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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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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회의가 끝나고, 나와 맹주님은 곧장 천자를 조견(朝見)하기 위해 떠날 채비를 했다. 

        ​

        이번 임무에는 맹주와 맹주의 호위무사들, 그리고 서련이 함께하기로 했기에 당분간 나와 같이 지낼 수 없게 된 혜령이는 잔뜩 실망한 기색이었다.

        ​

        “아저씨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해요…”

        ​

        “저, 저도 은공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슬픕니다…”

        ​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니 그동안 승마술이나 잘 배워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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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직접 가르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나는 아쉬워하는 둘을 남겨두고 짐가방을 맸다. 짐이라고 해봐야 이번에는 갈아입을 옷 정도였기에 짐가방은 평소보다 가벼웠다.

        ​

        어차피 맹주님이랑 같이 불편한 여행을 하는 건데 노숙을 하게 되어도 알아서 챙겨주겠지. 나도 엄연히 사신 비스무리한 역할로 궁에 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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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나름 맹주님 사위가 되었으니 호위도 받을 수 있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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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호위를 받을만한 일이 생길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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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가 머무는 궁은 개봉에 있는 데다, 무림맹과 개봉의 거리는 중원 기준으로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실질 거리는 한반도를 세로로 주파하는 거리 정도지만.

        ​

        가는 길에 녹림이나 장강수로채가 수작질을 부릴 것 같지도 않고, 되려 몸을 사라지 않을까. 그쪽도 초절정 고수가 하나 있지만 우린 둘이니까. 

        ​

        그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내 몸은 말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마구간에 이미 도착해있었다.

        ​

        “아, 자네 왔는가?”

        ​

        “장노야. 풍운 상태는 어떻습니까?”

        ​

        “슬슬 답답해하는 것 같으이.”

        ​

        “잘됐군요.”

        ​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쐬자.

        ​

        한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미안하고. 

        ​

        “푸히힝!”

        ​

        “그래그래. 이제 나갈 테니까 그만 핥아.”

        ​

        혜령이가 기껏 머리 빗어줬는데 침으로 범벅되겠네.

        ​

        나는 풍운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며 슬며시 고삐를 잡고 문을 열었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온순해진 풍운은 얌전히 내 인도를 따라 좁디좁은 마구간을 나와 투레질을 했다.

        ​

        “실컷 달릴 테니까 너무 보채지 마라.”

        ​

        집합 장소가 맹주전 앞이랬던가.

        ​

        나는 안장에 가방을 체결시키고 풍운 위에 올라탔다. 풍운은 내가 올라타자 기쁜 듯 울고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지만 참는다는 얼굴.

        ​

        나는 놈의 갈기를 어루만지며 맹주님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

        ​

        “아, 자네. 왔구먼.”

        ​

        “편하게 사위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

        “자네,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군?”

        ​

        초장부터 너무 세게 질렀나.

        ​

        나는 맹주의 관자놀이가 툭 불거진 것을 확인하고는 어물쩍 웃으며 그의 옆으로 이동했다. 맹주의 말이 풍운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겁먹은 듯 주춤했지만, 맹주가 고삐를 쥐고 손으로 달래자 금세 얌전해졌다.

        ​

        잘 길들이셨네.

        ​

        “오랫동안 키우신 말 같습니다.”

        ​

        “적풍말인가? 망아지 시절부터 손수 먹이를 줘가며 기르곤 했다네.”

        ​

        “그렇군요.”

        ​

        “한 때 적토마 같은 말로 자라기를 빌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더군.”

        ​

        “종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래도 만족한다네. 솔직히 무림인이 말을 탈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게 공적인 일이 아니었다면 냅다 경공이나 쓰면서 수도로 단숨에 달려갔을 걸세.”

        ​

        “무림인은 그렇지요.”

        ​

        “허허, 자네는 무림인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군.”

        ​

        “저도 이제 어엿한 무림인이긴 하지만, 아직 몸에 밴 버릇을 고치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

        “기병이라고 했나? 그럼 말과 친하겠군.”

        ​

        “그뿐입니까? 저희는 말에게도 보법을 가르칩니다.”

        ​

        “허어.”

        ​

        맹주는 내가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말에게 경공이라니.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

        하지만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소양이었다. 

        ​

        말의 생존율을 높이고 기동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려면 무거운 마갑을 입고도 전장을 종횡무진으로 활약할 수 있는 보법의 유무가 치명적으로 다가왔으니까.

        ​

        이슬람 왕국들이 성전 초반에 기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린 것도 말에게 가르치는 보법의 탓이 컸다.

        ​

        보법을 제대로 배운 군마는 곡선 기동이 아니라, 갑작스레 90도로 꺾는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도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

        단장은 말째로 덤블링을 하는 미친 곡예까지 보여줬던가.

