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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산에는 해가 빨리 진다고 했던가.

       도시에서는 한창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임에도 산에는 어두컴컴한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였고, 나뭇잎 사이사이로 간신히 비추며 윤곽이나마 드러내던 빛도 어둠에 집어삼키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끔찍한 검은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둠은 짙어졌고, 하늘에 뜬 달은 간신히 빛을 뿌리며 산을 밝히려 하여도 해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빛이었기에 숲속은 손을 휘저으면 끈적하게 묻어나올 것 같은 검은색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음산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탓일까.

         

       산은 고요했다.

         

       고된 훈련 때문에 곯아떨어진 무인들은 평소라면 산이 뒤흔들릴 정도로 커다랗게 코를 골아야 함에도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평소라면 어디에서나 들릴법한 풀벌레의 소리나 산새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두려울 정도의 침묵이 산 전체에 퍼져 있었다.

         

       폭풍전야.

         

       폭풍이 오기 전에 맑고 청량함을 보이듯.

       불길할 정도의 고요함과 차분함을 안기듯.

         

       산 전체에는 그런 침묵이.

       거대한 사건이 오기 전에 오는 침묵이 가득 떠돌고 있었다.

         

       “더럽게 음산하군.”

         

       사범은 이 소름 끼치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는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입을 꾹 다물고 필요할 때만 뱉는 것이 ‘사나이’의 이상적인 모습임은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을 정도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어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채고, 입 밖으로 말을 끄집어내어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고, 그렇게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드러내어 지금 상황이 현실임을 자각하는 행위.

         

       사범은 자신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인상을 슬쩍 찌푸리면서도, 거대한 싸움의 전에 나타나는 차분히 가라앉은 듯한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계속해서 소리를 내었다.

         

       그는 초상비(草上飛)의 무리를 이용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뛰어다닐 수도 있었고, 암습을 위해 배운 잠행술을 사용해 소리를 최소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발에 무게를 실어 바닥에 깔린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낙엽을 밟았고, 낙엽이 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조각나는 나뭇가지가 발하는 파열음을 들으며 안심하듯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이를 무엇이라 말할까.

       그를 감싸고 있는 이 감각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공포?

       그건 아니었다.

       사범은 전혀 겁을 먹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겁은 먹지 않았어도 그의 신경은 곤두서 있었고, 침묵 속에서 오는 기이함을 느낀 육감은 곧 경계심을 끌어올리고 앞으로 일어날 ‘무언가’에 대비하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불길하군.’

         

       불길함.

         

       그래. 불길함이다.

         

       사범은 지금 이 산이 불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액이나 악령, 저주와 같은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아닌 단순한 불안감과 불길함이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것 같았다.

         

       ‘해가 뜨기 전에 가장 어둡다고 하였지. 쯧, 전문가를 데리고 왔으니 이제 해결이 될 것이다.’

         

       사범은 발걸음을 재촉해 간이 신사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간이 신사에 도착하자 자그마한 불빛이 보였고, 불빛을 따라 걸어가자 어두컴컴한 산과는 맞지 않게 환한 빛을 밝히고 있는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줄과 부적이 가득한 공간에는 촛불이 가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제례를 위한 준비물인지, 혹은 그냥 어둠을 밝히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수준이 아니라 빛으로 가득 채워버리는 수준이었다.

         

       “오셨군요.”

       “크흠, 고생 많으셨습니다. 준비는 끝난 겁니까?”

       “네.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시간도…곧 자시(子時)가 되는군요. 딱 알맞네요. 좋습니다.”

         

       진성은 홀몸으로 나타난 사범을 환영해주었다.

         

       “사범님은 음. 딱히 의식에 도움을 주실 일은 없으니 편안하게 구경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텐트 안에 쉬셔도 좋고, 그냥 구경거리 본다고 생각하시고 가만히 서서 보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여기 있겠습니다. 텐트 안에서 제가 뭘 하겠습니까?”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시지요.”

         

       그는 사범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고, 하얀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진 복장을 한 리세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리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얀 옷을 나풀나풀 움직이며 그의 곁에 다가왔다.

         

       넓은 소매로 이루어진 상의는 새와 나무가 금으로 수놓아져 있었고, 금실은 밝게 타오르는 촛불의 빛에 반사되며 사람의 눈을 현혹했다. 기다란 소매는 손끝까지 덮고도 남아 무릎에 닿을 정도였다.

         

       “그럼 지금부터 카구라(神楽)를 추겠습니다.”

         

       진성은 아리따운 리세의 모습을 보고는 뒤로 슬쩍 물러나 음악을 틀었다. 그러자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고풍스러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신력을 타고 흐르며 간이 신사 안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소리가 되었다.

         

       꽉꽉 들어찬 소리.

       마치 자그마한 극장에서 음악을 들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는 소리였다.

         

       리세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그동안 배운 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배웠던 춤.

       배우기 싫다고 울고, 불평하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배워야만 했던 춤.

       신을 모시는 무녀로서 당연히 익히고 있어야 하는 기도와 봉납의 춤.

         

       리세는 우아하게 소매를 펄럭였고, 곡선을 그리며 발을 밟아 움직이고, 몸을 유려하게 움직이며 소매로 그림을 그렸다.

