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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아셀라가 고개를 치켜들고는 팔짱을 낀 위로 손바닥을 탁탁 쳤다.

     

    누가 봐도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다.

     

    이해한다.

    들킨 내 잘못이다.

     

    “누구냐고, 방금 그거.”

     

    “고트베르크 가문의 수호대장입니다. 예법에 대한 지식은 조금 부족하기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수호대라니? 처음 듣는 얘긴데.”

     

    아셀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쟤랑은 무슨 관계야.”

     

     

    [No. 077 질투의 화신 29% → 31%]

     

     

    최근 리셰에 의해 조금씩 올라가던 아셀라의 질투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기슈타를 특별히 견제하는 건가. 아니면 최근 들어 페르시야 1왕녀도 있었으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나.

     

    더 악화하기 전에 커버해야겠어.

     

    “황녀님께서 걱정하시는 개인적인 관계는 아닙니다. 그녀는 저희 후작가의 방범을 맡아주고 있을 뿐이에요. 지금은 여동생이 관리하고 있고요.”

     

    “의심스러운데. 모험가 출신 아니야?”

     

    아셀라의 눈이 얇게 찢어졌다.

     

    모험가 얘기는 어디서 나왔어.

    하여간 감이 좋다.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만 지내던 인물을 섭외했어요.”

     

    “그 수호대라는 건 뭔데. 너희 기사단 있었잖아.”

     

    “기사단은 계속 운영 중입니다. 마물과 마족 방비용으로 새로 만들었어요.”

     

    “모험가로 구성했어?”

     

    “아뇨.”

     

    내가 확고하게 말하니 아셀라는 일단 기슈타는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왜 내가 모르는 병력이 있지? 너, 그거 황실에 보고는 했니?”

     

    “보고 안 해도 되는 병력입니다.”

     

    “제국 땅에 그런 게 어디 있어.”

     

    “흠, 고트베르크 후작가는 독립군사권이 있어요. 보고서 올라갔을 텐데요.”

     

    “뭐?”

     

    아셀라는 모르고 있었나?

    아, 생각해보니 천둥족을 영입했을 즈음 그녀는 수술을 받았으니 누락됐나.

     

    아셀라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너, 대체 내게 뭘 얼마나 숨기고 있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이번 시연에 안 나가기로 했잖아. 1왕녀는 뭐야. 언제 둘이 작당모의를 꾸몄는데?”

     

    “에이, 표현이 왜 그러세요.”

     

    “아, 이제 알겠다. 왕국 사절단을 통해서 연락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여기 오자마자 1왕녀가 널 찾아왔던 거야.”

     

    억측이 심하다.

    어째 이 몇 달 들어 아셀라의 의심암귀가 점점 심해져만 간다.

     

    “그 건은 급하게 정해졌습니다. 본래 수술 내용은 보고드렸던 것과 같았지요. 황녀님이 명령하신 조건은 확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이번에 시연한 수술팀 명단에 제 이름은 없고, 대중도 수술한 게 저라고는 생각 못 할 겁니다.”

     

    “그걸 누가 모르겠니. 길거리에 소문이 다 퍼질 거 아냐.”

     

    “알음알음 퍼져도 나중이겠죠. 이 연무회에서 제가 주목받진 않아요.”

     

    용사 파티 후보로 앰브로시아나 클로에가 거론되면 모를까, 무대에서 말만 떠든 모습으로 보였던 난 절대 아니다.

     

    “대체 왜 그랬는데? 내 명령을 어겨야 할 이유가 있었어?”

     

    “밀수입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치료해야 할 환자도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황녀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를?”

     

    아셀라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내용을 바꾼 덕분에 월광궁이 법국을 누르고 우승해서 명성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법국은 무려 성녀 후보를 데려왔습니다. 강력한 인상을 남겼지요. 그대로는 이기기 힘들었을 겁니다.”

     

    “뭐가 됐든 내 말을 안 들었잖아. 그딴 건 하나도 변명이 안 돼!”

     

    아셀라가 빽 소리를 지르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엄지손톱이 슬쩍 내 목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그딴 거라뇨. 황녀님, 월광궁의 활약은 곧 황녀님의 활약이잖아요. 황녀님이 위세를 떨치시면 황제의 자리를 승계하실 가능성이 높아지잖습니까.”

