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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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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능과 권능의 싸움’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금의 전투는 사실 존재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는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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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일부를 내보인 것 만으로 개그 주민의 정신을 무력화시키고, 권능까지 틀어막아 버린 ‘그 분’과 육체에서 영혼이 강제로 뜯어 낸 바람에 ‘개그 권능’이 전보다 훨씬 약해진 리안의 싸움은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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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 한 마리와 핵폭탄이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승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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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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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당연한 진실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리안의 목검에 튕겨 나간 권능이 하늘로 높게 치솟아 올라 모습을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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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헉… 진짜.. 쉼 없이…헉.. 공격하네…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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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바뀐 탓인지 그도 아니면 권능이 강해졌다고 느낀 게 착각이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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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쯤 되면 포기할 때도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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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속으로 우는 소리를 내며 끈덕지게 쫓아오는 시선에서 멀어지고자 발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벌써 1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렸더니 몸이 푹 퍼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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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달릴 테니까 쭈인님이 내 등에 -…”
    “헉,허억…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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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라거나 그런 이유로 고집을 피우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제스의 등에 탑승해 축 늘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이유는 ‘속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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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쳤다고는 하나 여전히 리안의 다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에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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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이 의도적으로 마왕성 내를 빙빙 돌게 만들지 않았다면 벌써 탈출하고도 남을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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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다 느려지면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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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공격이 마구 쏟아지고 있긴 했지만, 워낙 빠르게 이동하고 있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리안이 지나간 자리에 공격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만약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수십 개의 공격이 머리 위로 밤송이처럼 떨어져 내릴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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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유로 리안은 제스와 자리를 교대하고 싶어도 교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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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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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나아가려던 길에 외신의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리안은 날렵한 고양이처럼 빠르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멀쩡한 통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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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는 답이 없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떠올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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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운 숨을 연신 뱉어내며 고민에 잠기려는 순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돌멩이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현의 발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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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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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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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럽게 발이 돌멩이에 걸리고 몸이 앞으로 훅 쏠렸다. 제스는 곧바로 손을 뻗어 리안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오랜 마라톤으로 인해 반쯤 잊고 있었던 말랑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숨 막히게 머리를 감싸 안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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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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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을 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푹신한 쿠션 위였다. 제스는 주인을 지키려는 개처럼 리안을 반쯤 끌어안은 채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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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이 삐죽 선 채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제스를 안심시키고자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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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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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이 심한 날 쏟아지는 벼락같은 거친 소음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제스가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소리에 예민한 귀를 꾹 눌렀다. 잔뜩 찡그려진 제스의 눈이 외신의 공격으로 무너져내린 마왕성의 천장 너머, 우중충한 하늘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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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시선도 제스를 따라 그쪽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불길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검은색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운 채 어느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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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인되어있던 악마라도 소환될 거 같은 오싹한 분위기에 리안은 몸이 덜덜 떨렸다. 지금까지 몇 번 느껴보지 못한 ‘진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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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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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 마치 개그 세계의 신이 지독한 장난을 치기 전 눈을 가늘 게 뜬 채 “쿄쿄쿄”하고 웃는 장면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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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제스 어서 여기서 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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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다 끝을 맺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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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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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구름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무시무시한 게 나타날 것 같다는 긴장감이 마왕성에 내려앉은 그 순간, 먹구름이 빨려 들어가던 중심부가 쩌적하고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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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뾰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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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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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하지 못한 귀여운 효과음에 제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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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온다…”
