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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비리는 어떻게 하면 잘 저지를 수 있을까.

     크비슬링스들을 하나로 모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성토하며 나와 함께 제국으로 가자고 제안한다거나.

     모르가니아도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면서, 나라의 경제권을 가진 이들을 전부 포섭하여 내 편으로 만들거나.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내세워 ‘정당한 반역’을 주장하며 지브롤터가 왕도로 향하는 선봉대가 될 테니 그 뒤를 따르라거나.

     내가 외할아버지인 발자크 렘부르 군터와 친해지고 싶다고 은근슬쩍 흘려서 그가 군침을 흘리며 뭐 콩고물 떨어지는 거 없나 기웃거리게 만든다거나.

     그런 것들을 다양한 방면으로 계획했었는데-

     ‘생각보다 황제의 후광이 너무 강하군.’

     이런저런 다양한 방법들이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다지 선택지가 많지 않다.

     ‘결투장이 기울어진 정도를 넘어서 아예 폭발해버렸는데.’

     나는 예로부터 무능왕과 황제 사이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황제가 나를 향한 애정 아닌 애정을 너무나도 많이 과시하고 있다.

     그 바람에, 나는 지금 거의 ‘황태자’와 같은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실제 권력은 하나도 없지만, 아스타시아의 후광과 그 뒤에 있는 제국 황제의 빛을 바탕으로 많은 매국노들이 네 발로 엎드려 혀를 내밀며 다가오는 중이다.

     이런 와중이니, 렘버리를 통한 비리를 저지르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저는 그레이가 너무 욕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아스타시아가 원하는 바라면, 따르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직접 나서는 대신, 뒤에서 암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만 했다.

     

     렘버리는 잘 차려진 음식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음식을 다들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상한 음식을 먹고 다들 배탈이 났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5년 뒤에 99%의 확률로 요로결석이 오는 극독을 뿌려버리고 싶지만, 그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여론.

     공분.

     

     렘버리라는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고 찾아간 사람들이 식중독 때문에 고생하여 배앓이하고, 그 고통과 분노를 음식을 준비한 이들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훗날 나리아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들을 기용하지 않는 명분을 만드는 것.

     -나리아 전하! 왜 저희를 내치시려는 겁니까!

     -너희는 나에게 식중독을 줬어.

     -그, 그런…! 그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문제에 불과…!

     -끌고 가라.

     와 같은, 그런 상황을 만드는 정도로 정리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아스타시아는 요구했다.

     내가 욕을 먹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그렇다면 내가 욕을 먹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그래.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안 들키면 그만이다.

     원래 비리를 저지르는 놈들도 자신이 들킬 생각을 하고 저지르는 게 아니니까.

     * * *

     교수회의.

     윈체스터 총장과 바토리 부총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교수가 회의실에 모였다.

     

     “끄응….”

     

     회의실에는 교수가 아닌 이들도 여럿 관계자로서 참석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내빈이자 예산 관계자로 별도의 의자에 앉아있는 관중이며, 저들은 회의에 참석하는 직접적인 대상자들이다.

     그들 모두 나를 힐끗 바라본다.

     이전에 본 적이 있던 이들도 있고, 그냥 모르는 척하는 자들도 있다.

     

     처음 보는 자도 있다.

     기록상으로, 자료상으로 초상화로 봤던 사람도 있다.

     나를 향해 강렬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 자도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매국노가 되려면 만나야만 하지만 아스타시아가 만나기를 꺼리는 자도 저기 당당히 앉아있다.

     ‘어떻게 저 표독스러운 얼굴에서 어머니가 나온 거지?’

     매부리코에 좌우로 가늘게 기른 콧수염.

     주름이 자글자글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을 거의 감고 있는 듯이 아주 작게 뜬 실눈.

     특이점이 있다면 노스트럼 평균보다 체격이 상당하여, 노인치고는 강골을 가진 자.

