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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자, 난 네게도 기회를 줄 거야. 왜 침략했는지부터 너희가 누구인지 전부 나에게 말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지.]

       ​

       차원 틈새.

       갑자기 나타난 무찬의 선언에 세리아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

       ‘저놈은 정체가 뭐지?’

       ​

       먼저 자신의 상황을 정리했다.

       세리아스는 한 세력원의 제보로 저층에 발전된 드워프 왕국을 발견했고, 자신을 주축으로 한 원정대를 꾸려 출정했다.

       ​

       당연히 쉽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포탈 함정에 허무하게 전력을 잃었다. 중간에는 강력한 엘프가 나타났으며, 드워프들을 쫓아가자 마찬가지로 함정에 빠져 이런 공간에 떨어졌다.

       ​

       어두컴컴한 정적인 공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

       [네가 제일 강하니 대표로 말해 봐.]

       ​

       보다시피 저 엘프가 나타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찬의 등장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강력한 브레스를 쏘아내고.

       공간을 마음대로 다루고.

       엘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아니, 엘프가 드워프를 지키려고 나타난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이야….’

       ​

       [이대로 침묵할 셈인가?]

       ​

       무찬이 세리아스를 재촉했다.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까지 쳐다보고 있기에, 더 모른척할 수도 없다. 세리아스는 무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말하라는 건데. 시발아.’

       ​

       하지만 대답을 안 했던 게 아니다.

       사실 세리아스는 격음을 쓸 수 없다.

       지배자 대부분은 격을 가졌지만 격과 격음을 쓰지 못하는 자도 많다. 세리아스가 딱 그런 뷰류다. 본신의 힘은 강할지라도, 격을 제대로 컨트롤하진 못했다.

       ​

       당연히 이런 공기가 없는 곳에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방금처럼 소리 없이 입만 뻐금거릴 뿐.

       ​

       ‘뭘 꼬나보냐. 너 뭐 하는 새끼냐고.’

       ​

       따라서 욕을 해도 상관없다.

       표정만 잘 관리하고 하고 싶은 말과 욕을 가져다 붙이면 알 방법이 없거든.

       ​

       허나.

       ​

       [무찬아. 얘. 욕하는 것 같은데?]

       ​

       ‘어라?….’

       ​

       샤엘라는 그것을 캐치했다.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을 텐데,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는 자신의 의도를 꿰뚫은 것처럼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

       ‘무슨 눈빛이….’

       ​

       고요하지만, 한없이 깊다.

       쳐다보고 있으면, 꿰뚫릴 것 같다.

       분명 말을 알아듣진 못했음에도 숨긴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

       [욕했다고?….]

       ​

       ‘아, 아니 그게….’

       ​

       핑계를 대도 소용없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그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당연하지만, 세리아스는 두사람에게 섣불리 달려들 생각은 없었다.

       ​

       두 사람은 강하다.

       격을 사용한 대화부터가 이미 자신을 강자라고 대변하는 수단이나 다름없다. 헌데, 둘은 그걸 태연히 사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

       즉, 둘 다 지배자급 이상이다.

       가능하면 자극해선 안 된다.

       ​

       하지만 한편으론 화가 났다.

       ​

       ‘대체 왜 이런!!….’

       ​

       이런 저층에 격을 가진 자가 두 명이나 나타난 게 억울했다. 심지어 듣지도 못하면서, 욕한 건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부하들은 자신의 대응을 바라보고 있다.

       대화를 할 수 없지만, 불경하게도 눈빛으로 자신을 압박하는 게 느껴진다. 자기 부하들이지만, 상황만 맞아 떨어지면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자도 몇몇 있기 때문이다. 신생 세력이라 결속력이 약한 탓이다.

       ​

       하지만 뭐 할 수도 없다.

       격음을 쓸 줄 모르니까.

       ​

       [이 녀석. 힘은 가장 세 보였는데, 정작 격을 다룰 줄은 모르나 보네.]

       ​

       무찬도 그것을 눈치챘다.

       살짝 난감해하는 눈치.

       ​

       이에 샤엘라가 대신 나섰다.

       ​

       [내가 해결해 줄게.]

       ​

       파아아!~

       ​

       황금빛이 살짝 퍼졌다.

       그러자.

       ​

       ‘갑자기 뭐 하는 거지?’

       ​

       [뭐긴 뭐야. 통역할 수 있게 된 거지.]

       ​

       ‘허!?….’

       ​

       텔레파시가 가능해졌다.

