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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집요하네.”

       

       하늘거리는 천 옷을 입은 여성은 자신의 꼬리로 땅을 내리치며 진법을 점검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공격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었다.

       

       여성이 상대의 공격을 분석해 진법을 짜내리는 것보다 상대가 그를 파해하는 것이 더 빨랐다.

       

       “네가 잘 막아내면 될 일 아닌가.”

       

       그를 옆에서 구경하던 노인이 핀잔을 주자 여성이 눈을 치떴다.

       

       “원래 이런 건 공격하는 쪽이 더 편한 거라고요!”

       “그건 나도 아네. 그렇지만 자네 실력이 더 좋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제가 그 실력이 됐으면 당신 바짓가랑이를 붙잡았겠냐고요!”

       

       여성이 빼액 소리를 지르자 노인이 웃음을 흘렸다.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잔뜩 화가 난 여성은 혼자서 씩씩 거리다가 노인의 느긋한 얼굴을 보곤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닥쳐봐요. 실수해서 진법 깨지면 당신이 다 감당할 거에요?!”

       

       노인은 이번 여성의 외침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몰려오는 적들을 다 감당할 수 있는가를 확신할 수 없었기에.

       

       이전에 산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짓거리를 하던 놈팽이들은 가능했다.

       

       그들이 몇이 모이건 잡스럽다는 부분은 달라지지 않으니 그 목을 날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놈들이 이끄는 강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무한한 내기와 목숨을 지닌 강시는 분명 까다로운 상대였으나 강시들이 사용하는 무공이 별 볼일이 없었으니 그저 귀찮을 뿐일 상대였다.

       

       팔과 다리를 모두 날려버리면 그만이란 걸 깨달은 후부터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수장은 달랐다.

       

       혈교주라 자칭한 놈은 노인으로써도 확답을 내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지닌 깨달음의 수준이 높았는가?

       

       무림 전체를 기준으로 하여도 꽤 높은 편이긴 했으나 그 뿐이었다.

       

       단순히 깨달음의 수준만이라면 노인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혈교주가 지닌 수라파천무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신공이었는가?

       

       아니. 그렇진 않았다.

       

       노인이 다루는 천마신공은 세상 그 어느 무공과 비교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신공 중의 신공이었으니.

       

       수라쌍극패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건 노인은 그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어가 노인을 망설이게 했는가.

       

       혈교주가 지닌 내공이었다.

       

       강시들은 무한한 내공을 지녔지만 그 모든 걸 다루진 못한다.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물이 떨어진다 한들 그를 받아들일 호수가 작다면 흘러넘쳐 사라질 따름이니.

       

       강시들이 지닌 호수는 너무도 작았기에 받아들이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허나 혈교주는 달랐다. 그가 지닌 것은 호수라 부르기엔 너무도 컸다.

       

       노인은 그 곳에서 바다를 보았다.

       

       너무도 거대해서 그 크기를 짐작하는 것조차 실례스러울 바다를.

       

       혈교주 본인도 그 바다를 손에 쥐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물보라를 다루는 것이 서툴렀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었다.

       

       거인이 가볍게 친 물장구조차도 아래에 사는 미물에게는 죽음의 위협으로 다가왔으니까.

       

       내가 지닌 신공으로 그 바다를 가를 수 있는가.

       

       노인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노인이 홀몸이었다면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무를 시험하러 갔을 터였다.

       

       자신이 여태 쌓아온 것이 바다를 가르는 광경을 상상하며 발을 내딛었을 것이다.

       

       결국에 그도 천마신공을 다루는 무인이니까.

       

       허나 노인은 그러지 못했다.

       

       며칠 전 제발 좀 자신을 살려달라며 눈물을 흘리며 빌러 온 도마뱀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꼬였다.

       

       노인은 저 진법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무인을 생각하다 헛웃음을 흘렸다.

