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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그래서, 뭐하는 답삽니까.”

        

       삐뚜름한 표정과 퍽 어울리는 인사말이었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드러난 입매가 상당히 굳어 있는 게, 어째 불만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더라.

       

       나쁜 일이라도 있었나.

       

       오래 기다려서……아니, 나도 약속시간보다 10분은 일찍 나왔는데.

        

       너무 급하게 잡은 약속이어서, 는 아닐 거고. 당장 내일 보자고 한 건 내 사정 때문이었지만……본인도 동의했잖아.

        

       혹시 오늘 뭘 부탁할지 깨달은 건 아니겠지. 아니, 아닐 거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의심으로 가득한 표정이니. 의심……억울할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럴 때를 대비한 뇌물이 있어서 다행이다.

        

       “기운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당이 부족해서 그래요. 자. 특별히 몸에 좋은 거로 사왔어요. 사양하지 말고.”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을 내밀었다. 반응이 없기에, 조금 더 내밀어서 손에 쥐어 주니- 받기는 하더라.

        

       음. 말이 없네. 취향이 아닌……아니, 이번엔 정말 자신 있었는데.

        

       “혹시 캔디보다 젤리를 선호하시나요. 아무리 그래도 홍삼 젤리는 너무 올드한 느낌인데.”

        

       “아니, 캔디도 충분히 올드하고……애초에 왜 홍삼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해명이나 들어봅시다.”

        

       해명, 해명할 일인가. 오는 길에 잠깐 들른 슈퍼에서 최대한 잘 어울리는 느낌의 사탕을 찾았을 뿐이다.

        

       홍삼캔디를 사려고 들른 거기는 하지만.

        

       왜, 사람이 어째 조금 고지식하고 건강을 과하게 신경쓰니, 홍삼 캔디도 좋아할 것 같잖아. 어디까지나 타인에게 맞추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예를 들어, 별포크……아리는 무슨무슨 탕후루를 좋아할 것 같고, 진희는 아닌 척 하면서 실은 고급스러운 호텔 25년 경력 제빵사가 만든 이름이 복잡한 케이크를 좋아할 것 같듯이.

        

       그래도, 오늘은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 애초에 아닌척 하면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그 고지식함에 도움을 받으려 오늘 불러낸 것 아닌가. 스스로 의식하게 했다간, 애써 초청한 논란 감지기가 어설프게 쿨한 척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맛있잖아요. 홍삼 캔디. 사탕을 먹는다는 죄책감도 덜하고……술 마시고 클래식 듣는 거랑 비슷한 느낌.”

        

       “대체 무슨 느낌인데.”

        

       글쎄, 무슨 느낌이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주정뱅이가 아니라 교양있는 주정뱅이가 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덜해지는…….

        

       설명하기 어렵네.

        

       역시 애매할 땐 웃고 볼 일이겠지.

        

       “우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집착하지 말고, 일단 이동할까요. 오늘 할 일이 많아요.”

        

       꽁해있는 레반의 어깨를 호쾌하게 툭툭 두드리며 웃어 주고, 앞장서서 이동을 시작했다. 깊은 한숨소리에 이어서, 걸어오는 소리가……들리네. 다행이야.

        

       곤두세운 귀에 잡히는 소리가 참 많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저 편, 무슨 목적인지 모를 시위대의 구호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너스레. 그 틈바구니로, 조금은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얘기나 해주고 가요.”

        

       “음…….”

        

       목적지, 미리 말해도 괜찮으려나. 아예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그 레반이다. 질 것을 알면서도 싸움에 머리를 들이미는.

        

       여기까지 왔으면, 이걸 얘기한다고 도망치지는 않겠지.

        

       “우선, 경찰서부터 갈까요.”

        

       “……괜찮아요? 혹시-”

        

       “아. 시위하려면 직접 경찰서에 신고해야 해요. 모르셨구나.”

        

       * * * *

        

       하여간, 농담과 진담이 구분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거 저렇게 접수해놓고 철회해도 되나? 진짜 할 거예요?”

        

       “그럼요. 철회해도 돼요. 진짜 할 거지만.”

        

       아니, 농담이기를 바라는 것일 뿐일 지도.

        

       이전에 약속했으니 밥을 사주겠다느니, 시위를 하기 전에 사전 답사를 해야 한다느니……혹시 약속을 잡기 위한 명분은 아닐까, 순간적이나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위태로워 보이던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러했다. 매사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세상 무엇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을 뿐인……어느 날 인사말 하나 없이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혹 지탱해줄 친구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고 싶었다.

        

       약속장소 근처의 카페나 맛집을 미리 찾아 둘 때까지만 해도, 괜한 생각은 하지 말고 이야기나 충분히 들어주자고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었는데.

        

       저 이예나에게 대체 뭘 기대하고 말았던 걸까.

        

       레반, 시훈은 다시 한번 쓰게 웃으며 한 걸음 앞장서 걸어가는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집회신고서라고 적힌, 저 괴한이 손수 작성해서 가져온 서류를 경찰서에 접수하고 나오는 길.

        

       제법 본격적이어서 놀랐고, 접수 담당자가 의외로 덤덤하게 서류를 수리해서 더 놀랐더랬다. 도적부흥운동회라는 단체를 정말 정식으로 등록했다는 점이 제일 충격적이었지만.

        

       어디까지가 컨셉이고, 어디부터가 진심인지. 시훈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부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심이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요. 그러면, 아까 신고한 그 주소 답사하러 가고 있는 거죠? 근처였던 거 같은데.”

