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9

       스칼렛 비스콘티.

       

       그녀의 이명은 바다의 패왕.

       

       스칼렛은 귀족이 아님에도 비스콘티라는 성이 있었는데, 이는 황금이란 뜻으로 해적선의 문양과 스칼렛의 밀밭 같은 머리에 붙여진 상징에 가까웠다.

       

       무티아 제국의 하층민 출신으로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비스콘티 해적 선장 자리에 오른 소드 마스터.

       

       그녀가 원한다면 능력을 앞세워 용병이나 기사로서 잘살아갈 수 있었지만, 해적을 택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홍등가에서 태어나 핏줄이 천하여 기사 선임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미인이었던 어머니의 피가 짙은 탓에 남자로 가득한 용병단에서는 불쾌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이는 해적도 똑같았지만, 강한 자가 모든 것의 결정권을 갖는지라 앞서 말한 곳과 달리 훨씬 좋은 선택지였다.

       

       “선장님! 전방에 귀족들이 탑승한 유람선이 보입니다!”

       

       갑판 위에 있던 선원이 크게 소리쳤다.

       

       솨아아-

       

       파도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해적선 위에서, 그녀는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모두 전투 준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일이다! 크게 한탕 하는 거다!”

       

       외모에 걸맞게 고아한 그녀의 목청이 울리자 선원들의 표정이 굳건해지며 사기가 올라갔다.

       

       “이번 일이 끝나면 깨끗이 손 씻을 거야…!”

       “나도. 결혼하기로 한 그녀와 약속했다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꿉친구에게 고백할 거야.”

       

       결심으로 가득하여 날고기처럼 생생해진 선원들의 얼굴. 스칼렛은 이 광경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였다.

       

       “자그마치 3년이다! 이날을 위해 우리가 걸어오고 준비한 나날이! 한탕, 크게 해 먹고 이젠 이 일에서 손 터는 거다!”

       

       와아아!

       

       선원들이 목청을 울리며 서둘러 움직인다. 끼기긱. 대포의 방향이 유람선을 향해 조정되었다.

       

       스릉! 스칼렛은 황금 같은 금발을 휘날리며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았다.

       

       “발사 준비 완료!”

       “위협 사격 개시!”

       

       퍼엉! 퍼엉!

       

       탄환이 발사되자 커다란 폭음에 이명이 솟구친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진한 화약의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속도를 늦춰라! 배를 붙여서 유람선의 귀족들을 인질로 잡는다!”

       

       조타수가 다급히 손을 움직였다. 일부 돛이 내려가며 선박에 붙은 가속도가 사라졌다.

       

       “한 번 더 발사합니다!”

       

       퍼엉! 퍼엉!

       

       대포 끝에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커다란 탄환이 공기를 가르며 쇄도했다. 이윽고 수면에 닿은 탄환이 터지고, 유람선의 움직임이 멈췄다.

       

       “배를 붙여라!”

       

       쿠구구궁.

       

       유람선과 가까워진 비스콘티 해적선. 선원들이 준비했던 다리를 놓았다. 다들 병장기를 들며 전투를 준비했다.

       

       스칼렛도 비장한 얼굴로 걸음을 내디뎠다. 터벅! 유람선 갑판에 발을 붙인 그녀는 도끼눈을 뜬 채 주변을 둘러봤다.

       

       ‘호위가 많군.’

       

       귀족들이 탄 유람선인지라 기사들의 숫자가 많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가 있더라도 허리춤에 숨겨진 이 비밀 병기로 상대하면 된다.

       

       ‘마법사는…….’

       

       스칼렛은 감각이 둔한지라 마력의 흐름을 볼 순 없었지만,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있진 않았다.

       

       ‘됐군.’

       

       씨익.

       

       입꼬리를 올린 스칼렛이 검을 높게 들었다.

       

       “투항하라! 너희들은 인질로 잡힐 것이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단체로 다리를 건너오는 비스콘티 해적단의 선원들.

       

       정예 기사들이라 해도 숫자는 이쪽이 압도적. 소드 마스터인 스칼렛도 있으니 패배할 일은 없다.

       

       스칼렛이 승리를 확신하고 미소짓던 그때.

       

       저벅. 저벅.

       

       칠흑과도 같은 흑발과 황금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남성이 흉흉한 살기를 띤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넌 뭐지? 멈춰라!”

       

       검 끝을 그에게 겨눴음에도 사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히, 히익!”

