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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뜰채를 옆으로 던져 버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잔야의 지팡이로 지면을 내려찍었다.

        

       잔야의 지팡이 끝에서 선명한 얼음 결정 모양이 새겨졌다. 그것은 서서히 크기를 키워 나가 지면에 또렷이 새겨졌다.

       

       곧, 차가운 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정당방위다.”

        

        

       3개의 연푸른빛 마법진을 전개했다. 동시에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엄동의 파란]의 술식도 계산하기 시작했다.

       

       저놈에게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식은땀이 한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기서 다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공신제 기간엔 미야와 그림자 마족을 조지고 내 경험치로 삼아야 하니까.

        

        

       “아이작 학생?!”

       “지금 미쳤어요?! 멈추라고요!!”

       “진정하라는 말 안 들립니까?!”

       “당장 안 멈추면, 강압적인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교직원들도 마법진을 전개하거나 각자의 무기를 빼 들었다.

        

       그러나 긴장한 기색은 차마 감추지 못했다. 나나 피에르가 그들보다 훨씬 강하니까.

       

       심지어 쟤네는 전투 인력도 아니라 방해만 될 뿐이었다.

        

       나는 피에르를 노려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진정하라는데 뭐 하냐? 설마 나한테 당했다고 빡 돈 거야?”

       “…….”

        

        

       피에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은 나를 죽일 생각으로 만연할 뿐이었다.

        

       물론, 녀석이 오로지 자기 기분만을 따라 행동하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 행동 기저에는 이성적인 판단도 작용하고 있었다.

        

        

       팔라딘 4인방은 내가 이름 없는 영웅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앨리스가 나를 의심해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평소에는 섣불리 나를 건드리지 못 하지만.

        

       이렇게 전교생 앞에서까지 내가 힘을 숨기려 든다면, 나는 클로버 팔라딘에게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력량을 비교해 보면 나와 피에르가 싸울 때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하니까. 내가 이기려면 숨겨진 힘이라도 발휘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저놈의 판단은 이렇다.

        

       만약 내가 이름 없는 영웅이고, 이 상황에서까지 힘을 숨겨 크게 다쳐 버렸다고 가정해보자.

        

       치유 마법으로 회복된다고 한들 공신제 기간 동안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고.

        

       병원에 있으니 보는 눈이 많아지지.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마침 공신제 기간엔 그림자 마족이 모습을 드러낼 테니 이름 없는 영웅이 나서야만 한다. 그 사실을 앨리스와 팔라딘 4인방은 알고 있을 터.

        

       병원의 눈을 빌리는 건 내 정체를 까발리기에 아주 유용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극적인 속도로 회복하고 자유의 몸이 되어도 문제다. 의심의 골이 깊어질 테니까.

        

       그리고 지금, 피에르는 나를 치기 위한 적당한 명분을 손에 넣지 않았는가.

        

       자신이 왜 아이작을 공격한 건지, 팔라딘이라는 이유와는 상관없는 동기를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것도 전교생이 납득할 만한 동기를.

        

       아카데미에 마족과의 내통자가 있다는 정보가 나도는 판에 그런 명분은 몹시 쓸 만할 터.

        

       즉, 제 한 몸 희생해 앨리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할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짐작했고, 마법진을 전개한 것이었다.

        

        

       “아이작, 선배였지…? 상냥하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피에르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나 선배 한번 죽여보려고 해. 알아서 잘 피해 봐.”

        

        

       피에르는 그리 말하고는 지면에 물 원소 마법진을 구축했다.

        

       커다란 마법진이 궤적을 그려 나갔다. 내 발 밑도 그 마법진의 사정권에 속해 있었다.

        

        

       ‘미친….’

        

        

       이 마법진의 형태를 어찌 모를 수 있을까.

        

       6성급 물 원소 마법 [고래 비상].

        

       1학년 1학기 학기말 평가 때 루체가 사용하여 주위를 초토화시켰던 마법이었다. 고래 형상의 물덩이가 튀어나오는 마법으로, 그 속에선 건물조차 깨부수는 강력한 수류가 흐른다.

        

       심지어 저놈의 마력량과 분노로 일구어 낸 [고래 비상]에 휩쓸린다면, 아무리 나라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터였다.

        

       대항하려면 빠르게 도망치거나, 놈보다 강한 힘으로 [고래 비상]을 얼리거나 못 튀어나오게 막는 방법뿐. 그러나 그 방법들은 모두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도망치려 해봤자 저놈은 곧바로 [고래 비상]을 시전할 것이고.

        

       아직 내 실력으론 수류가 격렬하게 흐르는 그 물 원소 마법을 얼려내지 못할 테니까.

        

        

       “경고입니다! 빨리 마법진 거두세요!!”

       “피에르 학생!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교직원 수 명이 [얼음 창]과 [암석 붕괴], [화염구] 따위를 시전하고 일부러 피에르를 빗맞췄다. 위협 사격이었다. 그저 실격 처리된 학생들을 데리러 왔을 뿐인 행정 인력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피에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답잖은 경고는 짜증스럽기만 할 뿐. 놈은 생기 잃은 눈동자로 오로지 나만을 노려볼 뿐이었다.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엄동의 파란]의 마법진을 전개했다.

        

       땅에서 바위기둥을 끌어올려 도망치면서, [엄동의 파란]으로 조금이나마 [고래 비상]에 대항할 생각이었다.

        

       바위기둥은 피에르의 마법에 단숨에 박살 나겠지만, 한꺼번에 몇 개씩 끌어올리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시도 안 하면 뒤질 테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집중한다.

        

       지면에서 푸른 마법진이 강렬한 빛을 뿜어대자, 나는 얼음 원소 마법을 발동했다.