       두 팔을 펄럭일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되었고, 소매 두 개가 유려하게 움직이며 땅에 천천히 가라앉을 적에는 날개를 접고 쉬는 모습이 되었다. 마치 신이 전령으로 새를 보내 인간의 앞에 내려놓듯, 고고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선이 그려졌다.

         

       신력은 그에 감응하여 반짝반짝 빛을 발하였고, 곳곳에서 소매를 가볍게 만들기도, 무겁게 만들기도. 그리고 소매가 그리는 궤적이 눈이 더 오래 남게 잔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촛불의 일렁임과 그로 인해 반사되는 금실의 빛은 사람을 현혹하였고, 신력이 첨가되는 것인지 더 오랫동안 눈에 남아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딸랑-

         

       그리고 거기에 방울이 더해졌다.

       리세는 열매처럼 방울이 주렁주렁 달린 막대기를 휘두르기 시작하였고,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리세의 움직임에 맞춰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다가 리세가 곧게 뻗을 때마다 소리를 내었다. 마치 주인의 조련을 받은 맹수처럼 평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소리를 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딸랑-

         

       곧게 뻗은 방울은 그때마다 촛불이 발하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치 황금이 태양의 빛을 받자 찬란하게 빛을 발하듯, 은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것처럼.

         

       붉게, 혹은 노랗게.

       사람을 현혹하듯 빛을 내는 방울은 리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범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딸랑-

         

       카구라는 뒤로 갈수록 아름답게 변했다.

       모이고 모인 빛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변하며 더 아름다운 그림을 자아내었고, 면은 곧 입체로 변해 신력이 발하는 공간 전체를 환하게 비추듯 움직였다. 빛은 물결을 타고 움직이는 것처럼 흐름을 만들어내었고, 흐름은 카구라를 추는 리세의 움직임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림을 이루는 일부이자 전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은 모이고 모여 개의 형상을 만들었고, 빛으로 만들어진 개가 하늘을 바라보며 늑대처럼 포효하는 장면이 나오고 나서야 춤은 끝을 맺었다.

         

       춤이 끝나고 음악이 멈추자 빛은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빛은 사방으로 퍼졌고, 잠시나마 신의 세계를 인간계에 가져온 무녀의 춤에 현혹된 사람의 정신을 깨뜨리기 위함인지 사람의 정신을 자극하고 눈을 저절로 깜빡이게 만드는 강렬한 빛을 내었다.

         

       “…대단하군요.”

         

       사범 역시 춤에 현혹되었다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나온 것은 멋진 춤을 보여준 리세에 대한 칭찬이었고, 예술을 본 사람의 감동에 젖은 감상이었다.

         

       진성은 사범의 말에 기분이 좋은 것인지 방긋 웃었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리세에게 다가가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리세는 방울을 챙겨 텐트로 이동했다.

         

       “자. 다음은 신님의 힘을 바라며 기도하고, 숲에 신력을 쏘아서 혼령이 튀어나오게 할…생각이었습니다만.”

         

       사범은 이상한 진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 생각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타초경사(打草驚蛇)라고 했던가요.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듯, 신께서 발하는 존재감으로 혼령을 놀라게 하여 저절로 튀어나오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진성은 사범에게 다가가더니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녀의 춤이 워낙 좋았던 탓일까요. 벌써 튀어나왔네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지장보살의 머리가 있었다.

         

       “저건…?”

         

       자애로워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지장보살의 석상.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릴 정도로 하루 온종일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저건 왜 머리밖에 없지?”

         

       하지만 그 얼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장보살의 머리만 있었다는 것.

         

       얼마 전 무인이 보았던 것은 돌로 된 몸통에 검은 머리가 돋아난 지장보살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들어온 지장보살은 돌로 된 하얀 머리만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몸이 있어요.”

         

       아니.

       아니다.

       몸이 있다.

         

       검은 몸.

       짙은 어둠에 파묻혀서 자신의 형체를 숨긴 검은 몸이 있다.

       어둠을 끌어모아 주물러 형체를 만든 것 같은 어설픈 몸이 있었고, 자애로운 척 수인을 맺고 있는 손은 보기만 해도 역겨운 벌레들이 뭉쳐서 계속해서 형상을 바꾸고 있었다.

         

       하얀 몸에 검은 머리만 있었던 얼마 전의 지장보살과 완벽히 대조되는 형상.

         

       하얀 머리통에 그림자로 만든 것 같은 몸, 벌레로 이루어진 손.

         

       사범은 저것이 바로 얼마 전 무인이 괴담으로 들었던 ‘4번째 지장보살’이자, 악령이 되지 못한 혼령이 장난질을 치기 위해 형상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 …라. ]

         

       지장보살은 얼음 위에서 물건이 미끄러지듯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 …하라. ]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어둠이 밀어내는 손길에 몸을 맡긴 채 자애로운 미소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가왔고, 이윽고 촛불의 불빛이 하얀 얼굴에 반사되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

         

       지장보살은 말했다.

         

       [ 공양하라. ]

         

       흐릿한 미소.

       돌로 만들어졌기에 벌릴 수 없는 입.

         

       하지만 지장보살은 말할 수 없음에도 분명히 말을 했다.

         

       [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를 나에게 바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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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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