        ​

        사실상 잘 훈련된 군마는 기사의 다리나 마찬가지였으니, 가능하면 나도 풍운에게 보법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말한테 오러코어를 만들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살려면 해야지.

        ​

        문제는 나도 훈련법을 듣기만 했지 실전에선 해보지 않았다는 건데.

        ​

        …그래도 이론은 빠삭하니까 실전만 잘하면 되겠지.

        ​

        지금은 하지 못하는 일은 묻어두고, 나는 맹주님에게 물었다.

        ​

        “맹주님. 서련 소저는-”

        ​

        “가가.”

        ​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아버지 죄송해요. 준비를 하다 보니 늦어버렸네요.”

        ​

        “아니다 딸아. 그럴 수도 있지. 아직 시간이 되지도 않았단다.”

        ​

        우아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탄 채로 다가온 서련은 평소보다 새하얀 얼굴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진심 화장이라는 건가. 

        ​

        평소에는 가벼운 화장만 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진심인 얼굴. 

        ​

        아버지와 내 앞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공적인 일이라 그런 건지.

        ​

        어느 쪽이든 지금의 서련은 그 누구도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것은 확실했다.

        ​

        “어머, 저한테 마음을 뺏기셨나요?”

        ​

        “조금?”

        ​

        “허허…”

        ​

        맹주님은 이걸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화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곤, 우리를 쳐다보았다.

        ​

        “사이좋은 게 보기 좋구나. 허허…허…”

        ​

        “당연한 일이랍니다. 평생을 함께할 낭군님이니까요.”

        ​

        평소보다 거리가 가까운데. 

        ​

        아예 작정하고 약혼녀 노릇을 하겠다는 건지, 평소보다 부쩍 가까워진 채로 내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은 서련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

        평소랑은 다르게 요염함이 섞인 웃음.

        ​

        …조금 무서운데.

        ​

        반대편에서 나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맹주님의 따가운 시선이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노려보고 있잖아.

        ​

        “맹주님. 슬슬 출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크흠, 알았네. 이제 출발하겠다!”

        ​

        “존명!”

        ​

        맹주의 선언에, 사방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하게도 우리를 둘러싼 호위무사들이 낸 소리였다. 

        ​

        “개봉까지는 족히 나흘 정도면 도착할 걸세.”

        ​

        “다행이군요.”

        ​

        “별일은 없겠지만…일이 잘 풀릴지는 모르겠구나.”

        ​

        “일단 부딪혀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

        “틀린 말은 아니구나.”

        ​

        우리는 개봉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

        ————————

        ​

        “노예가 노예를 부린다라…얄궂구나.”

        ​

        평생 겪어보지 못한 훈련 방식에 반발하는 마인들을 강압적으로 제압하며 훈련시키는 그의 수하들. 

        ​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가진 맘루크 기병대의 수장, 파르스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애병을 마른 천으로 닦아냈다.

        ​

        “새, 새로운 하늘이시여.”

        ​

        “그런 호칭은 필요 없다. 철목환이라고 했던가?”

        ​

        “예, 예…그렇습니다.”

        ​

        한때 마교에서도 위세를 부리던 장로였던 자라고 하기에는 겁을 집어먹은 모습. 

        ​

        겁먹은 개처럼 구는 그의 모습에서 누가 마교의 위상을 엿볼 수나 있을까.

        ​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저 이방인 앞에서, 그들이 신처럼 믿던 천마와 천마신공이 박살 났으니.

        ​

        그들이 믿던 하늘이 무너져 내렸으니, 남은 것은 망령된 노인뿐.

        ​

        “전쟁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

        “보, 보급 준비는 끝났습니다.”

        ​

        “진격로는 정했나?”

        ​

        “예.”

        ​

        “재밌겠구나.”

        ​

        파르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마치 농부가 수확한 작물들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

        ​

        그는 나른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샴쉬르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검집에 집어넣었다.

        ​

        ‘중원과의 전쟁이라,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

        전쟁을 위해 태어났으니, 전쟁을 위해 살 뿐.

        ​

        파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

        평범한 행위. 하지만 그런 행위에도 장로의 얼굴에 긴장이 달렸다.

        ​

        “출정은 보름 후가 좋겠군.”

        ​

        “예? 하지만…”

        ​

        “대답.”

        ​

        “예…알겠습니다. 그리 하달하겠습니다.”

        ​

        장로는 자리를 벗어날 명분이 생겨났다는 사실에 기쁜 듯 발을 놀려 명령 하달을 위해 되돌아갔다.

        ​

        꽤나 빠른 걸음이었다.

        ​

        파르스는 장로가 그런 모습을 보이건 말건 품에서 파이프를 꺼내 약초를 넣고 불을 붙였다.

        ​

        ‘이번에는 그 녀석같이 좀 더 재밌는 상대가 있었다면.’

        ​

        그는 오래전 결판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입에서 독한 연기를 뿜어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전투표날이었구나…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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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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