        

        

       그 순간.

       

       차라랑, 거리며 청아하고도 맑은 소리가 귀청을 울리고.

        

       코앞에서 엄청난 마력이 내려앉았다.

        

        

       쿠우우웅!

        

        

       “아앗!”

        

        

       단숨에 땅이 푹 꺼져 중심을 잃었다. 넘어질 뻔했으나 잔야의 지팡이로 땅을 다시 짚어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와 피에르 사이로, 비상식적으로 강력한 중력이 내려앉은 듯했다. 그 탓에 [고래 비상]은 발동되었어도 중력에 찍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동시에 하늘에서 우렁찬 우레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에르에게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마른하늘에 먹구름이 뭉게뭉게 떠올라 있었다. 저것은 뇌운. 자색 번개가 상공을 갈랐다.

        

       먹구름 안에서 검은 뇌조의 형상이 비쳤다. 그 마수는 천둥번개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연이어 붉은 바람이 태풍처럼 몰아쳤다. 셀 수 없이 많은 칼날이 형상화된 듯한 날카로운 바람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차라랑!

        

        

       피에르 주위로 형형색색의 별빛 마법진이 전개되어 일제히 그를 노렸다. 사방으로 포위된 그는 눈살을 찌푸리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 명의 여학생이 그의 주위로 모여 있었다. 모두 그를 포위하고서, 팔을 뻗고 마법진을 전개한 채였다.

        

        

       “…….”

        

        

       별빛 마력을 타고 온 마녀 모자를 쓴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학생, 도로시 하트노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굴 죽인다고…?”

        

        

       자색 번개 마력을 휘감은 로즈골드색 머리칼의 여학생, 루체 엘타니아. 생기가 감돌지 않는 칙칙한 눈동자와 살기 어린 목소리가 피에르를 향했다.

        

        

       “가소로운 소릴 하시네요?”

        

        

       핏빛 바람에 담녹색 양갈래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학생, 카야 아스트레앙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는 악식의 인격다운 조소를 흘렸다.

        

       연이어 파견된 황실 기사 중 유독 강한 일부 전력, 필립 멜트런 교수처럼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일부 교직원들이 일제히 나타나 나와 피에르를 포위했다. 10명에 달하는 수였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전에 모두 우리를 막으러 온 것이었다.

        

       처음엔 당혹감이 들었고, 서서히 감탄스러워졌다.

        

        

       “애기야.”

        

        

       등 뒤에서 보드랍고도 풍만한 감촉이 느껴졌다.

        

       귀를 간지럽히는 상냥한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려 연금발의 여학생을 눈에 담았다.

        

       앨리스 캐럴. 그녀가 내 뒤에 꼭 달라붙은 채 내 팔을 살며시 짚었다.

        

       만면에는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더 곤란해지기 전에 그만두지 않을래?”

       “앨리스 선배…?”

        

        

       이 녀석들이면 나는 물론이고, 피에르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마법진을 거두자 앨리스는 “옳지, 착하네.”하고 녹아 내리는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낭창낭창한 손이 내 팔에서 스르르 흘러내렸다.

        

        

       “친구야.”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임에도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말 상대는 내가 아니라 피에르였다.

        

       마녀 모자의 챙은 도로시의 눈가에 거무스름한 장막을 드리웠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마력 탓에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만하자? 저 애 건드리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거든.”

        

        

       피에르는 인상을 찌푸리곤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를 쳐다보는 척하지만, 정확하게는 나를 뒤에서 껴안은 앨리스와 눈을 마주친 것이었다.

       

       앨리스는 내 어깨에 턱을 올린 채였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표정은 아닐 것이었다.

        

       피에르는 눈을 감고서 한숨을 푹 내뱉고는 마법진을 거두었다.

        

       저 녀석의 마력량은 S급. 사고를 일으키면 아카데미에선 특별 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피에르가 돌발 행동을 벌이자 아카데미에선 즉각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도로시나 카야도 아카데미 지키는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에 이곳에 나타나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루체는 잘 모르겠지만.

        

       이내, 피에르는 여느 때의 잘생긴 미소를 머금고 양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항복할게요. 제가 잠깐 이성을 잃었….”

       [분노의 꼬리 치기!]

       “끄윽!”

        

        

       언제부턴가 소환되어 있던 작은 범고래 사역마, 벨로가 피에르의 뒤통수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콱, 하고 둔탁한 충격음이 울리고 피에르의 고개가 앞으로 확 젖혀졌다.

        

       아프겠다.

        

        

       [네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이작을 건드리면 이 용맹한 범고래 벨로가 가만두지 않겠다!]

        

        

       어린 남자아이 같은 목소리로 벨로가 소리쳤다. 든든한 놈이었다.

        

       피에르는 착실한 연기력으로 벨로를 바라보며 “하하.”하고 상냥한 미소를 흘렸다. 계획이 실패했으니 더는 눈에 띄는 짓을 벌여선 안 될 테니까.

        

        

       “어, 오, 그…!”

        

        

       진행자 에이미의 당황한 목소리가 아카데미에 울렸다.

        

        

       “네에! 어찌저찌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실격되신 아이작 선수와 피에르 플랑체 선수는 얌전히 퇴장해주세요!!”

        

        

       그 와중에 진행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건지, 에이미는 큰 목소리로 경고하듯 소리쳤다.

       

       돌발 행동을 벌인 피에르의 양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마력 순환을 방해하는 특수한 마도구 수갑이었다.

       

       반면에 내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피에르에게서 내 몸 지키고자 마법진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명백했으니.

       

       우리는 학사 인력들에게 둘러싸인 채 경주로를 떠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글이 잘 안 적혀서….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

    치즈맛체리님 20코인 후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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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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