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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아무래도 사라의 생일이 꽤 중요한 날이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최나경 외에는 사라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도 분기별로 한 번씩 오는 날을 생일로 조절하는 거라서 큰 차이도 없기는 했지만.

        

       아니, 오히려 사라 입장에서는 더 독이 되는 일이었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4분기가 될 때까지 최나경을 볼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그럴 일 없어.

        

       ……음, 뭐.

        

       그야 그런 일을 겪은 뒤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이제 최나경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트라우마만 도질 것 같았으니까.

        

       뭐, 아무튼.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러니까 그 ‘최나경’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뒤의 사라의 상황이었다.

        

       최나경은 사라가 자신만의 것이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들과 말을 섞을 일이 없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고, 거의 성공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당연히, ‘사라를 만나지 못했던 사람’의 범주에는 물리적으로 사라의 주변에서 가까운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참 타이밍 좋게도, 딱 어제 내가 내 친구들에게 사라의 생일을 가르쳐준 다음 날인 오늘.

        

       언제나 그렇듯 느긋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나의 눈에, 참 보기 드문 광경이 보였다.

        

       저택 앞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파란 차는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차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척 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커다란 세단이었다. 어쩌면 내가 통학하면서 한동안 타고 다니던 세단보다도 훨씬 비쌀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세단 옆에, 정장을 제대로 빼입은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젊고,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대충 봐도, 한 명은 이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뒷자리에 느긋하게 앉아있을 사람으로 보였다.

        

       다만 차 밖에 나란히 서 있는 점이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저택 앞까지 나온 양혜인과 대치 중이었다.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게 시비를 걸거나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일종의 투기가 느껴졌다.

        

       아, 젊은 사람 쪽은 빼고. 이 사람은 지금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조금 현자 타임이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기사가 자기 고용주의 싸움에 휘말리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을 테니까.

        

       ……어떻게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 사람들은 척 봐도 엄청나게 귀찮은 사람들일 것 같다. 요즘 들어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찾아오는 구청 공무원이나 지난번에 찾아왔던 경찰들보다도 더.

        

       뭐랄까, 분명히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아.

        

       아니면 회사 경영권이라던가…… 어쨌거나 엄청나게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사라야, 네 재산이니까 네가 이야기하는 쪽이 옳지 않을까?

        

       내 재산은 너의 재산이기도 한데 당연히 너가 대화해야지. 너가 대표로 있다고 내 돈 안 쓸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할 말이 없기는 했다. 하긴, 나는 사라 허락도 받지 않고 사라 돈을 펑펑 썼었지. 그렇다면 이 정도의 일은 해야 할 거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줄래?”

        

       “어…….”

        

       나를 따라온 하늘이, 소희, 수아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양혜인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양혜인이 망치로 차 창문을 깨부수던 모습을 이 세 사람이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들었다. 특히 내가 직접 증언해주었으니, 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자리 잡은 양혜인의 이미지가 조금 이상하게 잡힌 것 같기는 하지만…… 뭐, 그거야 양혜인 본인이 직접 풀어가야 할 문제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최대한 당당한 보폭으로 저택 문 앞을 점거하고 있는 그 사람들 곁으로 걸어갔다. 내 뒤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늘이, 소희, 수아 세 사람이 천천히 따라오다가, 그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둔 곳에 멈추어 섰다.

        

       “양혜인 씨?”

        

       나는 들이쉬었던 숨을 토해내면서 조금은 큰 목소리로 양혜인을 불렀다.

        

       “아가씨, 어서 오십시오.”

        

       양혜인은 평소와 같이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차 앞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오, 사라! 오랜만이다.”

        

       나이 많은 쪽의 남자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

        

       나름대로 멋지게 받아쳐 보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야 나는 이 사람을 몰랐으니까.

        

       사라의 기억 속을 봤는데도 이 사람의 얼굴은 모르겠다.

