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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189 – 용사와의 일전>

     

    중간고사를 앞둔 마지막 주.

    다른 강의들과 달리 위어드 교수의 <마나사용의 기초와 이해> 강의와 레이브 교수의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강의는 한주 앞서 일정이 잡혔다.

     

    ━━━

    [강의공지]

    위어드 교수입니다.

    중간고사 일정이 이번 주 수요일로 앞당겨졌습니다.

    이상.

    ━━━

     

    이유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너무 당당해서 할 말도 안 나오는 일방적인 사유에 학생들은 억울함을 항변할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안 해. 필기도 지 다 쓰면 지워버리는 교수님인데 이 정도야…”

    “아 쓰벌… 어차피 포기한 강의 언제 시험 보든 알게 뭐야.”

     

    대부분의 학생들은 빠르게 단념했다.

    이 강의는 버리자.

    샌드쿠커나 로지니, 도로시 세 사람은 아직 의욕을 품고 있지만 100명 중에 3%는 정말 소수였다.

     

    “실례들 하네. 잠시 사람 좀 찾으려 하는데.”

    “헉. 용사님?”

    “누구 찾으세여…?”

     

    갑자기 표정부터 시선처리,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모범생마냥 부드러워진 학생들.

    가식적인 연기에 용사는 이미 멀리서부터 다 보고 듣고 있었다고 면박을 주는 대신, 서로가 민망하지 않도록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받아주었다.

     

    “오크노디가 이 강의를 듣는다고 들었는데.”

    “저기요. 제일 앞자리에 활 매고 다니는 풀 냄새 나는 이상한 애 옆에 있어요.”

     

    활 매고 다니는 풀 냄새 나는 이상한 애의 이름은 도로시였다.

    제국에게 멸시당하는 변방출신 사이에서도 한층 천하다고 뒤에서 비웃음 당하는 아이.

    상급반인데도 변변찮은 비호세력도 없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놀림거리가 되는 줄을 알기나 하는지, 제 친구 오크노디처럼 웃기나 하는 얼굴.

     

    ‘불편해.’

     

    이슈타르는 저 맑고 순수한 눈이 거북했다.

    차라리 싸움을 하던지.

    왜 저렇게 바보처럼 놀림만 당하고 있는 거야?

     

    파지직

     

    “앗 따거.”

    “꺅. 정전기 머야. 필기구 다 쏟았잖아…”

    “아 짱나. 나도 연필 부러졌어.”

     

    홧김에 내지른 <원격 스파크> 주문에 도로시의 흉을 보던 학생들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느라 다른 학생들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져서 손이 바빠지는 모습이 속 시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족한 실력, 모면할 수 없는 낮은 점수,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향한 열등감을 억지로라도 다른 흠결을 끄집어내어 자신보다 낮잡아보고 싶은 저열한 마음이 딱하게 보일 뿐이다.

    자신조차도 이렇다.

    불의 앞에 화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물며 오크노디는 어떨까.

    자신만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닌 도로시에게도 이런 감정이 생기는데, 오크노디와 이사벨은 친자매 사이보다도 더 친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오크노디와 이사벨? 늘 붙어있지. 주말이면 이사벨 근처에서 밥밥 노래 부르는 소리를 세 번은 봤지?

    -딱히 밥을 해주지 않아도 이사벨의 곁에 있기는 할 걸? 지난번에 봤는데 이사벨이 머리도 땋아주던데.

     

    그 정도의 유대감을 지닌 사이에 제국학생들과의 대련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화가 치밀까.

    대련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해도 애초에 함부로 살초를 썼으니 절단상을 입었겠지.

    마법으로 팔을 봉합했다고 해도 신경이 100% 온전히 재생될지는 모르는 노릇이다.

     

    “오크노디.”

    “용사님?”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시간 좀 빌릴 수 있을까?”

     

    오크노디는 걱정스레 쳐다보는 도로시에게 괜찮다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도로시. 나중에 또 봐!”

    “응. 다음 강의에 보자.”

     

    팔까지 붕붕 흔들며 힘차게 인사하는 오크노디.

    천진한 인사 뒤로 그녀의 맑은 눈이 용사와 눈을 또렷이 마주쳤다.

     

    “좋은 친구네.”

    “약한 친구죠!”

    “강의. 일찍 끝났으니 조금 먼 곳으로 가도 되지?”

    “상관없어요!”

     

    고민하는 기색도 없다.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대답.

    용사가 자신을 불러내어 기척이 점점 줄어드는 곳으로 데려간다.

    보통이라면 어떨까.

    용사의 비밀스러운 부탁을 받는다고 흥분할까.

    아니면 켕기는 구석이 있어 두려워할까.

     

    “?”

     

    뭐가 됐든 돌아볼 때마다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이 웃는 낯으로 눈을 마주치지는 않겠지.

    예전, 수영수업을 들을 때도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유난히 겁이 없다.

    뭐든 다 경험해본 것처럼.

    뭐든 다 익숙한 것처럼.

    낯설거나 망설여지는 기색이 없다.

    용사인 자신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그렇다.

    사람에 대한 환상, 신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사뭇 일관적이기까지 하다.

     

    “오크노디. 곤란한 사람을 돕는 일을 어떻게 생각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오크노디의 시간과 즐거움을 빼앗는다면?”

    “때릴 거예요!”

    “…망설임이 없구나, 정말. 묻는 이쪽이 바보가 된 기분이야.”

    “훌륭한 일을 하는 거야 응원하지만 그게 제 방해가 된다면 성가신걸요.”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성향은 따지지 않는 편이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성능만 따지는 성능캐 애호라고 할까요?”

     

    역시, 이 아이의 선악의 구분은 꽤나 위험하다.

