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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해가 떨어진 숲속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노을을 감상할 새도 없이,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숲은 어둑어둑해져 불과 몇 미터 앞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았다. 

       

       이대로 움직이다가 무언가가 바로 앞에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숲은 으스스하게 변했다.

       

       “쀼우….”

       

       아르는 깜깜한 숲이 조금 무서운 듯,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채로 내 목을 꼬옥 껴안았다.

       

       “라이트.”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은은한 빛무리가 나타나 주변을 밝혔다. 

       

       “이제 좀 낫네.”

       

       사실 손가락은 굳이 튕기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좀 더 있어 보여서 그랬다.

       

       “오오….”

       “단검술에 마법까지 쓰신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진짜였어.”

       “마법 쓰는 거랑 무기에 마나를 담는 거랑은 아예 다른 재능 아닌가?”

       

       우리와 처음 동행해 보는 기사들은 내가 마법을 쓰는 걸 굉장히 신기해했다. 

       

       기사들은 라이트 마법을 쓰는 대신 준비해 온 발광 아티팩트를 꺼냈다. 

       등불처럼 투명한 유리 안에 가공한 발광석을 넣고 마력을 주입하면 확 밝아지도록 만든 단순한 아티팩트였다. 

       

       우리는 사각 지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둥그렇게 전열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철그럭. 철그럭.

       

       한동안 갑주를 걸친 기사들의 철그럭 소리만이 들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블러드 구울이 발견되었다는 장소 근처에 도착했을 때쯤, 왼쪽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던 기사가 소리쳤다. 

       

       “단장님! 땅에 뭔가가…!”

       

       그 순간, 외친 기사보다 앞서 가던 기사 하나가 땅을 밟았고.

       찰박—

       

       “…찰박?”

       

       스스스스—!

       

       기사가 밟은 붉은 액체가 꿈틀거리더니 삽시간에 구울의 머리 모양으로 바뀌었다. 

       

       구울의 입이 쩌억 벌어지더니 기사의 정강이를 콱 깨물었다. 

       

       정강이를 보호하고 있던 단단한 갑주가 구울의 턱 힘에 우그러졌다. 

       

       “이 자식이!”

       

       기사는 곧바로 검을 역수로 쥔 채 구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푸욱.

       

       구울은 잠시 동작을 멈추는 듯하더니 방금 붉은 액체에서 구울의 머리로 변했던 것처럼, 금세 다시 붉은 액체로 돌아가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엔 기사의 앞에서 완전한 구울의 모습을 갖추었다. 

       

       치이이이익….

       

       정강이를 감싸고 있던 보호구에서 강산을 뒤집어 쓴 듯한 부식음이 들렸고.

       

       “……!”

       

       보호구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본 기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투 개시! 다들 당황하지 말고 구울의 핵을 노려라!”

       “예!”

       

       마음의 준비를 했다지만, 막상 이렇게 혐오스러운 비주얼의 마물을 어둑한 숲속에서 마주쳐 주춤했던 기사들은 레키온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하아아압!”

       

       그리고 검붉은 구울들에게 달려들어 심장 부근에 위치한 핵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르르륵….”

       “그륵…!”

       

       블러드 구울들은 그에 맞추어 체내의 핵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어 가며 기사들에게 팔을 휘두르고, 부식성 체액을 뱉으며 공격했다.

       

       콰직!

       촤아악!

       

       양쪽에서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가운데.

       

       레키온은 기사들이 잘 싸우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뒤, 전방에 나타난 블러드 구울을 처리하기 위해 검을 겨누었다.

       

       화악!

       

       레키온의 검에서 선명한 황금빛 오러가 빛을 발했다. 

       

       척 봐도 기사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찬란한 오러.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레키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어 구울들을 처치했다. 

       

       “그루욱!”

       “그륵….”

       

       기사들과 치고받던 구울들과 달리,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두 쪽으로 갈라져 무너지는 구울들.

       

       “쀼우…!”

