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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아카데미 내부의 디저트 카페.

       

       제국수호방위국의 요원 C는 자색 마탑주 유나 유렌스토 바이올렛아이리스의 사정 청취에 응했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테이블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440년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말입니까?”

       

       “응. 440년도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도, 유리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괜찮아.”

       

       “의식불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녀는 정확히 어떤 상태인 겁니까.”

       

       “세션⋯⋯ 으으음. 기억을 재구성한 악몽에 삼켜져 있어. 그래서 정보를 부탁하는 거야. 악몽을 부수는 데 도움이 되니까.”

       

       납득한 모양이었다. C는 오랜 기억을 더듬어나가는 듯, 눈동자가 잠시 흐릿해졌다. 그 말투와 무표정을 보고, 유나는 문득 유리와 C가 무척이나 닮았다고 느꼈다.

       

       정장 패션을 고수하는 것도.

       

       머리색도 눈 색도 체형도 다르니, 혈연관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유나의 동그란 보랏빛 눈이 C의 외관을 세 번쯤 훑었을 때, 그녀는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유리와 동거하던 시절이군요.”

       

       “동거?!”

       

       “담당 수사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큐버스 여왕의 실체를 밝혀낼 중요 참고인이기도 했고, 사정이 가엾고 딱해서, 보호 감찰 겸 함께 지냈었습니다. 제 저택에서.”

       

       “아하⋯⋯.”

       

       그런가, 그런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말살대라는 집단에 적응도 못 한 햇병아리 유리가,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저택에서 살고 있었던 건지.

       

       마을이 날아가 버렸는데 재산이 있지도 않았을 거고, 남자를 유혹해서 돈을 빼내지도 않았을 거다.

       

       애초에 말살대는 월급을 많이 줄 것 같지 않은 단체다. 복수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으로도 일한다.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탑이 다른 마탑에 비해 연구비가 쪼들려도⋯⋯ 모두들 떠나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저택을 살 정도로는⋯⋯ 주지 않았겠지!

       

       유나와 미친 마법사는 진입하기 전, ‘한 사람분의 공백’을 탐지한 바 있었다. 여왕이 의도적으로 지운 한 명의 데이터. 그게 바로 C였나 보다.

       

       C가 유리의 보호자 격 존재였다면, 마음의 버팀목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녀를 지워버린 셈이다.

       

       천만다행히도, 미친 마법사가 그 자리를 깔끔하게 대체해 준 모양이지만⋯⋯.

       

       딱딱한 말투나 정장 패션도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닮게 된 걸까. 아는 사람의 어린 시절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건, 흥미롭다. 유나는 양손으로 턱받침을 하며 물었다.

       

       “유리, 말살대에 잘 적응하지 못했나 봐⋯⋯?”

       

       “예. 들개 같은 놈들이라서, 약해 보인다 싶으면 물어버리는 게 일상인 놈들입니다. 상당한 괴롭힘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저런⋯⋯.”

       

       “저는 그녀의 멘탈 케어에 힘썼고, 말살대 말고 다른 곳은 어떠냐고 거듭 제안했습니다만. ‘복수를 자기 손으로 이룰 확률이 가장 높은 부서는 말살대’라는 말을 부정하지 못하여.”

       

       복수를 이룰 확률이 높은 쪽은, 승진을 거듭해 높은 직위에 오르는 것일 터다. C처럼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위치가 된다거나.

       

       그러나 자기 손으로는 아무래도 어렵다. C가 서큐버스 여왕을 손수 찢어버리기 위해 출정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하면, 이리드는 막을 테니까. 귀중한 인적 자원을 꼬라박을 수는 없으니.

       

       하지만 말살대는, 그 복수심으로 사람을 부리는 만큼 개개인의 복수를 상당히 존중해 주기 때문에. 직접 그 심장에 창날을 박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캐치프레이즈에 유리는 이끌린 것 같다, 고 C는 말했다.

       

       “많이 다쳐서 돌아오더군요. 어떻게든 저 개 같은 놈들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겠다면서, 어른에게도 주먹을 휘두르다가 맞고 실려 오곤 했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거칠었네?”

       

       하긴.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격발하면 무시무시하게 타오르는 복수심이었다. 어린 시절이라면 그 크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와 함께했던, 벤스톤 저택에서의 일만 봐도.

       

       유리 랜스터는 서큐버스 여왕의 흔적만으로도 짙게 분노하여, 한참이나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상처는 받는다. 말살대의 개새끼들이 싫다. 하지만 이 손으로 여왕을 찢어 죽여야 하기 때문에, 감내할 수 있다.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으음.”

       

       미친 마법사에게 전해 듣기로는, 어린 유리는 상당히 유약한 인상이었는데. 여왕이 공격성을 조금 눌러놓은 걸까⋯⋯?