     발자크 렘부르 군터.

     

     원래라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겠지만, 그는 소위 ‘간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모두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교수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얼굴로, 헥스 로마나 자작이 회의를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1학기 현장 체험학습의 장소를 결정하겠습니다.”

     현재, 3월 중순.

     그리고 현장 체험학습은 5월 말.

     준비를 빠듯하게 한다면 한 달 정도면 할 수 있지 않겠냐, 뭐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오늘까지 장소를 정하여 보고하지 않으면 예산 편성을 전부 취소하겠다고, 카르멘 왕비께서 엄포하셨습니다.”

     ‘예산’이라는 이름 하에, 교수와 참가 귀족들의 표정이 굳는다.

     “질문이 있소, 로마나 자작.”

     가장 멀리서 왔다고 할 수 있는 자, 세이레네 백작이 손도 들지 않고 말했다.

     “…아직 제가 할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말하게. 저들은 교수회의보다는 귀족회의가 더 익숙할 테니. 그래. 말해보시오.”

     헥스 자작의 눈짓을 받은 윈체스터 ‘대공’이 바로 권위를 내세워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궁금한 게 무엇인가, 세이레네 백작.”

     “꼭 오늘을 넘기면 안 되는 겁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 표정으로 보는 이들이 몇몇 있지만, 나는 세이레네 백작을 이해한다.

     

     ‘지금 당장 결정하면 자기네가 될 가능성이 낮거든.’

     후보지 1. [세이레네] 백작령.

     제국과 가깝기도 하고, 마도자동선으로 대규모 이동도 편리하고, 야영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도 많다.

     문제는 그가 이 일에 너무 늦게 참전했다는 것.

     “오늘 무조건 결정해야 하오. 최소한 교수회의에서 후보 셋은 골라야 하지.”

     윈체스터 총장은 세이레네 백작 옆에 앉은 이들을 가리켰다.

     “여기 후보가 백작을 포함하여, 다섯이 있소.”

     1. 가모스, [세빌리야] 남작령.

     2. 에드윈, [세이레네] 백작령.

     3. 제로스, [바르셀] 후작령.

     4. 헤이스팅스, [롤랜드] 후작령.

     5.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령. 

     익숙한 이름들이다.

     이름은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성씨부터 그 특징이 드러나는 이들이다.

     ‘애초에 여기 오기 전부터 다 걸렀지.’

     최종결정의 날에 참가한 이들이 그냥 어중이떠중이만 왔겠는가.

     오기 전부터 이미 어느정도 서신이 오간 이들이고, 이외에는 아예 부르지도 않았다.

     “원래는 후보가 넷이었지만, 세이레네 백작이 그리 간곡히 요청하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욕을-고상하게 말해서 그렇지, 대놓고 이야기하면 꼽을 주는데도 세이레네 백작처럼 어떻게든 이 자리에 와보려고 한 사람도 있다.

     눈치 없이 절박하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게 걸려있다.

     예산, 1천억.

     제국 돈으로 약 1억 탈러.

     “거두절미하고, 각자 5분씩 한 번 이야기해 보시오. 왜 우리 영지에서 6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야영훈련을 해야 하는지.”

     대공이 귀족회의처럼 권위로 찍어 누르자, 각 귀족들은 저마다 각자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이미 다 논의가 끝났다고.’

     이미 몇 차례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고, 교수들 사이에서는 어느정도 장단점이 다 정리가 된 상황이다.

     [세빌리야].

     (+1) 오염된 땅과 가까워 실제 야영지가 많고, 여차하면 실전 훈련도 가능한 곳.

     (+2) 지브롤터까지는 마도자동선을 타고 이동하면 되고, 육로를 통해 제국에서의 보급도 용이하다.

     (+3) 군사훈련이라는 명목에 있어, 장소적으로는 가장 적합하다.

