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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188 – 후회하게 될 거야>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폐쇄된 구 교정에 모였다.

     

    “정말일까? 레이브 교수님이 특훈을 시켜주신다는 말.”

    “학칙을 제치고 비밀리에 도와주는 거니까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오라는 메시지마법이 온 걸 보면 틀림없겠지.”

    “맞아. 점수 주시려고 변방 애들하고 반 대항전까지 잡아주셨는데 이렇게 더 챙겨주시는 분이 레이브 교수님 말고 누가 더 있겠어?”

     

    변방출신 학생들에게는 최악의 교수로 손꼽히지만 제국출신 학생들에게는 최고의 교수로 손꼽히는 레이브 교수님.

    변방 애들에게는 차갑지만 우리 제국 애들에게는 따스한 그의 자비를 학생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으 추워. 교수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시간 아깝네… 졸려. 이만 돌아갈래.”

     

    기다리다 못해 구교정 빈 강의실을 떠나려던 학생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앗 차거!”

    “왜 그래?”

    “문이 엄청나게 차가워. 손이 달라붙는 줄 알았어.”

    “뭐야… 우리 그럼 갇힌 거야?”

    “알았다. 이거 교수님의 시험 아닐까?”

    “음. 이 아카데미라면 있을 법한 일이지.”

    “좋아. 마법으로 문을 날려버리자.”

    “앗, 그러면 안 돼! 메시지 마법을 잊었어?”

     

    학생들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제국마도학 기초와 이해 강의의 추가점수득점을 위한 특훈을 해주겠다. 통금시간 이후에 해당 장소로 모이도록.]

    [만일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학칙위반으로 벌금은 피할 수 없으니 행동에 거듭 주의하라.]

     

    선배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아카데미의 벌점이 얼마나 뼈아픈 손실인지.

    반대로 추가점수를 낙제위기의 학생에게 얼마나 많은 포인트와 바꿀 수도 있는지도.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는 거야.

    점수가 탐이 나서, 혹은 벌점이 두려워서.

    소란을 피우고 도움을 요청할 티이밍을 놓친 그들은 갈수록 더해지는 추위 속에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교수님, 저희 실력으로는 무리에요.”

    “마력이 너무 커서 문의 냉기속성을 녹일 수가 없어요.”

    “그만 꺼내주세요. 네?”

     

    드드득.

     

    문이 진동했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교수님이 이제 열어주시려나 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어서 문 앞에 모여든 학생들.

    그런데 문의 상태가 이상했다.

     

    쩌저적.

     

    ‘열린다’는 개념보다는 ‘깨진다’는 개념에 가까운 얼음문의 상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파아앙!

     

    수천 조각으로 갈라진 얼음문의 파편이 세차게 튀어나가며 학생들의 몸에 파고들었다.

     

     

    * *

     

     

    “그건 내가 부른 게 아니다.”

    “네? 저흰 교수님의 시험인 줄 알고 마지막까지 입 다물고 있었는데!”

     

    레이브 교수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학생을 노려보다가 자기가 1학년이라도 이 아카데미에서라면 그런 착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쨌건 입을 다문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너희가 불경한 목적으로 범죄현장에 나가 피해를 입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감점이 따랐을 테니까.”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려고 다수의 학생이 모인 시점에서 이미 생활평가점수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차라리 입을 다문 덕분에 감점이라도 안 받은 것이 운이 좋았다.

     

    “들어오시오.”

    “뭐라고들 합니까?”

    “학생들이 반 대항전에 앞서 훈련을 하다가 실수로 부상을 입었다는군.”

    “저런. 교관도 안 부르고 통금시간에 출입금지구역에서 사고를 치다니, 학생들한테 벌금이 아주 무더기로 쏟아지겠군요.”

    “이번 건은 교수인 내게도 책임이 있네. 학생들의 열의를 알아주고 미리 적절한 시간에 훈련시설과 감독교관을 붙여두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지. 포인트 지불은 내 포인트로 대신하겠네.”

    “레이브 교수님은 참 흔치 않은 인격자시군요. 제국의 살아있는 양심이십니다.”

     

    학생들의 눈에도 존경과 흠모의 빛이 어렸다.

     

    “그럼 치료는 부탁하네.”

    “맡겨주십시오.”

     

    학생들이야 엉뚱한 이유로 입을 다물었지만 감점 건이 아니라도 입을 다문 것은 현명했다.

     

    ‘메시지 마법. 급속폭랭마법. 어느 쪽도 전부 증거가 깔끔하게 휘발되었군.’

     

    현장에 직접 들러 문이 있던 자리를 훑어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학생들이 말한 강철문은 없었다.

    원래 있던 문을 얼린 것이 아니다.

