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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사각,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봉합을 마무리했다.

     

    “자매님, 부탁합니다. 전원 신성력 보조해.”

     

    “크아악! 앞이 안 보이오!”

     

    앰브로시아가 짧은 팔을 버둥거렸다. 소란 중에 마스크가 뒤틀린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스크를 들어 벗겨버렸다.

     

    “푸햐.”

     

    여태 답답했었는지 크게 숨을 몰아쉬는 앰브로시아.

    그녀가 자세를 바꾸고는 새로 신성력을 휘감아 치유주문을 발동했다.

     

    배리어를 시전하느라 신성력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빌려가라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보조했다.

     

    ―콰앙!

     

    “넌 못 지나간다! 친구를 방해하지 마라!”

     

    무대 밖에서는 기슈타가 도끼를 휘두르며 호쾌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뭐야! 인간 맞나?!”

    “함부로 덤비지 마라! 야수가 틀림없다!”

     

    왕국 병사가 그녀를 경계해 물러선다. 이제 방해는 없겠지.

     

    “하압!”

     

    앰브로시아가 시전에 들어가자 환자가 풍성한 빛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봉합 부위가 아물어간다. MRI로 내부를 찍어 환부가 착실히 붙을 때까지 그녀를 도왔다.

     

     

    [체력 13/14]

    [마취됨 67%]

     

     

    진단으로 체크하니 마취도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앰브로시아의 주문은 강력하다. 환자가 깨어날 때 즈음이면 잔통은 거의 없겠지.

     

    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걸 보니 치유주문을 어느 정도 마이크로 컨트롤까지 하는 모양인데.

     

    생각보다 훨씬 실력 좋네.

     

    “폐호흡 기능합니다.”

     

    의사가 보고한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내 역할은 끝났다.

    수술실은 엉망이었지만 수술은 성공했다.

     

    “후처리 들어가. 환자 놀라지 않게 잘 챙겨주고.”

     

    나는 클로에에게 사탕을 두 개 넘겨주었다.

     

    “하나는 너 먹어도 돼.”

     

    “저, 저 그렇게 돼지 아니에요오.”

     

    불평하는 클로에를 남겨두고, 나는 장갑을 벗으며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

     

     

     

    무대에서 일어난 사태에 귀빈석의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당장 전쟁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에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이제 막 출범한 연합군이 벌써부터 이렇게나 위태롭다. 다른 국가의 권력자들도 황제와 국왕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폐, 폐하. 무대를 보십시오!”

     

    왕자 한 명이 호들갑을 떨어서 국왕이 성질을 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지금 무대가 뭐가 중요하다는…”

     

    황제에 시선을 고정하던 국왕은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무대 위, 어린 고든 3왕자가 잠에서 덜 깬 모습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는 모습이 똑똑하게 스크린에 비쳤기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벗은 클로에의 손을 잡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3왕자.

     

    그는 분명하게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었다.

     

    “이, 일어섰다!”

    “맙소사!”

    “불구를 일으켰어!”

    “정말 등허리를 고쳤더니 다리가 나았잖아!”

     

    관중석에서 탄성과 함께 환호, 갈채가 쏟아졌다.

     

    국왕은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 단단히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윌리엄스의 국왕이여.”

     

    중후한 목소리가 귀빈석에 울렸다.

     

    이 사태가 되도록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무대를 관람하던 이.

     

    황제였다.

     

    “저기 네 아들의 옆에 선 치유사는 짐의 어의다.”

     

    덤덤하게 말하는 황제.

    국왕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감사 인사는 됐다.”

     

    황제의 그 말과 함께 상황은 종결됐다.

     

    국왕은 군사를 거두라는 명령을 내렸고, 긴장 상황은 해제됐다.

     

    이 사태는 제국에서 파고들면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왕국과 시비를 가릴 커다란 안건이 분명했다.

     

    무력충돌까지 일어나 버렸으니, 배상을 요구하며 불복하면 보복전쟁을 일으킬 명분까지 되리라.

     

    하지만 황제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 건은 여기서 끝내겠다.

    연합군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들은 국왕 역시 더 일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

     

    어째서 자신이 여태 황제에게 한 번도 이길 수 없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무대에서는 월광궁의 의사들이 3왕자와 함께 인상적인 시연의 값으로 군중의 갈채를 받고 있었다.

     

    마침내 잠이 완전히 깬 3왕자가, 자신이 어느새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함박웃음을 띄우며 신기해한다.

     

    몇 년 쓰지 않은 다리에 아직은 힘이 없어 어색해했기에 클로에가 부축해주고, 안정을 취하기 위해 금방 퇴장한다.

     

    교대하듯 뛰어나온 이는 어느새 깔끔한 백의로 갈아입은 의사.

     

    월광궁의 고트베르크였다.

     

    “시연은 여기까지입니다! 도중에 사소한 오해가 있어 조그마한 사고가 있었습니다만,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 말아주시길!”

     

    그가 꾸벅 허리를 숙이니 환호가 더욱 거세졌다.

     

    “내 이런 치유술은 태어나 처음 봤어!”

    “치유술이 아니라 의술이라잖나!”

    “저 양반이 누구랬지?”

    “고트베르크! 자네 약이라고 못 들어봤나? 상단이 요즘 광고 뿌려대는 그거 만든 양반이야!”

    “먹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그 수상한 물건이 가짜가 아니었단 말인가? 허어!”

