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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주사 완료.”

     

    라스가 텅 빈 주사기를 간호사에게 넘겼다. 핀셋으로 후처리를 완료하고 클로에에게 신호를 보낸다.

     

    클로에가 견인기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동시에 라스의 손에 봉합사가 꿰인 바늘과 포셉이 쥐어졌다.

     

    몇 번이고 호흡을 맞춰와 물 흐르듯 신속하게 이뤄지는 팀의 작업.

     

    그 단계에 들어서니 멤버 전원이 어느 정도 긴장을 풀었다. 봉합에 들어간다는 건 수술에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앰브로시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슬슬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봉합이 완료되면 절개 부위를 아물게 하는 치유는 그녀의 몫이다.

     

    ‘고위계 주문은 수술부위까지 영향을 미치니 저위계를 고출력으로.’

     

    이미 황제를 수술할 때 호흡을 맞춰 본 앰브로시아는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라스의 손끝에서 바늘이 기계로 박은 듯 촘촘하고 정확하게 환부를 메꿔간다.

     

    그녀가 팔에 신성력을 두른 순간이었다.

     

    ―쿵, 쿵, 콰앙!!

     

    난데없이 수술실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갑작스런 이변에 전원이 긴장했다.

     

    앰브로시아가 시선을 돌렸다. 임시로 만들어졌기에 잠금장치가 약했다. 수술실의 입구를 부수고 들어온 불청객이 있었다.

     

    병사들. 왕국의 갑옷이다.

    손에 험악한 무기를 든 것이 결코 우호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감염!”

     

    병사들을 보자마자 클로에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를 들은 앰브로시아가 본능적으로 반응해 신성력을 즉시 주문으로 변환했다.

     

    “에잇!!”

     

    배리어. 보호의 주문이다. 앰브로시아의 신성력이 깔끔한 구체를 만들어 즉시 환자를 감쌌다.

     

    ―화아악!!

     

    뚫린 문으로 바람이 들이닥쳤다. 바깥의 먼지도 함께 쏟아져 들어와 순식간에 멸균 공간이었던 수술실이 오염된다. 조금만 늦었다면 환자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었다.

     

    앰브로시아가 배리어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만들어서 간신히 때를 맞출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환자를 감싼 배리어.

     

    라스는 아직 집도 중인 팔만 배리어 안쪽에 들어있다.

     

    병사들이 저벅저벅 다가오며 의사들을 위협했다.

     

    “당장 시연을 중단하라. 왕자님을 구출하겠다.”

     

    “선생님!!”

     

    클로에가 긴박하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라스는 집중력을 놓지 않으며 빠르게 환부를 봉합해 나갔다.

     

    “당장 왕자님에게서 떨어져라! 어명이다!”

     

    병사들이 라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환기 의사와 영상의가 그들을 막아서지만 팔을 휘두르니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위협적으로 라스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끄는 병사.

     

    그제야 라스가 한계를 느끼고 양손에서 포셋을 놓고 몸을 돌렸다.

     

    그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가 개자식들아. 아직 수술 안 끝났어.”

     

    “왕자님을 해하게 내버려 둘 줄 알았나? 왕국을 너무 얕봤군.”

     

    “당장 나가라고. 배리어 있는 동안 다시 소독해야 하니까.”

     

    “입만 산 놈이!”

     

    병사가 라스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쳤다. 클로에가 비명을 지르며 바로 그를 부축했다.

     

    병사가 배리어를 친 앰브로시아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일어난 라스가 다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여전히 팔짱을 낀 채였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하하, 누가 할 소릴.”

     

    이쯤 되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만도 한데, 병사는 오히려 웃음을 흘리는 라스를 보고 조금 섬뜩해졌다.

     

    까마귀 가면 너머 그의 눈동자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거만한 놈! 제국만 믿고 설치기는!”

     

    병사가 다시 라스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분명 힘은 없는 놈이다. 어딜 봐도 싸움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는다.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병사는 더욱 열이 차올랐다.

     

    “아, 이거.”

     

    라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손은 다치면 안 돼. 수술이 안 끝났어.”

