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9

    운동을 마치고 상쾌하게 흘린 땀과, 그냥 더위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땀은 느낌이 아주 크게 다르다.

    이제 그 사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 무렵.

     

    생전 처음 느껴보는 더위에 한동안 그토록 맥을 못 추리던 루크는 이제서야 비로소 더위를 나는 방법을 깨달았다.

                                   

    “좋아, 정말이지 완벽한 마법식이로군.”

     

    루크는 소파 뒷면에 만족스럽게 그려진 마법식의 모습을 보며 곁에 두었던 얼음을 띄운 차를 마시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소파에 그려진 마법식의 정체는 바로 냉기속성 마법진.

     

    비록 마력시의 도움을 받지는 못해서 암산해야 할 변수가 많았지마는, 아무튼 인챈트는 성공이다.

     

    그동안 더위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는데, 자신에겐 황금매의 깃털로 만든 깃펜이 있었다.

    그것은 원시적인 마법식 정도는 얼마든지 사물에 인챈트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비록 서클을 사용할 수 없어 순수하게 자신의 손으로만 인챈트를 완성해야 하니 정교함은 크게 떨어지겠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작동만 제대로 한다면 그만이었다.

     

    마나의 흐름은 볼 수 없지만, 육안으로 확인했을 땐 아주 괜찮아보인다.

     

    루크는 소파로 다가가 몸을 던졌다.

     

    소파의 온도는 마치 처음 침대에 올라가 얼굴을 묻으면 기분좋게 느껴지는 차가운 온도의 베개 같은 쾌적한 온도가 유지된다.

     

    인챈트된 소파의 성능은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다.

     

    “하하, 좋구나!”

     

    본래는 이것보다 조금 더 시원했으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이제야 제대로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겠군.’

     

    아무래도 냉장고 앞에선 깊게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너무 시원해서 꼬리를 냉장고에서 자주 빼주어야 했는데, 무언가에 크게 집중하면 주변을 잘 돌보지 않는 루크의 성격상 그것을 항상 신경쓰며 공부와 연구를 함께하기엔 너무나 어려웠다.

    그렇다보니 생각에 제한이 걸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 차가운 온도가 유지되는 소파를 만들었으니 드디어 자리에 앉아서 생각이란 걸 깊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좋아, 이제 진도를 나가볼까.”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루크는 노트를 펼쳤다.

     

    예르나의 화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검은 화염의 연구’와, 서드에게 필요한 ‘영혼치료제의 최종 레시피 수정작업’의 매듭을 이제 지어야한다.

    마력시가 없으니 임기응변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것이다.

     

    루크에게 마력시는 단지 마나를 볼 수 있는 눈이 아니었다.

     

    바로 그 눈이야말로 수많은 마법적 발상의 원천이자 사고의 창.

     

    마나가 눈에 보이는 마법사가 어찌 마나가 보이지 않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사고를 하겠는가.

     

    마법적 실수가 눈에 바로 보이니 실수할 일이 없다.

    실험과정의 모든 반응과 결과를 눈으로 곧바로 확인하고 레시피나 실험내용에 변화를 바로 줄 수 있으니  연구시간을 압도적으로 단축시키기도 한다.

    또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마나를 읽어내니 일반적으론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마법적 발상도 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런 마력시를,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시력을 빼앗긴 화가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음악가, 미각을 잃은 요리사라면 현재 루크가 받는 상실감을 알 수 있을까.

     

     

    루크는 지금 약해진 마력과 서클에 의한 마법 발휘능력저하와 더불어 마법의 발상 능력도 상당히 떨어진 셈이었다.

     

     

    비록 이것이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시야라고는 하지만, 그 사실은 지금 루크에게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서 한창 노트에 써둔 자료와 발상들을 검토하던 루크는, 이내 노트를 덮었다.

     

    영혼 치료제의 레시피는 이만하면 될 것 같았다.

    원래 작성해둔 레시피였던 데다가, 이번에 정말 정교하게 검토하였으니 이 레시피대로 제작한다면 분명 원하는 작용을 하는 영약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검은 화염이었다.

    계산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도저히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다.

     

    “어렵군.”

     

    어려운 문제.

    옛날이라면 바라고 바라던 그런 것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반갑지 않다.