     

    그리 말하니 아셀라가 반박하지 못하고 분홍빛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건….”

     

    “황제가 되고 싶으시잖아요.”

     

    “…맞아.”

     

    “물론 미리 보고 안 드린 제 잘못이 큽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황녀님께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물론 내 약품의 밀매 건을 해결해야 하기도 했지만.

     

    월광궁과 아셀라를 위한 마음도 어느 정도 진심이었다.

     

    이미 아셀라가 유발하는 배드엔딩도 없어졌고, 그녀는 나에게 협력한다고도 했다.

     

    수도 없이 나를 죽였던 그녀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것도 참 이상하지만.

     

    아셀라는 내 편이 아닐까… 한다.

     

    황제는 그녀가 그렇게나 원하는 꿈이다.

     

    나는 아셀라가 자신의 꿈을 이뤄서 행복해하는 정도는 뭐,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칭찬을 못 들을 줄은 알았는데요.”

     

    이렇게까지 혼나야 할 일이었나, 하면 솔직히 조금은 억울하다.

     

    뒤통수를 긁적이니 나를 붙잡은 아셀라의 손힘이 조금 약해졌다.

     

    “선생님.”

     

    잠깐 조용해진 틈을 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휴고였다.

     

    “무슨 일이야?”

     

    “곧 우승팀의 행진이 시작한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지휘하셔야겠습니다.”

     

    “금방 갈게.”

     

    나는 아셀라를 돌아보았다.

     

    “황녀님도 가시죠. 월광궁의 위용을 민중에게 뽐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셀라가 탁, 강하게 바닥을 찍으며 나를 쏘아보았다.

     

    “라스, 오늘은 넘어가겠지만 조심해. 앞으론 행동 하나하나 나에게 보고하란 말이야.”

     

    나는 수긍의 의미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숨 막히네.

     

     

     

    ***

     

     

     

    경기장에서 있었던 충돌은 대중의 열기가 없던 일인 양 덮어버렸다. 각국도 연합군의 분위기를 우선해 잠깐 있었던 사고처럼 넘기고자 합의했다.

     

    물론 이 자리가 파한 후 뒤에서 왕국에 갖가지 압박이 들어올 것은 당연했다. 사실상 배상해야 할 입장인 국왕은 일단 얌전히 제국의 의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페르시야 1왕녀의 뜻도.

     

    이 자리에서 제국과 조금이라도 타협할 안을 가져올 인물이 있다면 1왕녀였다.

     

    “페르시야, 고든은 어떻느냐.”

     

    “다리가 움직여서 신기한지 이리저리 움직이고 싶어해서 큰일이에요. 당장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런가, 잘 되었군.”

     

    조금 전까지 윽박지르던 입장인 국왕이었지만 지금은 1왕녀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제국과 회담 일정은 또 있느냐.”

     

    “행진이 끝나면 고트베르크 선생님께 다시 감사를 전하려구요. 아마 제게 용건도 있으실 테구요.”

     

    “잘 되었군. 그 자리에서 어떻게 얘기를 잘 좀…”

     

    “아, 시작하네요!”

     

    경기장 문이 열리고 오늘 시연의 주인공인 월광궁의 의사들이 화려한 마차에 올라 입장한다.

     

    한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앰브로시아였다. 오늘의 주인공 역할이다.

     

    멋들어지게 정렬한 기사들이 그들을 호위하며 월광궁의 깃발을 펄럭였다.

     

    그들을 띄워주며 한 발짝 뒤에서 관리자 포지션으로 걷는 인물.

    두말할 것도 없이 라스 고트베르크다.

     

    “저 의사 선생이 리더인가?”

    “아까 발표했던 사람이군.”

    “명령 내리는 높으신 분인 모양이지.”

     

    곁에는 사흘 전 우승해서 이미 한 차례 행진했던 제국의 소드마스터 타냐도 있었기에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행진은 넓은 원형 경기장 외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이게 제국이지!”

    “흰옷이 마음에 드는군!”

     

    관객석의 관중이 그들이 앞을 지나가자 아낌없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행진 코스의 끝은 귀빈석.

     

    그들이 예를 표하고 영광의 길을 마무리할 상석에는 주군인 제국의 황제가 앉았다.

     

    시종들이 우승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희귀한 벼랑꽃을 다발로 들고 기다린다.