        

       “네. 너무 부담 느끼지는 않으셔도 돼요. 사람 모이면 주변에 민폐끼치는 위치는 아닌지 확인해두려는 거여서.”

        

       가벼운 목소리. 어처구니가 없어 표정을 살짝 굳히니, 고개를 다시 돌리며 ‘감지기 성능 탁월하네요-’라고 말하는 게……들으라고 하는 건가.

       

       한 마디를 하려는 순간, 청량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자. 여기예요. 어떤가요.”

        

       광장이었다. 한 켠에서는 시위가 한창 진행 중인.

        

       뉴스에서, 종종 시위 사진을 볼 때면 봐왔던 배경이었다.

        

       오늘은 평일인 탓에 시위 규모가 작은 덕분일까.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이나, 광장을 산책하는 커플들이 즐길 공간도 충분히 남아있는 게…….

        

       쓸데없이 적절한 위치인 탓에, 걱정이 한층 증폭되더랬다.

        

       “……여기……그러니까, 저기서 시위를 하겠다는 거죠?”

        

       이전에, 아크가……보고 있자면 물가에 내놓은 아기가 구명조끼에 바늘 꽂기 놀이를 하는 걸 보는 기분이라고 했던가.

        

       온전하게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납득되는 설명이었다.

        

       “네. 저기쯤에 현수막 설치하고……여기쯤에 모여서. 아. 초대가수는 저 나무 뒤 정도에 숨어계시다가 도끼로 베어 넘기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나무는 따로 사올게요. 가로수는 비싸다고 하니까.”

        

       “……제발, 농담을 할 땐 미리 얘기를 해달라고.”

        

       “그러고 있어요.”

        

       살풋 웃는 저 표정이 어째서인지 너무나 맑아서, 더더욱.

        

       .

       .

       .

        

       그렇게, 오후 4시.

        

       “아직 밥 먹기는 조금 애매한데. 피시방에서 게임이나 조금 할까요.”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간 건지. 만난지 어느덧 2시간이 흘러있었다.

        

       주변을 꼼꼼히 살핀답시고 아직은 추운 날씨에 한 시간 가까이 걸어다닌 탓일까. 코 끝이 살짝 빨갛게 물든 이예나의 제안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피시방? 뭐, 컴퓨터 게임 하는 거 있어요?”

        

       그리 반문하는 와중에도, 레반의 머리속에서는 이예나가 방송에서 플레이해온 고전게임들의 목록이 떠오르고 있었다. 괴상할 정도로 고전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설마, 피시방까지 가서 각자 싱글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우자는 건 아니겠지만서도.

        

       “나오나는 PC 게임이에요. 상식이니까 기억해주세요. 자, 그런 의미에서 사탕 하나 더 드릴게요. 공부할 때는 당분 섭취가 도움이 된대요.”

        

       “……그놈의 홍삼캔디는 대체 어디서 자꾸 나오는 거야. 아니, 그리고……댁도 이제 VR로 하잖아요.”

        

       “그거야, 악질 VR단 패러데이가 너무 밀어줘서 그런 거고. 그래도 정실은 PC예요. 억까 좀 자제해야 돼. 진짜로.”

        

       불만어린 목소리. 조금은 진심이 느껴졌다. 흘긋 확인한 얼굴은, 다시 무표정했지만.

        

       “뭐, 그래요. 그러면 갑시다. 나오나 하시게요?”

        

       “네. 빌드 보여드릴 게 하나 있어서.”

        

       “……빌드? 그거 아직도 남았어요?”

        

       “네. 이번엔 난이도가 낮은……아. 아크도 손쉽게 사용 가능한, 정도가 컨셉이에요. 그런데……걱정되는 게 조금 있어서요.”

        

       그리 말하며, 이예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고민하는 듯이 앙다물어진 입술이 한 쪽으로 조금 쏠리고, 약간은 연기하는 듯한 ‘으음-’하는 소리에 이어서-

        

       “일단, 한번 보시면 어떨까요.”

        

       조금은, 어색한 미소.

        

       그러나 그리 웃으며 제안을 던지는 목소리에는, 생기가 담겨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미리 확인까지 받으려 하냐는 핀잔이 떠올랐다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이어서, 그 빈자리를 자연스레 메우려 드는 생각들을 애써 흩어내며-

        

       레반은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입가에 다시금 힘을 주고, 고개를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

       .

       .

        

       “아니, 미친……이건 안 되지. 이건 진짜 버그잖아. 화염구 캐스팅 시간 어디 갔고, 왜 세번째 화염구는 안 보이는 건데.”

        

       “스킬일 수도 있잖아요.”

        

       “일 수도, 라고 말하는 시점에 본인도 아는 거 같은데. 대체 이딴 건 어디서 찾아오는 거야. 내가 진짜 어지간해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려 했는데, 이건 빌드라고 안 불러요. 스트리머가 이런 거 하면 바로 정지야.”

        

       “……고지식해서 부른 거긴 한데, 좀 과하시네요.”

        

       “……뭐요?”

        

       “……테스트였어요. 합격입니다. 역시 논란이 될 빌드를 잘 찾아내시네요. 그러면, 축하의 의미로 사탕 하나 더 드리고……다른 빌드도 있는데. 이건 어떤가요.”

        

       “보기나 합시다.”

       

       “잠시, 특성 좀 찍을게요. 그런데……안 드시나요. 이거 맛있는데. 달콤쌉싸름해요.”

       

       “보기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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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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