     

    얼른 검은 화염의 해석을 마쳐야 예르나의 화상을 치유하고, 흑마술을 해석해 시가르마타의 아티팩트를 만든 인물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텐데…….

     

    조급함은 새로운 생각에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는 있지만, 어려웠다.

     

    분명히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인데도 쉽게 실행되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다.

     

    감정.

     

    그것은 언제나 루크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자원에 불과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감정이든 바로 가라앉히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어떤 감정이든 불러내는 것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맘대로 감정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냉장고에 차가운 냉기에 행복해져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다이튼의 어깨에서 떨어질까 놀라서 당황하고,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한 다이튼에게 화를 냈다.

    시도하지 않았을 뿐, 지금도 감정은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는 너무나 감정적이군.”

     

    정령과 너무 오래 붙어있어서? 아니면, 서클의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루크 이루시’의 손실 탓인가.

     

    “껍데기라…….”

     

    루크는 시가르마타가 자신을 칭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자아를 알의 껍질이라고 했다.

     

    알의 껍질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알을 보호하지만, 그 안의 생명이 충분히 성장하면 더 이상 필요치 않다.

     

    ‘파르바티’는 정말로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만약 시가르마타가 착각한 것이 아니고, 파르바티가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 아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이지?

     

    이 세상인가, 아니면.

     

    바로 자신인가.

     

    “모르겠군, 도무지.”

     

    곰곰히 생각하던 루크는 아예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바닥에서 뒹굴거리며 스케치북에 크레용으로 즐겁게 그림을 그리는 파이리스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쩜 저리도 태평한 모습인가, 지금은 저 낙천적인 성격을 조금 나눠받을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리하면 분명 이 두통도 조금은 나아질텐데.

     

    “…….”

     

    그나마, 정령의 즐거운 콧노래소리는 이 답답한 감정에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생각하며, 루크는 눈을 감았다.

     

    ——

     

    “흐흥, 흐흥~.”

     

    바닥에 엎드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아이는 바로 파이리스.

     

    자신의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고, 발을 앞뒤로 흔들기까지 한다.

     

    “히히히.”

     

    그림을 그리는 건 정말 즐거웠다.

    그냥 스케치북에 크레용을 긁어내는 그 감촉도 좋았고, 언젠가 까마득한 기억속에 보았던 풍경을 직접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은 건, 아직 본 적 없는 풍경도, 보고싶은 풍경도 그림으로는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언니와 함께 뛰어노는 장면을 그리고 나니, 스케치북의 빈 면이 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다 썼나보다.

     

    파이리스는 곧 루크가 누워있는 소파를 향해 다가가 얼굴을 빼꼼 내밀곤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언니, 나 이거 다 그렸어. 다른 거……..”

     

    하지만 이내 루크의 모습을 본 파이리스는 말을 삼켰다.

    아, 자고 있었구나.

     

    “어떡하지…….”

     

    자는 걸 깨울 수는 없었다.

    전에 아이스박스에서 자고있던 루크에게 얼음을 부었을 때, 잘 때 건드리지 말라고 엄청 혼났으니까.

     

    좋아할 줄 알고 그런건데…….

     

    아무튼, 그래서 깨울 수는 없다.

    정말 필요한 순간, 그러니까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던지 하는 일이 아니면 절대 아예 몸을 건드리지도 말라고 엄청 화냈다.

     

    게다가 얼음을 부어버렸던 건 딱히 깨우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좀 더 시원하게 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고 행한 행동이라는 것이 루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파이리스를 가만히 둔다면 다음에는 도대체 어떤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을 곤혹에 빠트릴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던 루크는, 아예 자신이 잘 땐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흐음…….”

     

    그런 연유로, 루크의 몸에 손을 댈 수 없는 파이리스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찾아도 스케치북으로 쓸 만한 건 집에 보이지 않는데, 예르나 언니가 바닥이나 벽에는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그랬다.

    그럼 책상이나 컵같은 다른 물건은 괜찮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아예 종이가 아니면 그리지 말라고 조건을 정정했다.

     

    그래서 종이가 아니면 그림을 그릴 수 없는데…….

     

    “아!”

     

    파이리스는 루크의 배 위에 놓여진 노트를 발견했다.

