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6

       그래도 샤를로트는 일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나의 변명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내 변명 아닌 변명을 들은 샤를로트는 침착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을 풀어냈다.

        

       “당신은 쉬는 날 바깥 공기나 쐴까 하는 생각에 산책을 나왔을 뿐인데, 저기 혼자 앉아있는 레오를 발견했다는 소리죠?”

        

       “그렇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를로트도 진지한 표정으로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바람이 불어서 저 멀리서 레오를 지켜보는 소피아를 발견했고.”

        

       “맞습니다.”

        

       우리 둘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신은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가서 시가전용 위장 망토와 저격수용 스코프, 야전 깔개, 수통, 비상식량을 찾아서 옥상으로 올라와 두 사람을 감시하기 시작했고요?”

        

       “…….”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 이거 어떻게 변명해도 수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잖아.

        

       내가 망토를 찾아온 것은 이제 정말로 날씨가 춥기 때문이다. 물론 하필이면 그게 시가전용 위장 망토이긴 한데, 이건 체온유지와 실용성을 둘 다 확보하기 위해 골랐을 뿐이다. 군사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들키지 않는 쪽이 더 낫지 않은가?

        

       깔개도 마찬가지다. 이 날씨에 콘크리트 위에 엎드려 있으면 더럽게 추우니까. 최소한의 체온유지를 위해서는 깔개도 필수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튼튼한 것이 야전 깔개고.

        

       수통과 비상식량은, 괜히 배고프다고 자리 비운 사이에 두 사람이 사라지면 곤란하니까…….

        

       “……실비아.”

        

       샤를로트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실비아가 감정표현에 서투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냐.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감시하면 곤란하잖아요? 그 사람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거 아닙니다.”

        

       내가 정색하며—물론 언제나 정색 중이긴 했지만—말해봤지만, 샤를로트에겐 전혀 먹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실비아. 만약 그렇게 걱정이 되면 먼저 접근해서 데이트 신청이라도 해봐요.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남자가 여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랍니다. 물론 황녀라는 지위가 마냥 가볍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무도회에 파트너와 함께 가는 정도는 누구도 흠집으로 보지 않을 거예요.”

        

       아니, 진짜 아니라고.

        

       ……시간을 돌릴까.

        

       시간을 돌려서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샤를로트에게 들킬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앨리스라면 모를까, 샤를로트가 내 뒤를 밟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도 의문이 하나 생겼다.

        

       사실 샤를로트와 마주치자마자 생겼는데, 샤를로트의 이 말을 듣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그 질문이 한동안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었다.

        

       “……그런데, 샤를로트 왕녀님은 왜 여기에 계셨습니까?”

        

       “네?”

        

       내가 샤를로트의 말을 끊고 얼른 그렇게 물어보자, 아주 짧은 순간 샤를로트의 눈이 커졌다. 나는 기세를 몰아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물었다.

        

       “이 옥상에 계셨던 것이 아닙니까? 혹시 레오를 보러 오신 것은 아니신지요?”

        

       나도 샤를로트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렇게 물어서 샤를로트를 당황하게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나의 질문을 들은 샤를로트가 어깨에서 힘을 쭉 빼는 것을 보고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저는, 그냥…….”

        

       샤를로트는 한숨을 푹 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깔개에 같이 앉아도 될까요?”

        

       나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몸을 옆으로 돌려서 깔개 일부분만 깔고 앉는 자세로 바꾸었다.

        

       “고마워요.”

        

       샤를로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깔개 위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저는 그냥, 잠깐 휴식 시간이 필요했어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자, 샤를로트는 괜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저는 이 아카데미에서 나름대로 ‘유명인’이고, ‘인기인’이랍니다.”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값으로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었고, 이 아카데미에서 몇 안 되는 외국인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혈통이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들어온 것 같은 레나, 소피아와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 ‘고귀함’이라는 게 줄줄 넘쳐흐르는 인간이라는 소리다.

        

       심지어 나나 앨리스보다 더 인기가 많을지 모른다.

        

       제국 귀족의 눈으로 나나 앨리스는 온갖 사교회에 일부러 나오지 않은 인간들이었다. 게다가 그 뒤에 무려 황제가 있다. 세 사람을 세트로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무시무시한 악의 집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앨리스는 막상 대화를 나누어보면 그렇게 무섭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국’의 황녀에게 대놓고 막 말을 거는 인간은 별로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러모로 조심하는 쪽이 좋겠지.

        

       하지만 벨부르의 왕녀는…….

