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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여행? 어디로?”

         

       프란체는 입으로 향하던 식기를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유 도시 판테온. 엄청 좋은 곳이야.”

         

       내가 이전 도망쳤던 곳이면서 이 세계로 전이한 사람을 만났던 장소.

         

       기본적으로 도시 자체가 굉장히 좋고, 관광 거리도 많아 여행에 적합하다 판단했다.

         

       그리고 가이드를 해줄 사람도 있고.

         

       장종원. 빙의나 환생한 것이 아닌, 지구에서 온 전이자.

         

       ‘…걔도 피해자였지.’

         

       그를 생각하니 문득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종원은 여느 창작물처럼 뜬금없이 전이된 것이 아닌, 라드리엔이 마법을 실험했을 때 강제로 넘어온 것이다.

         

       그에게도 부채감이 남아있다.

         

       “흠, 자유 도시 판테온이라. 분명 예전에 네가 나한테 말도 없이 도망쳤던 곳이었지?”

         

       판테온을 읊조리던 프란체가 도끼눈을 뜬 채 나를 째려봤다. 그 싸늘한 시선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여행으로 거길 추천하는 걸 보니 그때 좋았나 보네? 나는 가슴이 미어터져서 죽을 것처럼 마음고생 하고, 널 잊지 못해서 폐인처럼 지냈는데.”

         

       이제는 결혼까지 했다지만 여전히 그때를 잊지 못하는 모양.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식기만 움직였다.

         

       “…뭐, 됐어. 지나간 일이니까. 이젠 완전히 내게서 도망칠 수 없기도 하고.”

         

       다행히도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곤 서늘하게 굳었던 표정을 풀어냈다.

         

       “크흠… 그래서, 여행 어떤데?”

       “글쎄. 아직 남은 일이 좀 많아서.”

         

       아쉽게도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

         

       프란체는 데카르트 공작가의 가주다. 정계의 중심이자 현 제국에서 가장 큰 발언권이 있는 사람.

         

       내가 만들어줬다지만, 너무 과하게 한 건가 싶기도 하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너무 그리 시무룩하지 말렴.”

         

       아쉬움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는지, 프란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어르고 달래듯 말했다.

         

       딱히 감정이나 기분이 상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작은 웃음을 보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마. 프란체는 공작이니까 바쁠 수밖에 없지.”

         

       마음 같아선 내가 도와주고 싶지만, 프란체는 강제로 나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걸 만들어줬으니 이젠 부담을 주기 싫다나, 뭐라나.

         

       사실 이건 핑계에 불과하고. 프란체는 그저 나를 글러 먹은 인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의존하도록.

         

       ‘소유욕이 너무 강해.’

         

       밤에 끊임없이 나를 요구하는 이유도 그 탓이다.

         

       이미 그녀는 나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여전히 모종의 불안감이 남아있나 보다.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야.’

         

       지금까지 쉽게 신뢰할 수 없는,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이리 평화로운 건 익숙지 않으니까.

         

       “최대한 노력할게. 나도 외국은 가보고 싶으니까.”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이다, 문득 한 가지 떠올랐는지 질문했다.

         

       “음, 그런데 여행가면 단둘이 가는 거니?”

         

       단둘이 여행을 간다면 오붓하게 즐기면서 달콤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불가능이다.

         

       “수행원은 데려가야지. 프란체는 데카르트의 공작이니까.”

         

       고개를 슬쩍 내젓자,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안전을 떠나서 공작이라는 위치가 있으니 데려가야 한다는 거야.”

         

       일반적인 대귀족도 아니고 제국의 중심인 데카르트의 주인이다.

         

       어떤 미친놈이 프란체를 노리겠나, 싶어도 혹시 모르는 법. 최대한 많은 수행원을 데려가는 게 좋다.

         

       “…아쉽네. 둘이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프란체는 그게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그녀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이동할 때만 그렇게 다니는 거고, 관광을 즐길 때면 나랑 둘이서만 다닐 거야. 신혼인데 방해받을 순 없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자 프란체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네. 우리는 신혼이니까.”