     

    ‘저기엔 그림 그릴 수 있겠다!’

     

    분명 루크언니가 잘 때는 깨우지 말고, 몸에 손도 대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그럼 안 깨우고 몸에 손도 안 대면 괜찮겠지?

     

    파이리스는 그야말로 정령적인 손놀림으로 루크의 배 위에서 노트를 가져갔다.

     

    ——-

     

    잠시후, 잠에서 깨어난 루크는 배가 허전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흡!”

     

    맙소사, 자신이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었다니!

     

    루크는 재빠르게 옷 매무새를 정돈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얼마나 오랫동안 배꼽을 내놓고 누워있었던 것일까?

    설마 잠꼬대라도 한 것인가?

     

    ‘원래 잠꼬대따위는 없었을텐데……. 설마 이것도 변화의 영향인가?’

     

    만약 잠꼬대라면 이런 옷을 입고 거실에서 자는 것은 아무래도 앞으로는 자제해야할 듯 하다.

    아무래도 타인이 자신의 배꼽을 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쉽게 진정이 안되니.

     

    하지만 다행인 점은, 집에 손님이 찾아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는 자신을 제외하면 단 한명밖에 없었는데, 그 한명조차 파이리스이고.

     

    파이리스는 원래 일상적으로 항상 함께했으니, 딱히 이제와서 배꼽을 숨길 것도 없었다.

     

    뭐, 이 옷도 절대 외출복으로는 입지 않을 테니 상관 없을 것이다.

     

    “휴우…….”

    아무튼, 냉기를 인챈트한 소파 덕분에 기분좋게 잔 것 같다.

    이제 다시 고뇌에 빠질 시간.

    루크는 자신의 마법노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잠꼬대로 뒤척이다가 떨어츠린 것이라면 분명 근처에 있을 텐데…….

     

    ‘스케치북 치고는 많이 작구나.’

     

    라고 생각하며 파이리스를 바라본 그 순간.

     

    루크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잠깐, 파이리스! 그건 내 마법노트가 아닌가!”

     

    “응! 그림 그렸어!”

     

    “대체 무슨 짓……!”

     

    멈칫.

     

    루크는 크게 화를 내다가 파이리스의 그림을 보고 멈췄다.

     

    파이리스가 꺼내서 그림을 그려버린 부분은 마침 검은 화염의 연구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본 루크의 분노는 표출될 수 없었다.

     

    마침 그 위에 덧그려버린 풍경화 속 검은 원에 정신을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검은 원……?’

     

    무언가의 생각이, 루크의 머릿속을 장악한다.

     

    “파이리스, 이건 무엇을 그린 것이지?”

     

    그러자, 파이리스는 일체의 지체 없이 대꾸한다.

     

    “응, 해님인데.”

    “해……라고?”

     

    루크는 마치 홀린 듯 중얼거렸다.

    글쎄, 일반적으로 해라고 하면 빛을 상징하며 밝은 색으로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헌데, 어째서 파이리스는 검은 색으로…….

     

    “아!”

     

    루크는 마침내 번뜩이는 생각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구나, 일식이었어!’

     

    빛의 상징이 어둠에 빠지는 그 순간.

    빛은 어둠을 품고, 검은 열을 뿜어낸다.

     

    그것이 검은 화염의 비밀이었나!

     

    머릿속을 가로막고있던 거대한 장애물이 박살나는 듯 하다.

     

    맙소사, 그런 간단한 것을 어떻게 그토록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루크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파이리스를 껴안으며 외쳤다.

     

    “파이리스, 그대는 천재로구나! 하하하!”

     

    “그래? 언니, 나 그림 잘 그려?”

     

    “아암! 잘 그린다마다! 검은 태양이라니, 하하하하하!! 정말이지 굉장한 발상이야!”

     

    “히히히히힛.”

     

    루크가 자신의 그림으로 저렇게까지 좋아하니 자신도 기뻤다.

     

    근데 검은 해님은 그냥 단풍산을 그리다가 빨간색 크레용을 다 써버려서 검은 색으로 그린 건데.

     

    근데 말은 하지 않았다.

    천재라는 말이 왠지 듣기가 좋아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렇다. 파이리스는 천재였던 것이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았네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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