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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7

   “……따라오라니.”

     

   메리는 크라슈의 말을 멍하니 곱씹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에게 누군가 따라오라는 말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메리는 평생토록 최전방에서 적과 맞부딪치고, 그들을 깨부쉈다.

     

   그녀는 타고난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평균보다 아래 수준.

     

   그래서일까, 오히려 그 점이 선두에 설 때 장점으로 작용했다.

     

   머리를 비울 수 있기에 메리는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또 진격하고, 또 진격하여 모두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장기였다.

     

   하지만 그러한 장기도 무의미한 상대가 있었다.

     

   최흉 속에서 태어난 존재, 라그나로크.

   세상을 한 손에 집어삼키는 그 괴물 앞에 메리는 무기력했다.

     

   창공의 세대는 철저하게 박살이 났고, 나라는 이 세상에서 지워졌으며 메리는 죽음의 코앞까지 밀어 넣어졌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

   세계는 어느덧 멸망에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자 부상자 할 거 없이 모두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그때야 깨달았다.

     

   선두에 서야 한다는 중압감과 자신 한 명에게 모든 게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결말을.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그녀는 막연한 불안감에 빠졌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가 기댄 것이 다름 아닌 아서였다.

     

   늘 자신의 옆에 당당히 서 있던 영웅.

   그 영웅은 자신에게 이리 말하였다.

     

   「괜찮아. 메리, 네가 실수하더라도 내가 돌이킬 수 있어. 나에게는 회귀가 있으니까. 너는 마음껏 나아가도 괜찮아.」

     

   아서가 말해준 마지막 수단.

   이 세상이 설령 지워진다고 하더라도 함께 돌아가면 된다는 그 말.

     

   그 말 하나를 믿고, 메리는 라그나로크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래, 분명 그랬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시나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은 멸망했고, 창공의 세대는 크라슈와 아서를 포함한 몇 명을 남겼을 뿐.

   모조리 전멸했다.

     

   그녀는 세상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분명 짓누르던 중압감을 무시하고 달렸음에도 이런 결과가 왔다.

     

   중압감을 한 번 던졌기에 되돌아온 중압감은 이전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있었다.

   그러니 메리는 회귀하고 나서 더더욱 아서에게 집착했다.

     

   아서만이 이 중압감을 없애 줄 수 있는 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서는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아서의 모습은 메리의 깊은 속내부터 썩어들어가게 했다.

     

   연이어 터지는 사건들과 점점 구렁텅이에 빠지는 현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믿었던 시그린의 모멸적인 말까지.

     

   그 모든 것들이 메리를 망가트리기에는 충분했다.

     

   그러한 시점.

   자신을 꺾어버린 크라슈가 메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나 따라오든가.」

     

   자신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

   그 말은 메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자신은 늘 뒤에서 응원해주는 이들과 믿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으니까.

   아서마저도 그녀의 옆에 섰을 뿐, 앞에서 설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지금 자신에게 따라오라 하였다.

   크라슈가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발을 들인 시점 그 말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메리가 넋을 놓은 표정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크라슈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여자 모습이지만 그의 본래 모습이 같이 겹쳐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저주받이 같은 게 아니었다.

     

   신창이었던 자신에게조차 따라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강자이자.

   새 시대를 열 눈부신 인물이었다.

     

   메리의 목울대가 꿀꺽하니 움직였다.

     

   메리 또한 사람이다.

   세상이 멸망했을 때 그녀의 마음속에 깊디깊게 자리 잡은 불안감과 두려움은 계속해서 그녀를 갉아 먹고 있었다.

     

   이것은 시그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본래도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회귀하고 난 뒤 그녀의 성격은 더더욱 날이 섰으니까.

     

   시그린 또한 멸망 앞에서 겪은 무기력함에 갉아 먹힌 것이다.

   그녀는 늘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였으니까.

     

   그래서일까, 메리는 의외로 자신이 오래전에 시그린에게 기대는 것을 멈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멸망으로 갉아 먹힌 시그린의 곁에 있다고 한들 그녀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택한 도피처는 아서였으나.

   그러한 도피처 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금.

     

   크라슈의 발언은 무척이나 달콤하기 그지없는 유혹이었다.

     

   “정, 말, 정말 따라만 가도 되나요?”

     

   크라슈는 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메리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멸망을 모르는 그이기에 이미 한 번 패배해버린 자신들보다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지 않을까.

     

   무척이나 자기 멋대로 적인 해석이었으나 메리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더 이상 그녀는 앞을 걸어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침묵했다.

   그 침묵 앞에 메리는 마음이 술렁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오롯이 크라슈의 입에만 꽂혀 있었다.

   그에게서 나올 대답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그녀는 몸을 움츠러트린 채 크라슈의 대답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래.”

     

   그 순간 크라슈의 입이 열린 순간.

     

   “넌 따라오기만 해도 돼.”

     

   기다림의 끝에 들려온 달콤한 말은 그녀의 귀를 지나 뇌와 마음속에 확실하게 각인 되었다.

     

   쩌적-

     

   그녀의 머리 위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메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크라슈는 그 소리를 어느 때보다 크게 들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블랙 후드가 발동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서진 다이얼의 흔적들이 빛 조각이 되어 흩날렸다.

     

   흩날리는 빛 조각 속 메리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중압감과 모든 것을 떨쳐 버린 그녀는 오로지 크라슈를 따라가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녀에게 덧없는 환희를 선사했다.

