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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그 무렵.

       

       실비아와 데보라는 레키온과 다른 방향으로 구울을 잡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흣, 흣차.”

       

       실비아는 당연하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블러드 구울의 공격을 간결한 동작으로 피한 후 핵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해 찔렀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데보라는 속으로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사용하는 검술만 보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움직임이 저렇다고?’

       

       대충 감으로 가슴께를 베어 내는 것도 아니고, 매번 정확히 핵이 있는 곳을 찌를 수 있다니.

       

       ‘역시 이 사람, 뭔가 있어.’

       

       게다가 이렇게 검술이 완벽한 사람이 대체 왜 기사단에도, 용병단에도 안 들어가고 대륙을 유랑하고 다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모를 보면 또래인 것 같은데, 이 정도 재능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짐작도 안 될 정도였다. 

       

       ‘…혹시 저쪽의 테이머도 뭔가 힘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사랑의 힘인가?

       

       ‘말하는 걸 보나 행동으로 보나, 진짜로 저 레온이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레온과 아르를 볼 때 실비아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는 꿀이 뚝뚝 묻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럽다.’

       

       뜬금없이 든 생각이었다.

       

       저렇게 마음껏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된다는 게 데보라는 부러웠다. 

       

       ‘저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을까? 적어도 나랑 레키온처럼 소꿉친구 사이는 아니었겠지?’

       

       그리고 레온도 아마 레키온처럼 눈치 없는 타입은 아니었을 거다.

       

       그러니까 저렇게 서로 이어질 수 있었겠지. 그게 너무 부럽….

       

       ‘아니지.’

       

       거기까지 생각한 데보라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실비아 씨, 혹은 레온 씨도 두려웠을지 몰라.’

       

       자신의 마음을 가감없이 상대에게 전달한다는 것.

       

       그건 아마 데보라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 어쩌면 나도 좀 더 용기를 내 보는 게 좋을지도.’

       

       하지만 이제 와서 레키온한테 좋아한다고 해도 과연 진심이 전달이 될까? 

       

       ‘모르겠어. 한번 실비아 씨한테 물어볼까?’

       

       이미 실비아한텐 자신이 레키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킨 뒤다. 

       

       기왕 들킨 거라면, 일종의 사랑 선배(?)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압!”

       

       데보라는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블러드 구울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옆에서 설렁설렁 블러드 구울의 핵을 찌르던 실비아가 검끝을 내리자,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실비아 씨.”

       “네?”

       “뜬금없는 얘기지만…. 실비아 씨도 고민… 많이 하셨죠? 레온 씨에게 마음을 전달할 때요.”

       

       데보라는 다소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아뇨? 그냥 바로 레온 씨 제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시작했는데요?”

       “네?”

       

       실비아의 답에, 데보라의 말문이 막혔다. 

       

       “어, 음….”

       

       그러자 실비아가 미소를 지었다. 

       

       “데보라 님. 레키온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망설이고 계시는군요?”

       “…네. 맞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감도 잘 안 와요. 이미 말하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레키온은 전혀 저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고….”

       

       항상 당찬 태도를 보였던 데보라가 살짝 시무룩한 얼굴로 말하자, 실비아는 턱을 만지며 물었다. 

       

       “흐음. 마음이 없는 것 같다라…. 그동안 직접 물어보진 않았더라도 어떻게 떠 본 적 없어요?”

       “있어요. 몇 번이나 해 봤죠, 그건.”

       “예를 들면요?”

       “일단 ‘넌 예쁜 여자 좋아하지?’ 라든가….”

       “그래서 뭐라셨어요?”

       “응, 그렇지.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거기서 일단 난 아니구나 싶었죠.”

       “…?”

       

       실비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데보라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얼굴에 약간의 흉터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본판은 지금까지 본 인간 여자들 중에서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짧게 잘라서 그렇지, 제대로 기르고 좀 꾸미기만 하면 웬만한 여자들은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워낙 본판이 그냥 잘생긴 편이라, 뚝딱 남장 시켜도 웬만한 미남자보다 나을 것 같은데.’

       

       흔히 잘생쁨이라고 말하는 그런 미모가 데보라에게는 있었다.

       

       아무래도 데보라는 자신의 외모를 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일단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실비아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뭐 다른 건요?”

       “그럼 이상형이 뭐냐고 물어본다든가….”

       “오오. 그거 좋은데요? 되게 직접적으로 잘 물어보셨네. 대답은요?”

       “자기보다 검 잘 쓰는 여자가 좋다던데요. 나 참,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음?”

       

       이번에도 실비아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내가 볼 때 말 그대로 ‘검을 잘 쓰는’ 걸로만 따지면 데보라 님이 한 수 위긴 한데.’

       

       모르긴 몰라도, 레키온 본인도 순수 검술 자체의 완성도는 데보라 쪽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이거, 냄새가 좀 나는데.’

       

       왠지 이 원작에서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던 소꿉친구의 사랑이, 어째서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실비아는 마지막으로 확인차 질문 하나를 하기로 했다. 

       

       “데보라 님. 그럼 이번엔 제가 하나만 물어볼게요. 지금까지 레키온 님도 일반 여자 분들을 접하시긴 했죠?”

       “그쵸. 용사라고 얼마나 여자들이 많이 달려드는데요.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니까요.”

       “그럼 지금 레키온 님에게 애인이 없다는 건 계속 그 많은 여자들을 거절했다는 거죠?”

       “네. 심지어 엄청 돈 많은 귀족 가문 출신 영애도 있었는데 단칼에 거절하더라고요.”

       “혹시 뭐라고 하면서 거절했는지 아세요?”