       

       레키온이 전방의 구울들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리자, 아르가 조막만 한 손으로 박수를 쳤다. 

       

       “아르야…!”

       

       자신을 향해 멋있다는 듯 박수를 치는 아르를 본 레키온의 표정이 사르르 녹았다. 

       

       “어때, 삼촌 좀 멋졌니?”

       “쀼웃!”

       “후흐흐….”

       

       레키온은 아르의 칭찬에 신이 났는지, 다시 검을 뽑아들고 숲을 누비며 블러드 구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읅…!”

       “그르륵…!”

       “죽어라아아아!”

       

       기사들에게 경험을 쌓아 주기 위해 데려온 건 잊어버린 듯 마구 폭주하는 레키온을 본 데보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휴. 하여간 귀여운 거한텐 금방 헬렐레 해 가지고.”

       

       데보라는 이쪽으로 다가와서 아르에게 말했다. 

       

       “쟤가 다른 건 괜찮은데 가끔 저렇게 오버할 때가 있어. 이해하렴.”

       

       데보라는 그렇게 말하며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쀼우!”

       

       아르는 데보라의 손길이 좋은지 활짝 웃으며 데보라를 올려다보았다. 

       

       “…….”

       

       데보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런 아르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아르의 턱 쪽을 살살 만져 보았다.

       

       “뀨우.”

       

       아르가 눈을 살포시 감으며 작게 뀨 소리를 내자, 데보라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손을 뗐다. 

       

       “크, 크흠. 그럼 난 저쪽이나….”

       

       그러고는 레키온이 간 방향과 살짝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구울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였지? 방금 데보라의 그 반응은.’

       

       귀여운 거라곤 볼 줄도 모른다고 레키온이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설마 우리 아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건가?

       

       ‘잠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이다!’

       

       레키온과 데보라가 서로 갈라졌을 때.

       나와 실비아는 같은 생각을 하고, 눈빛을 교환했다. 

       

       “저희도 각자 도우러 가죠.”

       “좋아요.”

       

       실비아는 곧바로 데보라에게 붙었고.

       

       나는 아르와 함께 레키온 쪽으로 붙었다. 

       

       “으아아아아!!”

       

       내가 아르를 데리고 뒤따라 붙자, 레키온은 더욱더 힘을 내 구울들을 단칼에 베었다. 

       

       “아르야, 잘 봐라! 삼촌이 나무들은 놔두고 구울만 쓸어버리는 모습을!”

       

       레키온은 그렇게 말하더니 별안간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는 검을 가슴 앞으로 가져와, 검끝을 향한 채 눈을 감았다. 

       

       슈와아아악!

       

       레키온의 몸에서 황금과 순백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듯한, 눈부신 기운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삐유…?!”

       

       아르는 그 눈부심에 젤리로 시야를 살짝 가리고 삐죽 내민 손톱 사이로 앞을 바라보았다.

       

       ‘저건…. 신성력?’

       

       신성력.

       

       레키온이 게임을 진행하다가 마왕의 추종자들을 잡으며 각성하게 되는 힘.

       

       검술의 경지, 그리고 마력 스탯도 사기긴 하지만, 레키온이 진정으로 인류의 정점에 설 수 있게 만들어 준 스탯이 바로 이 신성력이라는 스탯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스탯이지.’

       

       보통 캐릭터, 아니 레키온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는 힘, 민첩, 체력, 마력의 네 가지 스탯을 가지고 있지만, 레키온은 거기에 신성력이라는 별도 카테고리를 더 지니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검술의 경지에서 레키온을 조금 앞서고, 혹은 마력 스탯에서 레키온을 조금 앞선다고 해도 결국 최종 전투력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 신성력은 마물들과 마왕 세력을 잡을 때 탁월한 효과를 냈기에, 마왕 바할라크조차도 성장한 주인공에게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니 어마어마하긴 하구나.’

       

       뭐랄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 경건해진다고 해야 하나. 

       

       “흡.”

