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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시련명 : 흑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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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스 하스펠트, 혹은 타락하지 않은 에테르가 플레어를 개발하면 인류는 정령 외에도 절멸급 마수에 대항할 수단을 얻게 된다. 결과적으로 마왕군은 한시적인 열세에 몰리게 되고, 무너진 전선을 가다듬고자 제국 전역에 생화학 테러를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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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첫 번째 시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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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명 : 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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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 갇힌 1황자가 풀려났다. 1황자는 마수의 세뇌에 저항할 수 있었고, 인망도 두텁다. 그의 유능함은 제국에 숨어든 마수들도 쉬이 꺾어내기 어려웠다. 마수들은 위험의 싹을 완전히 뿌리뽑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명분을 만들어 1황자파를 숙청하려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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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두 번째 시련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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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명 : 증기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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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레트에 불의 로드스톤이 도착했다. 본래 마수들은 이 로드스톤을 온건한 방법으로 장악하려 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고, 마수들은 제국에서 철수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로드스톤을 가져가기 위한 최후의 발악으로, 로즈마리는 틸레트 아카데미에 대한 직접적인 공세를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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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세 번째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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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 시련과 3번 시련은 서로 엮여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한쪽이 성사되면, 다른 쪽도 성사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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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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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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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멜은 미친 사람처럼 내달렸다. 폐부에 이산화탄소가 들어찼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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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는 것조차도 힘에 부친다. 정령이 있었으면 더 빨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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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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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쯤 누구 한 명 죽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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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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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멜은 제일 먼저 카레야스 관을 찾았다. 연성부 동아리가 있는 건물이었다. 버멜은 이곳에서 에테르가 만들어 둔 전자기파 펄스 생성기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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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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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YSTEM : ‘EMP 발생장치(고급)’ 완성된 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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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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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상태창의 보조가 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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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줄기가 굵어지는 중이었다. 버멜을 재빨리 펄스 생성기와 자신의 몸에 인챈트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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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더리 아이템 ─ 방철(防鐵)의 물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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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속 시간이 30분 남짓인 귀한 물건. 온갖 기연과 기연을 다 모아서 겨우 제작해 낸 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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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몸에 증기가 묻어도 철화(鐵化)하지 않을 것이다. 즉, ‘증기의 비’ 시련에 나타나는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한 권장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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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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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악! 버멜은 EMP 생성기를 안은 채로 3층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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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계마도로 낙하 속도를 조정하면서 화단에 착지했다. 증기의 비를 맞은 주변 식물은 고엽제를 뿌린 것처럼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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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랜튼의 세뇌는 쉽게 풀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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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장의 허락을 받아 퇴학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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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숨어 지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 사태가 벌어질 걸 예측하고 오히려 계속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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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아카데미 주변에 미리 5개의 토템을 박아두었다. 블랜튼이 건 주술을 해제할 수 있는 ‘역전진’의 각 꼭짓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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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진을 작동하려면 다섯 토템에게서 동일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부분에 마력을 흘려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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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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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전진을 작동시키는 장소는 아카데미의 중앙부. 그곳에 있는 핵을 내리쳐야 세뇌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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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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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멜은 하늘에 뜬 거대한 거북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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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거북이 새끼부터 먼저 잡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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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지대계 말예, 반타 토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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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말석이지,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되는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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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장갑 두께만 따지자면 요르에 버금가는 수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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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군 초기 멤버인 사천(四天)을 제외하면 가장 단단한 장갑을 지닌 게 반타 토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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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동성, 공격력, 마도 감응력이나 지능을 모두 포기하고 오로지 방어력에만 올인한 거북.

       ​

       그런 녀석의 행동 패턴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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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고, 비를 내리게 하고, 그 비로 사람들을 마수로 만들며 전진한다.아주 가끔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미더덕 먹을 때처럼 씹어뱉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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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가 다른 마수가 회수하면 역할은 종료. 정말이지, 파괴만을 위한 병기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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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멜은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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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도움 없이도 조기에 저 녀석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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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마음을 찢어놓았다. 분노가 치밀었고, 속이 뜨거운 스프를 넘긴 것처럼 아릿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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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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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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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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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차차착! 번갯불이 피어오른다. 나트륨 빛깔을 머금은 전기의 창이 거북의 턱주가리를 강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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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앙! 진공파로 인해 잠시나마 비가 멈추었다. 버멜은 풍랑을 맞으며 반타 토터스가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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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터스의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앞다리를 바둥거리며 중심을 잡는다. 쿠웅! 몸이 들썩였다. 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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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타 토터스가 고개를 꺾었다. 잘만 진격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주춤거렸다. ‘무언가’에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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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급 전계마도 ─ 일렉트릭 스피어(Electric S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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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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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멜은 환희에 찬 얼굴로 광장을 향해 달려나갔다.

       ​

       ​

       **

       ​

       ​

       파직! 파지직!

       ​

       손에 정전기가 맴돌았다. 본관은 양장본을 덮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

       “위력이 모자라구나.”

