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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내가 황제로부터 배운 것을 써먹는 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정치적으로 그의 행보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이슈는 이슈로 덮어라.”

     여론의 시선을 한곳으로 돌리는데 가장 좋은 건 역시 새로운 이슈다.

     “신문의 발달로 사람들은 정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하게 되었고, 실제로 노스트럼 왕국에서도 신문사가 생겨났죠. 왕국일보라는 이름으로.”

     나는 제국신문과는 다른 형태의 신문을 앞으로 내밀었다.

     “모르가니아에서 출자한 회사가 제국에서 마도윤전기와 전문 인력을 받아와서 신문사를 만들었습니다.”

     “음….”

     윈체스터 대공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게 카르멘 왕비님의 스타일은 아니죠. 제국 것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던 윈체스터 대공의 형식은 더더욱 아니고요.”

     “…….”

     “어디까지나, 한 5년 전의 대공이었다면 말입니다.”

     “크흠.”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늘그막에 무슨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걸 손자에게 들킨 것처럼 쑥스러워했다.

     “언론은 곧 권력입니다. 대중을 향한 정보통제에 있어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또 없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최근 누아르 지브롤터의 짝에 대하여 여러모로 이야기가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별다른 큰 이슈가 없는 현재, 오로솔 아카데미 안의 남녀관계는 모든 귀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당장 이해관계가 얽힌 귀족들뿐만 아니라, 평민들마저도 누아르의 연인에 대해 관심이 있죠.”

     “왕국 여자여야만 하니, 지브롤터의 균형이 유지될 테니.”

     “그런 정치적인 이유로 누아르의 자유를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음?”

     윈체스터 총장이 한쪽 눈썹을 들었다.

     “왜. 누아르도 ‘지브롤터’하겠다고 하던가?”

     “…….”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네 아버지가 지브롤터하는 바람에 제일 큰 피해를 본 당사자와 그 아버지인데.”

     “그건, 다시 한번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됐어. 그냥 농담 한 번 해본 거다. 흐흐.”

     농담치고는 들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이지만, 확실히 윈체스터 총장이 이런 걸로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가 많이 풀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말을 할 때 웃음은커녕 대놓고 빈정거릴 정도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뒀으니까.

     “누아르가 누구 좋아하는지는 결정 났나?”

     “그건 본인의 감정에 달려있습니다만, 사실상 99%는 확정되었죠.”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자네처럼 신문에 대서특필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

     “예.”

     “그렇다면 다른 영애들이 도전하려고 하겠군.”

     “그렇습니다.”

     

     누아르에게는 공식적으로 연인이 없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웬즈데이는 그저 지브롤터에서 보낸 ‘사용인’.

     “자네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건 분명 다른 영애들에게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보일 수 있는 요소가 큰 여인이라는 거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 보자, 누아르 근처에…. 한 명뿐인데? 그 메이드 아가씨?”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악한 녀석.”

     즉, 이성이 아니라 여성일 뿐인 ‘하인’으로 사람들이 보고 있다.

     “그렇다면 내 멋대로 착각해서 그 메이드 양이라고 생각하겠네. 음, 위험하군.”

     “저도 그냥 제가 생각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누아르의 그녀는 아무래도 왕국 전통주의자 입장에서는 하자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겠지. 백발인 데다가 신분은 사용인이며, 예쁘기까지 하니.”

     제국 출신이라는 것도 약점인데 사용인으로서의 모습을 계속 보여왔으니, 뭇 많은 영애가 질투할 수밖에 없다.

     “사교계에서 제일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인데. 남자들끼리 감정 상한 건 어떻게 대결이든 술이든 성인이 되어 해결할 수 있지만, 여자들이 감정 상하는 건 생각보다 오래가거든. 특히 실연이라거나, 질투라거나, 그런 쪽으로는 말이야.”

     “…….”

     “카르멘 왕비의 이야기가 아니야.”

     잠시 뜨끔했지만, 아무래도 보편적인 이야기인가보다.

     “카르멘은 지금도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예외지.”

     “카르멘 왕비가 아닌, 다른 영애들의 이야기였군요.”

     “그래. 네 아버지를 사랑했던,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의 부인이 된 여인들.”

     윈체스터 대공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부모는 자식이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아. 특히 자신의 실패를 똑같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지.”

     “실제로 어떤 부인 중에는 크림슨 지브롤터의 아내가 되지는 못했어도, 사돈이라도 되겠다고 벼르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막말로 본인도 패배했는데, 자식까지 패배하는 꼴을 보고 싶겠나?”

