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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리세는 볼을 붉혔다.

       그녀는 몸을 가득 메우는 열기를 느끼며 슬쩍 몸을 떨었고, 더 붙으라는 듯 자신을 끌어당기는 진성의 손길을 느끼자 힘을 슬쩍 빼고 몸을 기울였다.

         

       리세의 몸이 진성의 어깨에 딱 붙었고, 그녀는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사람이 옆 사람의 어깨에 몸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자세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리세는 슬그머니 눈동자를 움직여 진성을 올려다보았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진성은 그 상황에서 리세에게 자그맣게 속삭였다.

         

       “더 붙어라.”

         

       사람이 왔다.

         

       그 속삭임에 리세는 얼굴을 가득 메우는 열기 사이로 의아하다는 감정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고, 이윽고 바깥에 가득 채워진 신력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형체가 텐트로 접근하는 것을 느끼자 표정을 굳혔다.

         

       진성은 상황을 파악한 리세를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손을 튕겨서 모아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빛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반으로 잘렸던 진흙 덩어리를 허공에 띄우곤 모아이 열쇠고리를 덮어버렸고, 자유를 만끽하던 모아이와 마나는 다시 깜깜하고 지저분한 진흙 안에 봉인되게 되었다.

         

       하지만 마나는 다시 빠져나오려는 듯 미세하게 빛을 발하며 진흙의 틈새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진성은 마나가 기어 나오는 것을 주시하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 끝에 삼매진화를 피웠고, 민들레 홀씨를 불 듯 가볍게 불어 불씨를 구체로 밀어 넣어 마나를 태웠다.

         

       비물질을 태우는 삼매진화의 불꽃은 마나를 양분으로 삼아 흔들흔들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불꽃은 거대하지는 않으나 텐트 안을 밝히기에는 충분한 광량을 제공하며 춤을 추었다.

         

         

         

        * * *

         

         

         

       “하. 좋겠다.”

         

       뽑기를 잘못 뽑아서 순찰하게 된 여성 무인은 텐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구는 저렇게 연애질하는데 나는….”

         

       조명을 켠 것인지 자그마한 빛을 발하는 텐트에서는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남자로 보이는 그림자와 여자로 보이는 그림자가 서로 몸을 기대고 겹치는 모습.

         

       자신에게 몸을 기댄 여성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위해 눈빛을 교환하는 듯한 자세였다. 게다가 무인의 예리한 기감으로는 두 사람이 실제로 몸을 겹치고 있고, 가뜩이나 좁은 텐트를 더 좁게 사용하며 서로의 체온을 교환하고 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무인은 금줄의 바로 앞에서 부러운 듯 텐트를 바라보았고, 누군가가 낭군과 함께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갈 때 낭군은커녕 홀몸으로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버린 끔찍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숲속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에 깊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저주받은 지장보살이라니, 정말….’

         

       무인은 얼마 전 밤에 순찰을 나갔다가 지장보살을 베고 돌아왔다는 자신의 사형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지장보살 귀신 얘기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녀가 숲속으로 눈을 돌리자 수많은 나무, 그리고 나무의 숫자와 같은 숫자의 지장보살 얼굴이 보였다. 지장보살 얼굴은 자애로움을 가면처럼 쓴 채 그녀가 숲속으로 발을 디디기를 바라는 듯 웃고 있었는데, 그녀의 착각일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빽빽하고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낮에도 어두컴컴한 어둠의 흔들림과 함께 미소의 형태를 이리저리 뒤바꾸는 듯 보였다.

         

       나무의 숫자만큼의 얼굴.

       자애롭게 웃고 있는 얼굴.

       어둠과 똑같은 색으로 웃고 있는 얼굴.

       어둠 사이사이에서 나무의 표면의 색만이 선으로, 점으로 남아있는 얼굴.

       짙은 어둠 속에서 자그맣게 흘러나오는 빛에 반사되는 몰골을 보고 있자면 어둠 속에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 더더욱 섬뜩하기 짝이 없는 저 얼굴들!

         

       그녀는 저 숲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결코! 절대로!

         

       하지만….

         

       ‘왜 낮에도 돌아야 하냐고.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모셨으면 얌전히 맡기기만 할 것이지.’

         

       그녀는 어두컴컴한 숲과는 대조되는 분위기의 간이 신사와 텐트 속에서 알콩달콩 정을 나누는 차기 신관과 무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애인 사귀어서 저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애인은 바라지도 않으니 숙소에서 저렇게 뒹굴뒹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쉬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훈련해도 좋다.

       그냥 이 숲을 순찰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한탄하며 금줄의 앞에서 뭉그적거렸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그녀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금줄에서 멀어지며 떼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숲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들어갔다.

         

       ‘제비뽑기에서 당첨을 뽑은 내가 죄인이지. 내 운이 죄야….’

         

       어떻게 수십 개의 제비 중에서 단 한 번에 당첨을 뽑을 수 있는가.

       첫 번째로 나서서 어떻게 첫 번째로 당첨을 뽑아버릴 수가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운을 한탄했고, 숲으로 들어갈 때마다 떠오르는 사형의 지장보살 이야기가 떠올렸으며, 사형이 그린 ‘몽타주’를 훔쳐보았을 때 느꼈던 섬찟함과 두려움이 다시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사범이 시현류의 정신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울 것이라고, 차라리 지금 무서운 것이 끔찍한 고통과 몸의 고됨보다 낫다고.

         

       그녀는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고는 숲을 돌았다.

         

       하지만 평소의 순찰과는 다르게 그녀의 순찰은 대충대충 하였고, 중요한 부분만을 대충 확인한 채 최대한 빠르게 숲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집중했다.