       접촉한 대상과 텔레파시를 나누던 샤엘라의 능력이다. 원래는 신성이 닿거나 깃든 존재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인지라, 무찬과 세리아스를 잇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

       [오오? 이거 다른 사람도 가능한 거였냐?]

       ​

       [당연하지. 이제 실컷 대화해봐.]

       ​

       [그럼… 자, 다시 물을게. 왜 침략했는지와 너희가 누구인지 전부 말해봐. 네 태도에 따라 살릴지 말지 결정될 거다.]

       ​

       텔레파시 통역.

       대화가 가능해지자 무찬은 다시 세리아스에게 물었다. 당연히 그녀가 지휘관인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항할 방법이 없으므로, 세리아스는 우선 답하기로 했다.

       ​

       ‘…나는 세리아스. 모두 말할 테니 날 여기서 내보내 줬으면 한다.’

       ​

       [질문에 답부터 해. 왜 침략한 거지?]

       ​

       [……우리는 아칸벨리에서-]

       ​

       세리아스는 얘기를 시작했다.

       ​

       둘을 이길 수 없다.

       빠져나갈 방법도 없다.

       어차피 이리 죽을 바엔, 잘 따르는 척 대답하고 살길을 모방하는 게 나았다.

       ​

       하지만 진실을 말할 생각은 없다.

       세리아스는 세력의 주축인 만큼, 세력을 배반해서 좋을 게 없었다. 이미 아칸벨리를 자기 자산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배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고로.

       ​

       아칸벨리의 본거지 위치를 숨기고.

       세력 규모와 총인원을 크게 부풀리고.

       가진 것이 많으니, 풀어주면 아무 조건 없이 보상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

       ‘너희도 전쟁하고 싶진 않겠지. 만약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칸벨리는 총력을 다해 이곳을 침략할 거야.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날 보내줘. 그럼 아무 일도 없을 테니.’

       ​

       대부분 거짓말이다.

       아칸벨리는 이제 여력이 없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건 이쪽이며, 보내준다면 정보를 팔아먹을 생각이다. 직접 차지하진 못해도 지금은 그게 최선이니까.

       ​

       당장의 살길을 모색하면 된다.

       그럴듯한 변명과 사과, 보상까지. 돌려보내 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대화를 위해 이 공간에서는 내보내 줄 것이라고 믿었다.

       ​

       그때가 기회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

       [뭐야. 말이 너무 다르잖아.]

       ​

       꿈틀.

       ​

       갑작스런 무찬의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이미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듯한 느낌.

       ​

       아니나 다를까.

       ​

       [무찬. 아까 레이븐이라는 녀석의 말이 훨씬 진정성 있는 것 같네. 내가 느끼기엔 이쪽이 거짓말하는 것 같아.]

       

       [말 안 해도 나도 알아. 거참. 폐기장이나, 여기나 지배자들은 말하는 레퍼토리가 뭐 이리 똑같은 건지 모르겠네.]

       ​

       두 사람의 대화에서 깨달았다.

       둘은 자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레이븐에게 전부 대답을 들은 것이다.

       ​

       세리아스의 얼굴이 격하게 찌그러졌다.

       드워프 왕국을 침략하기 위해 내려온 아칸벨리의 지배자는 전부 흩어진 상황이다. 세리아스는 그것을 놓치고 있었다. 어쩌면 리키아드도 잡혀 전부 불었을지 모른다.

       ​

       ‘날 믿어줘!! 내 말이 진짜야! 레이븐 그놈은-’

       ​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어떻게든 둘을 납득시켜야 한다.

       ​

       하지만 이미 늦었다.

       ​

       푸훅!!

       ‘커!!…….’

       ​

       무언가 심장을 관통했다.

       어느새 무찬이 한 손을 뻗고 있었고, 정체불명의 파동이 몸을 간단히 꿰뚫었다.

       ​

       [미안. 전혀 믿음이 가질 않아서.]

       ​

       ‘이런, 시발…….’

       ​

       둘은 더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다. 모든 힘을 끌어올려 남자를 공격했다.

       ​

       쩍!!

       ​

       얼음 발판을 만들고 도약.

       주변 전체를 얼려버릴 듯 남자에게 돌진하여 양손에 얼음 창을 소환했다. 아무리 중력과 공기가 없는 공간이더라도, 그녀의 힘이라면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

       분명 그럴진대….

       ​

       [이상한 곳을 공격하는군.]

       ​

       슉!!

       ​

       분명 무찬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세리아스는 무찬이 아닌, 옆에 허공을 공격했다. 정확히 조준했는데, 도달하고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

       ​

       ‘뭔….’

       ​

       얼핏 무찬의 눈동자가 반짝인 듯했다.