       

       예전에 빌어먹을 꼬맹이 하나를 들인 것 때문에 이토록 연약해질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은 신공을 다루는 자건 뭐건 버렸어야 했는데.

       

       “안 돼. 안 돼. 안 돼. 이러지 마.”

       

       노인이 홀로 독백을 내뱉던 때에 여성이 높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인간 주제에 뭐 이리 많은 기운을 지닌 거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이걸 수습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여태까지는 자신의 바다를 가지고 물장구만 치던 녀석이 진심으로 파도를 일으키기 시작한 모양이구나.

       

       왜지?

       

       나름대로 이 대치를 즐기는 듯 했다마는.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것인가.

       

       정확한 사유는 상대만이 알고 있을 터이지만 그 변덕이 일으킬 결과를 짐작하는 건 어렵잖은 일이었다.

       

       노인은 여성의 어깨를 붙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도마뱀아.”

       “왜요! 지금 급해요!”

       “도망쳐라. 시간을 끌 테니.”

       

       노인은 이 말을 하는 데 별 망설임이 없었다.

       

       바다를 향해 권을 휘둘러보는 것은 노인이 진작부터 바라던 일이었다.

       

       신령을 자칭하는 도마뱀 때문에 미루어졌던 결말을 뒤늦게라도 보는 것이니 망설일 구석이 어디 있겠는가.

       

       “저 빌어먹을 괴물을 상대로 이길 수 있어요?!”

       “모른다.”

       “근데.”

       “그렇다 하여 다른 방법이 있느냐?”

       

       살고자 하는 놈은 살고 죽고자 하는 놈은 죽는다.

       

       그거면 족한 일이지 않나. 어차피 본인은 이미 몇 년 전에 죽었어야 할 목숨이다.

       

       본래대로라면 무림맹주를 상대로 최선을 펼치고 결국 그를 넘지 못하여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게 지금 찾아왔을 뿐이라 생각하면 된다.

       

       마침표를 찍지 못해 늘어났던 책에 다시금 마침표를 찍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정중하기에 되래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 어투에 고갤 돌리자 진법의 바로 앞에 서 있는 혈교주가 보였다.

       

       “어느새?! 진법은 여전히.”

       “제가 왜 그걸 다 부시겠습니까. 구멍 하나를 뚫어서 여기까지 오는 편이 편하죠.”

       “말도 안 돼.그럼 왜 지금까지는.”

       “왜냐고요? 신령이 사용하는 술법들은 하나 같이 뛰어나니까요. 그걸 분석하고 파해하고 저의 실력을 늘리는 거죠. 당신의 술법도 재밌었습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무식한 짓은 안했을 거에요.”

       

       자신을 교과서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소리에 여성은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인은 그를 보고서 여성을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당신. 뭘 하는.”

       “가라.”

       

       그리곤 산기슭 저 너머로 내던져 버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떨어지다 죽어버릴 과격한 행동이었지만 노인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산의 신령을 자칭하는 놈이다.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있나.

       

       “저래도 멀리 가진 못할 텐데요.”

       “시간끌기지.”

       

       혈교주가 자신의 손에 한기를 담아 도술로 만들어낸 벽을 매만지자 한기를 견디지 못한 벽이 무너져 내리며 마지막 선이 사라져 버렸다.

       

       혈교주의 시선과 노인의 시선이 직선으로 마주한다.

       

       “다시 한 번 여쭤보겠습니다마는 혈교에 들어오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더 강한 힘과 높은 경지를 드릴 수 있습니다만.”

       “힘? 경지? 좋지.”

       

       동의를 표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노인은 몸 안의 내기를 끌어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혈교주는 그를 보며 태연히 되물었다.

       

       “생각이 다르시군요.”

       “그래. 그건 내 힘이 아니잖나.”

       

       노인도 한 때 신교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다.

       

       

       그러니만큼 힘을 추구하는 방식에 옳고 그름 따위는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혈교주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그가 주겠다는 힘이 그의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혈교주가 마음을 바꾸면 빼앗겨버릴 힘이 어찌 노인의 힘이라 할 수 있겠는가.

