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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붉게 물든 첨탑에 기이할 정도의 침묵이 머물렀다.

       

       시작부터 끝까지 누구 하나 접근하지 않은 지역. 포격을 퍼부을 마법사와 궁수가 없기에, 그들을 노리고 들어올 적들도 없다. 그러니, 지금 첨탑은 그저 하나의 지형지물이자 배경에 불과했다.

        

       두터운 로브를 걸친 채, 둔탁한 마법봉을 종횡무진 휘두르며 황야를 쏘다니는 전사……마법사를 돋보이게 하는.

        

       “네. 이건, 그러니까……배틀메이지 컨셉인데. 마법은 매직미사일만 쓰면서 자세 흔들고, 스태프로 마무리하는 거예요. 신기하지 않나요.”

        

       “……마무리가 되나? 매직미사일이어도 캐스팅 시간은 있고……근접 무기로 쓰기엔 스태프 데미지 너무 낮을 텐데.”

        

       “그럼요. 현자의 후회랑 마방, 멀캐, 퀵리 찍고, 스태프에 강화 걸고 패면 돼요. 캐스팅 시간이야, 뭐. 퀵리 넣고 매직미사일 모션캔슬시키면 미리 누적시킬 수 있으니까.”

        

       지금- 아니, 조금 기다렸다가, 됐네. 키보드를 연타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화면 속 마법사가 수인을 완성하기 직전에 움찔거리며 매직미사일을 축적하는데 성공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 탓에 나름 고급 기술로 분류되던 잡기다.

        

       빈말로도 마법사 숙련도가 높은 편은 아니니, 조금은 집중해야 하는 일이지만……역시, 모든 건 반응속도 문제였던 걸까. 몇 년만의 첫 시도였음에도, 마지막 한 획을 긋기 직전에 모션을 캔슬시키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이거, 아크가 잘 할 수 있으려나. 조금 걱정되긴 하네.

        

       “……누적?”

        

       “네. 아……이건 진짜 버그 아닌데. 현자의 후회 찍으면 직전에 캐스팅하다가 취소된 마법 이어서 캐스팅되잖아요. 그거 중첩시키면서 완료는 안 시키다가, 상대 공격 타이밍에 멀티 캐스팅 발현해서 넘기면 돼요.”

        

       음. 설명을 들은 논란감지기의 표정이 그래도 비교적 멍한 게……이건 괜찮은 것 같은데.

        

       1단계는 통과한 것 같으니, 한번 시연해볼까. 마침 앞에서 도끼를 든 교보재가 오고 있으니, 좋은 타이밍이기도 하고.

        

       -부웅!

        

       노출된 마법사에 흥분한 건지, 눈앞의 광전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도끼를 휘둘렀다. 무모한 움직임이다. 이후의 교환을 생각하지 않은.

        

       아무리 배치 구간이라고 해도 내가 기억하던 유럽 서버의 모습은 아닌데. 마법사가 여기까지 나오면, 상식적으로 뭔가 숨긴 수가 있다고 생각해야지.

        

       배틀메이지의 원산지라기엔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더 추해지기 전에 빠르게 마무리해주는 게 자비겠지.

        

       전진. 회피, 회피, 발현. 그리고-

        

       -퍽

       -펑!

        

       카운터 타이밍으로 날린 매직미사일이 두 차례의 폭발음을 남겼다. 첫 발은 어깨에 부딪혀 큰 데미지를 남기지 못했으나- 복사된 두 번째 미사일은 몸이 틀어지며 드러난 상대의 오금에 적중했다.

        

       저건 넘어진다. 이펙트를 확인할 필요도 없지.

        

       저 뒤편부터 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스태프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상대의 관자놀이에 적중하고-

        

       -콰직!

        

       쓰러진 상대의 머리를 내리치기를 세 차례. 다소 고어한 연출과 함께 킬로그가 올라왔다.

