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8

       엘라의 생일 파티는 저녁 일찍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원래 가볍게 술 한 잔씩 마시고 끝낼 계획이었지만, 어느새 시끌벅적한 축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엘라가 무언가를 주도하게 되면 아무리 엄숙한 자리라도 항상 이렇게 됐다.

         

       유쾌한 노랫가락과 신명 나는 춤이 어우러져 한창 흥이 돋는 그때, 별장의 문이 열리며 마지막 불참객이 도착했다.

         

       “오, 마야 왔구나!”

       “마야 양!”

       “마야 누나!”

         

       원래라면 그녀에게 약간씩 거리감을 느끼는 단원들이었으나 다들 평소보다 텐션이 높아서인지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머리에는 가짜 왕관을 쓰고 목에는 반짝이는 사탕 목걸이를 건 엘라가 원더스타인과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춤을 추던 걸 멈추고는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왜 이제 온 거야? 되게 재밌었는데. 푸하하, 저것 봐. 가스통 영감탱이, 생각보다 잘 놀아.”

         

       엘라가 배 아래에 공을 깔고 공중 헤엄을 치는 시늉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가스통을 가리키며 깔깔 웃었다.

         

       서커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였지만, 의외로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잘했다. 그는 밴딕과 볼 스위밍 대결을 펼쳐 승리하고는 당당하게 내기의 결과물인 값비싼 포도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하핫, 늙은이에게 지고 괜찮은가? 응?”

       “기본 손재주가 있어서 그런가? 나이도 있는데도 기술을 빨리 배우더라.”

         

       그녀의 말에 마야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젊은 너는 그렇게 노력하고도 실습 평가에서 어떻게 0점을 받았냐고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품에서 낮에 산 과자 선물 세트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선물.”

       “안 줘도 된다니까, 헷, 어쨌든 고마워! 자, 어서 와. 식사 안 한 거 아냐? 우선 먹고 시작하자!”

         

       엘라가 그녀의 팔을 잡아 이끌려고 했으나 그녀가 힘주어 뿌리쳤다.

         

       “난 피곤해. 먼저 들어가 잘래.”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들뜬 엘라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 그럼 밥은?”

       “밖에서 다른 사람이랑 먹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원더스타인을 슬쩍 쳐다봤다.

       아쉽게도 그는 유라크네랑 이야기를 한다고 이쪽을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엘라는 그녀가 평소처럼 카렌과 함께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 참, 아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마야 네 파트너 초대장, 유라 언니한테 주는 건 어때?”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얘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마야를 쳐다봤다.

       마야는 최대한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차가운 태도로 등을 돌렸다.

         

       “나 이미 파트너 있어.”

       “……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실로 올라갔다.

       

       시간이 흘러 토요일.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는 날이 왔다.

         

         

       ***

         

         

       신입생 환영회의 참가자들은 재학 중인 선배들을 파트너로 초대하는 게 보통이었다.

       새내기들 대부분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서 수학하러 온 처지였고, 입학 2주 만에 생긴 인맥이라고 해봤자 학교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파트너 선택의 폭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신입생 환영회는 달랐다.

       서커스 그랑프리가 열리는 동안 학교 근처에 이름난 곡예사들이 우글거렸다.

       그들 덕에 원래는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선배들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효과가 발생했다.

         

       많은 신입생이 교내의 선배들 대신 근처의 현역 곡예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들은 대부분 흔쾌히 초대를 수락했다.

         

       덕분에 올해는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하는 재학생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들은 여러모로 저주받은 세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클라라는 재학생 중 파트너로 초대받은 몇 안 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녀를 초대한 것은 다름 아닌 개강 첫날 대나무 숲에서 활약을 보인 ‘침묵의 메렌’이었다.

         

       “우리는 오히려 반대네? 현역 곡예사가 학생을 초대 해주고, 후훗.”

       “그러게…….”

         

       메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눈웃음치는 클라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사실 클라라에 대해 호감을 품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친절한 그녀의 미소와 말투에 속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위화감을 느꼈다.

