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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날이 점차 풀리며, 우리는 올해의 농사를 시작했다.

     

     

    아무리 마을에 역병이 돌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콱! 콱!

     

    홍염단의 대원들, 마을의 주민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밭으로 나와 작업을 이어갔다.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들과, 그들을 간호하는 인력, 빨래나 요리를 이어가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가 이 작업에 매달렸다.

     

     

    우리는 언제나 복면을 두른채 생활을 이어갔고, 복면을 두른채 잠에 들었다.

     

     

    때로는 이러는 행동에 의미가 있나 싶을때도 있었다.

     

    특히나 나는 더욱 그랬다.

     

     

    시엔은 그나마 제 두건을 두른채 얌전히 숙면을 취했지만, 나의 두건은 언제나 아침이 되면 벗겨져 있었으니.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영지 전체에 퍼진 우리의 규칙이었기에 이대로 이어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감염자는 계속해서 늘어, 200명에 근접해갔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 기세는 당장에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감염이 된 사람들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길이 달리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버티고 견뎌야할 기간이었다.

     

     

    블랙우드에서 도착한 인력은 군말없이 우리를 계속해서 도왔다.

     

     

    네르는 익숙했던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점차 마을에 정착해가는 듯 했다.

     

    그들의 도움은 엄청난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번즈도 나름대로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내게 매일 아침 인사를 건네왔다.

     

     

    그런 모습에 이전보다 마음이 놓이긴 했다.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퍼진 역병에, 또 쓰러진 주민들에…인력이 점차 부족해지고 있었다.

     

    역병이 퍼지기 전부터 대두되었던 문제였다.

     

     

    도적들은 여전히 잡초처럼 우후죽순 피어났고, 시작된 농사일은 더디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

     

    나는 괭이를 내려놓으며, 1년 반에 걸쳐 개간한 넓은 토지를 바라보았다.

     

    얼었던 땅이 녹은만큼 우리는 땅을 한 번 갈아엎고 있었다.

     

    그 과정속에서 미처 뽑아내지 못했던 나무뿌리나 돌을 걸러냈다.

     

     

    이 기본적인 작업조차 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바란이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시간을 맞출 수 있으련지 모르겠습니다.”

     

    “…”

     

    “아침 바람이 쌀쌀할 때 씨앗을 심어두어야 한다 들었는데… 이 기세로는…”

     

     

    “늦게 되겠지.”

     

    곁으로 다가온 게일도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200명 그 이상의 인력이 빠졌는데…정상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게 오히려 욕심이야.”

     

    “…”

     

    고민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는 걱정을 덧붙였다.

     

    “게다가 역병이 계속해서 퍼지고 있는 상황이니 일은 점차 더뎌지겠지. 이건 시간 내에 맞추기 어렵다네. 올해의 농사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인데…”

     

     

    그의 걱정의 말이 잘못됐다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당장에는 힘을 뺄 뿐인 말이었다.

     

     

    -쿠직!

     

    ‘야! 아오…진짜…’

     

    저 멀리서는 말이 끌고 가던 쟁기가 또 망가진다.

     

    “…또 부서졌군요.”

     

    바란이 그 모습을 보며 한탄을 흘렸다.

     

     

    당장은 농기구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특히나 쟁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각도를 잘못 맞추면 전혀 써먹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인근 귀족들에게 얻어온 정보를 토대로 만든 쟁기였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스탁핀의 땅이 다른 곳의 땅보다 거칠고 단단한게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마을 전체가 농사일에 관해서는 초보였다.

     

    1년만에 바뀔 상황도 아니었고.

     

     

     

    게일은 그 모습에 혀를 차며 농기구를 내려놓았다.

     

    “…읏차차…”

     

    그리고는 허리를 풀며 말했다.

     

    “잠시 쉬러 가지. 머리도 정리하고, 서류도 치울겸.”

     

    “…”

     

     

    농기구가 망가지며 맥이 풀려버린 사람들을 보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

     

    네르는 환자들을 돌본 이후 베르그를 위해 요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네르님…이런 건 안하셔도 괜찮은데…”

     

    네르와 친했던 여인들이 그런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네르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네르는 이런게 아니라면 베르그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그녀도 고뇌하고 고뇌해 선택한 길이었다.

     

     

    시엔이 애초에 요리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걸 지난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간도 잘 맞추지 못했고, 불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 약점을 파고들 계획을 짠 것이다.

     

    그녀는 반죽을 열심히 주물러,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벌꿀파이를 만들어보고 있었다.

     

     

    힘들때면 언제나 먹었던 음식.

     

    과거 제 형제들과 친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때 또한, 이 벌꿀파이를 만들어 그들에게 다가갔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계획이었다.