       ​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반타 토터스가 지닌 장갑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

       당장 쓸 수 있는 금안족 전용 마법은 이 정도뿐이다. 보다 높은 위계의 마도를 사용하려면 ‘에테르’에게 몸의 지분을 더 내주어야 했다.

       

       나는 시야가 닿는 모든 곳을 둘러보았다. 엘프는 많은데, 버멜은 아직도 안 보였다.

       ​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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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춤거리던 놈이 다시 전진을 시작한다. 나는 머리에 핏기가 쭉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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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본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력량을 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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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수에 맞지 않는 마법을 사용한 페널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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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여신이 우리 종족 전체에 내린 페널티라고 할 수 있겠지.

       ​

       쏴아아아!

       ​

       잠시 주춤거리던 녀석이 전진을 재개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어디로? 회랑 말고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

       나는 비가 묻은 손을 펴보았다. 내 손은 멀쩡했다. 은색으로 변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쏴아아아아아!

       ​

       이젠 장대비가 쏟아진다. 안개에, 폭우에. 시야 확보가 어렵다.

       ​

       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 처마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명뿐.

       ​

       뿌우우우.

       

       촌각을 다투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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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저 새끼를 조져놓아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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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퍼스를 빼내며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헤를라인 선생님이 자신의 스태프를 내리며 나를 막아섰다.

       ​

       “…무모한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렴. 선생님이 원거리 공격으로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

       헤를라인은 스태프를 쳐들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괴물들을 막을 준비를 했다. 정신을 차린 다른 마도사들도 그녀를 따라 요격 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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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열 종대로! 수계와 지계는 전열에서 근거리 마수를 견제하라! 화계와 공계 전공자는 뒤로 빠져서 장거리 포격을 준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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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척, 척!

       ​

       “아, 안 돼! 하지 마!”

       “저 애는 내 딸이야! 공격하지 말라고!!”

       ​

       회랑에 모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격하려는 자와,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허둥거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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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자에 속한 사람 대다수가 일반인이었다. 아카데미 식구가 아니라, 성도에 터를 잡고 사는 민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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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를 대하는 군인과 민간인의 자세는 이리도 달랐다. 전자는 비장한 눈빛이었고, 후자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

       그리고 그것은,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입생도 마찬가지였다.

       ​

       “이, 이에 대체 무슨 일이냐구…….”

       ​

       프레이가 바들바들 떨었다. 꼭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말고는 진정시킬 길이 없었다.

       ​

       ​“프레이, 나 믿지?”

       ​

       바람 앞의 촛대처럼 흔들리던 고동색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프레이는 헉헉대며 숨을 가라앉히려 했다.

       ​

       “뭐, 뭘 어떻게 하려고!”

       “나 믿지?”

       “미, 믿는다니 뭘…?”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또 어떤 짓을 하더라도 친구로서 믿어줄 수 있느냐고.”

       ​

       프레이는 의중을 알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나는 그녀를 에리카 일행에게 맡겼다.

       ​

       “선생님,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뭐? 안 돼! 선생님이 여기서 떨어지지 말라고 얘기했잖아!”

       “메릴다, 날 따라와.”

       “네? 왜, 왜요?”

       ​

       설명할 시간 없었다. 가볍게 메릴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

       “야, 에테르! 어디 가! 돌아와!”

       ​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튀었다. 뒤통수에서 따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

       메릴다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

       “어디 가시는 건데요!”

       “박물관.”

       “로드스톤이 보관된 곳 말인가요?”

       “그래.”

       ​

       그중에서도 ‘내면의 거울’이 있는 3층이 목적지였다.

       ​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저예요?”

       “에리카는 다쳤고, 제롯인가 뭔가 하는 하이엘프는 재수 없잖아.”

       ​

       크게 심호흡하며 박물관 계단을 서너 개씩 뛰어올랐다.

       ​

       착!

       ​

       마침내 거울 앞에 도달했다.

       ​

       “이거 도박이다, 진짜.”

       ​

       저번과 마찬가지로 거울에는 한 소녀가 비쳤다. 쌍둥이 여동생인 아카샤처럼 백발을 한 소녀 말이다.

       ​

       거울 속의 ‘내’가 웃었다. 나도 미간을 찌푸린 채로 웃었다.

       ​

       “메릴다, 갑자기 내가 정신나간 년처럼 보이잖아? 그러면 주저 없이 로멜에게 가.”

       “네? 뭘요? 왜요?”

       “잔말 말고 그놈한테 가서 전해. 아주 잠깐이었지만, 즐거웠다고.”

       ​

       그게 무슨 뜻이냐며 메릴다가 묻는 사이.

       ​

       나는 거울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

       텅, 하는 감각이 들며 뒤로 나자빠졌다.

       ​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을 맞대고 있다가 떨어뜨린 느낌이었다. 중심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저기요, 괜찮아요?”

       ​

       메릴다가 넘어진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한동안 비틀거리던 소녀는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힌 채 후우, 하고 날숨을 쉬었다.

       ​

       에테르는 머리를 싸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돌아버리겠군.”

       

       그녀의 눈에는 난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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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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