     

    “…헛소리를!”

     

    그의 기괴한 패기에 반발하기 위해서, 병사가 주먹을 치켜올렸다.

     

     

     

    ***

     

     

     

    국왕은 초조한 마음으로 스크린과 무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예전부터 승계권이 없는 왕녀들은 놀기나 좋아하는 머리가 빈 자식들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2왕녀, 3왕녀는 그러했다. 1왕녀 페르시야는 그나마 경제 감각은 좀 있다고 생각했지만 편견이 있었기에 지금도 그녀가 제국에게 속았다고만 여겼다.

     

    애초에 제국은 수십 년간 왕국과 견원지간이었다. 조약에 의해 연합군을 결성했다 한들 아군이 아니다.

     

    당장 마왕 토벌이 끝나자마자 다시 전쟁을 걸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정치적 위지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거늘, 성검부터 이번 연무회까지 어찌 이리 꼬인단 말인가.

     

    국왕은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다들 굴복하고 있지만 대륙 최강국인 제국을 견제하고 싶은 마음은 같을 터.

     

    제국의 동맹국인 법국도 뒷공작을 수시로 펼친다는 정보가 있었다.

     

    황제의 목숨이 위험했던 일도 법국이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움직여야 한다.’

     

    마침 치유사 시연회다. 법국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우위를 가져가고 싶을 터.

     

    자신이 액션을 보이면 법국도 따라올 게 분명하다. 두 강국이 압박하면 제아무리 제국의 황제라도 언제까지고 억지만 부릴 수는 없으리라.

     

    놈의 콧대를 한 번쯤은 꺾어 보이겠다. 선대 국왕부터 한 번도 황제에게 이긴 적이 없었기에, 국왕은 기회만을 살폈다.

     

     

    운 좋게 찬스는 금방 찾아왔다.

     

    ―덜그럭!

     

    대형 스크린에 비친 수술 화면이 흔들렸다. 라스가 환자 상태를 잘 볼 수 있도록 영상의가 수정국 각도를 조정하던 중, 실수로 출력 쪽을 건드렸다.

     

    2초 정도 되는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라스가 칼을 대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맙소사.”

    “저건… 이미 죽은 게 아닌가?”

     

    익숙지 않은 장면에 관객석이 술렁인다.

     

    국왕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의자를 발로 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는 못 봐주겠군! 위대한 왕국 혈족의 몸에 칼로 구멍을 뚫어놓고 구경만 하라고? 기만도 정도가 있지. 총대장! 당장 진입해 왕자를 구출하라!”

     

    국왕의 명령에 병사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국 역시 즉시 대응했다.

     

    “폐하, 본 행위는 연합군 평화조약을 깨는 일이자 제국에 대한 도발이오. 즉시 명령을 거둬주시오.”

     

    헤이케가 요청하였으나 국왕은 들을 기색이 없었다.

     

    “단장, 소드마스터에게 전하라.”

     

    긴장을 뚫는 날카로운 목소리.

     

    아셀라였다.

     

    그녀는 동요 하나 없이 기품을 지키며 월광궁의 기사단장에게 명령했다.

     

    “무대의 의사들을 지켜라. 기사단의 출격을 윤허하겠다.”

     

    “존명.”

     

    귀빈석이 바빠진다. 철그럭거리는 갑옷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제국과 왕국, 양국의 병사와 기사들은 당장에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전투 상황을 상정하고 서로를 견제한다.

     

    “아셀라.”

     

    헤이케가 아셀라를 질책하듯 불렀다.

    소드마스터인 타냐까지 언급한 점은 왕국이 확연한 공격행위로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셀라는 그딴 사정은 알 바냐고 역으로 헤이케를 비난하는 듯 코웃음을 쳤다.

     

    “속셈을 드러내는군.”

     

    국왕이 제국 귀빈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헤이케가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적극적 방어행위요.”

     

    “이미 너희 제국이 왕국의 혈족과 명예를 공격했다.”

     

    “오해이외다. 합의점을 찾아봅시다.”

