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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187화. 태양을 피한 자들 ( 3 )

       

       

       

       

       

       5호는 멍하니 케니스를 바라봤다. 5호가 인간들 틈에 숨어 지낸 세월이 얼마인가.

       공녀라는 인물이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 설마 그럴 리가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케니스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미 프리가가 있을 만한 곳은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피난길 내내 보였던 프리가의 그 표정. 깊은 절망 속에 이글거리는, 표출할 곳을 잃은 분노와 증오.

       

       무언가를 저지르기 일보 직전인 사람의 눈빛이었다.

       케니스는 그런 눈빛을 몇 번인가 본 적 있었다. 

       

       ‘억울하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의 눈동자…’

       

       그런 사람들의 말로는 대체로 비슷했다.

       

       프리가가 도대체 무슨 심정으로, 어떤 계획으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프리가 공녀는 몬테그라스로 돌아갔다.

       

       케니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니. 분명해요. 공녀님은 몬테그라스로 돌아가셨어요.”

       “… 설마 용사님께서도 그곳으로 향하겠다는 건ㅡ”

       “전, 공녀님을 데려와야 해요.”

       

       프리가와 케니스의 가치는 다르다. 냉정하고 비정하게 들렸지만, 5호에게는 그랬다.

       공녀와 용사를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는 일.

       

       “보내주세요. 공녀님을 데려와야 해요.”

       “… 말린다면 들으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아니요.”

       

       케니스의 눈을 바라본 5호는 빠르게 포기했다. 자신이 보내주지 않으면 뛰어서라도 갈 기세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협조하는 편이 좋으리라.

       

       “… 시간이 없겠군요. 곧장 가겠습니다. 숨을 참으세요.”

       “흐읍!”

       

       정했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5호는 재빨리 케니스의 손을 붙잡고 그림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림자에 빨려 들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 하늘은 아래로 떨어지고 땅은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케니스는 몬테그라스의 어느 골목길에서 눈을 떴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골목길에 드리운 그림자는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5호가 골목길의 그림자에 녹아들며 케니스를 바라봤다.

       

       “… 저는 따로 움직이면서 공녀님을 찾겠습니다.”

       “아, 네! 부탁 드릴게요!”

       “… 그리고 눈사태가 너무 가까워지면, 제가 신호탄을 터뜨릴 겁니다. 그걸 보면 용사님도 이걸 하늘로 쏴주세요. 곧장 거기로 향할 테니.”

       

       그렇게 말하며 케니스에게 신호탄을 하나 건넸다. 

       

       “…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용사님의 위치를 잊지 말아주세요.”

       

       짧은 당부의 말과 함께 사라진 5호. 케니스도 곧장 골목길을 수직으로 박차 올랐다.

       그녀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탓- 타탓!

       

       하늘 높이 치솟은 케니스.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 때문에, 멀리서 본다면 높게 던진 횃불처럼 보였을 것이다.

       

       “흐ㅡ읍!”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공녀님ㅡ!! 어디 계세요ㅡ!!!”

       

       케니스의 우렁찬 외침이 몬테그라스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간다.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

       

       

       

       성지로 향하는 문.

       

       이제는 성도 키비타스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된 거대한 문.

       언제나 굳게 닫혀있는 문은 아주 가끔 열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고는 했다.

       

       용이 튀어나오고, 고대의 다섯 종족을 부흥시키라는 천명을 받은 자가 등장하고, 잊힌 다섯 종족의 일원인 수인과 엘프가 등장했다.

       

       하여 성기사와 병사들은 항상 성지의 문을 예의주시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눈이 오고 비가 와도 꿋꿋하게 서서 문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성기사와 병사들도 사람이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갔다.

       

       “하암ㅡ. 지루해 죽겠네. 야, 우리 다음 근무자 언제 오냐?”

       “저희 방금 막 근무에 투입됐습니다. 앞으로 한참 더 있어야 됩니다.”

       “에이 진짜. 시간 더럽게 안 가네.”

       “그러게 말입니다.”

       “야, 뭔가 재밌는 얘기 없냐?”

       “음… 제가 저번 외출에서 들은 건데 말입니다. 사거리 앞 식당네 둘째 딸이 포목점 첫째 아들이랑…”

       

       저마다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병사들. 성기사도 병사들의 심정을 알기에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애초에 저 커다란 문이 열리면 모를려고 해야 모를 수가 없었다.

       

       ‘열린 지 얼마나 됐다고, 설마 또 열리겠어?’

       

       나름대로의 계산도 있었다.

       성지의 문이 무슨 술집 문도 아니고, 그렇게 자주 열리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끼이이ㅡ

       

       “어…?”

