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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187 – 보복>

     

    이사벨은 침상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폴나폴. 한가롭게 노니는 나비.

    활활활활! 부지런히 짖는 화염견.

    아이고 아이고. 애처롭게 뒤를 쫓는 3학년들.

     

    과제와 시험준비에 치이듯이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도 오크노디의 식사만큼은 빠지지 않고 하루 한 번씩 꼭 챙기던 그녀.

    얼마 전에는 간식도시락까지 따로 싸줄 정도로 한층 더 시간을 들였다.

     

    ‘너무 욕심 부렸나?’

     

    대련 도중 의식이 픽 꺼진다 싶더니, 눈을 뜨니 바닥을 기고 있었다.

    아카데미가 아닌 외지에서 겪은 부상이었다면 팔 하나를 영영 잃었을 수도 있는 중상.

    최고수준의 의료시설을 사용한 덕분인지 잘려나갔던 팔이 멀쩡하게 몸에 붙어있었다.

     

    ‘딱히 실감은 안 나지만.’

     

    꼼지락 거려도 깁스 속의 손은 갑갑하기만 하다.

    이게 정말 붙어있는 건지.

    깁스를 떼면 뚝 떨어지는 팔인지.

    신경이 100% 온전하게 연결된 건 맞는지.

    절로 심장이 콩콩 뛴다.

     

    ‘조금 쉴 때도 됐어.’

     

    예전에도 이런 날들이 있었다.

    에소니아 모험단 시절, 모험을 끝마치면 만신창이가 되어서는 기절하듯이 뻗었다.

    코를 간질이는 스프냄새.

    따스한 햇볕의 간질거림.

    뒷골목의 창턱에 내려앉은 참새와 담벼락 위의 고양이, 길바닥의 술주정뱅이들이 짖어대는 소리를 배경 삼아 쉬면 문이 열렸다.

     

    “이사벨. 어떠냐. 모험가 생활은. 할 만하냐?”

     

    턱수염이 거친 단장.

    수염으로 피부를 찌르는 못된 습관을 지닌 고슴도치 같은 사람.

    그 까끌거리던 수염의 감촉도, 주먹이 쏙 들어가고도 남는 크고도 거친 손바닥의 감촉도, 고막을 간질거리는 그 굵고도 안정감이 드는 목소리의 감촉도.

    이제는 전부 없다.

    그때와 같은 휴식과 자유인데 이제 그녀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은 없다.

     

    “어이. 몸은 좀 괜찮냐?”

     

    ‘사람’은 없지.

    수인은 사람이 아니니까 논외다.

     

    “병문안? 어울리지 않게 듬직하네.”

    “늘 같이 쏘다니는데 병문안도 안올 정도로 야박해보였나?”

    “같이 당했던 애는 어떻게 됐어?”

    “그 비키니아머라는 것이 의외로 방어력이 대단한가보더군. 급소는 피했고 네가 훨씬 심하게 다쳤다니까 안심해라.”

    “미안하게 됐네. 오크노디, 한참 바쁘던데 나 때문에 걱정을 끼치게 해서.”

    “나한테는 안 미안하냐?”

    “미안했으면 좋겠어?”

    “후. 이놈의 아카데미는 여자들이 기가 너무 세서 탈이야. 아주 기를 못 펴겠어.”

     

    투덜거리던 손오천을 간호사가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환자의 안정을 이유로 쫓아냈다.

    조용해진 병실.

    어린 시절에는 단장을 떠올리며 즐거웠던 침묵의 시간이 이제는 반갑지 않았다.

    요리에 심취한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보글보글.

    탁탁탁.

    요리를 하면서 나는 소리들은 피하고 싶은 기억을 멀리 하도록 도와줬으니까.

     

    부스럭.

    사박. 사박.

     

    조심스러운 기척이 느껴졌을 때.

    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들어와, 오크노디. 위험하게 창턱에 매달려있지 말고.”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 사이에 이쯤이야.”

     

    우쭐거리며 말하니 제법 기분이 나아졌다.