     “예. 하지만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적어도 마음은 상해도 그걸 정적 관계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즉,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자? 그 정도로 사랑하면 인정이지, 뭐 그런?”

     윈체스터 대공이 시시덕거리며 나를 가리켰다.

     “국왕이고 뭐고 우승한 기념의 키스를 했던 미친놈처럼?”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충격은 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적절한 장소가 바로 렘버리구요.”

     “아카데미 정규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는 환경을 이용해서 누아르 지브롤터의 공개 고백 타임이라도 만들려고?”

     “……그런 것까지는 아닙니다.”

     누아르는 내가 아니다.

     그런 판을 만들어 주면 나보다도 더 미쳐 날뛸 녀석이기에, 그런 식으로 판을 깔아주면 안 된다.

     “할아버지.”

     “그렇게 부르는 거 보면, 또 무슨 심각한 말도 안 되는 장난질을 생각해 냈다는 건데.”

     “…….”

     “그 장난질, 이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거다. 경룡장을 만들어서 현재 우리 노스트럼의 공군 전력이 쓰레기라는 걸 만천하에 폭로하겠다, 그렇게라도 말이지. 이상한 도박을 동원하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말고.”

     “…….”

     사설 도박장을 몰래 열어서 약간 재미를 보고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참에, 저희 가문에 가장 걸리적거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겸하겠습니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

     “예. 그리고 그를 위시한 주변의 매국노들.”

     나는 손날을 세워 내 목을 가볍게 그었다.

     “훗날 나리아가 왕위에 올랐을 때, ‘숙청할 명분’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겁니다.”

     “소급은 안 될 것 같은데.”

     “소급되지는 않더라도, 모두의 기억에는 남을 그런 충격적인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나는 윈체스터 대공의 탁자 위에 빈 종이를 펼친 뒤, 어느 한 구역을 그려냈다.

     “1주일 동안의 단체 야외체험학습. 본래라면 귀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시설은 풍족하고 물자는 고급이어야 하죠.”

     “그렇지.”

     “구역을 나눌 겁니다. 제국 유학생 구역, 평민 출신 구역, 그리고 왕국 귀족들의 구역.”

     “…외교 문제로 만들려고?”

     윈체스터 대공이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내가 붓펜으로 그어낸 구역을 여러 개로 쪼개었다.

     “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는 하자 있는 걸 주고, 평민들을 대상으로는 썩기 일보 직전인 걸 주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귀족 학생을 상대로는 체면치레용 물품을 주고, 뒤끝이 두려운 권력자 가문의 귀족을 대상으로는 양품을 준다?”

     “예.”

     “가기 전부터 말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서, 몇 가지 장난질을 쳐볼까 합니다.”

     “…대놓고 장난질이라고 하다니. 그래, 뭔데?”

     “명단 바꿔치기?”

     나는 두 손을 들었다.

     “4인 1조를 구성하여 야외 캠프 같은 걸 만드는데, 미리 명단을 구성해야겠죠. 가서 하면 복잡하니까.”

     “그렇지.”

     “그 명단, 현장에서 뒤집어 버리죠.”

     “……다 섞어버리자고?”

     “예.”

     “그래도…되지. 음. 욕은 내가 먹겠지만, 내가 총장인데.”

     윈체스터 총장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표정들 볼만하겠어.”

     “그리고 이왕이면 이 현장 체험, 좀 더 극한상황으로 만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극한상황?”

     “예. 말 그대로 극한상황이죠. 이건 제국 쪽의 의향을 물어봐야 외교 문제로 커지지 않겠지만, 이런 건 어떻습니까.”

     아마도 이건 윈체스터 총장이 듣자마자 반색할 것이다.

     “군대식 운영.”

     “……!!”

     “일주일 동안, 학생들의 현장 체험학습을 군대에서 훈련하는 것처럼 프로그램을 짜는 겁니다.”

     “호오….”

     윈체스터 모르가니아는 대공이자 재상이자 총장이기 이전에, 비룡기사단의 단장이자 마스터이며-근본은 기사이며 ‘군인’이다.

     “상황을 좀 더 긴밀하게 짜볼까요? 노스트럼에 닥칠 대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건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겠나? 지금 마도자동선으로 유람을 다니는 누군가가 발작을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뭐…방향을 바꾸도록 하죠. 앞으로 학생들은 겪지 못하게 될 ‘전쟁 상황’에 대한 체험.”