        

       “나다. 인혁 삼촌.”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많은 사람 치고는 몹시 붙임성 있는 목소리였다. 너무 낮지도 않고, 너무 높지도 않은. 사업하면 설명 같은 거 잘할 것 같은 목소리.

        

       ……아마, 실제로도 사업을 하고 있겠지.

        

       스스로 사라의 삼촌이라고 지칭할 정도라면 분명 그룹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 ‘삼촌’이라는 게 진짜 삼촌일지 아닐지 나는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진짜 삼촌이라면, 이 사람은 사라의 아버지의 형제라는 소리가 되고—

        

       아냐. 우리 아빠는 외동이었으니까.

        

       —만약 아니라면, 추측하기가 훨씬 복잡해진다.

        

       친한 남자 어른을 두고 삼촌이라고 부르는 때도 있고, 집안에 따라서는 오촌이나 육촌 정도의 관계에서도 삼촌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어…….”

        

       그런데 문제는, 대놓고 물어보기가 영 애매했다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친척 어른한테 ‘누구세요?’할 수는 없잖아.

        

       원래는 얼타고 있으면 옆에 있는 부모님이 은근슬쩍 누구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최나경은 지금 도피 중이네.

        

       하긴, 도피 중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라 옆에 있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긴, 그렇겠구나. 내가 너를 만났을 때는 너가 아주 어렸을 때였으니까.”

        

       내가 멍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보고 있으니, 그 아저씨는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얼굴‘만’ 두고 보면 이 사람은 무척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 얼굴‘만’두고 보면.

        

       최나경도 얼굴만 두고 보면 묘령의 미녀였으니까. 사람 외모가 무조건 성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쪽 세상으로 와서 확실하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

        

       나는 일단 양혜인 쪽을 돌아보았지만,

        

       “…….”

        

       양혜인도 마찬가지로 아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사라가 중학생 때쯤 되었을 때 들어왔으니, 그 이전에 만났을 친척들을 양혜인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 사라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있었으니까.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여기서 ‘왜 오셨어요?’하고 물어보는 것은 조금 실례일 것 같았다.

        

       나는 괜찮은데.

        

       사라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언제나 당당한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겁이 많은 구석이 있어서, 사라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뭐래.

        

       아마 사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사라가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 내미는 것도 볼 수 있었을 거다.

        

       “…….”

        

       내가 그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고만 있자, 그 아저씨 이마에 땀이 한 방울 맺혔다.

        

       음…….

        

       그래도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다면, 사라의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테니까. 괜히 사건 사고를 그대로 두었다가 몇 년 뒤에 펑 터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자만하는 것 같지만, 유진 그룹은 대한민국 경제를 꽉 틀어쥐고 있는 그룹이니까.

        

       유진 그룹이 은행은 아니라서 망한다고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또 이야기가 다를 테니까.

        

       게다가 이 세계가 ‘게임’의 설정과 닮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또 어떤 과장된 설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 아저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런 행동을 보면 그렇게까지 계산적인 아저씨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연기일지도 모르겠지만.

        

       *

        

       그 눈이, 닮았다.

        

       물론 지금 예인혁의 앞에 서 있는 예사라는 최나경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였다. 분위기가 닮기는 했지만, 그것은 최나경이 은근히 유도하고 있어서 그런 거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유까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사라를 자기 친딸처럼 보이게 해서 회사 내의 입지를 단단히 하려고 했던 걸까?

        

       그건 최나경이 잡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리라.

        

       ……일단, 들은 이야기만 두고 판단하자면, 사라가 최나경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게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번의 그 대형 사건으로 인해 최나경과의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기는 하지만, 원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설령 그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최나경의 영향을 받은 사라가 어떨지, 그는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유진 그룹의 총수가 누가 되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의 가문이 대를 이어 키워온 이 거대한 회사가 계속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을 시도했으나…

    또 실패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 몸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계속 잠만 잤어요…

    내일은 꼭 연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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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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