       “어, 어어억!”

       “악!”

       

       별안간 선원들이 무기를 떨어트리며 제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다들 설화 속 마수라도 본 어린아이처럼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뭐야?’

       

       오러가 무력에 집중되어 비교적 감각이 둔한 스칼렛은 선원들이 느끼고 있는 살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간도 크네. 귀족들이 탄 배를 습격하다니.”

       

       이윽고 앞에 도착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무런 무기도 없는 그는 무엇이 그리 자신 넘치는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오만하게 웃었다.

       

       “그러는 넌? 아무런 무장도 없이 앞으로 나온 걸 보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군.”

       

       하! 스칼렛이 헛웃음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이 세상에 해적은 많지만, 비스콘티는 여타 해적들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즉, 대륙의 강자라고 소문난 페델리안 황실 기사단장, 진 데카르트, 백귀가 오지 않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빠르게 정리하는 게 낫지 않나?”

       

       뒤에 있던 백발의 사내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나 지켜. 오랜만에 몸 좀 써보려니까.”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손을 내저으며 도움을 거절했다.

       

       ‘건방진 것들.’

       

       지금 누굴 상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이리 태평하다니. 빠득, 스칼렛은 이를 악문 채 검을 치켜들었다.

       

       “속박해! 거세게 저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선원들이 밧줄과 병장기를 든 채 달려간다.

       

       원래라면 그랬어야 했다.

       

       “…?”

       

       독처럼 다가오는 침묵. 스칼렛은 조용히 뒤를 돌아봤다. 선원들은 바짝 경직된 채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뭣들 하는 거냐! 서둘러 공격하지 않고!”

       

       크게 윽박지르자 선원 한 명이 달달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서, 선장님!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비스콘티의 선원들이 이렇게 겁먹은 강아지처럼 나온 적이 없었건만…….

       

       그때였다.

       

       “거기 너. 그거 줘봐.”

       “네, 네? 이거 말씀입니까…?”

       “그래, 그거.”

       

       갑판을 청소하다 차마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시종에게 청소 대걸레를 받아든 사내가 그걸 검처럼 잡더니 오러를 흘렸다.

       

       “!!!”

       

       불꽃처럼 일렁이는 거대한 오러. 전장과 싸움터를 넘으며 험한 삶을 살아온 스칼렛도 저리 커다란 크기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야, 오러는 단순한 크기에 불과해.’

       

       일순 두려움을 느낀 스칼렛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젓곤 정신을 바짝 잡았다.

       

       이는 자그마치 3년이나 걸린 작전이다. 이 일을 마지막으로 해적을 그만두려 했다.

       

       인제 와서 물러설 수 없는 노릇.

       

       “어쩔 수 없군. 내가 먼저 가마! 다들 따라오도록!”

       

       후웅! 스칼렛이 진각을 밟으며 바람을 갈랐다. 그녀는 매우 보기 드문 빛 속성의 오러. 찰나의 순간에 가까운 속도였다.

       

       그러나…….

       

       툭!

       

       “?!”

       

       쇄도하는 스칼렛의 검날이 단순한 대걸레 장대에 막혔다.

       

       까각! 까각! 베어낼 수 없다. 오러로 대걸레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당혹으로 물든 스칼렛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신혼인데 이렇게 방해받을 줄은 몰랐네.”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스칼렛은 곧장 허리춤에 손을 집어넣고 무기를 꺼냈다.

       

       “…머스킷?”

       

       금안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걸 알고 있나 보지?”

       

       화약을 사용한 무기. 최근 무티아 제국이 발명해 유통하고 있었는데, 수송선을 약탈하고 얻은 수확이었다.

       

       “이걸 맞으면 네가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멀쩡할 순 없어.”

       

       방아쇠를 당기면 큰 폭발음과 함께 쇠 구슬이 발사된다. 워낙 속도가 빨라서 피할 수 없다.

       

       스윽- 스칼렛이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아쉽네. 얼굴도 반반하고 능력도 있어서 내 취향이었는데, 너무 건방졌어.”

       

       퍼엉!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오러와 마력에 집중된 이 세계에서 머스킷이 발명될 줄이야.”

       

       금안의 사내는 같잖다는 듯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부, 분명 맞았는데…?!”

       

       바로 앞에서 발포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걸 피할 수는 없다.

