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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샤를로트는 꽤 즐거워 보였다.

        

       하긴, 이쪽도 생각해보면 앨리스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처지였다. 앨리스처럼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사랑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것 또한 아니다.

        

       벨부르 왕은 훌륭한 부모이자 조국을 사랑하는 왕이라고 원작에서 나오긴 하지만, 그 ‘왕’이라는 지위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샤를로트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샤를로트는 분명 제대로 된 예의범절도 모르고 자랐겠지.

        

       그리고, 법적으로는 아직 청소년이었지만, 그런 법이 제정된 것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아직 대중의 머릿속에서는 걸을 수 있고 물건을 옮길 수 있으며 지시사항에 따를 수 있는 머리가 있다면 어른이나 다름없었다.

        

       열다섯이면 평민이라면 이미 공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었을 나이였다. 남녀 상관없이.

        

       그러니 귀족이나 왕족, 황족의 눈에 그 정도 나이의 아이는 본격적으로 귀족이나 황족, 왕족으로 키워도 될 아이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치를 가르치고, 칼 같은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하고 싶은 것을 참는 법을 배우고.

        

       샤를로트가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정말로 샤를로트가 이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어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벨부르 안에도 유명한 학교라면 있을 거고, 어쩌면 샤를로트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그곳에 이미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제국의 황녀가 둘씩이나 다니는 아카데미에 제국의 유력 귀족가의 아이들이 몰려드는 아카데미이니 가서 정세를 파악하라는 벨부르 국왕의 명이 있었겠지.

        

       샤를로트는 나름대로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조금 전 옥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귀찮고 싫은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조금은 배덕감이 느껴지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그런데, 실비아.”

        

       “예, 왕녀님.”

        

       “왕녀 말고 샬럿이라고 불러요. 지금은 ‘잠행’ 중이니까.”

        

       샬럿이라는 제국 식 이름을 쓰기에는 너무 대놓고 벨부르 억양을 쓰고 있는데?

        

       뭐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지금 샤를…… 아니, 샬럿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교복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적당히 산 것 같은, 평민들이 자주 입는 원피스였다. 그러니까…… 흔히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에서, 여주인공이 초반에 입고 나올 것만 같은 수수한 갈색 원피스.

        

       물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샤를로트가 입고 있으니 평범한 여주인공 소리는 못 할 것 같았다.

        

       샬럿은 한술 더 떠서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묶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본인은 평민 흉내를 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솔직히 샬럿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별로 평민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걸음걸이부터 바꾸는 게 우선 아닐까?

        

       “그렇다면 제 이름은 실비아 그대로일 이유가 있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에요.”

        

       내 말에 샤를로트…… 아니, ‘샬럿’은 볼을 살짝 부풀렸다.

        

       “당신은 지금 전혀 변장하고 있지 않잖아요. 심지어 입고 있는 옷도 교복 그대로고. 제가 당신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꿔 부른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죠?”

        

       “…….”

        

       샬럿의 말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창한 일요일이다. 비록 날씨는 꽤 쌀쌀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코트를 걸치면 그럭저럭 견딜 정도는 되었다.

        

       남학생들끼리, 여학생들끼리. 종종 남녀 커플이 주변을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뭔가 물건을 사러 나온 학생도 있는 것 같았고, 아니면 그냥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 웃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다시 샬럿을 보았다.

        

       내가 굳이 표정을 바꾸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는지, 샬럿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그래도! 표적이 이 장소에서 벗어날지 모르는 거잖아요? 아카데미 학생들이 많은 장소는 이 근처뿐이니까요.”

        

       “그렇다면 변장은 그때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시간을 되돌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녀 본 적이 많은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사실 잠입할 때는 교복을 입고 있건 드레스를 입고 있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주변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가 아니라면 내가 웬만큼 튀는 옷을 입고 있지 않은 한 나를 특정해서 신경 쓰는 일은 별로 없다.

        

       물론 아카데미의 교복은 이상하게 현대적인 디자인이었으니 그걸 입고 그냥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다소 튀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위에 코트를 걸치는 것으로 적당히 군인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내가 황녀라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은 내 얼굴 잘 모르고. 뭐,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하고 일부 평민들과도 어울리고 있으니 이제 내 얼굴도 세간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긴 하다만.

        

       “그러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분장을 할 것이 아닌 이상 그렇게 오래 걸릴 일도 없습니다만?”