         

       이어서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턱을 괸 채 꿀이 가득한 시선으로 끈적하게 나를 보며 웃었다. 입에서 멋쩍은 헛기침이 나왔다.

         

       “흠흠.”

         

       내 입으로 꺼낸 단어지만, 묘하게 가슴이 간지러워 싱숭생숭해지는 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어도 그녀와 같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하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튼, 식사는 다 끝났으니 달리아를 만나러 가자. 확인할 게 많으니까.”

         

         

       * * *

         

         

       우리는 달리아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손님방으로 사용되었지만, 개조를 통해 의무실로 변형되었다.

         

       그에 따라 방도 여러 구조로 나뉘게 되었고 널찍하게 바뀌었다.

         

       똑똑. 프란체가 문을 두드렸다.

         

       “달리아, 우리인데 들어가도 되니?”

       ─물론이죠. 어서 들어오세요.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달리아는 책상 앞에 앉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문득 책상 위로 시선이 옮겨졌다. 딱히 할 일이 없는지 특별한 건 없었다. 책과 다과 정도. 그런데 책의 이름이 묘했다.

         

       [나의 다정한 개새끼를 위하여]

         

       ‘…뭐야?’

         

       분홍빛 표지에 로맨스 소설이라 적혀있는 걸 보니 여성들이 즐겨보는 책 같은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달리아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으며 물었다. 프란체는 얼굴을 붉히더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흠흠, 상담할 게 좀 있어서…….”

       “상담이요?”

       “으, 응. 그게…….”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직접 말하긴 부끄러우니 대신 말해달라는 건가.

         

       “공작님의 성욕이 너무 강하시다.”

       “진…!”

         

       프란체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더니 내 어깨를 팡팡 때렸다. 달리아는 그 얘기를 듣고 유심히 나를 관찰하더니.

         

       “아… 그런 거 같네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도 봤나보네.’

         

       목 전체가 붉게 물들었고, 깨문 자국이 깊게 새겨졌으니…….

         

       “일단 앉으세요. 얼굴이 너무 수척하세요.”

         

       달리아는 신성 마법을 사용해 의자를 두 개 끌어왔다. 우리는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요. 또 공작님께서 밤새 정기를 착취하신 거죠?”

         

       그녀의 말에 프란체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손을 내저었다.

         

       “차, 착취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누가 보면 내가 못해서 안달 난 여자인 줄 알겠어!”

         

       내 생각엔 그게 맞는 거 같은데…….

         

       “공작님. 남사스러운 말이지만, 지금 공작부군님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세요. 있는 거 없는 거 다 짜여진 모습이라고요.”

         

       달리아의 말에 프란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공작부군님. 공작님과 관계를 가시지면 사정은 어느 정도 하세요?”

         

       그녀는 “저는 지금 의원의 입장이니 부끄러워하지 마시고요.” 하고 말을 덧붙였다.

         

       “으음…….”

         

       나는 눈을 감은 채 지난 밤을 되새겼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상 프란체와 처음 관계를 가졌던 날에는 열아홉 번. 오늘 아침까지 했을 땐 열세 번이었다.

         

       이걸 달리아에게 그대로 말해주니 그녀는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아니. 그러면 정기가 아예 없을 텐데…? 그러고 일상생활이 가능하세요…?”

         

       적잖은 충격인 듯 표정에서 혼란이 그대로 드러났다.

         

       “좀 힘들긴 하지만… 문제는 없네.”

         

       달리아는 바로 고개를 돌려 프란체에게 물었다.

         

       “공작님은요? 그 정도로 하는데 안 힘드세요? 막 아프시거나, 그런 건요?”

         

       프란체는 “그게…….”하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꼬더니, 시선을 돌렸다.

         

       “내가 힘들면 진의 힘을 흡수해서 회복하곤… 강제로…….”

         

       그에 달리아는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상대방의 힘을 흡수해 강제로 관계를 이어가다니. 말도 안 되게 문란한 방식이었다.

         

       “크흠! 공작님. 제 말 잘 들으세요.”

         

       달리아는 크게 헛기침을 내뱉곤, 프란체에게 다가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오러와 마력이 흐르는 것처럼, 정기라는 게 흐르고 있어요. 오러와 마력이 생명력이라면, 정기는 그 사람이 가지는 수명과 비슷한 거죠.”