     

    “저 장면 어디에 합의할 부분이 있는가! 그럼 물어보지. 사람의 몸을 칼로 베는 치유술이 존재하는가?”

     

    국왕이 법국 귀빈석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들은 신중하게 회의를 나누었다. 추기경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 국가에는 없습니다.”

     

    “그것 보라!”

     

    어디까지나 책임 회피를 위해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법국의 문장이었다.

     

    이대로는 충돌을 피할 수 없다. 헤이케는 그리 판단했다.

     

     

    경기장, 무대 앞에서는 이미 출진한 왕국 병사와 제국 기사가 맞붙으며 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열린 투기장에 관중이 놀라며 숨을 집어삼켰다.

     

    어디까지나 방어에 그쳐야 하기에 제국은 적을 베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타냐 역시 발이 묶였다.

     

    틈을 타고 왕국이 물량 공세를 펼친다. 병사 몇이 방어선을 뚫고 무대 위로 올라가 간이 수술실을 덮쳤다.

     

    사태가 거기까지 진행되니 아셀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라스를 돌아보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가고 있는데 대체 뭐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여전히 실실 웃기만 하는 라스.

     

    …뭔가 이상하다.

     

    아셀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라스가 아셀라와 눈을 마주치고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

     

    아셀라는 그제야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점의 위치가 다르잖아. 너 누구야.”

     

    가짜 라스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벌벌 떨리는 어깨를 어떻게든 숨기려 했다.

     

    끝까지 임무를 지키는 그에게서 관심을 끄고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린다.

     

     

    이미 상황은 벌어져 버렸다.

     

    왕국 병사들이 수술 중인 의사들을 덮쳤다. 수술실은 엉망이 됐다.

     

    간신히 환자를 배리어로 보호하는 와중에, 병사들을 막아선 집도의가 한 번 더 나가떨어진다.

     

    바닥에 부딪치며 그의 마스크가 벗겨졌다.

     

    먼 거리였지만, 아셀라가 그 새하얀 머리칼과 곱상한 얼굴을 잘못 볼 리는 없었다.

     

    “라스!!”

     

    그녀가 비명처럼 혼약자의 이름을 불렀다.

     

     

     

    ***

     

     

     

    아이고 머리야.

     

    확실히 왕국 병사들은 난폭하다. 제국 기사들도 밑바닥 출신이 많아서 투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얘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손이 먼저 나오네. 양아치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술 중인 환자를 놓고 꽁무니 뺄 생각은 없다.

     

    아직 봉합도 반밖에 안 끝나서 감염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선생님, 순환기가…!”

     

    전신마취 상태인 환자다. 수술종료예정시각이다. 회복이 필요하다.

     

    앰브로시아의 도움이 필요한데, 배리어를 치고 있어서야 손이 묶여버린다.

     

    쯧.

     

    이러다 진짜 위험하겠어.

     

     

    병사가 다시 일어선 나를 보고 위협한다.

     

    “그 조그만 칼이라도 들고 덤빌 테냐?”

     

    “이거 무기 아냐 이 새끼야.”

     

    다시 나에게 저벅저벅 다가오는 병사.

    차라리 이게 낫다. 앰브로시아가 다치면 진짜 답도 없어지니까.

     

    그가 다시금 주먹을 휘두르던 순간이었다.

     

    ―와장창!!

     

    호쾌한 소리와 함께 눈앞의 병사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한쪽 벽을 부수고 무대 밖까지 튕겨 나가 경기장 바닥에 처박힌다.

     

    “아― 라라라라라!!”

     

    거침없는 기합과 함께 휘둘러지는 거대한 도끼.

     

    남은 병사도 도끼의 옆면을 맞고 순식간에 수술실에서 사라졌다.

     

    “감히 내 친구를 건드리다니!”

     

    쾅!

    기슈타가 주먹을 부딪치고는 한 마리 맹수처럼 이빨을 갈며 으르렁댔다.

     

    “라스! 도우러 왔다!”

     

    “굿.”

     

    나는 엄지를 올려 보인 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클로에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장갑 좀 갈아줘. 소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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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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