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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지금으로부터 먼 과거 본인이 빙궁에서 쫓겨나오듯 빠져나왔을 무렵 본인은 정과 사를 가리지 않은 온갖 무인들의 집요한 추격을 받았다.

       

       정파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고, 사파의 경우엔 정파에게 의뢰를 받았거나 천마신교의 비급이나 영광을 노리기 위해 나를 쫓았다.

       

       어느 쪽이더라도 나의 아군은 없었다.

       

       신교가 무너지고 빙궁의 아해가 잠에 들어버린 그 순간부터 본인은 무림에 홀로 남아버린 외톨이에 불과했다.

       

       당시의 본인은 어지간한 무인보다 강하긴 했으나 그렇다 하여 지금처럼 압도적인 강자는 아니었다.

       

       그러니만큼 여러 무인들의 추격에서 여유로울 수 없었으니.

       

       나의 삶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이어나가는 빈민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애써 부정했지만 마음속으론 알고 있었다.

       

       이 도주는 저들의 손에 붙잡히는 것으로 끝을 맞이하리란 것을.

       

       그 후에 내가 겪을 일은 결코 온건하지 않을 거란 걸.

       

       정파의 손아귀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지 않을까.

       

       무수히 많은 생명을 짓밟은 끝에 살아남은 내가 스스로 결말을 정하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하루에도 수도 없이 고민을 했지만 난 겁쟁이였기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나의 도주는 위기를 맞이했다.

       

       지금도 그 때의 상황은 생생히 기억한다.

       

       당문의 독에 당해 사지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통제를 잃은 내기가 되래 내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선 끊임없이 소리가 이어졌다.

       

       나를 쫓는 이들의 발소리.

       

       고함소리.

       

       수풀을 스치는 소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짐승이 짓는 소리.

       

       나를 향해서 날아드는 비수의 소리.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저들이 펼친 천라지망은 너무도 촘촘한데 반하여 나라는 물고기는 한없이 나약했으니.

       

       크기가 어중간하여 그물의 틈 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물을 찢을 힘도 없던 나는 얌전히 그물에 잡혀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독기운이 머리끝까지 잠식해 억지로 부여잡고 있던 눈꺼풀조차 내 의지를 따르지 않는 걸 보고서 나는 직감했다.

       

       죽게 될 거란 사실을.

       

       무림에 내던져진 나란 인간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마무리 지어질 거란 걸.

       

       지금 내가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그 날 나는 죽지 않았다.

       

       기연을 마주했기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낡은 나무로 된 천장을 보고서 여기가 어딘지를 추측하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무림의 인간들에게 쫓기던 것을 떠올리고 다급히 움직이려던 날 제지한 것은 노인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널 쫓던 놈들은 돌아간 지 오래다. 좀 더 자거라.’

       ‘…누구십니까?’

       ‘나 말이냐? 오래 전에 초야에 묻혀버린 별 볼일 없는 노친네다.’

       

       그 때 은인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나가다 불쌍한 꼬맹이가 있기에 도왔을 뿐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온갖 수난을 겪은 끝에 그 자리에 도달한 나는 선의로 행동했다는 노인을 믿지 않았다.

       

       선의라는 단어에 너무도 많이 배신을 당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자의 의도에 불순한 무언가가 숨어있으리라 확신하던 난 몸의 상태만 회복되면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노인에게 마음을 놓게 된 것은 그 자에게 조언을 듣게 된 후의 일이었다.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천마신공의 수련을 재개했다.

       

       모든 걸 잃어버린 내가 가진 것이 천마신공밖에 없었으니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수련은 지지부진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디까지나 재능있는 후기지수에 불과했으니.

       

       이끌어 줄 스승도 비급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몸을 움직인다고 나아지길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때의 난 그를 알면서도 외면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도 절망스러웠으니 눈을 돌리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래서야 무어가 바뀌겠느냐.’

       

       갑작스레 나타난 노인은 신공을 펼치는 나를 보고서 그리 이야길 했다.

       

       ‘왜 갑자기 참견이십니까?’

       ‘네가 하는 짓이 한심해서 그런다.’

       ‘제가 쓰는 무공에 대해 무얼…’

       ‘천마신공을 다룬다는 녀석이 자신의 마음속에 천마를 그려내지 못하는데 어찌 한심하지 않겠느냐.’

       

       노인이 해주었던 그 말은 내가 지닌 문제를 관통하는 한 마디의 깨달음이었다.

       

       그랬다.

       

       나는 막연히 천마신공을 수련하고 있었을 뿐 천마가 무엇인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에 구심점이 될 것이 없는데 신공을 아무리 수련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깨달음을 얻은 난 여태 내가 익혀왔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느끼다 문득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본인은 별 볼일 없는 노인이니라.’

       

       그 뒤로 무슨 바람이 분 것인지 노인은 직접 나를 이끌어 주었다.

       

       파천이라는 단어를 구심점으로 세울 수 있게 도와준 것도 노인이었고,

       

       본인에게 맞는 길을 찾는 법을 알려준 것도 노인이었으며,

       

       마지막 그 순간 본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음에 뛰어든 것도 노인이었으니.

