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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이제는 대놓고 거의 듣지도 않는 수업 시간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사라가 좋아할 만한 것이 과연 뭘까?

        

       사실, 나는 사라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라의 기억을 읽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다소 피상적이었다.

        

       기억을 읽고, 감정을 느껴도 결국 나의 기억이 아니다. 나는 사라의 기억을 ‘나의’ 시점으로 보니까. 극사실주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감각으로 보게 되니까.

        

       무엇보다, 사라는 혼잣말 같은 것을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대뜸 혼잣말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말했듯이 나는 사라의 기억을 나의 시점으로 본다. 사라의 시선과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기억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머리는 컴퓨터와는 저장 방법이 다르니까.

        

       겪은 사실을 바탕으로, 사라의 생각에 따라 재구축된 세상을, 사라의 시선도 아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사라가 입을 열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별다른 말이 없고, 누구와 대화하는 것도 아니다.

        

       사라의 과거에서, 사라가 집착하는 대상은 최나경이 유일했었다.

        

       그러니, 내가 그렇게 많은 기억을 읽고, 실시간으로 사라의 기분을 함께 느끼면서도 ‘피상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더럽게 재미없는 수업을 들으면서 기쁨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사라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맞춰보라는 듯.

        

       바보.

        

       아니면 웃으면서 이렇게 놀리거나.

        

       그러니,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라는 대체 뭘 좋아하는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보다도 더 높은 난이도를 느끼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소희와 그 옆자리에 앉아있는 하늘이.

        

       둘 다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뭔갈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고 있겠지.

        

       선물을 받는 대상이 사라가 아니라 나……라고 한다면, 당연히 나는 뭐가 되든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애초에 친구들끼리 생일 선물 같은 걸 주고받았던 기억도 없다. 시간이 되면 만나서 밥이나 한 끼 먹고, 안되면 그저 카톡으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생일 선물을 주고받은 기억이 없는 건 아닌데, 이런 기억들은 보통 중학생 이전의 것들이었다. 그래도 대학생 때까진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을 주시긴 했는데……

        

       음, 보통은 그냥 용돈이었지. 돈으로 받아서 내가 필요한 것을 사서 쓰곤 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친구들끼리 돈 봉투를 주고받는 건 조금 그렇다.

        

       무슨 효도선물 받는 부모님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 학교에서는 그런 식의 선물이 무척 횡횡하고 있었으므로, 왠지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다른 애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다.

        

       얘네들이 아무리 이상한 선물을 하더라도 나를 괴롭히는 선물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

        

       어, 그런데…….

        

       만약, ‘나도’ 선물을 받게 된다면……

        

       나도 얘네들한테 생일 선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일 뿐만이 아니라 아마 기념일들, 그러니까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까지 챙겨야 할지도 모른다.

        

       ……어렵네.

        

       그래도 다행이다. 제일 먼저 선물을 받는 게 나여서.

        

       다른 애들에게 줄 선물은, 남은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차차 생각해보자.

        

       ……칫.

        

       사라가 갑자기 토라진 모양이다.

        

       감정의 편차가 심한 것은 사라가 아직 사춘기이기 때문일까?

        

       의식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언짢음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고민해보았다.

        

       *

        

       “그러고 보니 너, 곧 생일이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던 와중에, 뜬금없이 손아름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나 뿐만이 아니라 하늘이, 수아, 소희도 다 같이 깜짝 놀랐다. 이 세 사람도 어제 물어보기 전까지만 해도 사라의 생일을 몰랐으니까.

        

       “어, 으, 응…… 생일 맞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그야…….”

        

       내 질문에, 손아름은 우울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면서 대답했다.

        

       “너한테 징계를 주겠다고 학생 정보를 열람했었으니까.”

        

       “아…….”

        

       그런데 그거 학생이 열람해도 되는 건가?

        

       하긴, 아무리 이 학교의 학생회가 존재감이 옅으니 뭐니 해도, 이런 계열의 장르에서 학생회의 힘이 학교 안의 작은 정부 수준으로 나오는 건 흔한 일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도 선물을 하고 싶은데…….”

        

       손아름이 눈을 살짝 치켜뜨고 나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말했다.

        

       “그래도 될까?”