         

       수명이라는 말에 프란체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 정기가 다 사라지면 아무리 공작부군님이라 하셔도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세요. 생명력과는 또 별개거든요.”

         

       한 마디로 번식 능력이라는 거다. 오러나 마력의 양은 관계없는. 달리아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부부의 금술이 좋은 건 다행인 일이지만, 지금처럼 하시면 공작부군님께서 금방 앓아누우실 거예요. 정기는 회복이 중요하거든요.”

         

       그녀의 말을 해석하자면, ‘이대로 하면 네 남편이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될 수 있으니 적당히 해라.’ 이거였다.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에요.”

         

       프란체는 입술을 머금은 채 고개를 숙였다.

         

       “우선 이것부터 들을게요. 성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하시나요?”

         

       처음 관계에선 그러지 않았다. 내가 두 번 연속으로 했을 때부터 바뀌었다.

         

       “음… 그냥 진만 보면 하고 싶어져서…. 하나가 된다는 게 기쁘기도 하고, 기분도 좋고… 또…….”

         

       프란체는 나와 몸을 섞는 것이 왜 좋은지 달리아에게 모두 말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성욕이 어째서 폭발하는지 이유가 나왔는데…….

         

       “그… 진이 한 번으로는 만족을 못 해서 연속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나도 참을 수 없게 돼서…….”

         

       요컨대 나부터 적당히 했어야 했다. 어쩐지, 하면 할수록 더욱 요구하더라. 달리아가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공작부군님도 한 번으론 만족 못하시는 거예요?”

         

       흐흠, 나는 헛기침을 흘린 채 고개를 돌렸다.

         

       “하아…….”

         

       달리아는 골머리가 당겼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처방을 내릴게요. 우선 약에 의존하는 건 절대 안 되니 횟수를 줄이는 거밖에 답이 없어요. 앞으로는 하루에 최대 두 번씩만 하는 거로 해요.”

         

       하루에 두 번. 그 말을 들은 프란체의 얼굴이 와르르 무너졌다.

         

       “두, 두 번은 너무 부족한데…?”

       “하루에 두 번도 엄청 많은 거예요.”

       “우린 일반 사람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 돼요.”

         

       달리아는 단호했다. 프란체는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다.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눈빛.

         

       ‘…도와줄까.’

         

       프란체에게 강제로 짜이는 처지라지만, 나도 그녀가 주는 쾌락에 허덕이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루 다섯 번 정도는 문제없어.”

       “…제정신이세요?”

         

       달리아는 오만상을 구긴 채 눈을 끔뻑였다.

         

       “정말 그러시다가 그…….”

         

       고자가 될 수 있다고요, 하고 조용히 말을 덧붙이는 달리아.

         

       “…그래도 다섯 번은 괜찮아. 그렇게 무리도 아니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할 수도 있다. 다만 중간부터는 프란체가 힘을 빼앗으며 억지로 이어가서 그렇지.

         

       “공작님께선 정말 절륜하신 남편분을 가지셨네요…….”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달리아는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요. 대신 무조건 다섯 번은 지키세요. 그 이상으로는 절대 안 돼요. 아시겠죠?”

         

       나는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그제야 프란체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이제 끝인가요?”

       “아니, 하나 더.”

       “뭔가요?”

       “프란체의 상태를 확인해줘.”

         

       달리아는 “상태요?”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신했는지 확인하려고.”

       “아…….”

         

       한껏 진지해진 얼굴의 달리아는 고개를 주억이며 프란체에게 붙었다.

         

       “공작님, 몸 편하게 하세요. 신성 마력이 들어갈 거예요. 흑마법을 익히셔서 다소 거부감이 드실 수 있어요.”

         

       이어서 달리아가 프란체의 아랫배에 손을 얹고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때 이후로 일주일이 넘게 지났으니 신성력으로 확인할 수 있겠지.

         

       그리고 잠시 후.

         

       “…음, 임신한 것 같진 않네요.”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날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오늘로 노벨피아에 상륙한 지 딱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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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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