       

       내가 그를 여태까지 은인이라 부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살아있다고?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본인의 생각을 아득히 넘어선 범주의 일이었다.

       

       어찌 그 노친네가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인간은 분명 당시 무림맹주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을 터인데?!

       

       “왜라고 물어도.”

       “답해라. 당장.”

       

       백화령 그대가 지금 내뱉는 말을 믿을 수 없으니 답하라.

       

       본인은 은인이 죽고 나서 수도 없이 그 때의 광경을 돌이켜 보았다.

       

       혹여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은인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생각을 거듭해 보았단 말이다.

       

       은인을 묻어준 후에.

       

       무림을 돌아다니며 복수를 끝마친 뒤에.

       

       새로이 천마신교를 설립한 뒤에.

       

       그리고 그 혈교주 쓰레기 자식이 은인의 시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친 후에.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보았단 말이다!

       

       그리고서 내가 내린 결론이 무엇이었는지 아느냐?

       

       당시의 내 수준으로는 무언가를 바꾸는 게 불가능했단 사실이다.

       

       무림맹주와 노인의 싸움에 참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부족했기에 무림맹주가 내 존재를 척살하기 위해 찾아왔던 그 순간 노인의 죽음은 결정되어 있던 것이다.

       

       “어찌하여 은인이 살아남았는지를 답하란 말이다.”

       “민가야?”

       

       그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바루가 있었다.

       

       …흥분을 했구나.

       

       버릇처럼 곰방대를 입에 물며 감정을 다스리고 있자니 백화령이 목소리를 냈다.

       

       “그 노친네와 같이 지내며 겪었던 위기는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 스승이 죽을 뻔 했던 일은 하나였다. 무림맹주가 찾아왔을 때. 그대의 스승은 그 순간에 목숨을 잃은 게냐?”

       “그래.”

       “네가 바라는 대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때의 상황 정도는 설명해줄 수 있다. 무림맹주가 우리를 찾아왔을 적에 나와 스승은 함께 무림맹주에게 대적했다.”

       

       함께라는 단어에서 의문이 생겨나 백화령의 말을 끊었다.

       

       “당시 그대의 수준으로 그 싸움에 끼어들 수 있었다고?”

       “그래.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그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눈앞의 백화령이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영문도 모른 채 천마신교에 떨어졌던 현대인인 나와 태어났던 순간부터 천마신교에서 자라 온 무림인인 백화령.

       

       지금이야 내가 더 오래 살았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했기에 본인이 백화령보다도 높은 경지에 있을 수 있지만 그 때는.

       

       무림인들에게 쫓겨 다니며 간신히 생을 연명하던 그 때는.

       

       은인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하던 그 때는 어땠을까.

       

       물어볼 것도 없다.

       

       이방인인 본인보다 무림인인 백화령이 강했겠지.

       

       “허.”

       

       웃음이 샜다.

       

       내가 약했기 때문에 은인이 죽었다는 나의 결론에 백화령이 쐐기를 박아주는 바람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인에 관한 미혹은 오래전에 떨쳤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떨쳤다 생각했던 것들은 여전히 내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다만 본인이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곰방대의 연기가 제대로 빨리지 않는다 싶어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곰방대가 반토막이 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흔들렸다니.

       

       망가진 곰방대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백화령의 품 안에 있던 바루를 뺏어들었다.

       

       “돌아가거라. 내 한서우 그 놈에게 연락을 할 테니.”

       “…음. 알겠다. 그러도록 하마.”

       “다음에 올 땐 이전처럼 괴상한 음식은 들고 오지 말고.”

       “하. 본좌가 설마 같은 실수를 할 성 싶더냐?”

       “그리고 말이다. 돌아가면 신교의 주방장에게 현대문물을 좀 알려주도록 하거라.”

       

       그 놈은 자신의 음식에 자부심을 지닌 녀석이니 쉬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래도 꼴에 요리사이긴 하니 자신이 틀렸단 걸 깨달으면 바뀌려 할 것이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백화령은 그리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 바깥으로 훌쩍 떠나가는 그녀를 보며 한서우에게 연락을 넣은 난 바루의 털에다 얼굴을 파묻었다.

       

       “민가야.”

       “무어냐.”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바루도 참 당황스럽겠구나.

       

       자기 앞에서 비슷하게 생긴 것들끼리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격하게 떠들어 댄 셈이니.

       

       거기에 안에 담긴 이야기도 정상적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지 않은가.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바루를 내보내고 이야기해야 한단 걸 깨달았을 터인데.

       

       나이가 들어도 어찌 지혜라는 건 쉬이 늘지가 않는구나.

       

       “조금 길고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될 듯해 움직이면서 이야길 하고 싶다만.”

       

       갑작스레 만나야 할 사람이 생겨서 말이다.

       

       여기서 가만 이야기를 할 틈이 없구나.

       

       “맘대로 하거라. 우리에겐 남는 게 시간이지 않나.”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는지는 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일단 하나는 걸고 넘어가자꾸나.

       

       “그런데 말이다 우리라는 표현은 좀 그렇구나. 하루 종일 탱자탱자 노는 것은 그대뿐이니까.”

       “허? 그대와 내가 다른 부분이 뭔지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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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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