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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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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에게 리안이란 존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던져진 구원이란 동아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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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경하던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 강제로 앉게 된 ‘마왕’이라는 자리, 차례차례 외신에게 몸이 빼앗겨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따르던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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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왕좌에 앉아 그 모든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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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죽게 되면 아버지가 모든 것을 걸고 전한 ‘세상에 대한 진실’이 묻혀버릴 거란 사실에 그저 스스로를 해 할 뿐 죽지 못해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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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던 어느 날 소름 끼치던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외신이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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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들이 하나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벌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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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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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확신이 든 순간부터 치솟는 어떠한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무력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잔인한 현실에 분노하고 무력해 하면서도 한 편으로 두려움에 몸이 젖어 들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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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의 격에 짓눌려 영혼이 고통에 몸을 비틀었던 시간만큼 그녀는 성큼 다가온 구원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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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원이 형태를 갖추고 제 곁에 다가온 순간, 그녀의 집착은 더욱 형태를 갖춰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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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건 ‘사랑’같은 달콤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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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그녀에게 ‘안식처’였다. 외신의 시선이 떨어져 나가고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는 모두 ‘리안’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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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무덤이나 다를 바 없는 마왕성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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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에게 리안은 말기 암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와 같은 존재였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리안 없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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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리안에게 가지는 감정은 ‘사랑’같은 애틋한 감정보단 ‘애착과 집착’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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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는 리안에게 집착하였을지도 모른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유일한 유대를 잃는 것이 두려워 제 것이라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물어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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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를 외신이 적대시하게 된 순간,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분노와 무력감, 두려움이 터져 나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리안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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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왕왕! 잘못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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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분위기의 마왕과 달리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풍기는 개그 세계의 여신이 선글라스를 낀 고양이 모습으로 공간을 찢고 나왔다. (찢긴 공간 너머는 촬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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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로 뒤로 주춤 물러나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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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앙!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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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과 함께 등장했던 반짝거리는 미러볼이 쏘아낸 빛이 닿은 곳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신이 주춤 뒤로 물러나 촬영장으로 돌아갔을 땐 리안은 물론 마왕까지 지하 깊은 공간에 자리한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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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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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저 멀리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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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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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빛 가운데 자리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곧바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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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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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이 한없이 높은 존재와 함께하다 보니 영혼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 마왕은 곧바로 사라졌던 제 안식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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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머리를 털어내고 있는 리안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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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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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과 마왕의 몸이 겹치려는 순간, 두 사람 사이로 손톱이 길쭉하게 자란 흉포한 손이 파고들었다. 리안의 시야가 온통 붉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짐과 동시에 난폭한 손길이 마왕을 할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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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한 마왕이 어느새 뽑아 든 검으로 제스의 공격을 가뿐하게 흘려보내며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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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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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애교 섞인 울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소리가 제스에게서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마왕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은 포스에 리안은 다급히 두 손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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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
   “비켜라,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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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말려보기도 전에 마왕이 냅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마왕도 자신과 리안 사이를 가로막는 제스에게 분노한 상태였기 때문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리안이 쉽게 말려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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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인님’이야!”
   “어? 제,제스 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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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 건지 또박또박 흘러나온 ‘주인님’이란 말에 리안이 흠칫 몸을 굳혔다.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쭈인님’이라는 말은 제스 나름의 특별한 애칭이었기에 고집했던 것뿐이지 ‘주인님’이란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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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처럼 ‘주인님’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 땐 으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로 제대로 발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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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겐 어제까지 해도 ‘아빠’라고 부르던 딸이 ‘아버지’라고 부른 것만큼 충격이었다. 리안이 굳어있는 사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던 마왕과 제스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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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날렵한 짐승처럼 지그재그로 몸을 움직였다. 유연한 날것의 움직임에 맞서는 건 깔끔하게 정돈된 살기 섞인 검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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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게 뻗어 나온 검이 제스를 베지 못하고 옆을 스치는 순간 단단한 형태를 유지하던 검신이 살아있는 뱀처럼 유연하게 몸을 틀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제스의 눈이 커진 채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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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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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난 제스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마왕의 검을 노려보았다. 마왕이 가볍게 검을 털어내자 채찍 혹은 교활한 뱀처럼 꿈틀거리던 것이 원래의 검 형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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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원하는 모양에 따라 검신의 형태가 유연하게 바뀌는 마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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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하위 호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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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예 형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마검과 비교하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놀라움보단, 마검이 잘 지내는지에 관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에 고개를 빠르게 저어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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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필터의 힘이 조금 더 강했다면 회상 장면을 통해 “파트너, 나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어이!”같은 대화를 할 수 있었겠지만 대신 마왕과 제스의 싸움이 격해질 때까지 말리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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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과의 상태를 뛰어넘은 기적 같은 대화 기회를 잃었지만, 대신 두 사람을 말릴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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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들까 했지만, 지금은 몸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태였기에 입가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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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 제스! 그만 진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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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름이 불린 마왕 엘렌시아가 몸을 굳히는 찰나의 순간 제스가 틈을 파고들어 손을 휘둘렀다. 뒤늦게 리안에게 이름을 불린 제스가 공격을 멈춰보려 했지만 쏘아져 나간 공격을 물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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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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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에 겨우 힘을 살짝 거둬들여 상체가 찢기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어깨에 커다랗게 긁히는 상처가 생겼다. 뼈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처의 크기가 커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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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튀자 제스의 눈이 흥분으로 번뜩였지만 리안의 명령이 본능 보다 우선되어야 했기에 훌쩍 뒤로 물러나 리안의 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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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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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당장이라도 마왕의 숨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듯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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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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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상처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마왕에게 달려갔다. 마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굳어있던 표정 속에 진득한 감정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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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은 상처 치료가 우선시 되어야 했기에 제스가 챙겨왔던 물건 중 응급처치에 사용될 물건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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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응급처치를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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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은 리안이 곁까지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팔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나왔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상처는 그녀에게 고통 축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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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증거로 그녀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갑작스럽게 마왕을 끌어안게 된 리안의 시야에도 빠르게 아무는 상처가 선명하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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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힐 능력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아, 마왕에게 쓰면 공격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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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아무런 생각 없이 힐을 날렸다면 마왕이 불에 지져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비틀었을 거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리안이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힐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에 감사하는 사이 마왕은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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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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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없이 가늘어진 눈으로 마왕을 노려보고 있는 제스와 무심한 마왕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내 마왕은 제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리안의 어깨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은 저런 귀찮은 짐승보다 눈앞에 있는 리안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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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몸을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리안과 마왕을 떨어뜨리고 싶어 했지만, 기민하게 마왕과 리안이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곤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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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살벌한 눈짓을 알아차리지 못한 리안은 속으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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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편지 하나만 남겨놓고 도망치는 건… 무리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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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마족…수인…인간… 편식없이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마왕에게 리안이란 존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게 던져진 구원이란 동아줄이었다.

