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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이분은 샬럿이라는 분으로, 조금 닮으시긴 했지만 저희가 알고 있는 그 샤를로트라는 분과는 다른 분입니다.”

        

       “……실비아.”

        

       “비록 다른 점이라고는 평소에 입던 교복이 아닌 옷과 챙 넓은 모자뿐이지만—”

        

       “실비아, 그만.”

        

       거기서 더 놀렸다가는 샤를로트가 정말로 정색할 것 같아서 놀리는 건 그쯤 하기로 했다.

        

       “어…….”

        

       내가 샤를로트의 팔을 잡아끌어 나오자, 레오는 우리 두 사람을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따지자면 ‘갑자기 거기서 너희가 왜 나와?’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따라붙은 것을 눈치채지 못하셨습니까?”

        

       “어, 그렇지? 얼마나 멀리서 따라왔던 거야?”

        

       “중간에 소피아가 끼어 있었으니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도 많았으니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습니다만.”

        

       나는 뒤에 앨리스가 따라붙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그건 내가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해서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도 따라온 건 아니겠지?

        

       나는 괜히 신경이 쓰여서 뒤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사람이 몇 명 보이긴 했지만, ‘뒷골목 성자’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햇볕이 닿아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찬란한 금발은 보이지 않았다.

        

       클레어와 공부하겠다고 했으니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려나. 두 사람 모두 그렇게 공부하기 시작하면 한참 동안 책을 붙잡고 있으니까.

        

       클레어는 나한테도 같이 하자고 했었지만, 솔직히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얼른 도망 나왔다. 앨리스는 나의 그런 성격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나를 따로 붙잡지는 않았다.

        

       공부는 평소에 수업 시간을 몇 번씩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방과 후에 남아서 공부하기 싫어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거기서 더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거절밖엔 할 말이 없다.

        

       만약 앨리스가 혼자였다면 옆에 남아있었겠지만.

        

       ……덕분에 레오가 혼자가 되어버렸네.

        

       나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내가 갑자기 뒤돌아본 것에 의문을 품었는지, 레오, 샤를로트, 그리고 소피아 모두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레오를 보면서 말했다.

        

       “이런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레오와 클레어 뒤를 따라다니는 것을 포기한 지 꽤 되었기에, 나는 레오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다고 클레어와 함께하고 있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클레어가 그 성격에 레오를 따라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 그게.”

        

       레오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조적인 웃음 같았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글쎄, 보통 다른 학생들은 이 시간에 바깥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친구 없이 혼자 돌아다녀 봐야 괜히 눈에만 띌 뿐이겠지.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역마차가 있기는 해도, 그 역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레오뿐인 것은 아니다. 내가 서울에서 지냈을 때처럼 아무 때나 시내버스를 타고 멀리 가서 혼자 돌아다니려고 해도 분명 학생 몇 명은 같은 마차를 타게 되리라.

        

       그리고 그러면 더 수군거릴 거고.

        

       귀족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친화력이다. ‘친구’가 없으면 그만큼 영향력도 줄어든다. 여성 친구가 있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먼 훗날 그들이 다 결혼하고 나면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스캔들이 될지 모르지.

        

       유일한 남자 지인인 제이크는 분명 로티랑 있을 거고.

        

       “…….”

        

       그렇게 생각하니까 영 불쌍하네.

        

       이거 나 때문인가?

        

       “그냥 뭐. 시간이라도 때울 겸 이렇게 나온 거지. 그리고 내 용돈은 이제 별로 쓸 데가 없거든. 무구는 이미 학년 초에 다 준비해놨고, 필요한 준비물도 대충 다 모아뒀고. 남는 돈으로 뭘 할까 하다가, 어쩌다가 이 골목에 들어와 본 뒤에는 이렇게 좋은 곳에 써보자고 생각한 거야.”

        

       “훌륭하시네요.”

        

       이야기를 들은 소피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잘 연마된 자수정처럼 빛났다.

        

       레오가 정말로 마음에 든 것 같은 표정이다.

        

       내 옆쪽에서 조금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서 시선을 옮겨보니, 샤를로트가 그런 소피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진짜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소피아라는 존재는 아직 경계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만약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게 된다면 그걸 막을 생각은 없다. 일단 지금 내 앞에 있는 소피아는 아직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그 소피아는 아니었으니까.