       

       혼란으로 가득하던 와중, 스칼렛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머스킷의 쇠 구슬이 절반쯤 사라진 상태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나아가다 일부가 소멸되어 힘을 잃은 것처럼.

       

       “너는 좋은 걸 구경하게 해줬으니 죽이진 않으마.”

       

       그리고, 이것이 스칼렛이 마지막으로 들은 음성이었다.

       

       

       * * *

       

       

       툭.

       

       가볍게 손날로 그녀의 목덜미를 내려치자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털썩. 이어 갑판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금발 머리 해적. 나는 덤덤하게 앞을 바라봤다.

       

       압도적인 오러에 전신을 떨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해적들. 일반적인 사람이 버티기 힘든 중압감이긴 했다.

       

       “어떡할까요?”

       

       옆에 있던 기사가 물었다.

       

       “어떡하긴. 선장은 포박하고 남은 놈들은 죽여야지.”

       

       약탈과 살인 같은 범죄를 일삼는 해적이다. 이들에게 정해진 법이 없는 것처럼, 죽음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것이 무법자의 숙명이니까.

       

       “자, 이제 너희들은 배로 돌아가라.”

       

       고개를 까딱이자 선원들이 잔뜩 겁에 질려 쓰러진 선장을 바라봤다.

       

       숨은 쉬고 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금발 머리 선장. 나는 눈을 얕게 뜬 채 오러를 더욱 키웠다.

       

       “너네 배로 돌아가라니까?”

       

       저벅. 앞으로 슬쩍 걸음을 내디디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선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허, 허윽!”

       “선장님…!”

       “이럴 순 없어…….”

       “어떻게, 어떻게 해야…!”

       

       세상 잃은 얼굴로 망연자실 고개를 숙이는 선원들. 그들만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겠지만, 딱히 궁금하진 않았다.

       

       이들은 범죄자, 무법자, 약탈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말이다.

       

       “지금부터 셋을 셀 동안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전부 토막 내겠다.”

       

       피부가 저려올 정도로 흉흉한 살기. 그제야 선원들은 신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빠, 빨리 가!”

       “선장님은…!”

       “알아서 하실 거야!”

       “너희들이 진정 선장님께…!”

       “아오, 씨발! 빨리 건너라고!”

       

       압도적인 강자가 보여주는 공포는 아무리 동고동락한 동료일지라도 그들을 갈라놓았다.

       

       저들처럼 저급한 범죄자라면 더욱이 그러했다.

       

       “감사합니다, 데카르트 공작부군님. 저희의 일을…….”

       

       유람선의 안전을 담당했던 기사단장이 어느새 다가와 연신 허리를 숙였다.

       

       “됐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사실 내가 나선 이유는 지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장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가 없었더라면 이 유람선은 점령당하고도 남았겠지.

       

       “놈들이 다 넘어가고 곧장 배를 돌렸습니다! 이제 어쩌실 예정입니까?”

       

       어쩌긴, 주제도 모르고 프란체가 탑승한 유람선을 습격한 버러지들에게 벌을 줘야지.

       

       “물러나라.”

       

       유람선의 맨앞에서 대걸레의 장대 중간을 부여잡았다. 오러를 흘리자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초신성처럼 빛났다.

       

       “흐읍!”

       

       쐐애액!

       

       오러가 담긴 대걸레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쇄도하더니, 파도가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이어 도망치던 해적 선박에 충돌한 대걸레는 소멸의 오러를 퍼트리며 닿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으아악!

       ─사, 살려줘!

       ─크아악!

       

       콰앙! 콰앙! 콰앙!

       

       내부에 포탄을 가득 실어뒀는지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 해적들의 비명. 불타오르던 해적선은 결국 붕괴를 버티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출발하지.”

       “네, 네…….”

       

       나는 가볍게 손을 털곤 쓰러진 선장을 허리 사이에 끼운 채 일행에게 향했다.

       

       “금방 끝났네?”

       “애초에 별거 아닌 놈들이었으니까.”

       

       어깨를 으쓱이자 문득 프란체의 시선이 내 허리춤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 여자는 뭐니?”

       “선장이라던데.”

       “어쩌려고 데려온 거야?”

       “선장이니 잡아두려고.”

       “흐응…?”

       

       프란체가 눈을 얕게 떴다. 표정만 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것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 여자 계속 들고 있지 말고, 빨리 기사들한테 넘기렴. 내가 너한테 붙을 수가 없잖니?”

       

       ……단순히 사소한 질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