        

       결투에서 승리한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주문쟁이인 탓이겠지. 마법은 본래 손맛이 없는 편이니. 마무리도 둔기라서……쓸데없이 께름칙하기만 하고.

        

       그래도, 효율은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 결투고 뭐고 게임만 이기면 된다는 이들은 좋아할 빌드다. 예전에도 그러했듯.

        

       매직미사일이 발사될 때 이펙트가 생기도록 패치하기 전까지는, 눈앞에서 갑자기 화살이 생겨나서 박히는 꼴이니. 인간의 반응속도론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애초에 생존용으로 디자인된 스킬이다보니, 데미지는 낮아도 경직은 과하게 높고.

        

       이 거리에서 맞으면 키보드에서 손을 떼도 될 정도다.

        

       그런 연유로, 내가 기억하기로는 대중적인 인기로 치면 이 빌드가 가장 높았다. 3법사 조합이 대세가 되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암흑기가 태동했을 정도로.

        

       ……카운터도 미리 준비해둔 입장에서야, 아무래도 좋지만.

        

       아무튼, 이번엔 통과했으면 좋겠는데. 이거 말고는 정말 프로 레벨에서나 쓰는 전략밖에 없다고.

        

       그리 긴장되는 마음으로 옆을 힐끔 바라보니, 뭔가 멍한 표정이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여는 게-

        

       “……이건, 뭐……아니, 진짜 뭐 패러데이 QA출신이에요? 어디서 이런 걸 다 알아온 거야. 마법사 하지도 않잖아요. 이런 빌드는 어디서 알아왔어?”

        

       목소리가, 조금 기묘하긴 한데. 불만은 없어보이니 괜찮은 거겠지. 일단 저 깐깐한 눈으로 빌드라고 지칭하는 것만으로도 통과라고 생각해.

        

       “음……그냥, 영감이 막 떠올라서요. 빌드깎는노인이랑 친하게 지내서 그런가.”

        

       아. 방금 조금 굳었……아닌가. 아니, 아무래도 좋다. 아까까진 괜찮았던 거 생각하면, 빌드랑은 상관없는 거겠지.

        

       까다로운 감지기였다. 성능은 좋은데, 민감도가 너무 높아. 내가 직접 하는 거면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이번 빌드는 아크에게도 슬쩍 밀어줄 생각이니……논란은 없는 편이 좋겠지.

        

       “아무튼……해도 괜찮을까요. 레반님 말씀대로 할 건데.”

        

       “아니, 그, 좀- 하.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뭐, 그냥 기발한 빌드……라고 못할 건 없겠네요.”

        

       드디어!

        

       합격의 기쁨에 감지기를 향해 몸을 휙 돌리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약간 어색할 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도, 손뼉이 마주치는 경쾌한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뒤늦게 확인한 얼굴이, 다소……아니,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지 않나. 사람이 학창 시절에 운동깨나 한 인싸인줄 알았더니, 하이파이브 하나를 안 받아주고.

        

       뭐, 아무래도 좋다. 세 번의 시도 끝에 가까스로 통과 판정을 받아낸 빌드를 저장해두고, 가볍게 기지개를 키며 어깨를 스트레칭하며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보람찬 하루였다.

        

       좋아.

        

       소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면 딱이겠는데.

        

       “그럼, 밥 먹으러 갈까요. 근처에 봐 둔 한정식집이 있어요.”

        

       땡기는 건 국밥 정식이기는 하지만. 보답, 보답이니까……나름 비싼 걸로 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또 뭐 노인네니까 어차피 한정식으로 먹어야 밥 먹었다 느끼겠죠, 같은 소리 하려는 빌드업 같은데.”

        

       “그럴리가요. 한상차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K-전통의 K-소울푸드인데, 혹시 싫어하신다면……. 저는 비밀을 지키겠지만, 유출되면 매국노 논란이 생길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댁이 불 붙이지만 않으면 안 생기니까 제발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튼, 한식도 좋아요. 혹시 제가 한식 좋아할까봐 그러신 거면, 이 근처에 다른 메뉴로도 괜찮은 식당 몇 개 있으니까 말씀하시고.”