    “쭈인님?”
   “안돼.. 이건 재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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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넋을 놓은 채 먹구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메이드 복을 입은 고양이 귀, 반달 모양으로 접힌 얼굴로 히죽히죽 웃는 표정, 화려하다 못해 번쩍 번쩍 빛이 나는 요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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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바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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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신이 완벽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개그 세계의 신, 여신은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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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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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 문제가 있어 보이는 대사를 외치며 나타난 여신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자세를 취하며 요술봉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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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뾰로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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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여운 효과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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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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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붙이는지 모를 말이 끝나자 콰과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신의 뒤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번개가 연신 번쩍거리며 그녀의 등장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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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외신이 왜 약해졌나 했더니… 재앙이 나타나서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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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이 정도로 격한 거부감을 보이는덴 다 이유가 있었다. 천계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여신과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의 여신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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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계의 머무르는 여신은 제멋대로의 성격을 가진 심연의 오타쿠였지만, 지상에 내려온 여신은 ‘개그의 현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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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겪었던 온갖 ‘개그스러운 일’이 가벼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온갖 ‘재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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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작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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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주민들조차 몸서리칠만한 그런 일들이 여신의 주변에선 숨 쉬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몇 번 여신의 개그에 휘말려 본 적 있었던 리안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스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번쩍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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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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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귀여운 소리를 내며 고장 난 것처럼 귀와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손이 리안의 상의를 덥석 붙잡아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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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 도망쳐야 해! 저 재앙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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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머릿속에 오로지 ‘도망’이란 단어로 가득하여 제스의 뻣뻣하고 귀여운 반응을 즐길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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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다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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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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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냐핫! 이제 네 차례다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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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뒤로 ‘그분’이라 불리는 외신에게 말을 거는 개그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찰나의 순간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만약 개그 세계의 신이 지면 어쩌지?’같은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빠르게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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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 싸움에 휘말리게 생긴 새우가 할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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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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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들어진 자세를 취한 채 외신을 바라보던 여신이 돌연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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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멋지게 등장해서 자기소개까지 맞췄으면 너도 눈치껏 자기소개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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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의 말에 외신은 어이가 없어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격이 높아 ‘자연’의 일부와 비슷하게 형질이 바뀐 외신은 ‘어이가 없다’는 감정을 느끼거나, ‘소리’를 이용해 대화하지 않았다. 
    ​
    ​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휘몰아치는 폭풍에서 분노를 찾는 것과 비슷했다. 말 또한 굳이 격을 낮춰 ‘소리’로 전달할 필요 없이 의념으로 전달하면 될 일이었다. 
    ​
    ​
    그런 그가 격이 끌어내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 내 말하고, 섬세하고 선명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선, 눈앞에 있는 여신이 그와 동등한 혹은 그보다 강한 신이어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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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의 격을 가진 존재가 아무런 제물도 대가도 없이 강림에 성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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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으로 다크 판타지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외신들은 제 본체의 일부를 보낼 뿐, 완벽하게 넘어오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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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의 격을 세계가 버티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차원의 틈이 그만큼 좁다는 이유도 있었다. 완벽하게 ‘강림’하기 위해선 아득한 정도의 많은 제물과 인과율, 준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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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물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체를 학살하다 보면 당연히 다른 외신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몰래 조금씩 죽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 강림에 필요한 제물의 수는 수백만을 가뿐하게 넘는 수였다. 다른 외신들에게 들키지 않고 조금씩 죽여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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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을 뚫고 어찌어찌 제물 준비가 끝났다고 쳐도 문제였다. 한 번에 많은 인과율을 소모하게 되면 당연히 차원 너머에 자리 잡은 본체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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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체의 일부 혹은 분신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진짜 본체는 차원 너머에 존재하기에 특정 외신이 인과율을 과하게 소모하면 들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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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론적으로 ‘강림’을 몰래 준비하는 건 불가능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격이 높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그 분’조차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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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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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권능과 권능의 싸움’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금의 전투는 사실 존재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는 전투였다.