     “눈 가리고 아웅이기는 하지만, 제국에서 속내를 모를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또한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군사훈련의 모습을 가진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학생들을 군인으로 삼으려는 것이냐? 아니죠.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저 체험을 시켜줄 뿐입니다.”

     “과몰입하지 말라고 뻗대는 거군. 전쟁을 일으킬 생각도 없는데,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라면서.”

     “그런 거죠.”

     “그렇다면…극적인 상황은?”

     “암살자.”

     내 말에 윈체스터 총장이 잠시 손을 움찔거렸다.

     “…잠시.”

     그러고는 손에 마나를 펼치더니, 주변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다행히, 아무도 없군.”

     “지금 확인하는 건 늦은 거 아닙니까?”

     “이미 이전부터 없었지만, 한 번 더 확인한 거다. 중요한 이야기니까.”

     윈체스터 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암살자를 보내서 누구를 숙청하려고 하는 거지?”

     “아무도.”

     “아무도?”

     “숙청하지 않습니다. 숙청한다면, 그들이 보낸 암살자입니다.”

     “…과연.”

     윈체스터 총장이 총장실을 뒷짐 진 채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암살자라는 이름의 호위 기사를 보내어 암살의 위협이 있는 이들을 보호하겠다.”

     “겸사겸사, 누아르를 위한 극적인 상황도 연출을 좀 할 예정입니다.”

     나는 가볍게, 손으로 찌르는 시늉을 했다.

     “…자네가 직접 하려고?”

     “저를 눈치챌 수도 있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뭐 그래야겠죠.”

     “……?”

     “이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라서.”

     아직 황제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정적이 좀 많다.

     그리고 개중에는 황제의 실체도 모른 채, 그저 그가 겉으로 보여주는 뒷모습만으로 판단하고 함부로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불안해하시니 말씀드리자면, 황제가 제국에서 전권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과잉 충성을 하는 충성병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노스트럼의 수호자가 될 누아르 지브롤터를 암살하여, 제국을 향한 충성심을 보인다?”

     “그런 자도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지, 실제로 온다는 건 아닙니다.”

     이건 진짜 가능성일 뿐이며,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이사벨라 황태자비는 이미 죽었다.

     “그저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 딱히 꼭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좋아. 교육 프로그램 운영, 암살자 대비. 그런 건 우리가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니, 제일 큰 문제를 언급하도록 하지.”

     

     윈체스터 총장이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게로 눈을 돌렸다.

     “…렘부르 군터 자작이 비리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나?”

     이것이 하나의 사회실험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하나 있다.

     “이건 모두 저들이 ‘비리를 저지른다’라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계획이야. 그게 아니면 그저 누아르 지브롤터를 위한 고백의 장, 그 정도밖에 안 되지.”

     “그런 걸 하려면 아카데미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이 정도로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계획인데, ‘효율’이 나오려면 그들이 무조건 비리를 저질러야 해. 어떻게 할 건가?”

     “그야.”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부분이지만, 답은 처음부터 나와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대공 각하.”

     나는 품에서 어느 한 서류를 내밀었다.

     “약쟁이들이 약을 끊는 거 보셨습니까?”

     “……!”

     “그들은 평소에 재산을 탕진하듯 돈을 사용했습니다. 모종의 사유로 최근에 돈을 많이 잃었고, 돈을 급하게 수혈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침 대량의 눈먼 돈이 들어올 곳이 생겼군요.”

     어느 귀족들의 약물 구매 명세서.

     어느 귀족들의 도박장 출입 사진.

     “판이 깔리면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할 자들입니다. ‘애국’이라는 명목으로.”

     편 가르기로 이미 준비된 명단.

     “그리고.”

     예산에 관하여, 비어있는 결재 칸.

     “예산 집행에 대한 감사 권한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미, 단두대는 준비되어 있다.

     밧줄을 끊어내지만 않았을 뿐.

     “비리는 하라고 놔두면 오히려 절제하죠. 그냥 알아서 하도록 놔두면 더 잘하는 겁니다.”

     “…비리 좀 저질러 본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구나.”

     “검술, 기승, 정치. 그런 것보다 제가 제일 자신있는 분야가 이쪽입니다.”

     “…….”

     “잊으셨습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저는 10살부터 국가 예산을 횡령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타이틀] 10살에 비리를 저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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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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