    창문도 문이라고 곧장 창턱을 넘나드는 버릇이 있는 오크노디.

    햇볕에 달궈진 벽돌을 짚고 오르며 냄새가 배었는지 뽀송뽀송한 이불과는 다른 느낌의 햇볕냄새가 났다.

     

    “이사벨. 어쩌다가 다쳤어요?”

    “대련 도중에 피로가 심해서 쓰러졌대. 요즘 잠을 잘 못자기는 했어. 추위도 많이 탄 것 같고.”

     

    오크노디의 얼굴이 죄책감에 물들었다.

     

    “혹시 저 때문이에요?”

    “왜 그런 소리를 해?”

    “제 도시락을 싸주느라 고생해서 잘 시간도 부족하고 그런 거잖아요. 저 이제 밥 안 해줘도 되니까 아프지 마요.”

     

    문득 헤스티아에게 들었던 오크노디의 친구 이야기가 떠올랐다.

    육신을 잃고 식물에 갇혀 영혼만이라도 구해주겠다고 끄집어낸 오크노디의 재단훈련생 시절 친구가 있다고 했었지.

     

    -마음고생 많이 한 아이야. 말하지 않아도 잘해왔겠지만 아카데미생활로 상처받지 않게 잘 지켜줘.

     

    미안해요, 헤스티아.

    저도 지켜주고 싶었는데 벌써 상처 입혔나봐요.

     

    “오크노디 때문이 아니야. 전부 내가 욕심을 부려서 그래.”

    “…알았어요. 이사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푹 쉬고 있어요.”

     

    돌아서는 오크노디의 뒷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오크노디?”

    “네, 이사벨.”

    “오크노디는 착한아이로 남아줬으면 좋겠어.”

    “물론이죠. 저는 착한아이인걸요!”

    “…그래. 몸조심하고.”

     

    거짓말쟁이.

    병실을 나서는 오크노디를 보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지겠구나.

     

    ‘대체 어디에 화풀이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나쁜 건 몸 관리를 못한 자신일 텐데.

    설마 대련을 했던 상대팀에게 손찌검이라도 하려는 건가?

     

    “의무실에 남은 자리가 없어.”

    “임시천막이라도 세워!”

    “피가 부족합니다. 신체가속을 걸어도 혈액생산량보다 손실량이 더 커요!”

     

    오크노디가 떠난 뒤로부터 정확히 16시간 뒤.

    불길한 예감은 보란 듯이 적중했다.

    이사벨이 입원한 의료동에는 새로운 환자가 잔뜩 들어차다 못해 밖에도 사람이 늘어설 정도로 엄청난 수의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오크노디…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이사벨은 두려워졌다.

    잘못된 길을 걷는 오크노디를 막지 못하는 것이.

     

     

    * *

     

     

    이사벨의 상태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체력이 떨어져서 벌어진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

     

    ‘마나의 잔향이 남았어.’

     

    모든 마나에는 고유한 성질이 담긴다.

    해안마을 출신 마법사의 마법에는 바다냄새가 풍기고, 오물투성이 뒷골목의 떠돌이마법사에게는 역겨운 악취가 풍긴다.

    영혼에 배인 냄새, 마음에 품은 풍경이 무의식적으로 마법에 섞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사벨의 신체에 남은 마나의 흔적으로부터 레이브 교수의 마나잔향을 감지했습니다.]

    [마도학 경험치+30]

    [추적 경험치+10]

    [안목 경험치+10]

     

    억까패턴을 반드시 일인당 하나씩은 지침하고 있는 제국교수들.

    그들의 마나잔향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어쩌다가 그들이 엇나가고 억까를 시작하는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당하면 갚아주는 것.

    자신의 원칙만 지킬 뿐.

     

    레이브 교수의 강의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제국마도학은 변방의 막돼먹은 마나학과 달리 하나의 특징을 지닌다.

    마나속성의 ‘전문화’를 통해 위력을 향상시키는 것.