         

       청강생들을 골리려고 드는 재학생들의 움직임은 조직적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당연히 그들의 대표인 클라라였다. 애초에 그녀의 용인이 없으면 아래 학년들이 그따위 짓거리들은 벌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밟고 부러진 가지.

       그것은 분명 클라라가 직전에 힘을 주고 박찼던 것이었다.

         

       그녀가 일부러 뒤따라오는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해 부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자신의 재도전을 허가하지 않은 것도 자신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메렌은 클라라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그것은 반쯤 도전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디 나와 같이 어울릴 낯짝이 있으면 받아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클라라는 너무나 반갑게 그녀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정말 참가하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메렌 씨! 아니, 동갑이니까 반말해도 되죠? 메렌, 응?”

         

       메렌은 연회장 입구에서 자신에게 팔짱을 껴올 것을 권하는 그녀의 요청에 마지못해 팔을 내밀었다.

         

       클라라는 그녀의 팔을 와락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정색하려던 메렌은 그녀의 생글생글한 웃음을 보고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이것은 클라라의 캐릭터를 잘못 해석한 악마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속삭임의 정원을 통해서는 오직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만 수집할 수 있을 뿐, 그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즉, 그 사람이 주로 사회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해서만 관찰할 수 있었다.

         

       악마는 클라라의 음험한 면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렇기에 그녀가 연기하는 클라라는 그저 친절해 빠진 착한 소녀일 뿐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메렌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

       “응? 왜 그래?”

         

       자신을 향해 순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소녀의 행동에 메렌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냐…….”

         

       클라라는 싱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무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50명의 신입생과 30명의 청강생, 그리고 그들이 초대한 파트너와 행사 주최 측까지 합쳐 대략 200여 명의 사람이 연회장 안을 채워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모두 하얀색의 의전용 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해군 사관생도들을 위한 파티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그 규정 안에서도 최대한 자신을 치장하려고 노력했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교복 그대로 입었지만, 여학생들은 그 위에 웃옷을 두른다든지 핀이나 장식을 단다든지 해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려고 애썼다.

         

       클라라는 모범생답게 오직 단정하게 다린 교복만을 입었다.

       겉에는 물론 속에도 다른 무언가를 더 입지 않았다.

         

       그녀가 파이렌의 손을 떠나서 기숙사 생활을 한 지 나흘이나 되었다.

       그녀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에 대해 짐작이 가는 바도 있었다.

         

       검은 마도사.

       자신의 주인.

         

       며칠 전, 그녀는 항상 플라스크 너머로 바라봤던 그분을 직접 마주했다.

         

       그녀는 그와 마주하는 순간, 17년 전 도망친 죗값을 치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녀를 벌하지 않았다. 그녀를 용서해주셨다. 도리어 앞으로 살아갈 것을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언제 발각되어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자신의 존재 기반에 대한 의심이 그것으로 해소되었다.

       동시에 실금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아마 그것은 마음의 문제였으리라.

       파이렌이 약을 탔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클라라는 떠도는 소문에 기반해 막연히 그를 두려워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히포드롬이나 드발체프에서 저지른 일을 보면, 그는 절대 선인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서는 온정을 베푸는 다정함 또한 지니고 있었다.

         

       ‘주인님…….’

         

       클라라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막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커플을 바라봤다.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른 금발의 미남자가 교복을 입은 흑발의 소녀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주인님은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이런 자리에서 아는 척을 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아쉬웠다.

         

       “침 떨어지겠다.”

         

       옆에서 파트너가 지적한 덕에 클라라는 간신히 표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메렌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 너만 저 사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입구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했다.

       그중에는 레이나의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과 나란히 선 엘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초대장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묻지도 않고 가져가 버렸다. 그걸 무력하게 뺏긴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이 엘라를 제치고 그분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와 자신의 관계는 진짜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분을 아빠로 부른다고 해도 진짜 아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분도 어디까지나 임시나마 단원이었던 그녀에 대해 가지는 동정심 때문에 어울려주는 것뿐일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빼앗아온다거나 하는 일은 그녀의 망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손에서 초대장을 낚아채 간 것은 그러한 현실의 냉담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가짜 관계는 이제 끝내는 게 답일지 모르겠다.