     

     

    네르는 저 멀리서 요리를 이어가고 있는 시엔을 곁눈질 했다.

     

    그녀는 알지 못하겠지만 네르는 나름의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우스운 경쟁심이었다.

     

    이미 베르그를 남편으로 둔 시엔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다니.

     

    무엇을 하더라도 이미 패배한 싸움 아닐까.

     

     

    …그럼에도 네르는 싸움을 이어갔다.

     

    한번만이라도 시엔보다 더 큰 칭찬을 받아보고 싶었다.

     

     

    “…앗. 탔다…”

     

    저 멀리서 시엔이 말한다.

     

     

    네르는 그런 시엔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음식 자체는 이미 이긴 듯 했다.

     

    타버린 음식에게 질 네르가 아니었다.

     

    벌꿀파이만큼은 어릴때부터 만들어 왔기에, 무엇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

     

     

    식사 이전 생겨난 짧은 틈에, 나는 게일과 함께 서류를 처리하러 집무실로 들어왔다.

     

    우리는 재빨리 일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번즈는 어떻게 하고 있지?”

     

    그러다 게일이 물었다.

     

    게일도 번즈의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게일은 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우두머리 조로 활동했던만큼, 번즈를 향한 어느정도의 애정을 키운 것 같았다.

     

     

    서류를 작업하다 가볍게 물어오는 게일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

     

    “…블랙우드를 부른게 옳은 선택이었던 거겠지.”

     

     

    나는 네르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겠군요.”

     

    “………….”

     

     

    게일은 이후로 긴 침묵을 선택했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자꾸만 나를 향했다.

     

    그의 기묘한 분위기를 파악한 난, 그에게 천천히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게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문제야 많지. 농사는 어떻게 할지, 도적들은 어떻게 관리할지, 역병은 또 어쩔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민해봐야 답이 없는 문제들 아닙니까. 주어진 상황속에서 최선을 다하기나 해야죠.”

     

    “…”

     

     

    그 말에 게일이 대답을 망설인다.

     

    입을 열다가도 다물기를 반복한다.

     

    원체 어떠한 말이든 시원하게 하던 그가 이토록 다음말을 망설이니 괜히 이상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나는 그런 게일을 재촉했다.

     

    그 말에 맥이 풀린 듯, 게일은 짧은 한숨과 함께 밝혔다.

     

    “…원래라면 제안하지 않았을 거야.”

     

    “…?”

     

    “…하지만 오늘 편지가 한통 도착했네.”

     

    그리고는 서랍에서 그 편지를 꺼내 가볍게 내려놓았다.

     

    -툭.

     

    나는 그 갑작스러운 가문 문양에 놀라는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문양이었다.

     

     

    셀레브리엔.

     

     

    “…”

     

    이혼 이후 블랙우드와는 달리 지극히 조용했던 아르윈이었기에 예상하지 못한 문양이었다.

     

    게일이 말한다.

     

    “…블랙우드의 원조를 구했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지한 듯 하더군.”

     

    “…..”

     

    “…그래서인지…빚을 갚겠다고 나서고 있어. 이 편지를 읽어보면 알거야.”

     

     

    나는 그 말을 건네오는 게일에게 말했다.

     

    “역병에 관한 문제라면 이미 블랙우드의 원조로 충분합니다.”

     

    “그런 도움을 주겠다 말한게 아니야. 당장 우리 상황을 어떻게 안건지…가장 필요한 제안들만 들어가 있네.”

     

    “…”

     

    나는 게일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어 셀레브리엔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었던건…바로 필체였다.

     

     

    아르윈의 필체로 적혀있는 편지.

     

    나에게 문자를 알려줬던게 그녀였던만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병이 돌며 마을이 어려워졌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더군. 농사에 도움될 지식과 자원도 가져와준다고 하고.”

     

    “…”

     

    “…베르그. 난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

     

     

    게일의 말대로 셀레브리엔이 대체 어떻게 유추할 수 있었던건지, 우리가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해주겠다는 제안이 수 없이 들어가 있었다.

     

     

    특히나 우리가 부족했던 농업 지식에 대한 제안이 많았다.

     

    엘프들이 살아온 기간을 생각해본다면 누구보다 지혜로운 지식을 가지고 있을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블랙우드 때도 느꼈던 껄끄러움이 발목을 잡는다.

     

    “…”

     

    망설이는 내게 게일이 말했다.

     

    “블랙우드의 도움을 받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당장 영지가 흔들리는만큼 셀레브리엔의 힘도 받아 나쁠게 없어.”

     

    “…게일…저는…”

     

    “…이해는 한다네. 하지만 베르그. 우리는 당장 쟁이 하나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상상 이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일세. 이 기세로 언제 땅을 뒤엎고 또 갈겠나. 언제 씨앗을 심겠어.”