       “음, 가장 많이 들은 건…. 지금은 제국을 위해 싸울 때라서 안 된다면서 결혼은 가능하다면 평화의 끝에서도 함께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고 하던데요. 평화의 끝이라니, 이 대륙에 평화가 언제 올 줄 알고…. 그냥 나중에 한다는 소리를 그럴듯하게 한 거겠죠.”

       

       실비아는 그 말에 이마를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눈치가 없는 건 레키온 님뿐만이 아니었어.’

       

       실비아가 볼 때, 이 정도면 레키온도 나름대로 어필을 했다.

       

       다만, 서로가 서로의 어필을 못 알아먹은 게 문제였던 것이다. 

       

       “데보라 님.”

       “네?”

       “제 생각엔, 레키온 님이 말씀하신 이상형의 조건에 데보라 님이 딱 부합하는 것 같은데요.”

       “네에에?”

       

       데보라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럴 리가요. 전 걔가 제대로 대련하면 절대 못 이기는데요. 실제 결투를 하면 더더욱 상대가 안 될 거고요.”

       “물론 대련이나 결투는 못 이기겠죠. 하지만 레키온 님이 말씀하신 조건은 ‘검을 잘 쓰는’ 거였잖아요. 제가 볼 땐 검술 자체의 완성도는 데보라 님이 더 높거든요.”

       “그, 그럴 리가….”

       

       데보라는 혼란스러운 듯, 흔들리는 동공을 어쩌지 못하고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레키온이 왜 저를….”

       “물론 모두 제 추측이긴 하죠.”

       “그렇죠? 하하하. 그럴 리가….”

       “그러니….”

       

       실비아는 어서 이 사실을 레온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저쪽에 남아 있는 블러드 구울들만 빨리 마저 처리하고….’

       

       그리고 실비아가 검을 뽑으려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레키온과 레온이 있는 쪽에서, 눈부신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검기가 촤악 뻗어 나가며, 이쪽에 있는 블러드 구울까지도 순식간에 쓸어 버리고 지나갔다. 

       

       “…….”

       “…레키온 이 녀석, 보나마나 아르한테 잘 보인다고 흥분해서 큰 기술 하나 쓴 것 같은데요.”

       

       그리고 잠시 후.

       

       -실비아 씨! 대박 사건!

       

       레온에게서 먼저 텔레파시가 도착했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대상에게 전음傳音을 하는 건 8서클의 마법사는 되어야 쓸 수 있고 미리 대상 지정도 해 놔야 하는 고난도의 마법이었지만, 어차피 레온은 아르에게 마법을 빌려 쓰고 있어서 충분히 가능했다. 

       

       실비아 역시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뭔데요, 레온 씨?

       -레키온 님이 글쎄, 데보라 님을 좋아하고 있었대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네?

       

       ***

       

       바로 몇 분 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사람이요? 있죠.’라고 말한 레키온이 바로 언급한 사람이 데보라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데비를 좋아하긴 했는데, 견습 기사 합격하고 나서 말하자, 정식 기사 되고 나서 말하자, 기사단장 되고 말하자, 황실 직속 기사단 되면 말하자,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 보니까 결국 말을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하긴, 흔히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내가 아직 돈도 없고, 대학 졸업도 못 했으니까, 그리고 졸업한 다음엔 취업도 못 했으니까, 그리고 취업한 다음엔 모아 놓은 돈이 없으니까, 조금 더 안정되고 나서, 좀 더 자리를 잡고 나서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

       

       하지만 누가 그랬다. 

       그놈의 확실히 잡을 수 있는 자리는 묫자리밖에 없다고.

       

       망설이면 시간만 지나간다고.

       

       “이렇게 오래 친구로 지냈는데, 갑자기 좋아한다고 괜히 그랬다가 데비를 못 보게 되는 건 정말 싫었거든요. 겉보기엔 좀 껄렁거리고 거칠어도 속은 되게 여리고 좋은 앤데….”

       

       레키온은 그렇게 넋두리를 하다가 잔뜩 몰입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아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제가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아르 앞이라 그런가,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게 되네요. 죄송해요. 재미없는 이야기죠?”

       

       아뇨, 꿀잼인데요.

       

       나는 그 즉시 텔레파시를 가동했다. 

       

       ‘됐어.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설마 서로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큰데 끝까지 안 이어진 거였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물꼬를 터 주기만 하면….’

       

       나는 실비아와 텔레파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실비아도 저쪽에서 데보라와 뭔가 이야기를 나눈 듯, 많은 정보를 얻은 모양이었다. 

       

       -일단 지금 데보라 님이 레키온 님이 검기 쓰신 거 보고 한숨 쉬셨거든요? 곧 그쪽으로 갈 거 같아요.

       -좋아요. 저도 최대한 떡밥 좀 뿌려 놓을게요.

       

       이제 데보라가 오기 전까지 데보라도 사실 레키온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 유추할 수 있을 만한 대화를 좀 하면….

       

       “단장님?”

       “…….”

       “저, 단장님?”

       

       근데 이 단장님, 표정이 왜 이래?

       

       레키온은 저 앞쪽 어딘가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곧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레키온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야, 고맙다. 네 덕분에 아무래도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한 것 같구나.”

       

       저 앞쪽에는, 레키온이 아르의 칭찬에 신이 나서 발사한 검기에 맞고 쩌적, 금이 간 하무트교 지부의 결계가 있었다.

       

       “쀼우….”

       

       아르가 ‘구, 구런 건 안 고마어해두 대는데…. 하필 지굼…!’이라며 젤리를 뻗으면서 쀼 소리를 냈지만.

       

       타닷!

       

       이미 레키온은 전방으로 도약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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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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