       

       어쩐지 찜찜한 느낌에 유나가 머리를 이리저리 기울이고 있자, C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 괴롭힘 덕분에 그녀는 우화를 개화했으니.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걸까요.”

       

       “아, 그 사슬칭칭 말이지⋯⋯? 그건, 언제쯤 개화한 거야? 꿈속의 유리는 아직 사용할 수 없던데.”

       

       “사슬칭⋯⋯ 예. 제가 기억하기로는 『붉은 재생』이라는 흑마법사 집단을 쫒아가다가, 그녀가 실수를 저질렀을 겁니다. 실수라고 해야 할까, 말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였다더군요.”

       

       온정.

       

       『붉은 재생』 관련자로 의심되는 어린아이에게 온정을 베풀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실제로 관련자가 맞았고, 온정의 대가로 칼날을 받아버린 유리는, 그 자리에서 우화했다.

       

       사슬로 자신을 꽁꽁 매달아 가라앉히는, 보는 사람도 슬퍼지는 우화를.

       

       “하지만 그 타이밍은, 행운이었습니다.”

       

       “행운⋯⋯?”

       

       “이어지는 『붉은 재생』 토벌전에서 그녀는, 적들의 환상 마법을 분쇄하며 큰 활약을 했습니다. 이후 전투 기록을 검토한 결과, 유리의 우화가 아니었더라면 이기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죽는 것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게 나은 거 아닙니까. C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유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애매하게 웃었다.

       

       미친 마법사의 정보 폭탄 설치율은 쭉쭉 오르고 있다.

       

       그걸 동시에 격발시키는 순간 세션은 강제로 클리어. 열쇠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마법사는 2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왕이 아무리 시간을 질질 끌어대더라도, 『붉은 재생』 토벌전 즈음에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 너머로 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왕도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이렇게나 발목을 붙잡아가며 매달리는 건. 토벌전을 메인 이벤트로 이용하려는 생각일까? 그 시점에서 승부수를 걸어오려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꿈속의 유리는⋯⋯ 조금 더 고통받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유리의 우화가 아니었더라면 이기지 못했을 전투. 미친 마법사가 안쪽에 있으니, 그는 타고난 피지컬과 재치로 그 전투 또한 승리로 이끌겠지만⋯⋯ 역시 소모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원래 이길 싸움’이라면,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꿈속 유리는 아직 우화하지 못했다. 그녀가 『실수』를 저지를 때까지 기다리거나, 좀 더 앞당겨서 감정을 부추겨, 우화를 끌어내야 할지도.

       

       죄책감은 있다.

       

       우리를 위해서, 유리를 고통받으라고 내모는 꼴이니까. 아무리 그녀를 구하기 위한 작전이라고 해도── 고통은 고통이고 상처는 상처니까.

       

       하지만.

       

       그런 작전이었으니까. 미친 마법사의 리소스를 어느 시점까지 온존하기만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으니까.

       

       유나는 이와 같은 내용을 마법사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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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고민했다.

       

       유나로부터 정보를 받은 뒤에도 상당히 고민했다. 

       

       이성적으로는 판단을 끝냈다. 여왕의 의도는 명확하다.

       

       생각하자.

       

       나와 여왕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체스를 두고 있다. 저 너머, 그림자 너머에 숨겨진 그녀의 표정을 읽는다. 어렴풋이 보인다.

       

       저 여왕은 일관성 있게 ‘유리의 상처’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

       

       나를 돼지 흑마법사의 몸에 넣으려고 했었던 것부터, 오해를 엮으려고 하고, 440년도를 무대로 고르고, 내가 유리와 축제에 참여하려 하자, 그것을 막아서려는 듯이 미끼를 흔든 데다가.

       

       더해서, 아군 역할인 커비를 이야기에서 배제하기까지.

       

       어린 유리가 상처받았으면 좋겠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그녀에게 고통을 줘서 마력이라도 뽑아낼 셈인가? 아니면 그녀가 나를 증오하게 해서, 공격하게끔 유도하려는 걸까.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유리를 도우려고 했던 게 정답이었던 거다.

       

       나는 여왕의 의도와는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축제에 참가하고,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이 행운을 기뻐할 수 없는 까닭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도 감정이 앞서서 선택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건⋯⋯ 욕심이었다.

       

       유리의 불우한 과거사가 내 마음을 쥐고 흔들고 있으니까.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걸 봐버리면, 감정은 어쩔 수 없이 날뛴다.

       

       그래서.

       

       유리가 꿈속에서나마 그녀가 행복한 한때를 보냈으면 했다. 이건 시간여행이 아니라 꿈이니까, 이런다고 거짓말처럼 과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기억은 남을 테니까. 그녀가 이 기억을 바라보며 나를 생각해 주길 바랐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미마’라는 상상친구가 그녀의 곁에 있었으면 했다.

