ​

       핏물이 울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로즈마리는 결론을 내렸다.

       ​

       ‘당연히 후자지.’

       ​

       계획 변경이다.

       ​

       좌표를 설정하고, 본진에서 불러올 마수를 떠올린다. 모든 계산을 끝마친 로즈마리가 손을 모아 내리쳤다.

       ​

       촤아악!

       ​

       거대한 원형 마법진 내부에 연노랑빛 마력이 감돌기 시작한다.

       ​

       “어, 언니가 먼저 시작한 거야…….”

       ​

       풀썩.

       ​

       겨우 지탱하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로즈마리는 배가 위로 가도록 누웠다. 때 묻은 베이지색 천장이 보인다.

       ​

       블루베리처럼 진한 숙람색 머리카락이 검은 피에 젖어 포도처럼 변한다. 이대로 자신은 와인이 되어버리는 걸까.

       ​

       잡다한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콰앙!

       ​

       “엇, 여기 있습니다!”

       “좋아, 잘 찾았네! 자네가 마무리 지어!”

       ​

       로즈마리의 황수정빛 눈동자가 아래로 굴려진다.

       ​

       빌어먹을 후작 일행이 자기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곧 이마에 무형의 총구가 겨눠졌다.

       ​

       이제 알겠다.

       ​

       [전설급 고유마도 ─ 백야(白夜)]

       ​

       저건, 작은 언니의 작품이다.

       ​

       ‘열화판인 모양이군.’

       ​

       진짜는 훨씬 더 강하다. 그건 스쳐도 죽음이다.

       ​

       정상적인 사고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로즈마리는 수백 년 만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

       철컥.

       ​

       “이번에는 확실히 머리를 노려라. 명줄 질긴 새끼들은 마석을 적출하기 전까지 살아있기도 하니까.”

       ​

       전두엽부터 경추까지. 모든 마수의 약점이다. 이곳에는 동력원이 되는 마석이 들어있었기에.

       ​

       제아무리 열화판이라고는 하나, 여기서 미간에 백야가 직격하면 즉사였다.

       ​

       하지만.

       ​

       두려움 따위 없었다.

       ​

       “……빡대가리들아, 게임 끝났어.”

       ​

       로즈마리의 입꼬리가 활처럼 씨익 올라갔다.

       ​

       뿌우우우우─.

       ​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

       ​

       **

       ​

       ​

       “찾았다!”

       ​

       프레이가 손가락으로 루브테르 교양관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방향을 확인한 나는 인파를 헤치고 재빨리 나아갔다.

       ​

       “선생님!”

       “…얘들아!”

       ​

       선생님도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

       그야 그렇다. 헤를라인도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쪽 사람이었으니까.

       ​

       잡설을 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헤를라인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사람들을 회랑으로 대피시켜야 해요.”

       “어….”

       ​

       헤를라인이 머뭇거렸다. 틀림없이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함이라.

       ​

       나는 추가적인 설명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헤를라인의 고개가 따라 올라갔다.

       ​

       하늘은 섬우라늄석처럼 짙은 쥐색이었다. 곧 폭우가 쏟아질 것이라는 징조였다.

       ​

       “…처마는 어느 정도로 길어야 하니?”

       “가능한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

       아직 뭔진 모르겠지만, 절대로 맞으면 안 되는 비가 내린다.

       ​

       나를 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헤를라인은 곧 도리질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

       “좋아, 에테르가 그렇게 말하니 맞겠지. 도와줄게. 셸커니, 따라올래?”

       “저도 해야 해요?”

       “연성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아.”

       ​

       프레이는 잠시 나와 헤어졌다.

       ​

       얼마 후, 루브테르 교양관의 외벽이 허물어졌다.

       ​

       허물어진 외벽 일부가 널찍한 처마로 변했다. 사람이 워낙 많아 토양을 끌어 올릴 수 없으니 대신 건물을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

       그렇게 다른 건물도 하나둘씩 외관이 변해갔다.

       ​

       좋아, 이걸로 최소한의 방책은 만들었다. 남은 건 사람들을 잘 설득해서 대피시키는 것뿐일 텐데…….

       ​

       그때였다.

       ​

       뚝, 뚝, 뚝.

       ​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

       ​

       “…….”

       ​

       내 손에 반투명한 빗물이 몇 방울 내려앉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떨어진 물방울을 쳐다보았다.

       ​

       “뭐야, 비 내리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어떡하지?”

       “어쩐지. 조금 전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

       기껏해야 이슬비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우산을 써도 되지 않을, 미약한 비.

       ​

       하지만.

       ​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회랑으로 몸을 피했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처마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

       다급한 외침이었다. 그러나 말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비로 호들갑이야?’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

       먼저 낌새를 눈치챈 건 다름 아닌 엘프였다. 내 주변에 교환학생들이 가장 먼저 모였다.