       

       녹슨 문이 힘겹게 제 몸을 움직이며 열리는 소리가 일대를 뒤덮는다.

       잡담을 나누던 병사들이 목각인형처럼 움직이며 성지의 문을 바라봤다.

       

       …열렸다.

       성지의 문이, 열리고 있다.

       

       크그그그그ㅡ!

       

       거대하고 육중한 문이 움직이면서 땅을 뒤흔든다.

       

       “서, 성지의 문이 열렸다ㅡ!!”

       

       곧장 난리가 난 병사들. 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병사들과 성기사들이 다급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번에는 성지의 문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신의 일꾼들? 거대한 용? 아니면 엘프? 그것도 아니라면, 신의 선택을 받은 이가 성지로 향하게 될까?

       

       모든 이의 시선이 성지의 문을 향했다. 아주 약간 열린 틈 사이로 까만 어둠만이 보였다.

       넓은 광장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펄럭ㅡ!

       

       날개 소리가 들린다.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

       

       “꿀꺽…”

       “나, 나온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문을 박차고 무언가 나오고 있었다!

       

       《——— ———!!》

       

       용이다.

       커다란 포효와 함께, 푸른 빛의 용이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문을 박차고 나온 용은 날개를 펄럭이며 한 차례 포효했다.

       

       “우와아아악!! 용, 용이다! 이번에도 용이야!”

       “맙소사, 정말로 용이 나타났어!”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푸른빛의 용.

       이윽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 앞에서 고대의 생물을 목격한 이들은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며 소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용의 위엄과 생김새에 대해 감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 저번에는 훨씬 더 크지 않았나?”

       

       지난번에도 용을 봤던 성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봤던 푸른빛의 용과 제법 비슷하게 생긴 것은 맞는데, 크기가… 굉장히 작은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전에는 분명 커다란 언덕 정도의 크기였는데.

       

       

       

       

       

       *****

       

       

       

       

       

       “… 훌쩍.”

       

        케니스의 예상처럼, 프리가는 몬테그라스에 있었다.

       

       사람이 사라진 도시는 쓸쓸한 냉기만이 가득 했다. 이것이 그녀가 사랑했던 도시의 최후라 생각하니 몰려오는 허망함과 분노는 오갈 곳 없이 속에서만 곪아갔다.

       

       항상 기운 넘치던 그녀답지 않게 살짝 부은 눈과 빨개진 코. 조금씩 흐르는 눈물을 찍어 누르던 프리가는 한 비석 앞에 주저 앉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이다.

       잘 관리되어 주변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차가운 비석을 찬찬히 쓸어보았다. 눈사태가 지나고 나면, 이제 여기도 올 수 없겠지.

       

       쿠구구구구ㅡ

       

       눈사태 소리가 아까보다 확연하게 커졌다. 

       

       “… 이제 갈게, 엄마.”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주어진 시간이 없다. 

       

       《처, 처녀여! 이제 정말 끝난 것이오?! 빨리 등에 타시오! 어서 여기를 빠져 나가야겠소.》

       

       곁에서 똥 마려운 망아지마냥 발을 동동 구르던 유니콘이 한 걸음에 다가왔다. 프리가의 강요에 못 이겨 태워주기는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 가자…”

       

       미련은 족쇄가 되어 발을 묶었지만, 애써 발걸음을 옮겼다.

       

       유니콘의 등에 올라타기 무섭게, 커다란 목소리가 몬테그라스 구석구석 울려퍼졌다.

       

       – “공녀님ㅡ!! 어디 계세요ㅡ!!!”

       “케니스?”

       《음?》

       

       유니콘과 프리가의 고개가 하늘을 향했다. 하늘 높이 쏘아진 불화살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케니스가 보였다.

       

       피난민들과 함께 있어야 할 케니스가 왜 이곳에서 자신을 찾고 있단 말인가? 프리가의 주변에 무수한 물음표가 나타났다.

       

       푸륵ㅡ

       

       《처녀여, 아무래도 용사께서 처녀를 찾고 계신 모양인데. 가봐야 하는 거 아니오?》

       “어, 어. 그렇지. 일단 가보자.”

       

       프리가가 동의하자 유니콘은 케니스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미끄러지듯 허공을 밟고 나아가더니, 순식간에 케니스 앞에 도착했다.

       

       “공녀ㅡ”

       “케니스, 너 여기서 뭐해?”

       “아앗! 공녀님!”

       

       프리가를 발견한 케니스가 후다닥 뛰어왔다. 눈빛은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은 부모의 그것이었다.

       

       “공녀님! 왜 여기로 다시 온 거예요!”

       “어?”