        

       제국인들은 다른 나라를 제국보다 조금 아래로 보는 분위기가 흔해서, 같은 계급의 귀족이라도 조금 더 가벼운 태도로 대할 때가 많다, 고 들었다. 물론 대놓고 기분 나쁘게 구는 것은 어렵겠지만, 심적으로는 훨씬 더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상대가 보면 ‘이 새끼는 내가 만만한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공작가에서 벌써 사교회 초대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이 나라는 그 빌어먹을 공작가가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지, 심지어 제도와 인접한 공작가가 셋씩이나 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공작을 전부 치면 열둘이나 되고요!? 아무리 땅덩어리가 커도 좀 지나친 게 아닌가요?”

        

       나도 지나치다고 생각하긴 한다.

        

       게다가 그 열두 공작 중에 어느 하나도 이름뿐인 공작은 없다. 각자 나름의 강함을 지니고 있으니까. 제도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공작이건, 멀리 있는 공작이건.

        

       “처음 몇 번 정도는 예의상 갔어요. 저희 왕국에서도 공작들의 초대는 종종 있는 일이었고, 그때마다 참석하는 것이 예의였으니까요. 하지만 이 공작이라는 작자들은…….”

        

       샤를로트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혹시, 저를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먼 훗날, 여왕이 된 저와 아들이 결혼한다면 제 ‘벨부르’라는 성을 자기네 가문의 이름으로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나아가서 나라 이름이라도 바꾸겠다는 생각이거나.”

        

       “그래서 그자들을 피해 여기 와 계셨었다는 뜻입니까?”

        

       “그래요, 뭐, 문제라도 있나요?”

        

       조금 토라진 것 같은 표정으로 샤를로트가 말해서, 나는 조금 웃음이 나올 뻔했다. 샤를로트 입장에서야 속 터질 일이었지만, 나라도 남자들이 자꾸 달라붙으면 엄청나게 기분 나쁠 테니까…… 어, 아니지, 이거랑은 좀 다른가?

        

       여자들이 나한테 달라붙으면…….

        

       …….

        

       응, 그냥 다른 거로 치자. 애초에 남자나 여자나 생각하는 게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잠깐의 침묵 사이에, 나는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샤를로트도 내 친구니, 전쟁에 대해서 조금은 경고해주는 것이 좋을까? 저 소피아가 실제로는 벨부르 사람이 아니라 법국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음.

        

       역시 아직은 아닌 것 같아. 괜히 그랬다가 황제가 정말로 전쟁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는 벨부르 쪽에서 명분을 제대로 제공하게 될 테니까.

        

       “저는 클레어를 제 친동생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핑계’를 대보기로 했다.

        

       “그리고 레오는 클레어와…… 남매죠.”

        

       오빠인지 동생인지는 아직 서로 합의가 안 된 것 같으니 일단은 그렇게 말해두었다.

        

       “그러니까, 여동생의 가족이 어떤 여자를 사귀는지 직접 판단해두고 싶다, 그런 소리인가요?”

        

       샤를로트가 되물었다.

        

       “만약 제가 클레어의 언니고, 클레어의 주장대로 레오가 클레어의 남동생이라면, 레오는 제 남동생이기도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흐음~”

        

       나의 이야기를 들은 샤를로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짜증으로 가득했던 입꼬리가 어느새 올라가서 조금 떨리고 있었다.

        

       ……하나도 안 믿는구만.

        

       그래도 핑계를 안 댄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좋아요, 그럼.”

        

       적어도 샤를로트가……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해주었으니까.

        

       “그럼, 이번에는 저도 도울게요. 마침 시간도 많이 남고.”

        

       “…….”

        

       그래.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왜 그렇게 보세요?”

        

       “혹시, 지난번 노스우드 때처럼 넘어가 주실 생각은—”

        

       “아하, 그때.”

        

       아.

        

       얘기 괜히 꺼낸 것 같다.

        

       샤를로트는…… 음. 조금 소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내 쪽으로 허리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그때, 당신들이 제게 졌던 빚이 아직 남아있었네요. 그럼 이번에 그 빚 갚는 셈 치세요. 그리고, 솔직히 여자로서의 눈은 당신보단 제가 더 낫지 않겠어요? ‘소피아가 레오에게 어울리는 여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 제가 훨씬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그냥 레오 좋아해서 핑계 대고 감시하는 거잖아’하고.

        

       그런 거 진짜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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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Ilham Senjaya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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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작년 한해 내내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1월 1일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 한 해를 마치는 날까지도 계속 글을 쓰고 있었는데,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모두 독자 여러분의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쭉 똑같이 이어지겠죠. 정말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작년 한해동안 제가 쓴 글이 독자 여러분들의 삶에서 한순간이나마 활력소가 될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독자 여러분을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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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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