       ​

       “이게 도대체 무슨 비야, 소름 끼쳐….”

       “빗물에 불온한 마력이 담겨 있어요. 이거, 사람들에게 맞게 시키면 안 될 것 같아요!”

       ​

       메릴다와 에리카가 치를 떨며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감상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윽.”

       ​

       에리카가 짧게 신음했다.

       ​

       “왜 그래요?”

       “소, 손이 이상해…!”

       ​

       에리카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

       비에 맞은 표피가 은색으로 변해있었다. 변색된 부분에선 수은 증기와도 같은 기체가 뿜어져 나왔다.

       ​

       “이, 이게 뭐야.”

       “세, 세상에…….”

       ​

       에리카와 메릴다는 물론이고, 주변 엘프들이 하나둘씩 경악성을 내질렀다.

       ​

       “뜨거워, 쓰라려, 솥에 데인 것 같아……!”

       ​

       에리카가 끅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비슷한 고성이 처마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카데미는 순식간에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야전병원으로 변했다.

       ​

       “아파, 아파!!”

       “동네 사람들, 우리 애 어떡해요…! 우리 애가 이상해요……!!”

       “진통제! 진통제! 진통제에에!!”

       ​

       사람들이 처마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헤를라인과 프레이도 있었다.

       ​

       프레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허공에 휙휙 내저었다. 무언가 설명하려는 듯한데, 입술이 덜덜 떨려서 발성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

       나는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심호흡하게 했다. 프레이가 입술을 까득까득 깨물며 겨우 답변했다.

       ​

       “야, 사, 사람들이 이상해…! 마, 막 온몸이 괴물처럼 변해서…! 다른 사람을 막 잡아먹고 다녀어어……!”

       “뭐?”

       ​

       내 시선이 정면으로 던져졌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욱 굵어졌다.

       ​

       늦은 사람들은 전신이 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전신에서 증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누군가는 바닥에 드러누웠고, 또 누군가는 켄싱턴 거리에 돌아다니는 마약 중독자처럼 흐느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

       아이, 어른 할 것 없었다. 겨우 대피한 사람들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

       쏴아아아!

       ​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비를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

       사람들은….

       ​

       “시발, 저, 저게 뭐야!!”

       ​

       이제는 망자가 되어버린 이들 뒤로, 거구의 그림자가 회랑을 드리웠다.

       ​

       쿵, 쿵, 쿵.

       ​

       몸을 들썩일 정도로 웅대한 땅울림이었다.

       ​

       ‘뿌우우’, 하고 뱃고동이 울리는 것처럼 진한 소리가 하늘에 널리 퍼졌다. 폐부가 쪼그라드는 듯한 음색이었다.

       ​

       회랑에 모인 사람들이 목청 터져라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

       “저건…….”

       ​

       눈은 노란빛이었고, 등에는 등딱지 대신 배기구와 포신이 달려있다. 얼굴은 플라스마화 되어 반쯤 녹아있었는데, 피하조직이 다 드러난 이빨로 무언가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었다.

       ​

       거북이었다.

       ​

       [구천지대계 9석 ─ ‘증철(蒸鐵)’ 반타 토터스]

       ​

       웬만한 고층빌딩과 맞먹는 크키를 지닌, 검은 거북.

       ​

       콰득─! 하고 살점이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

       반타 토터스가 입에 물고 있던 고기 조각을 내뱉었다. 쿠웅! 포탄처럼 내쏘아진 반쪽짜리 신형이 땅바닥에 처박힌다.

       ​

       그곳에는, 초점 없는 이사장의 상반신이.

       ​

       학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

       “아, 아…….”

       ​

       헤를라인의 눈이 여느 때보다도 크게 뜨였다. 그러나 당황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

       “1황자가 마수와 짜고 소환한 마물이다!”

       “빨리 주술자를 찾아 죽여야 하오!”

       ​

       몹쓸 놈의 선동이 시작되었다.

       ​

       “……1황자가 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소식 못 들었나! 감옥에서 탈출한 황자가 우리 나라를 먹기 위해 마수와 결탁했다는 얘기를!”

       “그, 그래?”

       ​

       억지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점차 믿기 시작했다. 마치 돌림병이라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

       “…세뇌구나.”

       ​

       7석, 오를레이앙의 능력이다.

       ​

       의지가 약하거나 평범한 이들의 사고를 알게 모르게 조종하고 있다. 심상찮은 기류는 회랑 바깥에만 돌고 있는 게 아니었다.

       ​

       나는 선동에 개의치 않았다. 이쪽은 빙의자가 잘 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그러니,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

       “너희가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

       스릉.

       ​

       스태프를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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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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