     

   부서져 내리는 빛 조각 속 크라슈의 주먹이 조용히 쥐어졌다.

     

   그토록 원하던 스킬 엑셀.

     

   그 엑셀이 이 순간 크라슈의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메리도 얼마 안 가 자신의 스킬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메리는 크라슈에게 자신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가장 두려울 테니까.

   그녀는 평생토록 자신이 엑셀을 지닌 척 연기를 하며 살아갈 것이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메리에게 볼 일이 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역할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메리,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네, 뭐든, 뭐든 부탁하세요!”

     

   메리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미안한 척 웃음을 지었다.

     

   “시즐리에게 연락을 좀 넣고 싶거든. 방법이 있을까?”

   “시즐리 에파니아 님, 말씀이신가요?”

     

   메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시즐리와 크라슈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이야 메리도 알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연락까지 넣을 줄은 몰랐다.

     

   “그래, 가능할까?”

     

   크라슈가 다시금 질문을 하자 메리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의 몸에 각인된 황가의 낙인의 소유자는 시즐리다.

     

   그러니 그녀 또한 낙인을 통해 연락을 넣을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금방 연락 넣어 볼게요.”

     

   무엇이든 하겠으니 자신을 내치지만 말아 달라는 듯 메리가 말해왔다.

   그런 메리를 보며 고맙다고 웃어주자 메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감에 겨워했다.

     

   크라슈에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린 대가였다.

     

   ‘이걸로 메리에게 볼일은 끝났다.’

     

   메리의 재능은 높게 평가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앞으로 메리가 스스로 변할 수 있냐 없냐다.

   크라슈는 계기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는 해줄 수 없다.

     

   ‘한 가지 궁금하긴 하네.’

     

   스킬이 없이 천무지체만으로 무의 위에 올라설 메리 다이아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상상이 현실이 될지 아닐지는 메리에게 달려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둘.’

     

   아벨라와 시그린 에파니아.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함께 회귀한 세 명의 여성 중 하나.

   메리 다이아나.

     

   크라슈가 그녀를 완전히 무너트린 순간이었다.

     

     

   * * *

     

     

   메리와의 일이 있었던 후 크라슈는 무사히 여자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어머니를 닮은 외모 탓인지 시선을 무척이나 많이 끌긴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선뜻 말을 거는 이는 없었다.

     

   여체화한 크라슈의 얼굴이 무척이나 냉담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크라슈가 특수학관으로 향하던 도중이었다.

     

   이대로 달링을 만나 여체화 해제 물약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야, 메리의 볼일이 끝난 만큼 하루씩이나 더 이 모습을 유지할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 크라슈. ]

     

   그러는 순간 상공을 유유히 날아가고 있던 크림슨가든에게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크라슈가 의문을 보이며 크림슨가든을 올려다본 순간.

     

   크라슈는 어째선가 등 뒤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그가 서둘러 앞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응?”

     

   거기에는 검푸른색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왜인지 모르게 마주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압박감.

     

   샬롯 발하임.

     

   다름 아닌 크라슈의 한 살 터울 누나였다.

     

   샬롯과 마주하자 크라슈가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무언가 이 모습으로만큼은 샬롯과 마주치면 안 된다는 감각이 몸 전신에서 스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크림슨가든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눈치챘다.

   크라슈가 몸을 빼기 전에 일부러 시선을 돌린 거였다.

     

   [ 깔깔. ]

     

   성격 나쁜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라슈는 당장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부터 생각했다.

     

   왜냐하면 샬롯은 크라슈와 마주치자마자 줄곧 그를 쭉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여장하고 다니는 모습을 본 누이의 반응은 어떨까.

   다른 누이였다면 모를까, 크라슈는 도저히 샬롯이 보일 반응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직 눈치 못 챘을 거다.’

     

   그냥 어머니를 좀 닮은 여성으로 생각하겠지.

   크라슈가 그대로 샬롯에게 고개를 돌린 채 지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크라슈.”

     

   일말의 망설임 없이 샬롯이 크라슈를 불러 세웠다.

   크라슈의 어깨가 무심코 반응한 순간 샬롯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무슨 꼴이니, 그게?”

     

   크라슈의 마음속에서 순간 엑셀을 사용하여 도망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 마음을 접었다.

     

   샬롯이라면 엑셀마저도 따라올지도 몰랐다.

   크라슈는 샬롯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안다.

     

   그녀에게는 차라리 정면 돌파가 낫다.

     

   그러니 크라슈는 당당하게 샬롯에게 돌아섰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여장을 위한 사정이라니.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지만 크라슈가 할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자 샬롯은 자기 턱을 살짝 누르며 크라슈를 아래위로 훑었다.

   그 시선이 어딘가 두려워 크라슈가 무심코 몸을 움츠러들었지만, 샬롯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내 샬롯 특유의 입꼬리만을 틀어 올리는 웃음을 지었다.

     

   “여동생도 나쁘지 않네.”

     

   샬롯은 그 말을 하며 어느샌가 크라슈의 바로 앞에 우뚝 섰다.

     

   “우리 동생, 최근 누나한테 부탁한 게 많았는데. 어떠니? 이참에 갚는 건.”

   “갚으라는 건…….”

     

   크라슈가 침을 꿀꺽 삼킨 순간 샬롯이 눈웃음을 그렸다.

     

   “데이트하자.”

     

   갑자기 샬롯과 데이트를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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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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