       

       노인이 그리 말하며 웃자 혈교주도 따라서 웃음을 지었다.

       

       “오시죠.”

       

       노인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패악스러운 내기를 온몸에 두른 그는 혈교주의 단전을 노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움직임은 권사의 이상향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일권은 티 하나 없이 말끔했으니.

       

       그의 권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완벽이었다.

       

       혈교주는 그에 대항하여 자신의 손 위에 기운을 둘렀다.

       

       오른 쪽 손에는 지옥에서 죄인들을 태우는 불꽃처럼 뜨거운 양기를.

       

       다른 손에는 빙궁조차도 얼려버릴 한기를.

       

       공존할 수 없어야 할 두 개의 기운이 혈교주라는 인간을 중심으로 뭉치니 눈보다도 하얀 순백의 기운으로 변해 혈교주의 손 안에 담겼다.

       

       그렇게 권과 장이 부딪힌 순간에 밀려난 쪽은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두른 기운이 밀리는 것을 보고는 다급히 물러났다.

       

       조금만 더 힘 싸움을 했더라면 저 기운에 잡아먹혀 버렸을 터.

       

       까다롭구나.

       

       노인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씹는 것을 보며 혈교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끝입니까? 그 분에 비해선 너무도 실망스럽군요. 확실히 같은 무공을 쓰더라도 격의 차이가 있나 보네요.”

       

       노인의 자존심을 긁으려는 듯한 말이었지만 노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세월이 저물었음은 오래 전에 인정한 바였기에.

       

       “화령이와 싸워 본 게냐?”

       “화령이라면 천마님 말입니까? 아뇨. 뵈고 싶긴 합니다만 아직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허? 예상치 못한 답에 노인은 눈앞에 적이 있단 사실조차 잠시나마 잊고 말았다.

       

       이 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 이 대지에 천마신공을 대성한 자가 화령이 말고 누가 있다고.

       

       “어이코. 더 이야길 나누기는 곤란하겠네요. 재앙이 다가오고 있어서요. 속도를 내야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알 필요 없는 이야기입니다.”

       

       혈교주는 여태 노인이 파도라 여겼던 것이 단순히 물장구였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몰아치듯 쏟아지는 수많은 장 속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버티는 것 뿐.

       

       방어가 아니었다.

       

       방어라는 것은 상대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에나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자신의 살을 깎아가며 시간을 버는 노인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수라쌍극패의 기묘한 기운에 노인의 몸이 점차 침식당한다.

       

       직접적으로 닿은 손에 감각이 사라진다.

       

       팔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신공의 내기로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서서히. 서서히.

       

       혈교주라는 바다가 노인이라는 대지를 침식한다.

       

       노인은 직감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펼칠 수 있는 무의 끝을 보도록 하자꾸나.

       

       노인이 생각하는 천마신공은 하늘 그 자체였다.

       

       그 어떤 일이 펼쳐지더라도.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이 지나가고.

       

       밤이 왔다 아침이 와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모습을 지키는 하늘이었다.

       

       때문에 노인은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 어떤 순간이 닥친다 한들 고고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완벽함이 되고자 노력했다.

       

       지금은 혈교주가 더 높은 곳에 있기에 밀리고 있지만 진기를 터트려 나의 하늘을 억지로 끌어 올린다면.

       

       “노친네. 나이가 들었으면 뒤에서 쉴 줄도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노인이 죽음을 각오하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끌어 당겼다.

       

       …누구지?

       

       노인은 기척도 무엇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내 뒤에 사람이 있단 말인가.

       

       노인은 자신을 지나쳐 앞으로 향하는 검은 색을 보았다.

       

       그녀의 몸 바깥에서 넘실거리는 천마신공의 기운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담긴 패도를 보았다.

       

       하늘이 그 곳에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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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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