        

       ……조금 억울한데. 사람을 무슨 방화범 취급을…….

        

       반박을 입에서 굴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삼켰다. 고마운 사람인데, 굳이 틀렸다고 지적할 필요는 없잖아.

        

       ……의도하지 않은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가끔, 아주 가끔 있기는 했고.

        

       그나저나, 식당……식당이라.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내가 알아본 식당으로 가자는 건 좀 그렇네. 은혜를 갚기 위해 밥을 사주겠다고 불러 놓고, 정작 상대가 원하지 않는 메뉴를 강요하는 꼴 아닌가.

        

       레반 취향이 뭔지는 몰라도, 뭔가 건강한 느낌의 한식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홍삼 캔디를 거부하는 걸 보고 나니 자신감이 좀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저녁조차 닭가슴살에 샐러드 따위로……설마. 그런 비인간적인 사람은 아니겠지.

        

       “샐러드집만 아니면 다 좋아요.”

        

       “네. 아니, 샐러드 전문점을 가려는 건 아닌데……샐러드를 싫어하는 거예요? 양식은 괜찮고?”

        

       “아. 샐러드, 샐러드를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샐러드집은 소주는커녕 와인도 안 팔잖아요.”

        

       “……식당 선정 기준이 이상한데.”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을 뿐인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역시, 기운이 허한 것 같은데. 든든하고 뜨끈한 국밥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 * * *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다소 노골적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착석한 지금까지.

        

       어느 정도는 익숙한 일이었다. 연예인은 아니라지만, 장소에 따라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의 유명세는 가지고 있었고- 스트리머를 시작하기 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정도야 받곤 했으니.

        

       물론, 이 정도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지금 느껴지는 시선들은 결코 그를 향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스크 하나, 모자 하나 없이 저러고 나온 건지. 지적을 하려다가도, 연예인 병이니, 나무꾼이라서 군밤모자가 필요한 거니 하며 놀려댈 것이 떠올라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주변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늑한 레스토랑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관심을 일제히 받은 이예나는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소주 안 파네요.”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메뉴판을 넘기던 그녀가 남긴 불평이었다. 어째 자리에 앉아 메뉴를 펴자마자 맨 뒷장으로 넘기더라니, 술부터 찾는 거였나. 레반은 급격하게 올라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쥐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그야, 안 팔겠지. 나름 SNS에서 핫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었으니. 양파수프 하나도 ‘Soupe à l’oignon’이라고 써둔. 구비된 주류는 모두 음식과 페어링하기 적절한 급의 와인이었다.

        

       그러나 그리 설명한다고 눈앞의 사람이 납득할까, 하면……어쩐지, 답은 알 것만 같았으니. 레반은 그저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꾸욱 참으며, 손을 뻗어 메뉴를 강제로 음식 페이지로 되돌릴 뿐이었다.

        

       계산을 미리 해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욕먹을 것이 불보듯 뻔했다. 술 가지고 잔소리까지 하면,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을지.

        

       “식사부터 정해요, 좀. 술 안 마셔도 되니까.”

        

       “음……네. 역시, 여자가 있어야 술 마시는 타입이구나. 진희님을 부를 걸 그랬네요. 지금이라도 부를까요.”

        

       이건 또 대체 무슨 소린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모르겠을 음해에, 레반은 결국 끝내 참지 못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실 수 있으면 오셔도 좋은데, 갑자기 부르는 건 실례잖아요. 2차에 오실 수 있는지 톡 보내둘 테니까 메뉴부터 정합시다. 이쪽 코스가 괜찮아 보이는데. 메뉴 5개 고르면 됩니다.”

        

       “……왜 불어가 한국어보다 글씨가 큰 거지. 흥선대원군께서 슬퍼하실 거예요.”

        

       “보통 세종대왕 아닌가.”

        

       생각으로 그치려 했던 반박이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입밖으로 탈출했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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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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