     

    웅성거리는 민중을 향해 라스의 커진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훌륭한 수술을 보여준 제국 월광궁의 의사들에게 박수 부탁드리죠! 마지막까지 멋진 치유주문을 보여주신 앰브로시아 어의님입니다!”

     

    라스의 소개에 앰브로시아가 뿌듯해하며 작디막한 몸을 스트레칭 하듯 쭉쭉 뻗었다.

     

    “어의라니, 저 작은 여자가 말인가?”

    “황제의 주치의 아닌가!”

    “어쩐지 신성력이 어마어마하다 했어!”

     

    슬그머니 대중이 시선을 앰브로시아에게 주목하도록 돌리는 라스.

     

    처음부터 수술이 끝나면 그녀는 정체를 공개해 시선을 돌리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도 마스크가 벗겨진 건 계획 밖이었지만, 수술하던 장면이 직접 스크린에 비치진 않았고, 무대는 객석에서 멀다.

     

    수술 중엔 팀원의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을 테니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진 않았을 터.

    이로써 용사파티의 후보로 거론될 일은 없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 것도 그 의도였다.

     

    하지만 고트베르크의 유명세 자체는 이 시연의 책임자라는 위치를 보여주면서 얻을 수 있다.

     

    모두 라스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왕국의 무력 개입까지는 좀 과하긴 했어.’

     

    그 지경이 되기 전에 황제 선에서 막히리라 생각했는데, 라스의 예상보다 귀빈석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실제로 수술을 집도한 게 라스였다는 걸 알아본 이는 이미 그를 알던 제국 귀빈석의 황족 정도였다.

     

    황제는 능수능란한 라스의 실력을 구경해서 만족했다는 듯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국왕에게 말했다.

     

    “시연이 끝났군. 우승자를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소.”

     

    국왕이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가 교황에게 화살을 돌렸다.

     

    “교황님. 치유 부문은 어디에서 우승해야 한다 보시오.”

     

    교황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 충돌하려던 제국과 왕국. 그 충돌은 누가 봐도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그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이유도 있었고, 교황 역시 시연 내용으로도 자신들이 한 수 아래라고 속 깊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들의 성녀 후보라 한들, 앉은뱅이를 한순간에 일으킬 수는 없다.

     

    “허허, 여신님께서 기적을 목도할 기회를 주셨으니, 마땅히 만인에게 알려야겠지요.”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않는 한에서 교황이 돌려 대답했다.

     

    결국 다수결에 의해 치유사 부문은 월광궁이 우승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셀라, 고트베르크에게 알려라.”

     

    “예, 폐하.”

     

    황제의 명령을 받들며 아셀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3왕자는 마저 휴식을 취하도록 대기실 안쪽 방으로 보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이후 재활치료를 하며 반응을 볼 기간이 필요하다.

     

    애프터케어는 확실하게 해야지.

     

    “선생님, 저희가 우승이랍니다.”

     

    휴고가 소식을 전해줬다.

    의사들이 신나서는 팔짝 뛰며 환호했다.

     

    “라스! 더 부술 게 없어!”

     

    대기실 복도에서 의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으니 기슈타가 달려왔다. 한참 나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닌 모양이었다.

     

    “수고했어. 덕분에 무사히 수술 끝났어.”

     

    “하하,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이 동네는 더워서 힘이 잘 안 난다.”

     

    기슈타가 목뼈를 뚜둑거리며 어깨를 붕붕 돌렸다. 그런 것치곤 한 대만 쳐도 앵간한 모험가는 곤죽이 되겠던데.

     

    “선생님.”

     

    헐레벌떡 또 달려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브루노였다. 포션 효과가 거의 끝나서 머리 색이 거뭇해지고 있었다.

     

    흠, 생각해보니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니네.

     

    “나 들켰냐?”

     

    “예.”

     

    “너는?”

     

    “안 들켰습니다.”

     

    목숨은 건졌네.

     

    “숨어있어. 황녀님 오고 계셔?”

     

    “30초 남았습니다.”

     

    “전원 해산.”

     

    의사들이 아셀라를 피해 순식간에 여기저기 사라졌다. 복도에는 나와 기슈타만 남았다.

     

     

    또각, 또각.

     

    매서운 힐 소리가 가까워진다.

     

    얼마 안 있어 모퉁이에서 황금빛이 반짝이며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당장에라도 얼음창을 꺼내 팔다리를 꿰어버릴 기세로 노려보시는 황녀님.

     

    지근거리에서 팔짱을 낀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하다가 슬쩍 옆으로 돌았다.

     

    “얜 뭐야.”

     

    기슈타가 아셀라와 눈을 마주치고는 핼쭉 입꼬리를 올렸다.

     

    “황금의 소녀, 예쁘군.”

     

    짧은 감상을 내고, 기슈타는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밖에서 기다리마, 라스.”

     

    쿵, 쿵. 터프한 발걸음과 함께 떠나가는 기슈타.

     

    흠, 혼자 안 뒀으면 했는데. 아쉬운걸.

     

     

    우리 둘만 남자 아셀라가 바로 쏘아붙였다.

     

    “라스, 내게 할 얘기가 많지?”

     

    “예, 황녀님.”

     

    “그런데, 우선 그 전에.”

     

    아셀라가 불쾌한 표정으로 턱을 까닥였다.

     

    “저건 뭐야. 왜 널 이름으로 불러?”

     

    다른 것보다 기슈타가 제일 신경 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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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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