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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당연히 가야지.”

        

       하늘이는 곧장 그렇게 말했다.

        

       “……정말?”

        

       내가 되묻자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야 당연하지. 이제야 친척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거잖아.”

        

       라고, 아주 상식적인 말을 했다.

        

       그렇다. 하늘이는 상식인이었다.

        

       아무리 그런 사건을 겪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이 아닌 학교에 다니더라도, 이 상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하긴, 그래야 주인공답겠지. 하긴 장르 자체가 사이다 물이라기보다는 정통 미연시였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그렇기에, 피가 이어진 가족……까지는 아니고, 친척들을 당연히 만나야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을까?”

        

       하지만, 옆에 있던 수아가 의문을 드러냈다.

        

       “사라의 친척들은 대부분 유진 그룹에 관련된 사람들일 거잖아. 생일파티에 참석해서 사라에게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라 안에 들어와 있는 나는 어차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아는 것은 내 주변의 몇 명뿐이고, 그중에서 나의 나이대를 알고 있는 것은 사라 정도밖에 없다.

        

       내가 사라의 생일을 말했을 때 친구들이 내 생일을 따로 물어보지 않은 것을 보면, 일단 나는 ‘또 다른 사라’로 취급받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재계의 시선으로 보기에 나는 무척 손쉬운 먹잇감으로 보일 수 있었다.

        

       으으……

        

       그리고, 당연히 사라는 그 상황을 엄청나게 싫어했다.

        

       드디어 자기를 옥죄던 사람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다른 족쇄가 달릴 거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상황만 두고 보면 인물 관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나도 똑같이 겪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미처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하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하지만 그래도 일단 참석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는 해. 정보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상대가 속이려고 하는지, 아닌지는 상대를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사라를 찾아왔던 예인혁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친구들에게 최대한 상세하게 전달한 뒤였다. 일단 나는 의심스러운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건 나 뿐이지. 양혜인도 옆에 말없이 서 있기만 했을 뿐이고.

        

       그 사람이 양혜인을 크게 의식하는 것을 보이지 않은 것을 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돈 많은 집안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는 있었다.

        

       사람이 대화하는데 근처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서 있으면 엄청나게 불편할 수밖에 없거든. 그런 와중에 양혜인에게 눈빛 한 번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상황이 무척 익숙하다는 소리다.

        

       집에서 사용인을 쓰거나, 적어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근처에 비서를 두는 경우가 많은 사람처럼.

        

       ……뭐, 이것도 내 뇌피셜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우리도 같이 가도 된다면서? 선배랑 내가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십 대 여자아이의 생일파티에서 큰일이 터지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텐데.

        

       상대가 나를 구슬리려고 해도, 아마 ‘큰일’의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 모르게 구워삶으려고 하면 또 모를까.

        

       “저도 근처에 있을 테니, 안심해주십시오.”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양혜인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말했다.

        

       어…….

        

       뭐랄까,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솔직히 양혜인이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무섭다.

        

       만약 ‘큰일’이 벌어지면 상대 얼굴에다가 그대로 주먹을 꽂아버릴 것 같아서.

        

       아, 물론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곤란해질 만한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양혜인은 최나경 같은 사람 밑에서 몇 년을 일한 사람이니,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아,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아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생일파티라면 혹시 드레스 코드 같은 것도 있어?”

        

       “뭐?”

        

       순간 내가 뭘 들었나 싶었다.

        

       생일파티에 드레스 코드?

        

       그러니까…… 오늘 이 축제에 오실 때는 검은색 옷을 입고 와 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아니, 그냥 생일파티에 왜?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수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따로 정해진 옷은 없는 모양이네.”

        

       “입으실 드레스라면 이미 준비된 것이 있습니다.”

        

       수아의 말에, 양혜인이 안내하듯 말했다.

        

       ……드레스?

        

       “사라뿐만이 아니라, 아마 우리도 최대한 차려입고 가는 쪽이 좋을 거야. 유진 그룹 사람들이 많이 올 테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냥 생일파티라니까?

        

       케이크 사다가 초 꽂고, 소원 빌고, 노래 부르고, 후 불어서 끈 다음에 선물 받고…… 그런 거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던 내 머리에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날에 맞춰서 소소하게 축하 파티를 여는 것은 어떨까 싶다. 너는 지금까지 최나경 회장 때문에 핏줄들도 못 만났으니까 말이다. 그날 참석해서,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는 건 어떻겠니?’

