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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나는 연습장의 참관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봤다.

       수십 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마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한정되어서 그랬다.

         

       ‘음향실’은 단방향으로만 기능을 켜두는 것도 가능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 귀로 바로 전달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카렌이 연습장을 떠나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음향실 기능을 껐다.

         

       설마 마야가 밖에서 모두 듣고 있었을 줄이야.

         

       친구라 여겼던 사람이 알고 보니 자기 몸을 음습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카렌도 자신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을 텐데, 그녀가 그 사실에 저렇게까지 분노할 줄은 몰랐다.

         

       마야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런 것에 특별히 무딘 것일 수 있었다.

       저쪽 세계에서 나는 사정상 내 몸뚱어리를 남의 손길에 맡기는 일이 잦았다. 화장실을 갈 때나 씻을 때나 옷을 갈아입을 때나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마야의 태도가 아마 보통 사람의 반응에 가까울 것이다.

       심지어 둘은 오래된 친구도 아니고 만난 지 불과 2주 된 사이 아닌가.

       저렇게 나오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수업 조교가 마야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연습용 단검들을 챙겨 과녁 앞으로 나갔다.

         

       나는 카렌의 일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내가 한 일에 후회는 없었다.

       만약에라도 나중에 그녀가 마야를 덮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녀에게는 모진 말이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사춘기 고민보다 내 단원의 안전이 더 소중했다.

         

       조교의 신호와 함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시험장 위에 올랐다.

       그 안에 마야도 있었다.

       확실히 다부지거나 쭉 빠진 몸매들 사이에서 마야의 여린 체격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는 듯 객석 쪽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원작에서 그녀는 신체를 활용한 기술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캐릭터로 빠른 이동을 시도하면 3초 후 앞으로 꽈당 넘어지곤 했다.

         

       물론, 그것은 게임적 과장이 섞인 것이었지만, 여기서도 그녀는 육체 활동에 재능이 없는 건 확실해 보였다. 서커스단에서 실시하는 기초 신체 단련에서 혼자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런 그녀가 얼마나 실력을 키웠을까?

         

       나는 기대를 담아 그녀의 단검 던지기 실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긍정적인 종류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래 그녀의 실력이 이 정도일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자신 있게 보러오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카렌과의 일 때문일까.

         

       오늘 마야가 던진 단검은 단 하나도 과녁에 적중하지 못했다.

         

         

       ***

         

         

       마야는 학교를 나와 테트로미노 광장을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기운이 없는 듯 터덜거리면서도 화난 듯 뚜벅거렸다.

         

       그것은 그녀의 현재 심정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비록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미묘한 동작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내 탓이야.’

         

       다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모두 그녀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탓이었다.

       

       카렌을 떠나보내고 심마가 더욱 깊어졌다.

       감정의 파편 비슷한 것을 채취할 때마다 마력이 심하게 요동쳤다.

       도저히 정밀한 작업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괜히 단장님에게 짜증이나 내고…….’

         

       시험 직후, 원더스타인이 참관석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마야 양, 안타깝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가세요.”

         

       그녀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마치 그녀의 실책이 단장님 탓이라는 되는 듯.

         

       “다음번에 잘하면 돼요. 너무 상실할 필요…….”

       “가시라고요.”

         

       원더스타인도 그런 마야의 반응에 더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마야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실패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것을 자부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큰 충격일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든 일에는 그의 책임도 일부 있었다.

         

       “곧 있으면 마차가 도착할 시간인데요.”

       “알아서 돌아갈게요. 먼저 가세요.”

         

       그렇게 마야는 홀로 학교에 남았다.

       단장님과 둘이서 사이좋게 돌아갈 엘라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 앞에서 자신이 곡예 실습 평가 0점을 받았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정처 없이 걷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예의 노파가 운영하는 그 카페였다.

       아무래도 생각나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

         

       “어머, 마야 왔니? 같이 다니던 그 친구는?”

         

       카렌을 데리고도 이곳에 몇 번 왔었다.

       그녀는 그 기억을 떠올리니 더 속이 쓰려왔다.

       자신에게 우정을 주는 척하면서 뒤에서 남의 남자를 채갈 궁리를 하던 도둑년.

         

       “……없어요.”

         

       노파는 그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녀는 마야를 테이블에 앉히고 그녀가 좋아하는 구성의 음료와 간식을 내왔다.

         

       “자, 우선 이것들 좀 먹으렴.”

         

       그때, 마야 맞은편에 누군가 앉았다.

       백색 장포로 몸을 두르고 은색 면사로 얼굴을 가린 괴인이었다.

         

       “나도 한 잔 부탁드리오.”

         

       면사 사이에서 흘러나온 것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남자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누구시죠?”

         

       카페 주인이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마야를 감싸듯 앞을 막아섰다.

         

       마야는 눈앞의 사내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은막 서커스의 단장, 아르노다. 나를 기억하나?”

         

       마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주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이니, 마야? 위험한 사람 아니지?”

       “아마도요.”

       “그래? 알았어요, 손님. 금방 차를 내오죠.”

         

       노파가 주방에 들어가자 아르노가 입을 열었다.

         

       “환상 마법사인 네가 곡예를 익히려 하다니.”

       “저를 따라다니신 건가요?”

         

       마야는 상대가 아빠와 엄마의 지인인 건 알고 있었다.