        

       “좋습니다.”

        

       나는 레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말했다.

        

       “그 봉사활동, 저도 함께해도 괜찮겠습니까?”

        

       “어?”

        

       레오가 조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왜?

        

       나는 그런 거 절대로 안 할 상으로 보였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안 할 상이긴 했다. 전생에서도 봉사활동은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 때문에 억지로 했었으니까.

        

       “어차피 오늘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만 하고 돌아가 버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내가 샤를로트 쪽을 흘끗 바라보면서 말하자, 샤를로트는 조금 찔리는 표정을 했다.

        

       “이건 제가 미행한 사과라고 생각하시죠.”

        

       “어, 어어…… 그으래?”

        

       레오는 끝까지 나의 말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다.

        

       나도 동급생 두 명이 갑자기 나를 따라와 일을 도와주면서 ‘이건 오늘 너를 미행한 것에 대한 사과야’라고 한다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따라가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럴 때 이렇게 뻔뻔하게 나가지 않으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겠는가?

        

       “…….”

        

       “…….”

        

       소피아와 샤를로트가 나를 조금 멍한 표정으로 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주로 얼굴 피부 두께 쪽이.

        

       *

        

       세상에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엄청나게 고지식하고, 도덕적이고, 자기 삶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사람이라면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어떤 물건을 공짜로 받는 것을 거부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그걸 받지 않아도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자기 실력으로 먹고살 수 있는 자들이니 자신 있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그리고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은 가업을 이은 장인이나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귀족들이었다.

        

       “생각보다 한산하네요.”

        

       “여기 사는 사람들도 다들 일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일요일인데도요?”

        

       샤를로트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레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샤를로트는 여신교 사람이야?”

        

       “아, 그건 아니지만…….”

        

       샤를로트는 소피아 쪽을 흘끗거리며 말했다.

        

       여신교 자체는 현실에는 없는 이 세계관 오리지널 종교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에서 많은 것을 따왔다. 여신이 세상을 6일 만에 만들고 마지막 날에 안식을 취하셨으니 그 여신을 따르는 이들도 그날을 안식일이라 부르며 쉬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이제 와선 암묵적인 룰이 되어서 굳이 여신교도가 아닌 이라도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고 여기게 된 원인이 되었다.

        

       샤를로트도 그런 암묵적인 룰을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레오라고 그걸 모를 리는 없다.

        

       “제국에는 공식적인 종교가 없으니까, 라는 것이 법적인 휴일이 따로 없는 이유야. 공장에 따라서 쉬는 날은 다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일 수도 있고, 두 번일 수도 있지. 그게 일요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

        

       “……그런가요.”

        

       벨부르는 그래도 종교색이 꽤 짙은 나라고, 아직은 제국처럼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국민이 가난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가난함의 종류가 다르다.

        

       가족 단위의 농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온갖 개인이 여러 가지 이유로 상경해 마구 얽혀서는 대도시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적어도 가족 단위의 농민들은 주말 하루 정도는 쉬면서 살지도 모르지.

        

       “그래도 대부분은 가족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이 지역만의 체계도 있어. 나라가 파고들지 못하는 곳이니 자기들끼리 만든 규칙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게 말하는 레오도 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사람들끼리의 구두 약속으로 만들어진 체계는 그렇게 튼튼하지 못한 법이니까. 부패하기도 더 쉽고.

        

       “…….”

        

       아무리 한산한 곳이라도,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있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에게 빵과 헌 옷을 나누어주었다. 레오는 이미 이곳에 여러 번 오기라도 했는지—별명까지 생긴 것을 보면 확실히 여러 번 오긴 했을 거다—아이들의 가족관계도 대충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오가 가지고 온 물건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동났다.

        

       “형! 형! 그거 보여줘, 그거!”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달려와 레오에게 외쳤다.

        

       나도, 샤를로트도 깜짝 놀랐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레오가 자기가 남작가 아이라고 밝혔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럴까? 그래, 보여줄게.”

        

       “와!”

        

       그 소리를 듣더니, 아이들이 이쪽으로 한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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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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