         

       그 결과 그녀는 평소보다도 현저히 빠르게 순찰을 마칠 수 있었고, 그녀는 금줄의 근처에 서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불이 꺼져서 그림자가 잘 보이지 않는 텐트의 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 정도 시간을 보냈으면 평소랑 얼추 비슷하겠다.’ 싶었을 때 수련장으로 돌아갔다.

         

       “순찰 끝났습니다. 나무마다 지장보살의 얼굴이 있는 것을 제외하곤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 신사에서 온 사람들은?”

       “지금 텐트에서 쉬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둘 다?”

       “네. 둘 다 텐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 그래? 뭐. 곧 결혼할 사람들이라 했으니 뭐…. 그래. 알았다.”

         

       그녀는 사범에게 자신이 본 것을 대충 보고를 올렸고, 사범은 텐트에 둘이 들어가 있었다는 말에 피식 웃고는 그녀를 보냈다. 그리곤 일을 해결할 열쇠를 들고 있는 두 사람에 대한 ‘호의’로 주기적으로 순찰을 보내 이상 현상을 찾아내려고 했던 생각을 접고, 오붓하게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순찰을 모조리 취소해버렸다.

         

       물론 두 사람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도록 ‘호의’를 베푼다고 직접적으로는 말할 수 없으니….

         

       “지금 숲에 신사에서 온 차기 신관님과 무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해 일을 해결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가 순찰하는 동안 그것이 거슬리거나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해서 순찰을 나가기로 했던 계획은 모두 취소하고, 대신에 수련으로 바꾸겠다!”

       “와아아아!”

         

       사범은 순찰을 취소하는 이유를 대충 뭉갰다.

         

       “그리고 취소하는 이유는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것뿐만이 아니다. 너희가 필요 이상으로 겁을 집어먹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신이라는 것이 기괴하고 사람을 겁주는 것에 특화되었다고는 하나 너희는 그것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았다고 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검을 휘두르면서 물리치면 될 것을 벌써 꺼리는 기색을 보이다니!”

       “죄송합니다!”

       “물론 이해는 한다! 너희는 수련을 열심히 할 뿐이지 실전을 경험하기에는 이르니까! 또한 피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형체도 없는 것을 상대하니만큼 겁을 집어먹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나?!”

       “아닙니다!”

       “그, 아닙니다!”

         

       사범은 무인들을 모아놓고 쩌렁쩌렁 소리를 쳤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범의 질문에 어떤 멍청한 무인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뻔했으나, 그 옆에 선 무인이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옆구리를 후려침으로써 고문관 짓을 막고 ‘아닙니다’로 답변을 바꿔버렸다.

         

       “그래! 암! 그래야지! 다른 유파의 무인 놈들은 몰라도 우리 시현류의 무인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우리는 형체가 있건 없건, 아무리 위험하건, 설령 염라대왕이 눈앞에 있어도 겁을 먹으면 안 돼! 알겠나!”

       “예!”

       “방금 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얼간이는 없으니 다행이군! 하지만 대가리로 그렇게 잘 아는 걸 왜 실행을 못 하지? 너희가 겁을 집어먹는 것은 시현류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희 몸이 편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래! 몸이 편하면 딴생각이 들고, 온갖 잡생각이 몸 안에 독처럼 파고든다! 너희는 지금부터 교대로 순찰하는 대신에 지옥 같은 훈련을 하게 될 것이다! 각오했나!”

       “예!”

         

       사범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딴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게 만들어서 사기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무인들은 사범의 지옥 훈련 예고에도 긍정적이었다.

         

       ‘신사의 사람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악령이나 악령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숲’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냥 평소보다 조금 힘든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마음도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방금 순찰을 다녀온 여성 무인 역시도 똑같이 느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그녀는 다시 해야 하는 제비뽑기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하는 것보다, 차라리 훈련으로 몸이 힘든 것이 낫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갔군.”

       “네에….”

         

       무슨 이유에선지 텐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무인이 떠났다.

       그리고 무인이 떠남에 따라 무인을 속이기 위해 딱 달라붙어 있던 둘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게 되었다.

         

       진성의 품에 거의 안겨있다시피 한 리세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며 몸을 일으켰고,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함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 뽀얀 손을 위아래로 움직여 손부채질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그녀는 텐트가 덥다고 생각하면서 뜨거운 숨을 쉬었다. 그리고 힐끔힐끔 진성을 바라보았다.

         

       진성은 마나를 뿜는 것을 멈추고 찌그러진 구체의 형상이 되어버린 진흙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바닥에 흐트러진 깃털 몇 개를 줍더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숨을 후- 불었고, 깃털은 하늘하늘 움직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깃털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어떤 문양을 만들어냈는데, 그 모습이 자물쇠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올 사람이 없겠구나.”

         

       진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퍼를 열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후-읍.

         

       텐트 밖으로 나오자 산의 냄새가 가득 풍겼다.

         

       나무가 발하는 향기.

       축축한 땅이 발하는 냄새.

       곳곳에서 느껴지는 짐승의 냄새.

       바람에 실려 오는 곤충의, 짐승의 분비물의 냄새.

         

       그리고.

       부적과 금줄에서 느껴지는 퀴퀴하기 짝이 없는 곰팡내.

         

       진성은 가지고 온 짐에서 캠핑용 금속 컵을 꺼내 손 위에 올리고, 냉기와 삼매진화를 피워올려 물을 맺히게 하며 중얼거렸다.

         

       “로비구스(Robigus), 로비구스(Robigus)! 위대한 곰팡이의 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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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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