         

       엘라는 회장에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마야는 안 보이네.”

       “그러게요. 우리보다 몇 시간은 먼저 나갔는데 말입니다.”

         

       마야가 누구를 파트너로 초대했는지는 지난 며칠간 단원들 사이에서 화젯거리였다.

       다양한 사람이 후보로 나왔지만 모두 근거가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당사자가 전혀 입을 안 여니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다음 날부터 그녀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것을 반복했기에 어떻게 캐볼 틈도 없었다.

         

       연회 시간이 다가오자 엘라는 드디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하게도……. 분명 허세 피운 걸 거야. 사실 파트너 따위 없으면서 있는 척한 거라고.”

       “그럴 리가요. 마야 양이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럼 생각해봐. 단원들과 몇 달이나 같이 지내는 데도 그렇게 데면데면하던 애가 밖에 나가서 남자를 낚아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흐음……. 그건 또 그렇지만…….”

         

       원더스타인도 그녀의 말이 맞다고 여겼다.

       그나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카렌이긴 했지만, 애초에 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보였고, 결정적으로 그녀는 아까 자기 오빠와 입장했다.

         

       그때, 원더스타인의 머릿속을 스치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마야와 면식이 있으면서도, 이 근방에 있는 한 사람이 떠오른 것이다.

       그녀가 누군가를 파트너로 초대한다면 그 사람밖에 없었다.

         

       “엘라 양, 알았습니다.”

       “응? 뭘?”

       “마야 양의 파트너 말입니다.”

       “뭐, 진짜? 누군데?”

       “후후, 단서는 모두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밖에 없습니다. 분명 그녀가 자주 가던 카페의 주인이…….”

         

       그때, 연회장의 입구로 마지막 커플이 들어왔다.

       둘 중 한 명은 회장의 모두가 알아볼 만큼 유명한 인물이었다.

         

       백색 장포를 두르고 얼굴은 은색 면사로 가린 남자.

       바로 은막 서커스단의 단장, 아르노였다.

         

       그 옆에는 그를 파트너로 초대한 학생이 함께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교복만큼이나 새하얀 피부에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마야였다.

         

         

       ***

         

         

       주말 저녁의 레카체프는 고요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내의 밤거리를 쏘다녔다.

       몇몇 학생만이 기숙사에 남아 주중의 피로를 풀었다.

         

       그나마 오늘은 신입생 환영회가 있는 날이라 연회장과 그 일대는 시끌벅적했다.

         

       길들이기 훈련장이 있는 후원도 고요했다.

       그 끝에 서 있는 작은 탑, 파이렌 교수의 집무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안의 광경은 퍽 기괴한 것이었다.

         

       붉은색의 피와 살점과 고름이 뒤섞인 것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바닥을 미끄러져 움직였다.

       수십 개의 팔과 다리가 되다가 만 것들이 뻗어서 몸을 이끄는 것을 보면 마치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액체가 물컹거리며 움직이는 모양새는 마치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의 뒤에는 깨진 검은색 유리병이 뒹굴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막 그것에서 탈출한 참이었다.

         

       그것은 방 중앙에 정중하게 보관된 병을 바라봤다.

       그안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가루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은 몇 주 전, 베가스의 경매장에 올라왔던 물건이었다.

       슬라그보르트 공작의 대리인에게 낙찰되어 그의 손을 거쳐 파이렌이 가져온 것이다.

         

       액체 괴물은 그것의 정보를 떠올렸다.

       마신이 직접 그녀의 머릿속에 때려 박아 준 것이었다.

         

       -트릴의 파편.

       -키르쿠스의 눈을 만들 때 생기는 부산물.

       -데볼루트를 조종할 수 있는…….

         

       사도는 자신의 살덩어리에서 촉수 하나를 만들어 뻗었다.

       파편이 든 병을 낚아챘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천장까지 뻗은 선반에는 수백 개의 유리병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파이렌이 세상 곳곳에서 수집한 저주 역병이 진행 중인 생물이 담겨 있었다.

         

       데볼루트가 아직 살아있는.

         

       사도는 촉수를 선반을 향해 휘둘렀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