존경하던 아버지의 허무한 죽음, 강제로 앉게 된 ‘마왕’이라는 자리, 차례차례 외신에게 몸이 빼앗겨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따르던 간부들.

그녀는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왕좌에 앉아 그 모든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자신이 죽게 되면 아버지가 모든 것을 걸고 전한 ‘세상에 대한 진실’이 묻혀버릴 거란 사실에 그저 스스로를 해 할 뿐 죽지 못해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름 끼치던 시선이 떨어져 나갔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외신이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괴롭히던 존재들이 하나하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벌을 받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그런 확신이 든 순간부터 치솟는 어떠한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무력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잔인한 현실에 분노하고 무력해 하면서도 한 편으로 두려움에 몸이 젖어 들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외신의 격에 짓눌려 영혼이 고통에 몸을 비틀었던 시간만큼 그녀는 성큼 다가온 구원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그 구원이 형태를 갖추고 제 곁에 다가온 순간, 그녀의 집착은 더욱 형태를 갖춰나갔다.

하지만 그건 ‘사랑’같은 달콤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안은 그녀에게 ‘안식처’였다. 외신의 시선이 떨어져 나가고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는 모두 ‘리안’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무덤이나 다를 바 없는 마왕성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장소였다.

마왕에게 리안은 말기 암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와 같은 존재였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는 리안 없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녀가 리안에게 가지는 감정은 ‘사랑’같은 애틋한 감정보단 ‘애착과 집착’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는 리안에게 집착하였을지도 모른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유일한 유대를 잃는 것이 두려워 제 것이라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물어댔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를 외신이 적대시하게 된 순간, 억누르고 억눌러왔던 분노와 무력감, 두려움이 터져 나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리안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우왕왕! 잘못 나왔다!”

심각한 분위기의 마왕과 달리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풍기는 개그 세계의 여신이 선글라스를 낀 고양이 모습으로 공간을 찢고 나왔다. (찢긴 공간 너머는 촬영장이었다.)

그대로 뒤로 주춤 물러나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콰아앙! 콰아앙!

여신과 함께 등장했던 반짝거리는 미러볼이 쏘아낸 빛이 닿은 곳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신이 주춤 뒤로 물러나 촬영장으로 돌아갔을 땐 리안은 물론 마왕까지 지하 깊은 공간에 자리한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

“으윽..”

그녀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저 멀리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소가 보였다.

“…!”

그리고 그 빛 가운데 자리한 검은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 찾았다.’

격이 한없이 높은 존재와 함께하다 보니 영혼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된 마왕은 곧바로 사라졌던 제 안식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머리를 털어내고 있는 리안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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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과 마왕의 몸이 겹치려는 순간, 두 사람 사이로 손톱이 길쭉하게 자란 흉포한 손이 파고들었다. 리안의 시야가 온통 붉은 머리카락으로 가려짐과 동시에 난폭한 손길이 마왕을 할퀴었다.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한 마왕이 어느새 뽑아 든 검으로 제스의 공격을 가뿐하게 흘려보내며 뒤로 물러났다.