    애초에 문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놓고 학생들을 함정에 빠뜨렸음을 암시하는 대목인데 정작 폭발한 빙결문은 물기도 안 남기고 전부 사라졌다.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그가 사용한 ‘급속빙결’의 수법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들키더라도 증거는 남지 않는다는 그의 계획을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더욱 과감하고 많은 이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며 그의 명예마저 위협하는 치밀한 방식으로.

     

    ‘오크노디… 이게 이번 복수에 대한 네 답인가.’

     

    아무것도 모르고 휘말린 뾰이나 운 좋게 같이 아픈 꼴을 겪게 해준 이사벨.

    두 학생과 오크노디는 궤를 달리한다.

    이번 일로 알 수 있었다.

    사용된 마법의 정체는 <온도전환>마법.

    사용된 전문화는 <급속>.

    추가술식은 <시한폭발>, <휘발성>.

    결과적으로 시전 된 마법은 4써클 <시한폭발얼음>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마나로 교수인 자신보다 더한 위력의 빙결을 실현해버린.

    1학년의 마나량은 절대 아니다.

    1학년의 마도학 지식수준은 절대 아니다.

    1학년의 마나제어술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것이 1학년의 수준을 아득히 능가했다.

     

    -진짜 암살자는 당신과 다르게 대놓고 위협해도 잡히지 않아.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수많은 학생들을 휘말리게 하고도 증거 하나 남기지 않은 오크노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먹에서 거칠게 한기가 피어올랐다.

     

    스스스.

     

    파충류는 얼어 죽고도 남을 지독한 한기를 뿜어내는 레이브 교수.

    그의 눈이 한층 깊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좋다. 다음은 주변인이 아닌 널 직접 건드려주지. 그때도 이런 건방을 떨 수는 없을 거다.’

     

     

    * *

     

     

    아이린은 위풍당당하게 자신을 찾아온 용사를 떨떠름하게 쳐다봤다.

     

    “안녕. 네가 북부대공녀 아이린이지?”

    “…그런데.”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미안. 잠깐 자문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어.”

     

    상큼하고도 당당한 미소를 띤 용사 이슈타르.

    그녀는 제 성격만큼이나 위풍당당한 정의심주머니를 뽐내며 용사가 용사라 불리는 이유를 자랑하며 지나가던 여학생들의 기를 죽였다.

    아이린 또한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신의 것을 의식하며 어깨를 움츠리고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가까이 서고 싶지 않아.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큼 다가와 덥썩 손을 쥐려고 드는 용사.

    가볍게 뿌리친 손에서 매서운 한파가 피어올랐다.

     

    “건드리지 마. 빙결술사에 대한 매너가 아니야.”

    “앗, 불편했다면 미안! 꼭 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랬어.”

     

    빙결술사는 접근하는 모든 것을 무의식적에 얼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함부로 접촉하는 행위는 접촉한 자에게도, 빙결술사 본인에게도 원치 않은 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저항력이 느껴졌어.’

     

    용사는 자신을 해하는 빙결이 손등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누구에게도 허물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자격증을 지닌 사람처럼 절대로 다칠 걱정이 없는 용사는 마법사와의 신체접촉도 꺼려하지 않는다.

    가슴도 태도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 정도로 당당한 여자였다.

     

    “실은 이번에 학생들이 단체로 빙결마법에 당해 의료동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최소 3써클 이상의 마법으로 추정되는데 빙결마법의 전문가 하면 우리 기수에서는 아이린 당신만한 사람이 없어.”

     

    아이린은 아니꼬운 마음을 애써 눌러 담았다.

    학년공동수석.

    파벌싸움과는 한 걸음 떨어진 실력자.

    불쾌할 정도의 당당함의 소유자.

    그런 것들은 잠시 뒤로 미루어둔다.

    열악한 북부.

    언젠가 용사의 도움을 받으려면 이럴 때 미리 잘 보여 둬야 한다.

    인간관계는 아쉬운 사람이 양보하면서 시작된다.

     

    “알았어. 도와줄게. 하지만 할 수 있는 한에 한해서야. 그리고 과제나 시험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즉시 그만 둘 거고.”

    “그 정도면 충분해.”

     

    용사는 과업을 부여받은 자.

    당대 최고의 위협을 제거하는 사명을 지니고 활동하지만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마왕의 모가지를 썰어버리는 장비를 갖추는데 필요한 돈이 어디 한두 푼인가.

    재산 두둑한 스폰서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런 스폰서 확보에는 용사의 자질을 증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놈 이거 돈 먹고 튀는 거 아니지?

    -마왕 잡으라고 비싼 템 들려줬더니 노상강도한테 다 털렸잖아?