     

    “…”

     

    “….이보다 좋은 길이 없기에 내가 말을 하는 것이야. 또 한 번 자네가 부담을 짊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네. 하지만 결국 걸을 수 밖에 없는 길 아닌가? 도움 없이 이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다 확신하나?”

     

    “…”

     

    “당장 누군가가 건네오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어.”

     

     

    그의 말이 다 옳다는 건 안다.

     

    하지만 네르가 영지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여기에 아르윈까지 온다면 어떻게 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미 골머리는 충분히 썩히고 있었다.

     

     

    편지를 쥔채 생각을 이어가는 내게 게일이 말했다.

     

    “베르그. 마지막 문장은 읽어봤나?”

     

    “…?”

     

     

    나는 게일의 말을 따라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확인했다.

     

    ‘추신. 베르그 라이커 공에게. 저는 당신을 잊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마음도 더는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저 옛정을 생각해 도움을 제안하는 것이니, 부담을 느끼시지 않기를. -아르윈 셀레브리엔-’

     

    “………..”

     

    딱딱한 아르윈의 고백이 담겨 있다.

     

    나를 잊었다는 말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역시 장생종이라 단명종은 금방 잊게 된걸까.

     

    따지고 보면 그녀의 길었던 수명 중, 우리가 함께한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미련은 금방 내려놓을 수 있었던걸지도 몰랐다.

     

     

     

    그 사실로 인해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과는 별개로, 아르윈이 적은 추신에 부담이 보다 가벼워지기는 했다.

     

    괜히 느꼈던 압박감도 많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빠른 선택은 내리지 못했다.

     

    아직 감안해야할게 많이 남아있었다.

     

     

    게일은 이런 내게 시간을 주기로 결정한 듯 말했다.

     

    “…생각 좀 해보고 결정하게.”

     

    “…”

     

     

    “하지만 하나 말하자면, 판단을 빠르게 내릴수록 유리할 거야.”

     

     

     

    나는 게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끄덕였다.

     

     

    ***

     

     

     

    모든 요리가 완성이 되어, 네르는 집으로 돌아왔다.

     

    안에는 베르그가 먼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 왔어, 벨.”

     

    시엔이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네르는 그 의미없는 행동조차 너무나도 부러웠다.

     

    서슴없이 그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게 질투났다.

     

    자신은 베르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끝없는 변명들을 생각해내야 했는데 말이다.

     

     

    베르그는 시엔에게 다가가 그녀의 음식을 들어주었다.

     

    무뚝뚝한 그의 눈가가 반달로 휜다.

     

    “…별 일 없었지?”

     

    그리고는 시엔만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응.”

     

    시엔도 그에 기쁜 말투로 답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낀건, 둘은 서로에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서로에 대한 설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자꾸만 공기를 맴돌았다.

     

    …그리고 그 공기가 언제나 네르를 숨막히게 했다.

     

     

    네르는 그들에게서 억지로 눈을 떼어냈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힘들었다.

     

     

    “…수고했어.”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확!

     

    네르의 고개가 그 목소리에 급히 돌아간다.

     

    “…”

     

    베르그가 자신을 짧게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게 아니라는 듯 말해주는 것 같았다.

     

     

    네르는 말을 더듬거리며 답했다.

     

    “아…그….응. 고, 고마…아니, 너도, 베르그.”

     

    “…”

     

    네르는 그 가벼운 말에 믿기지 않는 환희가 들어차는게 느껴졌다.

     

    소름이 몸을 타고 흐른다.

     

    당장 베르그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베르그는 말 없이 자리에 착석했고, 네르도 입을 달싹이다 자리에 앉았다.

     

     

    베르그가 라안에게도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안은 고개를 저으며 간결히 답했다.

     

    “아닙니다.”

     

     

    그렇게 가벼웠던 인사가 끝나고, 수저가 놓였다.

     

     

    네르는 방금 느꼈던 환희를 마음속에 꼭 간직한 채, 제 요리를 설명했다.

     

     

    “…베…베르그. 이거 벌꿀 파이야. 잘 구워졌으니 한 번 먹어봐.”

     

    “…”

     

    자신이 벌꿀 파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베르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먼 과거, 베르그가 자신을 위해 이 음식을 가져와준 적도 있었으니.

     

    아마 집의 보수공사를 이어갔을 때 그가 챙겨와줬을 것이다.

     

    그녀가 스탁핀에 도달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베르그가 챙겨주었던 음식이었다.

     

     

    그러니 둘만이 알고 있는 어떠한 의미를 담은 음식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베르그는 눈동자를 굴려 네르를 바라보았다.

     

    “…”

     

    “…”

     

    네르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베르그가 이내 먼저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피했다.