     

    당당한 우승자들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그들이 절도 있게 예를 표한다.

     

    제국의 황제는 위상을 드높인 이들에게 팔을 들어 치하를 답했다.

     

    그 장면 자체는 관중에게는 익숙했다.

     

    첫날, 타냐가 우승했을 때 이미 한 번 진행됐던 연출이었다.

     

    “이제 황제가 우승자를 부르겠군.”

    “우승자는 파트너를 데리고 단상 위로 올라가지.”

     

    소드마스터 타냐는 자신의 주군인 고트베르크를 데리고 올라갔었다.

     

    그때도 제국에 셋밖에 없는 소드마스터가 일개 호위기사밖에 안 하느니, 대체 호위를 받는 저 사람은 누구인지 화제가 됐었다.

     

    “내의원 월광궁의 책임자인 주치의, 의사 고트베르크!”

     

    황제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호명했다.

     

    또 고트베르크다. 대체 온갖 영웅들의 주변에 항상 관련되어있는 저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를 모르던 대중은 관심을 쏟고, 한 번쯤 들어봤던 이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으쓱해졌다.

     

    “폐하.”

     

    라스가 앞으로 나서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월광궁 의사들의 공을 치하한 후, 황제가 그에게 물었다.

     

    “이 자리의 기쁨을, 그대는 누구와 함께 나누겠는가?”

     

    그 질문에 가장 먼저 어깨를 들썩인 이가 있었다.

     

    황제가 앉은 귀빈석 상석.

     

    그 바로 앞에서 도도한 태도로 행진을 관람하던 황녀 아셀라.

     

    라스와 그 자리에서 함께 위용을 뽐낼 이는 자신밖에 없다. 당연히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혼약자이자, 저 의사들의 주인이니까.

     

    라스가 층계를 오른다.

     

    아셀라는 기품 있게 드레스를 정리하며, 그와의 약혼반지가 잘 드러나도록 왼손을 무릎 위로 올렸다.

     

    “라스―”

     

    아셀라가 그의 이름을 채 전부 부르기도 전에, 라스가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게오르크를, 라우가를, 헤이케를 지나친다.

     

    하얀 백의가 향하는 장소는 제국이 아닌 왕국의 귀빈석.

     

    그곳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1왕녀에게 기품 있게 손을 내미는 라스.

     

    그 위에 왕녀가 손을 얹고, 라스와 나란히 선다.

     

    그가 관중석을 향해 말했다.

     

    “오늘의 시연은 특별히 페르시야 앨리엇 윌리엄스 1왕녀님께서 협조해 주셨습니다. 왕실에서 제국 내의원에 보내주신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왕녀가 목례로 라스에게 답했다.

     

    “훌륭한 의사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앞으로 왕국에도 제국의 훌륭한 기술이 지나올 길이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떠나가라 갈채가 쏟아졌다.

     

    둘이 나눈 형식적인 대화 사이에 숨은 정치적인 문장을 귀빈석의 이들은 파악했다.

     

    제국과 왕국 간 무역의 물꼬가 트였다.

     

    ‘훌륭한 대처였다. 고트베르크, 놀랍군.’

     

    헤이케가 감탄했다. 방금 있었던 충돌에 의해 제국은 왕국에게 이점을 가져올 명분을 얻었다.

     

    지금 무역로가 열리면 서로 세율을 조정할 때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 어마어마한 국가적 이익을 취할 수 있으리라.

     

    대륙의 미래를 위해 연합군을 우선시하려던 황제 역시 그의 대인배적 행보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 중인 자신과 의사들을 공격했으니 얼마든지 보복할 수도 있었겠으나, 더 큰 이익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뒤로 밀어두었다.

     

    역시 자신이 눈여겨본 남자였다.

     

    “지금 제국과 왕국이 손을 잡은 건가?”

    “내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보는군!”

    “우리야 좋을 일이지. 제국 물건을 웃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는 말 아니겠나!”

     

    관중석에서도 환호가 쏟아졌다.

     

    라스가 그들을 향해 끝을 알리는 인사를 보냈다.

     

     

    단 한 사람.

     

    “…하.”

     

    아셀라만이 축제의 현장에서 즐기지 못한 채 드레스를 꽉 쥐고 분을 삭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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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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