존재의 일부를 내보인 것 만으로 개그 주민의 정신을 무력화시키고, 권능까지 틀어막아 버린 ‘그 분’과 육체에서 영혼이 강제로 뜯어 낸 바람에 ‘개그 권능’이 전보다 훨씬 약해진 리안의 싸움은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개미 한 마리와 핵폭탄이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승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까앙 – !

그런 당연한 진실이 경쾌한 소리와 함께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리안의 목검에 튕겨 나간 권능이 하늘로 높게 치솟아 올라 모습을 감춰버렸다.

“허억,헉… 진짜.. 쉼 없이…헉.. 공격하네…허억!”

몸이 바뀐 탓인지 그도 아니면 권능이 강해졌다고 느낀 게 착각이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목구멍 안쪽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이쯤 되면 포기할 때도 됐잖아!’

리안은 속으로 우는 소리를 내며 끈덕지게 쫓아오는 시선에서 멀어지고자 발을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벌써 1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렸더니 몸이 푹 퍼질 것만 같았다.

“내가 달릴 테니까 쭈인님이 내 등에 -…”

“헉,허억…안..돼..”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라거나 그런 이유로 고집을 피우는 건 아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제스의 등에 탑승해 축 늘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이유는 ‘속도’ 때문이었다.

지쳤다고는 하나 여전히 리안의 다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에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외신이 의도적으로 마왕성 내를 빙빙 돌게 만들지 않았다면 벌써 탈출하고도 남을 속도였다.

‘이보다 느려지면 무차별적인 공격이 쏟아지겠지.’

지금도 공격이 마구 쏟아지고 있긴 했지만, 워낙 빠르게 이동하고 있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리안이 지나간 자리에 공격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만약 속도가 조금이라도 느려지면 수십 개의 공격이 머리 위로 밤송이처럼 떨어져 내릴 터였다.

그런 이유로 리안은 제스와 자리를 교대하고 싶어도 교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콰과광!

그들이 나아가려던 길에 외신의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리안은 날렵한 고양이처럼 빠르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멀쩡한 통로로 이동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어.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떠올려야 해.’

더운 숨을 연신 뱉어내며 고민에 잠기려는 순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돌멩이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현의 발을 막아섰다.

터억!

“억?!”

부드럽게 발이 돌멩이에 걸리고 몸이 앞으로 훅 쏠렸다. 제스는 곧바로 손을 뻗어 리안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오랜 마라톤으로 인해 반쯤 잊고 있었던 말랑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숨 막히게 머리를 감싸 안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으어어..?”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을 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푹신한 쿠션 위였다. 제스는 주인을 지키려는 개처럼 리안을 반쯤 끌어안은 채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털이 삐죽 선 채 주변을 잔뜩 경계하는 제스를 안심시키고자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쿠구궁…!!

폭풍이 심한 날 쏟아지는 벼락같은 거친 소음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제스가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소리에 예민한 귀를 꾹 눌렀다. 잔뜩 찡그려진 제스의 눈이 외신의 공격으로 무너져내린 마왕성의 천장 너머, 우중충한 하늘을 향했다.

리안의 시선도 제스를 따라 그쪽으로 향했다. 당장이라도 불길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검은색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운 채 어느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봉인되어있던 악마라도 소환될 거 같은 오싹한 분위기에 리안은 몸이 덜덜 떨렸다. 지금까지 몇 번 느껴보지 못한 ‘진짜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당장…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해.’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 마치 개그 세계의 신이 지독한 장난을 치기 전 눈을 가늘 게 뜬 채 “쿄쿄쿄”하고 웃는 장면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려댔다.

“제,제스 어서 여기서 도망 -..”

리안의 말이 다 끝을 맺기도 전에.

쿠르르릉!

먹구름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무시무시한 게 나타날 것 같다는 긴장감이 마왕성에 내려앉은 그 순간, 먹구름이 빨려 들어가던 중심부가 쩌적하고 열리기 시작했다.

뾰옹!

“뿅?”

예상하지 못한 귀여운 효과음에 제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오..온다…”

“쭈인님?”

“안돼.. 이건 재앙이야..”

리안은 넋을 놓은 채 먹구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메이드 복을 입은 고양이 귀, 반달 모양으로 접힌 얼굴로 히죽히죽 웃는 표정, 화려하다 못해 번쩍 번쩍 빛이 나는 요술봉.

빠바밤!

개그 세계의 신이 완벽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순간,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개그 세계의 신, 여신은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어디선가 -..”