     

    가령 물생성 마법의 경우.

    결집력을 키워 구체 형태로 만들어 누군가의 얼굴을 감싸게 만들면 호흡을 박탈시키는 <질식의 물구슬> 마법이 된다.

    생체마나를 뚫고 폐에 물을 생성시키면 <폐수종 유발> 마법이 된다.

     

    갈증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마법이 누군가를 죽이는 마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뾰이도 이사벨이랑 같이 쓰러졌다면서요.”

    “우와. 병문안도 와줬어? 너 정말 착한아이구나!”

    “…그렇지는 않아요. 오늘은 나쁜아이가 되려고 하는걸요.”

     

    확인 차 들른 또 다른 부상자 뾰이.

     

    “혹시 뾰이도 쓰러지기 전에 추위를 느꼈어요?”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막 죽음을 실감하기 전에 괜히 오한이 느껴지고 그러는 거.”

     

    뾰이에게도 쓰러질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확신이 섰다.

     

    [레이브 교수가 사용한 마법을 특정 지었습니다.]

    [마도학 경험치+30]

    [추적 경험치+10]

    [안목 경험치+10]

     

    그가 쓴 마법의 정체는 <온도전환>마법.

    사용된 전문화는 <급속>.

    추가술식은 <대상지정>, <휘발성>.

    결과적으로 시전 된 마법은 4써클 <지정급속냉랭>이었다.

    특정 장소, 특정 사람, 특정 물질을 빠르게 얼리는 마법을 오직 이사벨과 뾰이에게만 정교하게 펼쳤음을 알 수 있었다.

    한순간에 급격한 추위를 느끼게 만들어 몸을 얼어붙게 만들고, 심하면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로 혈압이 상승해 쓰러지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흔적이 사라지는 마법을 극히 찰나동안 발동했으니 조사관이 뒤늦게 조사에 나서더라도 레이브 교수를 잡아내긴 불가능하다.

    설령 걸리더라도 그가 사용한 것은 단순한 온도전환마법일 뿐.

    발뺌한다면 유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

    실로 교묘한 암살시도!

     

    ‘레이브 교수… 당신은 선을 넘었어.’

     

    수법은 좋았다.

    살상마법이 아니면서 목숨을 위협하고.

    은밀해서 흔적을 찾기 어렵고.

    들키더라도 발뺌할 수 있는 교묘한 마법.

    그러나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를 건드렸다.

     

    ‘되갚아주겠어. 당신의 소중한 학생들에게도 아픈 맛을 보게 해줄 거야!’

     

     

    * *

     

     

    의무실의 치료마법사는 입을 꾹 다문 제국 학생들을 앞두고 곤란함을 금치 못했다.

     

    “어휴. 이 답답이들아. 다친 경위를 말하지 않으면 너희만 곤란해진다니까?”

     

    의무실은 어디 암흑가에서 돈만 주면 어디서 입은 상처인지,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치료해주는 무면허치료실이 아니다.

    학생의 신원, 부상을 입은 원인, 처방마법과 치료경과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어딜 감히 우리 애를 건드려욧!

    -니들 때문에 우리애가 불필요한 재생마법을 받아서 수명이 줄었어. 제국최고재판소의 매운 맛을 보여줄 테니 그렇게 알아!

     

    혹시나 발생할 치료부작용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주된 사용처는 학부모들의 소송에 엄격하게 대응하기 위한 치료사들 나름의 자기방어를 목적으로 한 진료기록!

     

    “뒤는 내게 맡기시오.”

    “레이브 교수님. 역시 교수님은 뭔가 알고 계십니까? 이 아이들, 전부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고 전산에서…”

    “그만. 나도 상황을 파악하고자 찾아온 것이니 조사하는 동안 나가서 식사나 한 끼 하고 오시오.”

     

    익숙하게 포인트를 안겨주며 치료사를 내보낸 레이브 교수. 치료사가 떠나자 눈빛이 달라진 학생들에게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아라.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굳게 닫힌 제국출신 학생들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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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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