       

       그리하여, 내 곁을 떠날 정도로 부글거리는 분노를 부디 가라앉히고, 홀로 멱을 따겠다는 그 충동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걸어주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거듭 고민하고 있는가?

       

       잘됐잖아. 나는 여왕이 애써 막으려는 것을 아득바득 따라가고 있는 상태니까. 저 미끼에 코웃음을 한 번 친 다음에 유리와 축제를 즐기러 가면 그만이다.

       

       이야기의 끝까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고, 유리로부터 열쇠를 얻어서 아래로 내려가, 2차전을 시작하면 된다.

       

       하지만⋯⋯ 뭔가, 자꾸만 마음이 걸린다.

       

       확인해야 한다. 이 부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직감이 들어서.

       

       나는, 빈틈을 드러낸 여왕의 목을 치러 가는 쪽을 골랐다.

       

       ⋯⋯⋯⋯.

       

       하늘이 그대로 무너지면서 나를 공격한다. 텍스쳐로 보면 어지럽지만, 정보량 분포만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을 조정하면.

       

       정보의 파도가 나를 덮쳐오는 모습이다. 인식하기 훨씬 편해진다.

       

       지나가는 NPC와 접촉한다. 대충 껍데기만 구현해 놓은 것 같지만, 소재로는 충분하다. 나는 정보를 접어서 날카롭게 오염시켰다.

       

       산수 문제로 꽉꽉 채워 두고, 상대방의 연산장치와 접촉하면 강제로 연산을 실행하도록 하는⋯⋯ 문제 폭탄이다. 그렇게 셋을 만들어 일제히 던진다.

       

       지직. 지지지직.

       

       파도에 렉이 걸려서 버벅거린다.

       

       시간을 벌었으니까 역공이다. 잘게 찢은 마법을 쥐로 변하게 해, 사방으로 풀어놓는다. 그것들은 근처의 건물이나 땅, 하늘을 갉아먹으며 안쪽으로 파고든다.

       

       파고든 마법은 내부 정보를 오염시켜, 복제하게 만든다. 바이러스와 요령이 같다. 오염된 정보에 일시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한다.

       

       주먹을 그러쥔다.

       

       퍼버벙-!!

       

       내부로부터 터져나가며 비산한다. 건물의 텍스처가 텅 비어 새까만 공백이 생겨나고, 사방으로 깨져 균열이 쩍쩍 갈라진다. 

       

       세상을 멸망시키는 마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악몽을 부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비슷하기도 했다.

       

       나는 압도하고 있었다.

       

       불리한 전황에도 여왕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가린 정보의 장막은 조금씩 깨져나가, 이제는 그녀의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묘하게 눈에 익었다.

       

       그 와중에도, 내 욕심은 끊임없이 나를 충동질한다.

       

       너는 여왕의 의도대로 놀아나고 있는 거야── 보다도, 유리의 표정이 자꾸만 떠오른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났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유리는 오지 않는 미마를 분명히 찾고 있을 텐데.

       

       “『천공기』.”

       

       기이이이잉──!!

       

       지면으로부터 커다란 굴착 기계가 솟아난다. 그 끝부분에는 흉악한 말뚝이 달려 있다. 몇번의 추진으로 때려 박아 세상에 구멍을 내 줄 거다.

       

       으지직. 굴착 작업을 시작한다. 정보의 장막이 으깨지며, 폭발음이 세계를 울릴 때마다 여왕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의 다 잡았다.

       

       잡으면, 끝난다.

       

       빠직. 조각이 비산하며, 여왕의 왼쪽 눈이 드러났다. 칙칙하고 텅 빈 눈이다. 그녀는 발악하듯이 저항했지만, 전부 통제할 수 있었다.

       

       돌아갔겠지.

       

       유리는 돌아갔을 거다. 바보같이 기다리고 있다든가, 그러지 않았을 거다. 약속시간에 늦은 걸 보고, 분명 뭔가 일이 생겼다거나⋯⋯ 그렇게 이해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서 불평불만을 생각해 뒀을 것이다. 어째서 오지 않았느냐고, 잔뜩 따져 물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 그럴 거다.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야.

       

       으지직. 으직.

       

       조바심과 불안을 한껏 담아서⋯⋯ 정보를 긁어모아 채찍처럼 후려친다. 궤적에 존재하던 사람과 어느 여관이 단번에 일그러지면서 허공을 때린다. 하늘이 울린다.

       

       여왕은,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이 근방은 정보전으로 인해서 해와 달이 어지러이 섞여, 시간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혼잡했으나. 저 바깥은 아마도 달이 떴을 거다.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옷장 틈새로 엿보는⋯⋯.”