        

       “에잇!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요! 잔말하지 말고 얼른 다른 옷으로 입죠!”

        

       여기서 옷 같은 걸 갈아입으면 저 앞에 있는 레오와 소피아를 놓칠 것 같은데?

        

       하지만 샬럿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내 팔을 잡아끌어서 옷 가게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음, 뭐.

        

       그냥 즐기시도록 두자.

        

       솔직히 옆에서 계속 태클 거는 것도 꽤 재밌고.

        

       *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오와 소피아의 뒤를 놓치지는 않았다.

        

       소피아의 머리카락은 꽤 선명한 보라색이었기에 눈에 확 띄었다.

        

       그런 소피아가 알아서 레오와 거리를 벌리고 레오를 따르고 있었으니, 우리는 그 선명한 보라색 머리만 조금 거리를 둔 채 따라가면 되었다.

        

       소피아는 우리를 알아차리지는 못한 것 같았다.

        

       “…….”

        

       음, 처음에는 소피아가 레오를 따라다니는 게 어떤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레오는…… 레오가 하는 일은 정말로 별거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빵집으로 가서 빵을 잔뜩 사고, 헌 옷 집에 가서는 옷을 잔뜩 산다.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가방에 차곡차곡 넣는다.

        

       누가 검술 수련한 주인공 아니랄까 봐, 꽤 무거워 보이는데도 전혀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레오가 왜 그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샤를로트는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샤를로트도, 이제는 레오의 행동에 조금 의문이 생긴 모양이었다.

        

       “저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짐작이 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확신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이런저런 짐을 잔뜩 진 레오가 향한 곳은, 근처의 후미진 골목이었다.

        

       “어…….”

        

       그리고 샤를로트는 그 골목의 초입에 가고 나서야 정신이 조금 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들어가기 꺼려지긴 하지.

        

       레오는 애초에 검술에 자신이 있기에 들어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여러 번 방문해본 적이 있는 거겠지.

        

       그건 소피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뒤를 따르는 것을 보면.

        

       물론 내 실력이나 샤를로트의 실력을 생각하면 들어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샤를로트는 왕녀가 아닌가. 저런 곳에 들어가면서 호위 하나 없이 가는 것이 영 꺼림직하게 느껴지겠지.

        

       지금 내 허리춤에는 총이 한 자루 있긴 했다. 굳이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몇 명 정도 처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리고 총을 쏘면 총소리를 듣고 곧장 레오가 달려올 거고.

        

       만약 샤를로트가 이쯤에서 그만두고 돌아가겠다고 한다면 나도 그만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샤를로트는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샤를로트를 잠시 그대로 두고, 나는 골목 입구에 있는 건장한 사내를 향했다.

        

       척 보기에 몹시 껄렁해 보이는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그냥 길거리 건달치고는 옷을 꽤 잘 입었다. 누더기 진 옷이 아닌, 신사 흉내라도 내는 것 같은 제대로 된 정장. 물론 전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아가씨?”

        

       내가 다가가자마자 그 남자는 곧장 자세를 공손하게 바꾸었다. 보아하니 이런 일을 자주 해본 것 같았다.

        

       “이 골목 안을 여성 둘이서만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위험하겠죠?”

        

       “물론입니다, 아가씨. 물론 들어가는 것을 저희가 막을 권리 같은 것은 없지요. 하지만…… 제게 말씀을 거신 것을 보니 아가씨는 그렇게까지 세상 물정을 모르시는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솔직히, 이 남자를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골목 입구에 당당하게 서있는 것, 그리고 저렇게 옷을 빼입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런 일로 먹고 사는 인물인 건 알 것 같다.

        

       종종 호기심 많은 귀족, 혹은 평민 상류층 사람 중 일부는 저런 하층민의 삶마저 궁금하게 여기기도 한다.

        

       물론 복지정책이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고.

        

       문자 그대로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말이다.

        

       이른바 뒷골목 관광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상품’을 계속 팔아먹으려면 이런 최소한의 신뢰는 있어야겠지. 그래야 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계속 오니까.

        

       나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품 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안에 있던 파운드화 지폐를 적당히 꺼내 건넸다.

        

       “어이쿠, 이렇게 많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제국 황녀님처럼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돈의 액수를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하는 것을 보니, 역시 이 나라는 계급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역시 돈이 최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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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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