     (-1) 남작이 된 지 불과 수년밖에 되지 않은 가모스 남작이 과연 예산을 제대로 집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롤랜드].

      (+1) 북부의 설원지대와 가까워 극한체험이라는 명목에도 적합하고, 후작령이라 마도자동선으로 한 번에 이동하면 된다.

      (+2) 날씨가 추워서 음식이 잘 상하지 않고, 5월에도 겨울과 같은 추위를 느낄 수 있다.

      (+3) 군사훈련을 하기에도 적당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1) 하지만 조금, 많이 춥기는 하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 회귀 전에 아스타시아가 가자마자 바로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 안되냐고 할 정도였다.

     ‘사실 여기까지가 ‘정상적’인 선택지긴 해.’

     만일 오로솔 아카데미가 아니라 일반 아카데미, 그것도 그냥 평범한 체험학습이었다면 이 둘을 두고 최종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바르셀].

     (-1) 왕의 입김이 크다.

     (-2) 우리 대-단하신 국왕 전하께서 현재 바르셀 후작령에 머무르고 계신다.

     (-3)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제로스 바르셀이 직접 왔다는 게 무슨 말이겠는가. 정치적 압박이지.

     [세이레네].

     (+1) 바다랑 가깝다.

     끝.

     “…마지막,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

     그리고 이제,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의 차례.

     “우리 영지에서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 * *

     잠시 소강상태가 생긴 뒤.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듯하여, 어떻게 후보를 정할지 결론을 내리겠소.”

     총장이 입을 열었다.

     

     “결국 체험활동을 하는 자는 교수가 아닌 학생.”

     미리 준비된 멘트다.

     

     “그리고 이곳은 학생 스스로의 전인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화합과 평화의 장, 오로솔 아카데미.”

     말이 슬슬 긴 걸 보아 뭐 이상한 걸 말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듯한 시선이 꽂힌다.

     “그래서, 도움을 구하기로 했소.”

     

     맞다.

     “사실상 결정권을 맡긴 셈이지.”

     “아니!”

     세이레네 백작이 탁자를 치며 일어난다.

     “대공께서 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정한답니까!”

     슬쩍, 대공이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뭣…?!”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

     바로 제로스 바르셀 후작이 얼굴에 열이 올라 이를 간다.

     나는 보았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나의 외조부를.

     “…….”

     여전히 눈동자조차 볼 수 없는 실눈이지만, 천장에 달린 마도형광등에 비친 눈동자가 정확하게 나를 째려보고 있다.

     “여러분.”

     나는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아카데미, 학교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예. 바로-” 

     “이사장인, 나라고 하지는 않겠지!”

     “…….”

     세이레네 백작을 향해 나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밖을 가리켰다.

     “아카데미의 주인은 학생입니다.”

     

     끼이익.

     “학생들이 체험하는데, 학생들이 정해야겠죠.”

     문이 열린다.

     “아카데미의 주인, 학생들의 대표에게 묻겠습니다.”

     주인.

     “어디가 좋겠습니까.”

     “음.”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문 앞에 당당히 선 채, 손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바로 하나를 정한다면.”

     

     그리고 그 손가락을 첫 번째에 앉아있는 세이레네 백작을 향하며.

     “위.”

     바로, 손가락을 다음 후보로 옮겼다.

     “대.”

     “…응?”

     “한, 지, 오, 노, 스, 트, 럼, 이, 세, 우, 신.”

     “……!!”

     노스트럼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것.

     “황.금.과.태.양.의.나.라.노.스.트.럼.이.밝.게.빛.나.도.록.”

     국가(國歌).

     “용.이.수.호.하.사.”

     그 끝은.

     

     “천.년.만.년.빛.나.리.라.나.의.노.스.트.럼.”

     “…….”

     “발자크 렘부르 군터 자작령으로 하시죠. 이상.”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 연재본 미리 올립니다.

    왜냐하면

    집에 부모님이 오셔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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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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