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7

        

       그가 외우는 주언(呪言)은 참으로 진중했다.

       저음으로 깔리는 소리는 바닥에 깔리며 울려 퍼지는 듯했고, 귀를 울리는 대신 몸을 진동시키며 그 뜻을 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도 신력에 가로막힌 것인지 금줄의 밖으로 빠져나가지는 못했고, 대신에 곳곳에 붙여진 부적을 진동시키며 부적이 검은 눈물을 흘리게 했다.

         

       검은 눈물.

         

       뚝뚝.

         

       까만색으로 모이는 자그마한 물방울은 겨울철 벽에 맺히는 결로처럼, 계절에 맞지 않는 온도를 간직한 음료가 유리컵에 담겼을 때 만들어지는 물방울처럼 선명하게 맺히며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그리고 한 방울.

         

       두 방울.

         

       검은색 구슬 같은 물방울은 소리 없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검게 물들였고, 검은 눈물은 자신의 비통함을 알아달라고 소리라도 치려는 것인지 입이 없어 나오지 않는 소리 없는 비통의 외침 대신 코를 간지럽히는 냄새를 풍겼다.

         

       발악하듯 풍기는 냄새.

       코를 간질이는, 곰팡이가 발하는 냄새.

         

       검고 더럽혀진 눈물은 땅에 떨어지고 떨어지며 색을 검게 물들였다.

       그리고 곰팡이가 세를 벌리며 벽에 번져나가듯, 땅을 검게 물들이며 번져나갔다.

         

       검게.

       그리고, 검게.

         

       진성은 곰팡이를 품은 눈물이 땅을 물들이는 것을 보며 다시 말했다.

         

       “느릅나무 시듦병(Dutch elm disease)을 낫게 하소서.”

         

       진성의 주언이 울려 퍼지자 다시 진동이 퍼졌다.

       그리고 이번에 그 진동은 땅을 빌빌 기면서 움직여 나무를 타고 움직였고, 나무 사이사이에 엮여 영역을 구분 짓는 금줄에 닿아 그것을 움직였다.

       가늘게 떨리는 금줄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움찔거렸고, 손의 주인이 제대로 주먹을 쥐지도 못하는 갓 태어난 아기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허무하고, 너무나 연약하고 하찮게 흔들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발악하듯 내보였다.

         

       그리고 그 분함은 곧 눈물이 되었고.

       늘어진 금줄에 검은 물기가 모여 줄기가 되고, 방울이 되었고, 땅을 물들이는 검은 물감이 되었다.

         

       물감은 떨어져 땅을 물들였고,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그렇게 땅을 검게 물들이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검은 선을 만들며 간이 신사를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밤나무 줄기마름병(Chestnut blight)을 낫게 하소서.”

         

       금줄이 눈물을 흘리자 그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나무들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나무 곳곳에 가느다란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자그마한 실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는 순식간에 나무를 집어삼키고 그 안으로 자기 몸을 욱여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침투했다 여기자 바깥쪽에 만들어놓은 네트워크를 모조리 없애버림으로써 자신들의 흔적을 없애기까지 하였고, 오롯이 나무 안에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본래라면 굼벵이보다 느려야 할 움직임은 주술의 힘을 받아 탄력을 받았고, 곰팡이가 균사체를 만들기도 전에 오염되는 나무의 안쪽은 그들에게 훌륭한, 아니 훌륭한 것을 넘어 완벽하기까지 한 거주지를 만들어주었다.

         

       “부채 버섯(Panellus stipticus)이 빛을 발하듯 어둠을 밝혀주시고.”

         

       검게 변한 땅은 기기묘묘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른 사막에 폭우가 내리면 싹이 피어나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물을 먹지 못해 시들했던 풀에 한 모금의 생명수를 주면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그렇게 땅에서 버섯이 슬그머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아름답지는 않았고.

       햇빛에 반짝반짝 빛을 발하지도 않았고.

       코끝을 찌르는 향긋한 냄새 역시 없었다.

         

       하지만 버섯은 썩어가는 낙엽들의 사이사이에 제 몸을 감추는 겸손함이 있었고, 간신히 비치는 햇빛이 없어도 자라나는 끈질김이 있었으며, 꽃처럼 아름답지는 않되 제 색을 내보이는 개성이 있었다.

         

       “프실로키베 큐벤시스(Psilocybe cubensis)를 내려주어 황홀경을 주셨듯, 하찮은 인간을 신에게 다가가게 하옵시고 이끌어 주옵소서.”

         

       진성은 솟아나는 버섯들 사이에서 주언을 외웠다.

         

       “오피오코르디셉스(Ophiocordyceps)로 미물을 벌하고 조종하여 손아귀에 넣으시옵고, 거기서 비롯된 공포와 경외로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으사 실로시빈으로 인간을 껴안고 아폴로(Apollo)의 시선을 받지 못해 그늘 속에 자리 잡은 들풀과 피어날 꽃들을 살리소서.”