“으르릉..”

평소 애교 섞인 울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소리가 제스에게서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마왕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은 포스에 리안은 다급히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잠깐 -…”

“비켜라, 짐승.”

리안이 말려보기도 전에 마왕이 냅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마왕도 자신과 리안 사이를 가로막는 제스에게 분노한 상태였기 때문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리안이 쉽게 말려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 ‘주인님’이야!”

“어? 제,제스 너 -..”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 건지 또박또박 흘러나온 ‘주인님’이란 말에 리안이 흠칫 몸을 굳혔다.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쭈인님’이라는 말은 제스 나름의 특별한 애칭이었기에 고집했던 것뿐이지 ‘주인님’이란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주인님’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을 땐 으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로 제대로 발음할 수 있었다.

리안에겐 어제까지 해도 ‘아빠’라고 부르던 딸이 ‘아버지’라고 부른 것만큼 충격이었다. 리안이 굳어있는 사이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던 마왕과 제스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스는 날렵한 짐승처럼 지그재그로 몸을 움직였다. 유연한 날것의 움직임에 맞서는 건 깔끔하게 정돈된 살기 섞인 검술이었다.

곱게 뻗어 나온 검이 제스를 베지 못하고 옆을 스치는 순간 단단한 형태를 유지하던 검신이 살아있는 뱀처럼 유연하게 몸을 틀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제스의 눈이 커진 채 다가오는 검을 바라보았다.

타앗!

아슬아슬하게 다가오는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난 제스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마왕의 검을 노려보았다. 마왕이 가볍게 검을 털어내자 채찍 혹은 교활한 뱀처럼 꿈틀거리던 것이 원래의 검 형태로 돌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모양에 따라 검신의 형태가 유연하게 바뀌는 마검 중 하나였다.

‘마검의 하위 호환인가?’

아예 형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마검과 비교하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놀라움보단, 마검이 잘 지내는지에 관한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에 고개를 빠르게 저어 정신을 차렸다.

개그 필터의 힘이 조금 더 강했다면 회상 장면을 통해 “파트너, 나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어이!”같은 대화를 할 수 있었겠지만 대신 마왕과 제스의 싸움이 격해질 때까지 말리지 못했을 것이다.

마검과의 상태를 뛰어넘은 기적 같은 대화 기회를 잃었지만, 대신 두 사람을 말릴 기회를 얻었다.

리안은 곧바로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들까 했지만, 지금은 몸을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태였기에 입가에 두 손을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엘렌시아! 제스! 그만 진정해!”

먼저 이름이 불린 마왕 엘렌시아가 몸을 굳히는 찰나의 순간 제스가 틈을 파고들어 손을 휘둘렀다. 뒤늦게 리안에게 이름을 불린 제스가 공격을 멈춰보려 했지만 쏘아져 나간 공격을 물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콰득!

“크윽..!”

마지막에 겨우 힘을 살짝 거둬들여 상체가 찢기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어깨에 커다랗게 긁히는 상처가 생겼다. 뼈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처의 크기가 커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피가 튀자 제스의 눈이 흥분으로 번뜩였지만 리안의 명령이 본능 보다 우선되어야 했기에 훌쩍 뒤로 물러나 리안의 곁에 섰다.

“크르릉..”

제스는 당장이라도 마왕의 숨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듯 송곳니를 내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엘렌시아!”

리안은 곧바로 상처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마왕에게 달려갔다. 마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굳어있던 표정 속에 진득한 감정이 흘러내렸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장은 상처 치료가 우선시 되어야 했기에 제스가 챙겨왔던 물건 중 응급처치에 사용될 물건을 꺼내 들었다.

“우선 응급처치를 -… 어?”

마왕은 리안이 곁까지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뻗어 리안을 끌어안았다. 팔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나왔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상처는 그녀에게 고통 축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그녀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아물어갔다. 갑작스럽게 마왕을 끌어안게 된 리안의 시야에도 빠르게 아무는 상처가 선명하게 담겼다.

‘다행이다. 힐 능력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아, 마왕에게 쓰면 공격이 되겠구나.’

뒤늦게 아무런 생각 없이 힐을 날렸다면 마왕이 불에 지져지는 듯한 고통에 몸을 비틀었을 거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리안이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힐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에 감사하는 사이 마왕은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

말없이 가늘어진 눈으로 마왕을 노려보고 있는 제스와 무심한 마왕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내 마왕은 제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리안의 어깨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은 저런 귀찮은 짐승보다 눈앞에 있는 리안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제스는 몸을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리안과 마왕을 떨어뜨리고 싶어 했지만, 기민하게 마왕과 리안이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곤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살벌한 눈짓을 알아차리지 못한 리안은 속으로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역시 편지 하나만 남겨놓고 도망치는 건… 무리수였나?’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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