       그에 오감이 뒤틀리는 착각이 들었고.

       ​

       [이번엔 내 차례야.]

       ​

       꾸득!!

       콰드드득!!!

       ​

       급속도로 변형되는 남자의 한 팔.

       고개를 잠깐 돌리면, 어째서인지 거대한 용의 발이 자신을 내리찍고 있었다.

       ​

       ‘어?’

       ​

       콰드드득!!

       ‘크아아아아!!!!’

       ​

       거대한 용의 발이 몸을 쥐어 잡아 압박한다.

       매우 강력한 근력에 얼음 보호막을 둘러보려 했지만, 어째 능력도 말을 듣질 않는다.

       ​

       ‘무슨 힘이!!…….’

       ​

       부서진 몸에 독이 주입된다.

       움켜쥔 용의 손에서 용암이 흐른다.

       강력한 괴력 이전에 육신이 약해지고 있다.

       ​

       치이이익!!-

       쩌적.

       ​

       몸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이명.

       갑작스런 고통과 공포가 몰려온다.

       아무리 몸을 얼음으로 강화해도 곧장 파괴되고 부서지는 게 느껴진다.

       ​

       이대로면 죽는-

       ​

       콰직!!!

       ​

       정적만이 나돌았다.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폭발적인 괴력에 육신이 터졌기 때문이다.

       ​

       스르륵.

       ​

       그러면 무찬의 몸에서 줄기가 자라났다.

       줄기는 세리아스의 터진 조각을 하나하나 회수해 흡수했다.

       ​

       [생각보다 약하네. 설마 나한테 지다니. 얼마나 약하다는 거야.]

       ​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

       이젠 들리지 않는 두사람의 대화.

       그것이 세리아스의 최후였다.

       ​

       ‘사, 살려!!-’

       ‘크아아아!!!’

       ​

       주변에 있던 아칸벨리 세력원의 운명도 세리아스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무찬의 양분이 되어 사라졌다.

       ​

       그것으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

       ​

       ​

       *

       ​

       ​

       ​

       [맛있냐?]

       ​

       [꺼억-]

       ​

       샤엘라의 물음에 트름 시늉을 했다.

       녀석의 말대로 꽤 맛있었다. 강자들을 양분으로 흡수하는 건. 아니, 내 힘으로 이들을 처지헸다는 게 더 달콤했다. 이번 싸움은 샤엘라가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

       ​

       ‘솔직히 이리 쉬울 줄은 몰랐지.’

       ​

       적들이 약한 게 틀림없다.

       나는 본래 지배자 하나 이기는 것도 어려워했었으니까.

       ​

       물론, 내가 강해진 것도 있다.

       옛날이라면 벨칸의 예측대로 드워프군과 함께 적을 힘겹게 막아내고 농성하거나, 샤엘라에 도움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여러 능력을 다루면서 상황을 유리하게 끌었다.

       ​

       보다시피 괴력으로 지배자를 터트렸다.

       재밌게도 육체를 바꾸고 크기를 키우면 더 높은 효율로 힘을 낼 수 있었다.

       ​

       [능력을 몇 개나 쓴 거냐.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힘들 같던데.]

       ​

       샤엘라도 저리 물을 정도.

       나는 잠시 내 능력을 점검했다.

       ​

       끝도 없이 넘쳐나는 에너지.

       공간을 감각적으로 다루는 능력, 

       제어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육신의 힘.

       흡수한 생명체의 힘을 끌어내는 능력.

       흡수한 생명체를 복제하듯 탈피하는 능력.

       시리안이 구상한 양분&마나 회로의 폭발적인 파워 강화. 이외 아직 제대로 다루지 못한 능력도 있을 것이다,

       ​

       인간체의 형태를 취했으나.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힘들이다.

       맘만 먹으면 흡수했던 생명체로 변해 힘을 흉내 낼 수도 있다. 이건 제약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쓸만한 힘이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

       [샤엘라. 아칸벨리가 어떤 곳인지 모든 정보가 느껴지기 시작했어.]

       ​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

       기억이 엿보인다.

       흡수한 놈들의 기억이.

       옛날처럼 강한 사념을 살짝 엿본 것과는 다른 꽤 구체적인 기억이었다.

       ​

       아칸벨리의 수장이 누군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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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The Broken Goddess Tries to Raise Me

망가진 여신이 나를 키우려 한다.
Score 8
Status: Ongoing Author:
I have become the World Tree that the goddess is obsessed with. I ended up taking care of the broken goddess, and at some point, she started exerting her strength to rais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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