       두 분이 젊었을 적에 신세 진 서커스단의 단장이니까.

       그래서 애초에 그에게 몸을 의탁하기 위해 루즈를 찾았던 거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계속 자신을 주목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아르노는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지 마라. 볼 일이 있어서 학교에 왔다가 우연히 널 발견해서 지켜봤을 뿐이다.”

       “볼 일?”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서 말이지.”

         

       마야는 그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오늘은 17년 전 히포드롬에서 테러가 일어났던 날이었다.

       레카체프 안에는 그것을 기리는 특별 전시실이 있었다.

       그는 그곳을 다녀왔을 것이다.

       마야도 오전에 들렸던 곳이다.

         

       그는 도착한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파피락스에 빠졌더군.”

         

       마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만한 마법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숨길 수는 없었다.

         

       “트리거는 뭐지?”

       “제가 왜 말해야 하죠?”

       “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이니까.”

       “할 수 있어요.”

       “트리거는 뭐지?”

       “말하기 싫어요.”

       “내가 보기에 너는 지금 돌멩이 하나 못 들어 올리고 고양이 한 마리 못 만든다. 맞나?”

         

       그의 말에 마야는 손끝을 살짝 떨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녀는 지금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아까 미친 말처럼 날뛰던 마력이 지금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원더스타인 단장을 찾아가야겠군.”

       “안 돼요.”

         

       마야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분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기 싫었다.

       그분이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없다고 버릴지 모른다는 망상 따위를 하지는 않았다.

       그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그분이 자신의 파피락스의 원인이 뭔지 아는 것이었다.

       

       “단원이 이 상태가 됐는데 단장이라는 작자가 마음 편하게 웃고 있던 게 마음에 안 든다.”

       “제가 일부러 숨겨서 그런 거예요. 절대 그분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럼 말해라. 트리거는 뭐지? 곡예인가? 그래서 배우려고 한 건가?”

         

       마야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끈덕진 사람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기로 했다.

       밝히기 싫었지만, 단장님께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원더스타인 단장님.”

       “그래. 말하지 않으면 그에게 말하겠다.”

       “그게 아니라……원더스타인 단장님이…… 트리거예요.”

         

       아르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지 않았다.

         

       학자, 수도사에게 주로 찾아온다는 심마(心魔), 파피락스.

       그것이 17세 소녀가 숨기려고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면, 남자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늘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마주하게 된 사람은 원더스타인만이 아니었다.

         

         

       ***

         

         

       파이렌은 자기 집무실 중앙에 서서 불안함에 몸을 잠시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아까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엄지를 물어뜯었다.

         

       스승님이 수업 도중 혼절했다고 들은 그녀는 급히 그분을 찾았다.

       자신이 약에 탄 이물질 때문에 몸에 반발 작용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다행히 스승님은 그저 심적으로 피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담담히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는 스승의 말에는 개운함마저 느껴졌다.

         

       “오늘부터 다시 기숙사에서 자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충격 발언.

       아침까지의 그녀라면 결코 입에 담지 못했을 말이었다.

       

       “아, 그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네 신세를 질 수 없지 않니? 내 방식대로 노력해보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라.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화장실을 가릴 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짐을 싸서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방에서 나가버렸다.

       심지어 족제비가 든 이동 케이지까지 챙겨서 말이다.

       놈은 여전히 클라라를 향해 이빨을 세우고 경계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후, 이 녀석이랑도 관계 개선을 노력해야겠지. 언제까지 가둬둘 수 없지 않니?”

         

       갑자기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돌변한 그녀의 행동에 파이렌은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청히 그녀를 떠나보내고 혼자 불안감에 잠기는 것 외에는.

         

       “내 암시가 깨졌어……? 스승님의 정신력이 상승……아니, 회복되고 있는 걸지도…….”

         

       그녀의 사무실 뒤편에 나 있는 비밀 문.

       그곳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공간.

       저주 역병에 걸린 생물들이 든 유리병이 진열된 선반들 사이에 보관된 검은 병 하나.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 괴물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어떻게 된 일이지? 소리가 들려.

         

       그녀가 이름과 몸을 뺏긴 비참한 신세가 되어 병에 갇힌 지 10일이 지났다.

       그녀가 들어간 병은 검은 막 때문에 외부를 볼 수도 없었고, 입구를 막은 마개 때문에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빛과 소리도 차단당한 곳에서 그녀는 절망을 곱씹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자신을 속이고 이곳에 가둔 저주받을 교수 년의 목소리를.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그것은 찾아왔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길들이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말소리 역시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 봐, 내 수컷 깨비부리새가 2m까지 자랐어.

       -내 전기쥐돌이랑 교환하지 않을래?

         

       뭐야, 이게 뭐야.

       병에 구멍이 난 건가?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속삭임은 청각을 초월해서 그녀의 감각에 닿고 있었다.

         

       그때, 허공 저편에서 쩌렁쩌렁한 울림이 쏟아졌다.

         

       나는 마신 시네페쿠스.

       말과 말 사이에 떠도는 망령.

       소문과 험담과 명성과 오해를 사랑하는 마신.

         

       마신!

       끈적끈적하고 형태가 없는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그녀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장막 너머에서 느껴졌다.

         

       마신은 낄낄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나의 사도로 임명하겠다.

       이름과 몸을 도둑맞은 이여.

         

       그의 선언과 함께 그녀의 몸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붉은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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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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