         

       그리고 주언이 외워질수록 땅은 검게 변했고, 바닥에 쌓여있는 낙엽과 축축한 습기의 사이사이로 진성의 소리에서 나타나는 진동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 그 자체이시며 미물에서 인간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신이시여. 거대한 숲의 사이사이에 반드시 존재하며,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있는 한 권속이 사라지지 않을 위대한 존재시여. 그늘부터 태양의 아래까지, 저 하늘의 바람에서 땅속의 음습한 곳까지. 아폴로(Apollo)의 시선에서 플루토스(Ploutos)의 권역까지. 그 모든 곳에 존재하고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께 제물을 바칩니다.”

         

       마침내 주언이자 축언이며, 동시에 제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말이 끝을 맺었다.

         

       진성은 짐에서 비단 뭉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삼매진화를 피운 뒤 손가락을 튕겨 그 위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자그맣게 타오르는 불꽃은 비단을 먹이로 삼아 넘실넘실 타오르기 시작했고, 무엇을 태우는 것인지 고약한 냄새와 매캐한 냄새를 내며 나타난 연기는 하늘을 향해 뱀처럼 움직이며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력 덕분에 연기는 하늘 높이 올라가기는커녕 그대로 중간에서 끊겨버렸고, 그 덕분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제물로 바쳐진 것을 불태웠다.

         

       제물.

       신에게 바치는 제물.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하며, 인간이 바치는 최선이어야 할 그것.

         

       하지만 껍질이었던 비단이 모두 다 타버리자 나타난 제물의 실체는 정반대였다.

         

       곰팡이가 잔뜩 피어서 알록달록하게 변하고, 징그러운 감자의 싹이 송송 솟아난 자그맣고 못생긴 감자들.

       도대체 뭔 짓을 했는지 말라비틀어지고, 그 표면에 곰팡이가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돼지고기.

       검은 빵 곰팡이(Rhizopus stolonifer)가 가득 피어난 식빵.

       다 물러 터져버린 곰팡이가 피어난 과일들까지.

         

       하나같이 보기만 해도 역겹고, 고약하고 끔찍한 냄새를 풍겼으며, 한 입이라도 먹으면 구역질해대며 병원에 가 위세척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것들이었다.

         

       가장 귀하기는커녕 사흘 굶은 노숙자도 쳐다보지 않을 끔찍한 몰골의 음식’이었던’ 것들.

         

       제물을 바친 대가로 축복을 주기는커녕, 천벌이라는 이름 아래에 저주가 내리고도 남을 끔찍한 모습들이었다.

         

       ‘오너라.’

         

       하지만 진성은 천벌을 겁내지 않았다.

       도리어 천벌을 원하고 있다는 듯 눈을 빛냈고, 본래의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낼 주술을 기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파스스슥.

         

       천벌이 내려왔다.

         

       천벌은 음습했으며, 즉각적이었다.

         

       본래 녹과 병을 막아주어야 할 로비구스의 축복은 저주로 돌변하여 땅에 내려왔고, 제물에서 시작된 저주는 땅을 검게 물들이고 주위의 나무에 찰싹 달라붙으며 밑동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부족한 햇빛과 좁은 간격 때문에 제대로 영양을 섭취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나무들은 그대로 저주에서 비롯된 병에 걸려 순식간에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태양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한껏 초록색으로 몸을 칠했던 나뭇잎에는 갈색의 반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황색으로, 갈색으로 변하며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되어갔고, 죽어가는 노인네의 주름처럼 꾸깃꾸깃 쪼그라들고 힘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잎사귀 말고는 눈에 띄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에 미리 파고들었던 곰팡이 덕분에 줄기는 멀쩡해 보일 수 있었다.

         

       그 안을 살펴보면 곰팡이가 아파트에 입주한 것처럼 차곡차곡 자리를 잡고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든 것을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비구스의 천벌을 끝으로 땅은 제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검은 눈물에 젖어서 새까만 빛을 발했던 땅은 젖은 습기가 발하는 짙은 황색으로 변했고, 제물이 타고 남은 재는 녹아내리듯 땅속으로 흡수가 되었다. 곳곳에 피어난 버섯들이 검은 땅의 표면에 뿌리를 뻗어 흡수라도 하는 것처럼 색을 빨아들여 검게 변하고, 부적과 금줄에서 떨어지는 검은 눈물은 이제 되었다는 듯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곰팡이가 발하는 퀴퀴한 냄새마저 사라졌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일이 성사되는 것은 하늘의 도움과 사람의 의지.

       그리고 땅속에서 번져나가는 곰팡이의 그물이 해낼 것이니.

         

       ‘하늘과 땅, 사람이라. 이 역시 3이니. 참으로 길하다.’

         

         

         

        * * *

         

         

         

       

       산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