       

       레키온이 기합을 넣자, 신성력이 일순간 확 줄어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주변으로 발산되던 신성력이 단숨에 압축되어 검에 깃들었다. 

       

       그리고.

       

       “하아아압!”

       

       레키온은 검을 잡고 몸을 웅크리듯 한 뒤, 허공에 수평으로 검을 촤악 그었다. 

       

       슈와아아아아악!

       

       그러자 검에 깃들어 있던 신성력이 일시에 방출되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미친.’

       

       고작 일 미터가량 되는 검신에서 방출된 신성력은, 검끝이 그린 호를 따라 숲으로 뻗어 나갔다.

       

       그 호는 점점 커지며 퍼져 나가, 마치 숲 전체를 갈라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끄르륵…!”

       “그르륵….”

       “꾸륵….”

       

       오직 신성력만이 담긴 레키온의 검기는, 놀랍게도 나무나 풀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고.

       

       우후죽순 모습을 드러낸 블러드 구울들은 가차 없이 가르고 지나갔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기에 닿은 구울들은 핵이 정확히 베어진 것이 아님에도, 마치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것처럼 타들어 가 곧 흔적도 없이 스러졌다. 

       

       “…….”

       “삐꾹.”

       

       아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떡 벌리고 있다가, 딸꾹질을 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레키온은 곧 원래대로 돌아온 검을 자신의 검집에 척, 하고 넣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아르에게 다가와 칭찬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때, 아르야? 삼촌 멋있었어?”

       “쀼, 쀼우.”

       

       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핫! 혹시라도 아르를 괴롭히거나 무섭게 하는 마물이 있다면 바로 이 삼촌에게 일러 바치렴. 삼촌이 다 해치워 줄 테니까!”

       

       레키온은 가슴을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근데 단장님. 다른 기사 분들한테 구울들이랑 전투하는 경험을 시켜 준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

       

       레키온은 내 말에 그제서야 깔끔하게 쫙 쓸려 버린 전방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저는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걸로 끝내죠. 아직 저쪽은 전투 중인 것 같으니까요.”

       

       챙! 채앵!

       

       레키온이 검기를 발산하지 않은 뒤쪽에서는 아직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인 모양.

       

       “그럼 주변 좀 둘러 보면서 혹시 땅에 아직 숨어 있는 녀석들이 있나 확인해 보고, 저희 기사들 전투 하는 모습 피드백이나 해 줘야겠네요.”

       

       레키온은 귀여운 아르의 볼을 손가락으로 문질문질하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앞서 걸어 나갔다. 

       

       ‘왔다.’

       

       방금 레키온이 구울들을 한 번에 쓸어 버리고 할 게 없어진 덕분에, 이야기를 꺼낼 좋은 기회가 생겼다. 

       

       “저, 단장님. 혹시 뭐 좀 여쭤봐도 되나요?”

       “그럼요.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조금 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데….”

       “아, 사적인 거였나요? 으음…. 뭐 상관없겠죠.”

       

       레키온은 오히려 내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좋아.’

       

       기회는 생겼다.

       우리의 목적은 데보라에 대한 레키온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

       하지만 그전에 확실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여기저기 같이 다녀 보니 단장님은 여성분들께 인기가 되게 많으신 것 같은데,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나 교제하고 있는 분이 있으신가요?”

       

       너무 단도직입적이긴 하지만, 눈치 없는 사람에겐 오히려 이런 정공법이 나을 때가 있는 법.

       

       ‘진짜 진짜 만에 하나,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확실히 해 둬야지.’

       

       원작엔 나오지 않았지만, 스토리가 바뀌면서 어쩌다 황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일반인과 비밀 연애 같은 걸 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0.1퍼센트도 안 되겠지만….’

       

       여기서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면 이제 살짝 돌려서 이상형 같은 걸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 좋아하는 사람이요? 있죠.”

       “역시 그렇…예?”

       “쀼우?!”

       

       조금 쑥스럽다는 듯 대답하는 레키온의 표정을 본 나와 아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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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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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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