(저작권) 문제가 있어 보이는 대사를 외치며 나타난 여신은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자세를 취하며 요술봉을 휘둘렀다.

뾰로롱!

귀여운 효과음과 함께.

“냐앙 ~ !”

어째서 붙이는지 모를 말이 끝나자 콰과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신의 뒤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번개가 연신 번쩍거리며 그녀의 등장을 알렸다.

‘갑자기 외신이 왜 약해졌나 했더니… 재앙이 나타나서 그랬구나..!’

리안이 이 정도로 격한 거부감을 보이는덴 다 이유가 있었다. 천계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여신과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의 여신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천계의 머무르는 여신은 제멋대로의 성격을 가진 심연의 오타쿠였지만, 지상에 내려온 여신은 ‘개그의 현신’이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온갖 ‘개그스러운 일’이 가벼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온갖 ‘재앙’이 일어난다.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작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개그.

개그 주민들조차 몸서리칠만한 그런 일들이 여신의 주변에선 숨 쉬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몇 번 여신의 개그에 휘말려 본 적 있었던 리안은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스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번쩍 안아 들었다.

“흐얏?!”

제스가 귀여운 소리를 내며 고장 난 것처럼 귀와 꼬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손이 리안의 상의를 덥석 붙잡아 매달렸다.

‘도망, 도망쳐야 해! 저 재앙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리안의 머릿속에 오로지 ‘도망’이란 단어로 가득하여 제스의 뻣뻣하고 귀여운 반응을 즐길 틈이 없었다.

타다닷!

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냐핫! 이제 네 차례다 냥!”

등 뒤로 ‘그분’이라 불리는 외신에게 말을 거는 개그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찰나의 순간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만약 개그 세계의 신이 지면 어쩌지?’같은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빠르게 지워버렸다.

고래 싸움에 휘말리게 생긴 새우가 할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멋들어진 자세를 취한 채 외신을 바라보던 여신이 돌연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상대가 멋지게 등장해서 자기소개까지 맞췄으면 너도 눈치껏 자기소개를 해야지!”

여신의 말에 외신은 어이가 없어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격이 높아 ‘자연’의 일부와 비슷하게 형질이 바뀐 외신은 ‘어이가 없다’는 감정을 느끼거나, ‘소리’를 이용해 대화하지 않았다.

아예 감정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지만 휘몰아치는 폭풍에서 분노를 찾는 것과 비슷했다. 말 또한 굳이 격을 낮춰 ‘소리’로 전달할 필요 없이 의념으로 전달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 그가 격이 끌어내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 내 말하고, 섬세하고 선명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선, 눈앞에 있는 여신이 그와 동등한 혹은 그보다 강한 신이어야 가능했다.

‘…이 정도의 격을 가진 존재가 아무런 제물도 대가도 없이 강림에 성공했다고?’

기본적으로 다크 판타지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외신들은 제 본체의 일부를 보낼 뿐, 완벽하게 넘어오진 못한다.

외신의 격을 세계가 버티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차원의 틈이 그만큼 좁다는 이유도 있었다. 완벽하게 ‘강림’하기 위해선 아득한 정도의 많은 제물과 인과율, 준비가 필요했다.

제물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체를 학살하다 보면 당연히 다른 외신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몰래 조금씩 죽이는 방법도 있겠지만 -… 강림에 필요한 제물의 수는 수백만을 가뿐하게 넘는 수였다. 다른 외신들에게 들키지 않고 조금씩 죽여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가능을 뚫고 어찌어찌 제물 준비가 끝났다고 쳐도 문제였다. 한 번에 많은 인과율을 소모하게 되면 당연히 차원 너머에 자리 잡은 본체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본체의 일부 혹은 분신이 이곳에 있다고 해도 진짜 본체는 차원 너머에 존재하기에 특정 외신이 인과율을 과하게 소모하면 들킬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강림’을 몰래 준비하는 건 불가능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격이 높고 예민한 감각을 가진 ‘그 분’조차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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