       

       내가, 여왕을 지키는 장막을 부수기 위한 또 한 번의 일격을 준비할 때.

       

       으깨진 공간의 어느 단면이 거울처럼, 저 멀리 떨어진 유리의 모습을 비추었다. 구름이 달을 가려 어둑한 밤이다.

       

       유리는 모닥불 꺼진 공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직도.

       

       몇번이고 돌아갈까, 발을 돌리려다가. 차마 내딛지 못하고 다시 돌려놓았다. 얼굴은 엉망이다. 그 표정은⋯⋯ 기대와 실망이 뱀처럼 뒤엉켜서, 그 흔적이 메마른 눈물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

       

       내 심장이 저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쿵 하고.

       

       이렇게 상처받을 줄은 몰랐다, 고. 변명을 내뱉은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겠지. 이미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려주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완전히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 시간 동안, 유리가 천천히 시들어 갈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녀는 지금도 상처받고 있었다.

       

       여왕의 동태를 살핀다.

       

       그녀는 힘이 다 빠졌다. 자신을 지키는 장막만을 부여잡은 채로 헐떡이고 있는 상태다. 위협적인 반격도 더 이상 날아오지 않는다. 버티고 있을 뿐.

       

       나는 마음에게 졌다.

       

       “⋯⋯젠장, 『답문승계(踏門昇界)』!”

       

       묶었다. 장막째로 여왕을 꽁꽁 묶었다. 섬세하고도 단단하게. 밖에서 여왕 할애비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누구도 풀 수 없도록.

       

       나중에 와서, 제대로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급하게 공간을 접어 달렸다. 유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깨진 마음을 주워 담기 위해서.

       

       ===============================================================

       

       그렇게⋯⋯ 그는 가짜 여왕을 단단히 묶어 두고, 사랑을 찾아 뛰어갔어요.

       

       그 봉인은 분명히 견고했어요. 정말로요. 그 누가 찾아오더라도 녹여내기 힘들 정도로. 누군가 건드리면 자신에게 신호가 오게끔 기교도 부려두었으니, 그 잠깐의 여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 잠깐의 여유 때문에, 그는 이 이야기가 계속되는 내내 투덕거리던 라이벌, 가짜 여왕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온 단서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는 정말이지 영민하고, 유능한 사람인걸요.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관심이 없었으니까. 여왕의 모습은,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유리를 호시탐탐 노리던 승냥이였으니까. 

       

       무리도 아니에요. 질투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바보로 만드는걸.

       

       말살대의 일원, 악신상에 세뇌당한 가엾은 아이, 나의 살아있는 의자, 그리고 지금은 꿈속의 여왕 대리. 그가 재미있게도 부르기를, 까만레즈. 정말이지 천박한 어감이 아닌가요⋯⋯?

       

       등장인물로서의 ‘여왕’. 

       

       그녀의 이름은 세리스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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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하는 중간에 유나가 속삭였다.

       

       -저기, 이래도⋯⋯ 괜찮았던 거야? 

       

       “⋯⋯⋯⋯.”

       

       사실 안 괜찮다. 하지만, 그 표정은⋯⋯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었다. 아니야, 늦지 않았다.

       

       -있, 지⋯⋯.

       

       내가 공터에 도착한 순간 유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유리와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잠깐 자리를 피해 준 걸까?

       

       그녀는 아직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일부러 바스락, 하고. 발소리를 냈다. 유리의 작은 몸이 기대감으로 움찔 떨렸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또 한 번 속는 것이 두려운 것이리라.

       

       바람 스치는 소리, 새 날아드는 소리, 그러한 소리에 몇 번이나 설레고, 몇 번이나 반응하고, 몇 번이나 속았을까. 뒤를 돌아봤을 때, 아무도 없이 이파리만 살랑일 때마다⋯⋯ 얼마나 실망했을까.

       

       승리와 효율을 명분으로, 그 꼴을 두고 볼 자신이 없다.

       

       나는, 그래서.

       

       “⋯⋯내가 너무 늦었나?”

       

       도착을 알리는 한마디를 시작으로, 그 모든 실망을 만회하기로 했다.

       

       그래. 제기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주워 담겠다. 주인공이 고통받은 끝에 해피엔딩을 거머쥐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 순간마다 기쁨이 흘러넘치는 일상물로 만들어주겠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웃음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쪼매 늦을⋯⋯ 뻔 했는데 세이프입니다 마이프렌즈.
    이전화의 설정오류가 고쳐졌습니다. 저는 댓글 보고서 후후,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습니다 하고 웃고 있었는데.
    사실 보니까 실수가 맞더라고요⋯⋯ 까만애라고 머리도 까말 거라고 생각해버린 제 미스였습니다. 그러면 마이 프렌즈, 내일 또 뵐게요!

    +쪼매 더 확실하게 바꿨답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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