       

       대뜸 타박하기 시작하는 케니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시간이 얼마 없어요. 이 신호탄을 터뜨리면 5호가 곧장 오기로 했으니까, 당장 돌아가죠!”

       “어, 어?”

       “정말이지, 제가 공녀님 없어진 걸 빨리 알아차렸으니 망정이지!”

       “으음…?”

       

       피유웅ㅡ 펑!

       

       작은 연기와 함께 솟구친 신호탄이 팡ㅡ! 하고 터져올랐다.

       저걸 본 5호가 이곳으로 올 테니 이제는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케니스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 음… 저기. 케니스?”

       “왜요!”

       

       케니스가 찌릿하고 노려봤다. 철없는 가출 소녀를 보는 듯한 책망의 시선.

       프리가는 저도 모르게 움찔 했지만, 한편으로 억울했다.

       

       “내가 무슨 절망감에 빠져서 모든 걸 포기하고 온 사람처럼 취급하는데… 난 그냥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인사나 하려고ㅡ”

       

       쐐애애애애액ㅡ!

       

       프리가의 뒷말은 거대한 바람소리에 파묻혔다.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이 프리가와 케니스의 머리카락을 잔뜩 헤집었다.

       

       “으읏!”

       《히히힝ㅡ! 처녀들이여, 내 뒤로 오시오! 어서!》

       

       유니콘이 앞으로 나서며 바람을 막자 바람이 한결 수그러들었다.

       

       펄럭 펄럭ㅡ!

       

       커다란 날개 소리가 바람의 빈 자리를 채운다. 프리가는 저도 모르게 도끼를 움켜쥐었다. 익숙한 소리였다.

       

       까득.

       

       “도마뱀, 너 이 새끼!”

       

       프리가는 용이 그녀를 한바탕 놀리듯 장난치고는 유유히 사라졌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굴욕적인 경험을 어떻게 잊을까.

       

       얼음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비늘의 도마뱀이 여유롭게 하늘을 날며 프리가에게 아는 체 했다.

       

       《오, 악우여. 여기서 또 만나는군.》

       “뒤져 그냥!”

       

       프리가의 손가락 욕이 이베르에게 작렬했다. 

       

       쿠구구구구ㅡ!

       

       눈사태가 몰려오는 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기 시작한 이상, 눈 깜짝할 사이에 몰려와 도시를 집어 삼킬 것이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쑤욱!

       

       “… 용사님! 공녀님! 어서 이쪽으로!”

       《푸륵! 처녀들이여! 이제 정말 위험하네! 어서 떠나야 해!》

       

       그림자에서 나타난 5호와 유니콘이 재촉한다. 머뭇거리다가는 도시와 함께 눈에 파묻힐 뿐.

       

       펄럭 펄럭ㅡ

       

       고고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베르. 프리가는 그제서야 이베르의 이상을 눈치챘다.

       

       생김새는 기존과 매우 비슷했다. 푸른빛의 비늘과 길게 뻗은 꼬리, 날카로운 발톱과 양서류 특유의 눈동자.

       

       그런데, 6개로 늠름하게 뻗어났던 뿔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 2개의 뿔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ㅡ

       

       “야, 너… 왜 이렇게 작아졌냐?”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다랬던 용의 크기가 굉장히 작아져 있었다.

       

       겨우 집 한 채 정도 될까?

       

       프리가의 지적에 이베르가 얼굴을 구겼다. 본인도 그 부분을 굉장히 신경쓰고 있던 모양.

       

       《크흠. 여러 사정이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ㅡ!

       

       눈사태가 밀려온다.

       이제는 5호와 유니콘이 거의 발작을 하며 외쳤다.

       

       “용사님! 어서, 공녀님도!”

       《처, 처녀들이여! 어서 등에 타게! 어서!! 난 휩쓸려도 무사하겠지만, 처녀들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없어!》

       

       《흠…》

       

       이베르가 눈사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가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리가에게 말했다.

       

       《악우여. 혹시 나와 힘을 합칠 생각은 없나?》

       “… 뭐? 하! 참나, 내가 너랑 왜 힘을 합쳐야 하는데?”

       《그대는 이 도시를 지키고 싶은 게 아닌가?》

       “너ㅡ!”

       

       이베르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눈사태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싸우지 말자는 건 아니야. 그대와 투닥거리는 건 제법 재밌거든. 말하자면…》

       

       이베르가 잠시 단어를 생각했다.

       

       《그래, 임시 동맹. 임시 동맹이라는 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연…참!!! 작가의 늙고 병든 몸으로는… 그저 꿈과도 같은 이야기군요…!!! 나약해진 작가의 몸…!! 슬플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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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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