        

       그런 것을 굳이 물어봐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야 서로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 주는 선물은 소름 끼치는 법이다.

        

       설령 내가 남자라도 그렇다. 만약 학교에서 말 한마디 안 섞어본 여자애가 나한테 커다란 곰 인형을 준다?

        

       아마 좀 무서웠을 것 같다. 아무리 그 애가 예쁘다고 하더라도.

        

       그거 완전 스토커 아니야.

        

       “상관없어.”

        

       그래서, 나는 불안에 떠는 손아름에게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응!”

        

       손아름은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위의 더듬이가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리는 게 조금 웃겼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다시 식사를 이어 나가려다가—

        

       주변이 묘하게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 학교에서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선생이건, 학생이건, 나를 무시하던 사람 중 대다수는 지나가다가 눈인사라도 했고, 나에게 돈을 받았던 장학생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곤 했으니까.

        

       그리고 제 발 저린 선생들이나 학생들은 전부 급하게 학교를 벗어났다. 반 정도 비어있던 교실의 학생 중 다시 절반 정도는 얼른 이사라도 간 모양이다. 돈 많은 집안 애들이니 비어있는 집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아무튼 그랬기에, 전에는 늘 비어있던 우리 주변의 자리도 요즘에는 꽉꽉 차 있었다. 딱히 잘 보이려고 한다기보다는, 괜히 전처럼 행동하다가는 억지로 자리를 비우게 된 그 사람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을까 두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우리 주변도 꽤 시끌시끌했었는데…….

        

       “응?”

        

       그 묘하게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황급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이는데.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아무리 집단 따돌림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학교 안에서 주의해야 할 인물이었고, 그런 존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보라도 수집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행동까지 하나하나 다 꼼꼼하게 잡아내려고 하면 나만 골치 아프다.

        

       그래서, 나는 그냥 주변 상황은 무시하고 그대로 식사를 속행했다.

        

       요즘 들어 몸이 많이 건강해진 것이 느껴진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체중도 늘고, 먹는 양도 늘었으니까.

        

       좋은 일이다.

        

       “저, 그런데…….”

        

       식사 와중에, 손아름이 다시 쭈뼛쭈뼛 말을 걸어왔다.

        

       “응?”

        

       “혹시, 가지고 싶은 선물이라도 있어?”

        

       우물쭈물 그렇게 말하는 손아름에게,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대답했다.

        

       “나는 뭐든 상관없어.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잖아.”

        

       “엑.”

        

       내 대답에, 손아름은 조금 체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음식이 목에 걸렸나?

        

       *

        

       그건 꽤 중요한 정보였다.

        

       이 학교 안에서 ‘법망’을 피해서 누군가에게 뇌물을 바치는 방법은 많다.

        

       일부러 CCTV 하나 없는 곳이 있었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척 하면서 금전이 될만한 것을 주거니 받거니 하곤 했으니까.

        

       책 사이에 수표가 끼어 있다거나,

        

       음료수 박스 안에 돈이 들어있다거나.

        

       이렇게 흔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주고받는 이는 많았다.

        

       문제는, 상대가 ‘예사라’였다는 거다.

        

       그렇다. 이 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집안의 상속녀.

        

       심지어 지금은 회장마저 도피 중이었으니, 그 회사가 그대로 예사라의 손으로 굴러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물론 본인은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학교의 학생들이 그런 사정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그렇기에, 점심시간, 예사라가 자신의 생일에 대한 힌트를 흘린 직후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심히 고민하게 된 것이다.

        

       예사라에게 잘 보이고 싶다.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이 학교에 아직도 남아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를 옮길 수 없거나, 그래도 아직은 사라지지 않은 네임벨류, 만들어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경우였다.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예사라와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될 텐데, 당연히 잘 보여두는 것이 좋다, 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그런 사실을 다른 학생들이 알 방법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상대가 ‘예사라’였다.

        

       그렇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이 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 중 하나인 예사라.

        

       ……그렇다면 일반적인 뇌물은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대체,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주변의 시선이 예사라의 주변에 앉은 아이들에게 향한다. 힐끔힐끔, 그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을 살핀다.

        

       어쩌면, 늘 붙어 다니는 저 애들이 도움이 될지도.

        

       그렇게 거대한 오산을 하는 인원이 몇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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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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