        

       그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었다.

        

       만약 그 아저씨가, 유진 그룹의 이사가 아니라 진짜 친하게 지내는 삼촌 같은 사람이라면, 그 파티가 내가 생각하는 생일파티의 규모겠지만…… 그렇다. 그 사람은 유진 그룹의 이사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 이사 중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고.

        

       ……그런 사람이 참석할 정도라면, 유진 그룹의 중요한 친척들이 다 참석한다는 소리일 거고, 그 사람들의 운전기사, 비서 같은 사람들도 함께 달려올 거라는 이야기다.

        

       물론 사용인들은 축하 파티의 손님으로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 ‘친척들’의 수만 해도 한두 명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친척이 아니더라도 그룹 내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올 수도 있겠고.

        

       장소 문제는 없다. 이 저택만 해도 사람을 전부 수용하고도 남을 테니까.

        

       다만, 그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실 음식을 준비하면 필연적으로 ‘파티’의 규모도 어마어마해진다.

        

       그리고, 그 파티에 오는 대부분의 인간이 갑부들일 것이 정해진 이상, 옷도 결코 값싼 것을 입고 오지는 않을 것이고.

        

       “친구분들의 옷도 필요하시다면 금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혜인 씨.”

        

       “예.”

        

       “양혜인 씨의 것도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용인들이 파티장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양혜인만큼은 무조건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적어도 양혜인의 머릿속에 있는 그룹의 중요하신 분들의 얼굴이, 나나 사라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보다는 훨씬 많을 테니까.

        

       설령 나랑 똑같이 모른다고 해도 양혜인은 조사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조사하는 법은 알고 있겠지. 여러모로 만능인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내 편이라서 다행이다.

        

       “어…… 그러니까.”

        

       이야기를 쭉 듣고 있던 소희가, 우리들의 대화를 정리하듯 말했다.

        

       “너희들이 말하는 ‘파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집에서 하는 생일파티랑은 다른 거지? 그,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규모의 파티를 말하는 거, 맞아?”

        

       “그런 것 같아.”

        

       내가 대답하자, 소희는 정말 오랜만에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생일파티는 나중에 우리만 모여서 따로 해야겠네.”

        

       하늘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그런 규모의 파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면 생일선물도 마음 놓고 주고받지 못할 거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졌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

        

       ……그리고 내 생일을 고작 3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초대장이 도착했다.

        

       아, 나를 초대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친한 친구가 있다면 이 초대장을 건네라’라는 의미겠지.

        

       문제는, 네가 굳이 초대장을 건네가면서 초대할만한 친구가 거의 없다는 거다.

        

       기껏해야 두 명 정도만 생각나는데…… 한 명은 손아름, 한 명은 남다운이다.

        

       다만 손아름은 그냥 바로 초대할 수 있다고 쳐도, 남다운은 조금 조심스럽다.

        

       이제 와선 원작의 남주인공이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옅기는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아직도 파혼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이게 쉽지 않았다.

        

       결혼이라면 국가에서 공인해준 관계를 파기하면 그만이지만, 약혼은 아니다. 애초에 시스템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그냥 서로 약속했다고 공표하는 수준이니까.

        

       문제는 그 공표를 물러줄 사람이 지금 도피 중이다.

        

       내가 혼자 그만두겠다고 해도 걔네 집안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도 없고.

        

       오히려 지금은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번 파티는 그런 이유도 포함해서 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남자는 초대하기가 좀 그렇다. 혹시라도 이상한 오해를 받을까 봐.

        

       하지만, 그래. 여자 쪽은 얼마든지 초대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여기.”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모여앉은 와중에, 나는 손아름에게 초대장을 한 장 건넸다.

        

       “이게 뭐야?”

        

       “내 생일 초대장. 아무래도 친척들이 좀 성대하게 하려나 봐.”

        

       “어, 어어…….”

        

       손아름은 입을 반쯤 벌린 채로 멍하니 초대장을 받아들었다.

        

       ……그래, 이게 뭐냐 싶지.

        

       초등학생 때야 프린트로 만든 초대장을 재미로 주고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무슨 청첩장도 아니고 생일파티 초대장을 이런 식으로 넘기나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이었을까.

        

       어째서인지 주위가 엄청나게 조용했다.

        

       다들 초대장 쪽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아, 쪽팔리네.

        

       차라리 좀 인적 없는 곳에서 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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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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