     

    “그런 생각은 좋지 않아. 자유를 침해받아 화가 나는 것은 누구든 마찬가지지만 사람에게는 법과 도덕이라는 것이 있어. 그건 사람이 사람으로 있기 위해서 지켜야만 하는 선이야.”

    “저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요?”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 오크노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용사가 지닌 진위판별의 힘이 말하고 있다.

     

    [진실]

     

    이 아이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나, 실은 알아버렸어. 오크노디가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폐교사로 불러서 트랩마법으로 부상을 입힌 장본인이라고.”

    “우와. 정말요?”

    “…그것뿐이야?”

    “앗, 오해하지 말아요. 제가 원래 감탄사에 약해서 그렇지 진짜 엄청 무지무지 놀란 거 맞아요!”

     

    [진실]

     

    “죄책감은?”

    “그걸 제가 왜 느껴요?”

     

    [진실]

     

    “학생들을 다치게 했잖아. 지인이 겪은 대련 도중 일어난 불의의 사고에 마음이 아프다고 그런 보복을 해도 될 리가 없잖아. 적어도 죄책감 정도는 느껴야 하는 거 아니야?”

    “죄책감은 잘못을 해야 느끼죠. 죽이지도 않고 봐줬으면 제 자비로움에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범행을 부정할 생각도 않는다.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죄의식도 없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이 아이는 여전히 웃는다.

    그 얼굴에 한 점의 구김도 없이.

    그 얼굴을 보면 깨닫고야 마는 것이다.

     

    이 아이는 망가졌구나.

    근본부터 아주 깊이.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귀여운 아이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의 흉내를 내는 인형처럼.

     

    “오크노디. 너는 잘못됐어. 용사로서 나는 널 이대로 두고볼 수 없어.”

    “싸우려구요? 저랑요?”

     

    여전히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는 오크노디.

    저것을 이해시킬 생각은 이미 포기했다.

     

    “모르겠다면 힘으로라도 알게 해주겠어.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네 행동에 따르는 책임과 대가가 무엇인지. 네가 나쁜 아이라는 사실까지.”

     

    그 시점의 이슈타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힘으로 가르친다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은 용사.

    이 아이는 용사가 아닌 존재.

    힘의 우열은 분명하다고.

     

    그 의식은 그로부터 15초 뒤.

    철저하게 부서졌다.

     

     

    * *

     

     

    이슈타르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런 억까 이벤트는 없었는데.

     

    ━━━

    <용사의 분노 이벤트>

    용사 이슈타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당신에게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당신은 화가 난 용사의 습격으로부터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요?

    만일 버틴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강함에 깜짝 놀라겠죠. ‘저’도 놀랄 테고요!

    ━━━

     

    지금까지 마주본 이벤트와는 명백히 다른 문구.

    그래, 고백컨대 고인물에게도 낯선 경험은 있다.

    나는 이런 이벤트를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이런 이벤트 문구도 처음이다.

    그렇지만 용사는 내게 당황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구두굽이 바닥을 땅 내리치는 소리.

    돌진모션의 전조다.

    검 손잡이를 덮는 오른손의 움직임.

    공격모션의 전조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집을 뽑지 않는 비살상모션이다.

     

    ‘아하. 실력을 시험하고 싶나보구나?’

     

    진즉 그렇게 말할 것이지!

     

    캉!

     

    시작은 하단.

    몰아붙이는 보폭은 세걸음 반.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제로거리로 초근접전을 몰아붙이는 터프한 움직임.

    이번 회차의 이슈타르는 힘+민첩 능력치를 동시에 다루는 C타입 전투패턴이다.

    긴 호흡으로 공격횟수를 늘려서 숨도 못 쉬게 찍어눌러 급소를 날려버리거나 검집으로 두들겨 패서 마비시키는 공격.

    대응법은 간단하다.

    연속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받아쳐서 용사의 손에 충격을 쌓는다.

     

    패링.

    받아치기.

    카운터기술.

     

    성공한다면 반드시 일정량의 충격을 적에게 강요하는 기술이다.

    체구가 작을수록 흡수 가능한 충격량이 적어지는 기술이니 2m30cm인 내 체구라면… 어?

    아뿔싸.

    나 지금 2m30cm이 아니라 133cm이었지!!

     

    카카캉

     

    순식간에 교차하는 20합의 공방에 손가락부터 팔목까지 통뼈가 찌이잉 울린다.

    씨잉.

    적당히 손대중 하면서 봐주려고 했더니 나만 손해 봤잖아.

     

    ‘방심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네가 나빴어. 고인물의 자존심을 상처 입히다니.’

     

    이래서는 내 긍지와 자부심을 생각해서라도 적당히 손대중은 해줄 수 없잖아.

     

    계열 – 암흑마법

    발동 – 신체강화

    전문화 – 가속

    추가술식 – 보호, 환영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속도로 마치 빨리감기라도 하듯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신체.

    미끄러지듯이 주변을 돌며 검을 당겨 쥐는 나, 무릎을 굽히는 나, 검격을 방출하는 나의 잔상이 순서대로 이어지다가… 고인물테크닉을 발동했다.

     

    <가속잔상검 – 위장궤적>

     

    연속되는 동작을 통해 베어 들어오리라 예상되었던 궤도와 전혀 다른 곳에서, 공격이 가해지리라 예상되는 타이밍보다 한발 빨리 적중했다.

    이건 먹혔다.

    강한 타격감과 함께 용사의 몸에서 샛노란 보호막이 내 공격을 밀어내고, 동시에 내 검도 보호막을 힘껏 베었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와르르 흩어지는 마나보호막의 파편들.

    용사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헤헹.

    용사 녀석, 똑똑히 봤냐?

    이게 마검사의 힘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장하다 오크노디. 용사를 부숴버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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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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