     

    이런 황당한 경우를 모면하기 위해 스폰서들이 실력을 확인하고자 토벌의뢰를 넣는가 하면, 용사 본인이 스스로 자격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자격증명 중에는 스폰서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용사로서의 책임감, 선한 영향력을 검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주신이 먼저 점찍은 근본 있는 용사는 세간의 가짜용사들과는 다르긴 하네.’

     

    신의 선택을 받은 용사와 달리 용사를 자칭하는 자들은 용사의 과업을 흉내내지만 그 선한 영향력까지 흉내내는 경우는 드물다.

    돈이 되지 않고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목숨은 위험한데 보수는 합당하지 못하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용사는 누구에게도 보수를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친 학생들을 걱정해서 스스로 조력자를 구해 범인을 찾으려고 한다.

    아이린의 얼어붙은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파손된 흔적을 봐서 얼음문의 폭발력은 상당해. 하지만 폭발경로가 목 위로 향하지는 않았어. 철저하게 계산된 퍼포먼스야.”

     

    아이린은 성심성의껏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여기에 사용된 추가술식은 <경로제한>. 위력과 비살상을 동시에 잡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고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일이야.”

    “범인이 그만큼 빙결마법의 숙련자라는 뜻인가?”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교육을 장시간 받았다고 확신해. 숙련도가 부족하면 경로제한 때문에 위력이 줄어드는 것이 정상이야. 혹은 경로를 제한해도 사망자가 나왔겠지.”

    “어떤 시설에서 이만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청색마탑의 정규마법사. 아카데미의 교관급 이상. 학생이라면 졸업을 앞둔 고학년은 되어야겠지.”

    “…그런 사람이 왜 1학년을 노리지?”

    “나야 모르지. 하지만 살상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건 ‘경고’라고 볼 수 있어.”

     

    용사 이슈타르는 아이린의 추정에서 힌트를 얻었다.

     

    “피해학생들은 모두 레이브 교수의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강의를 듣고 있었어. 그리고…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원한을 살만한 강의는 반대항전이 예정된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강의밖에 없고.”

    “잘됐네. 금방 찾았으니까. 그럼 난 여기서 손을 떼겠어.”

     

    깔끔하게 손을 털고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던 아이린의 뒤에서 용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는 오크노디도 있어.”

    “…!”

    “신경 쓰이지 않아?”

     

    아이린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정말로 그 아이가 저지른 짓일까?

    저질렀으면 뭘 어쩌겠다는 걸까.

     

    “만일 그 아이의 짓이라면?”

    “동료후보는 될 수 없겠지. 그리고…”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지.”

     

    용사의 칼날이 오크노디를 겨누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린도 선택해야만 했다.

    용사를 도와야할까.

    오크노디에게 이 사실을 귀띔해줄까.

    그도 아니면 귀를 닫고 침묵하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어버릴까.

     

    -역시 빨개졌네. 손바닥을 봐요. 제 마법은 가까이에 있을수록 동상을 입기 쉽다고요.

    -안 혼내요?”

    -이미 온몸으로 혼쭐이 나지 않았나요? 빙결술사의 주변에 함부로 다가가면 안 된다고.

     

    문득 플라톤 교수님의 예전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쓰던 자신의 배후에 매달렸던 오크노디의 과감한 짓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범접할 수 없는 냉기에 접근도 못하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무심코 발현한 마력풍에 얼어죽을까봐 접근하지 못할 간격.

    혹여나 안전사고가 벌어질까봐 몇 겹으로 친 감지수단마저 뚫고 지근거리에 매달렸던 오크노디.

    그런 과감한 짓을 벌였으면서.

    정작 꾸중을 당하는 아이처럼 눈치를 보던 모습까지.

     

    ‘그 아이가 보였던 냉기에 대한 저항력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오크노디가 범인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문득 그녀는 용사와 오크노디를 저울질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장차 척박한 북부에 도움이 될 인재.

    그것이 꼭 용사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용사와 동급의 강자인 오크노디의 도움을 얻는다면 굳이 용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오크노디의 짓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녀를 감싼 것은 거의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무의식중에 선택해버린 것이다.

    용사보다는 오크노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다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아니, 어쩌면 믿고 싶은 존재라고.

     

    “왜 거짓말을 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

    “…!”

     

    그리고 이제는 용사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쉽네.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도움은 고마웠어. 답례로 한 가지 충고를 할게.”

     

    용사의 금빛 눈동자에 위협적인 기색이 일렁거렸다.

     

    “그 아이한테서 이만 손을 떼어줬으면 좋겠어.”

    “만약. 만약에.”

    “응.”

    “내가 그럴 수 없겠다고 한다면?”

     

    용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회하게 될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테디베어는 바보에요.
    500자를 어떻게 더 쓸지 고민하다가 2000자를 더 써버렸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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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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