     

     

    이어서 시엔이 곁에서 제 음식을 설명했다.

     

    “…오…오늘도 좀 태웠어, 벨.”

     

    “익숙하지, 뭐.”

     

    “좀 이상하게 만들어져서…혹시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에 베르그는 피식 웃고, 시엔의 코를 장난스레 꼬집었다.

     

    그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네르는 자꾸만 질척한 감정들이 피어났다.

     

     

    ‘…오늘도…할까…’

     

    속으로 몰래 입술을 훔치는 상상마저도 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상황에 노출될때마다 그녀는 더 극단적인 생각만을 이어나갔다.

     

     

    입을 맞출때만큼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

     

    베르그가 다시 자신의 것이 된 것 같고, 자신 또한 베르그의 것이 된 것만 같았으니.

     

     

    “먹자.”

     

    베르그의 신호에 모두가 수저를 들었다.

     

    네르는 시엔의 음식부터 맛보기로 했다.

     

    스튜와도 비슷한 그 무언가를 제 접시에 덜었다.

     

    예민한 후각이 더 강렬히 반응한다.

     

     

    네르는 시엔의 음식을 입에 넣고…곧장 생각할 수 있었다.

     

    이긴게 확실해졌다.

     

     

    그 누가 판단하더라도 자신의 벌꿀파이가 훨씬 질이 좋았다.

     

     

    시엔도 그 사실을 이내 알아차린 듯 했다.

     

    조금은 속상한 표정으로 네르의 음식과 자신의 음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르는 그 표정을 인지하지 못한것처럼 자연스레 식사를 이어갔다.

     

    동시에 베르그가 자신의 벌꿀파이에 손을 올리기만을 기다렸다.

     

     

    “맛있네.”

     

    하지만 베르그는 시엔의 음식에만 손을 올릴 뿐이었다.

     

    타버린 재료가 들어가 있는 스튜였지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엔의 음식이 맛없다고 하던 태도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시엔을 칭찬했다.

     

     

    베르그는 네르와 추억이 담긴 벌꿀파이에는 손도 올리지 않았다.

     

    의도한 것인지, 혹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잘…됐는데…’

     

    네르가 홀로 생각했다.

     

    자신의 자신작을 먹어주지 않는 베르그의 모습에 가슴이 자꾸만 아려왔다.

     

     

    감정이 자꾸만 하늘과 땅을 번갈아 왕복한다.

     

    한순간 행복했다가도, 한순간 슬퍼진다.

     

     

    네르는 자신의 벌꿀파이를 조금씩 덜어먹으며 감정을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다.

     

    “라이커 공, 이것도 드셔보세요. 맛이 좋네요.”

     

    그때, 라안이 곁에서 파이를 가리키며 베르그에게 말했다.

     

     

    베르그는 라안의 말에 잠시 멈칫한다.

     

    “…”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러겠습니다.”

     

     

    베르그는 이후 망설임 없이 벌꿀파이를 잘라 제 접시에 놓았다.

     

    그리고는 한입씩 그 음식을 먹어갔다.

     

    “…”

     

    네르는 베르그가 무슨 감상을 내놓을까 한참을 기다렸지만, 베르그는 그저 배만 채울 뿐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시엔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어때?”

     

    끝내 기다리지 못한 네르가 물었다.

     

    “…맛있어.”

     

    “저…정말?”

     

    “응. 맛있네.”

     

    “…”

     

     

    칭찬을 들었지만, 어째서인지 네르는 행복해지는 기분을 전달 받지 못했다.

     

    …시엔에게 해주는 칭찬이랑 조금 달랐다.

     

     

    어투가 딱딱한게 원인일지도 몰랐다.

     

    아내가 아닌만큼 필요 이상의 칭찬은 해주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감정은 배제한 칭찬.

     

     

    ‘…아.’

     

    네르는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베르그의 눈에는 시엔이 언제나 더 사랑스러워 보일거라는 걸.

     

    “…”

     

    ….자신이 여전히 그의 아내였다면, 시엔이 받고 있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을까.

     

    맛없는 음식을 가져다주어도 맛있다 말하며, 저렇게 열심히 먹어줬을까.

     

     

    베르그는 파이를 해치우고 다시 시엔의 음식을 퍼먹었다.

     

    그는 시엔에게 다시금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다음에도 만들어줘.”

     

    시엔은 그 말에 아까의 부끄러워하던 태도도 내려놓고 배시시 웃었다.

     

     

    네르는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며, 결국 고개를 숙였다.

     

    꼬리마저도 축 처진다.

     

    그녀는 결국 그렇게 힘 없이 남은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이는만큼…그녀 안의 음습한 생각도, 크기를 키워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 써놓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책상에 앉아 잠에 들었습니다…이런 날도 있네요.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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